다다숙면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은 현재 숙면 중이다. 작품의 사후에 대해 각계 의견 대립이 치열하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에 들어서면 백남준(1932~2006)의 비디오 작품 ‘다다익선(多多益善)’을 마주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념해 설치한 작품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미디어아트 조형물(높이 18.5m)이자 국립현대미술관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건축가 김원이 디자인한 나선형 입구 안쪽 공간에 들어선 이 작품은 개천절(10월 3일)을 상징하는 1,003개의 크고 작은 모니터가 모여 6층 탑 모양의 얼개를 이룬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의 내부 전시 공간은 달팽이처럼 원형 고리로 이어진다. 구겐하임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구조다. 그래서 전시장 바깥의 복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시간의 차이를 두고 발광하는 ‘다다익선’ 모니터 화면이 차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어두운 밤, 환한 달이 내 뒤를 계속 따라오듯 말이다. 그래서인지 백남준은 자신의 모니터 작업을 달에 비유하곤 했다. 사실 제목인 ‘다다익선’은 많을수록 좋다는 명칭이지만 ‘어떤 물건이 많다’는 의미보다 수신(受信)의 절대 수를 뜻한다.
백남준은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홍콩으로 피란 간 후 일본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이후 1956년 독일로 건너가 유럽 철학과 현대음악을 접한 후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니까 미술 전공자가 아니라 음악가였다. 그는 1963년 텔레비전 내부 회로를 변조하여 예술 작품으로 표현한 개인전 <음악의 전시, 전자 텔레비전>을 통해 최초의 미디어 아티스트가 되었다. 당시 출시된 비디오 캠코더를 활용한 작업이었다. 달라진 시대의 첨단 미디어를 통해 새 메시지를 창출, 소통하고자 한 획기적 아이디어였다. 바야흐로 미술사의 한 장이 새로 열린 것이다.
1964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비디오를 사용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백남준은 기술과 예술을 결합하고 음악과 신체에 대한 끊임없는 연구를 통해 그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기존 회화가 부동의 존재로 자리한 것을 처음으로 흔든 인물이다. 움직이는 회화, 실시간의 지배를 받는 그림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화면의 이미지와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영상 작업이다. 백남준은 전자 매체를 활용해 이를 작품으로 만든 최초의 작가이며 영상 이미지, 소리, 모니터 등이 어우러진 복합적 작품을 설치하면서 기존 미술의 장르를 해체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작가이기도 하다.
한국에 있는 백남준 작품 중 가장 압권은 앞서 얘기한 ‘다다익선’이다. 그런데 현재 ‘다다익선’의 모니터 화면이 꺼져 있다. 작품 앞에는 “안전 검진을 위해 상영을 중단한다”는 설명이 부착되어 있다. 그동안 이 작품은 모니터와 부품의 노후화로 잦은 고장을 일으켰다. 2003년에는 모니터를 회색 구형 TV로 전부 교체하는 등 30년에 걸쳐 여러 번 수리와 보수를 지속했다. 필요한 부품은 청계천 시장이나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구해왔지만 이러한 ‘땜질식’ 수리가 한계에 다다른 것이다. 올해 초 한국전기안전공사가 “작품을 계속 가동할 시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는 상태”라고 판단했고 결국 미술관은 2월 13일부터 ‘다다익선’의 가동을 중단했다. 삼성이 후원한 동종 모니터는 이미 단종되어 작품 보존을 위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지금 미술계는 ‘다다익선’을 두고 말이 많다. 영상 탑의 브라운관 모니터를 최신 LCD 화면으로 갈아 끼우자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작품은 철거하고 ‘다다익선’을 추억하는 오마주 작품을 만들자는 주장이 대표적이다.
앞의 주장을 살펴보자. 1988년 제작 당시 ‘다다익선’은 무성 설치물이었지만 이후 모니터 아홉 개를 추가했고, 유성 설치물로 수정했으며, 본래 세 개였던 영상 채널은 네 개 채널로 늘었다. 그만큼 이미 여러 번 수정했다. 그동안 수명이 다한 브라운관을 수리하거나 교체하면서 ‘다다익선’은 이미 처음과 다른 외형이 되었다. 따라서 모니터를 LCD 화면으로 갈아 끼우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기기 교체는 미디어아트라서 가능한 부분이다. 기존 영상 작업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필름, 테이프 등을 교체한다. 또 ‘다다익선’ 모니터 교체는 새로운 도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생전에 백남준은 영상 이미지만 온전하게 내보낼 수 있다면 TV 브라운관 대신 새로운 매체를 사용해도 된다고 수차례 말했다는 점에 기인한다. 철거보다 보존, 그 보존에서는 최대한 원형을 잃지 않아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LCD 모니터로 교체하여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LCD가 대표작의 원래 외형을 변형시킬 뿐 아니라 투사되는 화면의 질감도 달라져 작품의 정체성을 훼손하리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반면 ‘다다익선’을 오마주하자는 입장은 이렇다. 백남준은 생전에 이 작품 의도에 대해 “‘다다익선’이 수신의 절대 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다다익선’이라는 작품 제목은 모니터 개수나 물리적 크기를 말하는 것에 한정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작품의 핵심은 이른바 ‘소통’이다. 백남준은 TV가 가져온 범국가적 소통 기능에 관해 얘기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360도 원형의 외형을 지닌 TV 브라운관 탑을 통해, 그 온몸으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작동되지 않는 ‘다다익선’은 본래의 의도를 전혀 나타내지 못한다.
LCD 화면으로 수리한다고 해도 작품이 ‘소통’을 나타내지 않기에 본래 작품 의도를 살려 현대적 소통을 의미하는 오마주 작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전자 매체를 이용한 작품은 특성상 장비별 사용 연한이 있다. ‘다다익선’은 30년이 그 끝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매체별 사용 연한을 주기로 두 번째, 세 번째 ‘다다익선’이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판화나 사진 작품의 에디션 넘버처럼 말이다. 혹자는 최신 고화질 색감에 익숙한 관람자들에게 이전 기기를 사용한 ‘다다익선’은 저화질 화면이기에 동시대 기기로 오마주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한편 또 다른 이들은 꺼져버린 브라운관 ‘다다익선’을 그대로 두는 것도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작가 생전에 완성한 작품이기에 그의 생각과 의도를 잘 담아내는 원형의 보존이란 측면에서일 것이다. 다만 작동하지 않는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되, 오마주 작품을 새로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을 가진 이들도 많다.
또 이 작품이 설치 당시 10년만 전시하기로 약정한 만큼, 다른 소재를 써서 무리하게 연명하는 것보다 ‘다다익선’의 영상 콘텐츠를 보전하는 조건으로 다른 방식의 기념 전시를 하는 것이 진전된 대안이라는 논의도 있다. 사실 이 같은 작품 철거론은 미술관 내부에서 오래전부터 제기해온 것이다. 그러나 ‘다다익선’이 30년간 미술관 상징으로 굳어진 상황에서 철거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백남준 작품의 저작권은 미국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이 갖고 있으며 고인의 대리인 켄 백 하쿠다 등 재미 유족, 백남준아트센터 등의 국내외 여러 소장 기관 등 발언권이 있는 전문가, 관계 기관의 숫자가 방대하다. 따라서 의견을 수렴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뿐더러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기에 더 그렇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우리 삶과 마찬가지로 작품 또한 일시적이고 유한한 생애를 사는 것이라고 본다. ‘다다익선’ 역시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면 기꺼이 죽음을 맞아 소멸하는 것이 순리다. 대신 기록물이 남아서 그 작품을 기억하면 되지 않을까?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여러 사조는 한결같이 미술 제도에 비판을 제기하는 동시에 미술 작품을 물질적인 것에서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으로 대체하고자 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퍼포먼스, 대지미술, 설치 등이다. 영상 작업 역시 그런 맥락에 자리한다. 그것들은 모두 물질적 실체로 남지 않고 비물질적 존재로, 특정한 시간 동안 한정된 공간에서 일정한 삶을 살다 사라지고자 했음을 기억해보라.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은 ‘다다익선’을 둘러싼 문제에 구체적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다만 관련 전문가로 이루어진 자문단 30여 명을 선정했고, 추후 이들 의견을 수렴해 작품의 거취를 결정할 예정이라고만 전했다. 이 문제가 왜 이렇게 중요할까? 그것은 전 세계에 흩어진 백남준의 작품 중 가장 큰 대표작이라 이의 대안 자체가 미술사에 중요한 전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상징하는 작품의 운명이라는 점도 그렇다. 미술 작품 역시 탄생과 함께 죽음 또한 거대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 에디터
- 김나랑
- 포토그래퍼
- 연합포토
- 글쓴이
- 박영택(경기대학교 교수, 미술평론가)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