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가 어려운 당신에게
곤도 마리에처럼 모든 옷을 작게 접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다. 당신에게는 건실한 노동력이 있습니까, 넉넉한 수납공간이 있습니까.
어른이 되고서도 오랫동안 내가 맥시멀리스트인 줄 몰랐다. 어린 시절 “장난감을 갖고 놀면 치우랬지?”라며 혼내던 엄마 역시 맥시멀리스트여서 자연스럽게 닮았던 것 같다. 차이가 있다면 엄마는 제자리에는 두는, 난 그마저 못하는 맥시멀리스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집 안의 시계 열여섯 개를 가리켜 “어떤 종류의 엔트로피가 증대하는 것처럼, 차례차례 쌓여버린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성장과 함께 물건은 자가생식하듯 불어났다. 교복 세대도 아니었던 터라 옷과 액세서리, 매월 사들이는 잡지와 음반, 방과 후 꼭 들르는 ‘팬시점’의 아기자기한 문구 따위로…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이사 핑계로 아빠가 내 잡지 수백 권을 몰래 버렸고 뒤늦게 알게 된 난 울며불며 가출을 꿈꿨다.
구독하던 패션 잡지에 당대를 호령하던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장 루이 셰레(Jean-Louis Scherrer)의 파리 집이 실린 적이 있다. 골드와 블랙을 바탕으로 온갖 무늬가 충만한 벽지, 패브릭에, 동서양에서 공수한 골동품, 예술품이 꽉 들어찬, 좀처럼 빈 공간이 없는 화려함의 극한이었다. 그 카오스적 아름다움에 전율하며 ‘나도 나중에 집을 저렇게 꾸며야겠다’라고 결심했던 것 같다. 왜 그때 깨닫지 못했을까? 그는 맥시멀리즘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고, 난 일개 어린 ‘호더’였다는 걸…
패션 잡지 에디터가 되며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옷, 화장품, 책 등을 하루도 빠짐없이 집에 들였다. 직업과 관련된 투자라고 생각하니 거칠 것이 없었다. 스스로는 물건 더미에 손도 못 대고, 남이 정리해줘도 곧 다시 탑이 되어 가족과 갈등을 빚었으며, 지병인 알레르기성 비염은 날로 심해졌다. 마치 탑 꼭대기에 갇힌 라푼젤처럼 물건이란 탑에 스스로를 가뒀다.
그 와중에 또 새 책을 들이려다 뒤통수를 망치로 때리는 것 같은 책 한 권을 만나게 된다. 캐런 킹스턴 저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또렷이 기억하는데 2001년 봄, 서울 삼성동 코엑스 내 반디앤루니스 신간 서적 코너에서의 일이다. “한번 구입한 물건은 절대 안 버린다,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나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만일을 대비하여 보관한다, 주변 사람과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필요할 때 찾을 수가 없다, 아침마다 허둥댄다…” ‘이 사람 혹시 신 내린 게 아닐까?’ 싶을 만큼 하나도 빠짐없이 내 얘기였다.
그제야 돌이켜 보니 한 번도 물건을 제대로 버린 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못 버리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그 모든 혼란이 ‘버리지 않아서’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달은 후 처음으로 언젠간 입을 거라고 옷장 깊숙이 넣어둔 옷, 다시 읽겠다고 쌓아만 둔 책을 버렸다. 소형 트럭 한 대분은 나왔고 며칠 앓던 변비가 해결된 느낌이었다. 이후 <단순하게 살아라> <우리 집 수납 정리> <청소력> 등 정리 정돈 책은 나오는 대로 읽었다. ‘공간 및 시간 정리학’의 양대 산맥은 독일과 일본이고, 거기에 가끔 영국이 낀다는 것도 알았다. 독일, 일본 모두 세계대전 패전국으로, 극단적인 근검절약의 시대를 경험한 적이 있다. 이후 거품경제로 풍요를 맛본 일본은 그 붕괴와 함께 본격적인 미니멀리즘 트렌드를 맞이한다. 정리 전문가 협회가 30여 개나 있고 인터넷, TV로도 콘텐츠가 끝없이 쏟아지는 일본에서도 독보적인 사람이 곤도 마리에. 2011년에 낸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은 일본 아마존에서 100만 부 넘게 팔렸다. 2014년 미국에 건너간 책은 <뉴욕 타임스> 기자가 소개하면서 800만 부 이상 팔리는 기염을 토했고 올 초 곤도 마리에 이름을 건 넷플릭스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다. 첫 회 방송 후 굿윌 기증품이 40% 늘었고, 곤도 마리에의 정리 방식은 ‘콘마리 메소드(KonMari Method)’, 그걸 실천하는 사람은 ‘콘버트(Konvert)’로 불리게 됐다.
일찌감치 읽은 곤도 마리에의 저서를 되짚어보면 핵심인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사실 정리 전문가들이 흔히 차용하는 뉴에이지풍 메시지 중 하나다. 캐런 킹스턴은 잡동사니를 버리면 집 안 풍수가 좋아져 운이 들어온다고 했고, 마쓰다 미쓰히로는 청소를 하면 불행의 자장, 마이너스 에너지를 없애 일이 잘 풀린다고 했다.
하지만 유독 곤도 마리에가 세상을 정리할 듯 승승장구하는 이유는 무얼까? 누군가는 그의 캐릭터가 ‘동양에서 온 신비한 정리 요정’으로 자리 잡았다고 했다. 물건을 가슴에 대며 “큥!” 또는 “츤!” 하는 소릴 내고, 버릴 물건에 합장을 하고, 활짝 웃으며 설렘(Spark Joy) 동작을 하는 등 곤도 마리에 특유의 의식과 142cm라는 가냘픈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리 파워’가 풍요에 지친 미국인의 마음을 흔들었다는 것이다.
요즘은 또 ‘콘마리 메소드’ 중에서도 옷 개기가 유행인 모양이다. ‘콘마리 메소드’에 따라 옷을 개고 수납한 서랍을 공개하는 미국인 유튜버가 부쩍 늘었다. 곤마리식 옷 개기는 군필 한국 남자에게도 익숙한 방법으로, 모든 옷을 카드처럼 작게 접어 서랍이나 상자에 수납하기 좋게 하는 것이다. 마지막에 군대식은 돌돌 말고, 콘마리는 세울 수 있게 각을 잡는다. 좁은 공간에 최대한 수납할 수 있는 일본식 수납법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미국 <엘런 쇼>에서 진행자 엘런 드제너러스가 느슨하게 갠 티셔츠를 곤도 마리에가 다시 더 작게 눌러 개는 걸 보고 ‘미국에 과연 저 방식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사실 미국인뿐 아니라 서양인은 개기보다는 걸기에 익숙하다고 생각한다. 재킷, 블라우스는 당연하고, 티셔츠, 청바지도 건다. 세계적 패션 피플도 집 공개를 할 때 보면 색상별로 옷이 줄줄이 걸린 드레스 룸을 쉽게 볼 수 있다. 옷을 걸면 좋은 점은 수납이 빠를 뿐 아니라 한눈에 옷 전체를 볼 수 있어 스타일링이 쉽고, 형태가 유지돼 다시 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대신 눌러 개는 것보다는 공간이 많이 든다.
나 역시 일본 수납법을 따라 할 때 옷을 칼같이 개어 제자리에 넣는다는 야무진 꿈을 꾼 적이 있다. 처음 한번은 아등바등하며 옷 대부분을 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바로 다음 날 아침 상의의 무늬와 하의가 어울리는지 등을 맞춰봐야 되는데, 갠 상태로는 바로 느낌을 알 수 없었다. 결국 ‘다시 펼친다-여러 개를 펼쳐두고 하나를 찾지만 주름이 생겨 있다-다릴 시간이 없어서 주름 없는 안 어울리는 걸 입는다-펼쳤거나 쑤셔 박은 옷이 점점 늘어난다’는 슬픈 루틴이 생겨났다.
걸기와 개기의 큰 차이를 만드는 두 키워드는 ‘노동력’과 ‘공간’이다. 개는 방식은 늘 옷을 종류별로 개어 넣고 입기 직전, 또는 그 전날 다리는 누군가가 있어야 되고, 그게 ‘전통적 일본 주부’ 이미지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미국은 공간이 싸고 가사 노동력은 비싼 곳이다. 또 간과한 사실은 “옷 개기는 무척 재미있어요!” “옷을 개서 넣거나 꺼낼 때 ‘설렘(Spark Joy)’을 느낄 수 있어요!”라고 반복해 말하는 곤도 마리에 자체가 옷 개기 ‘덕후’라는 점이다. 옷을 칼같이 접고 세우며 쾌감을 느끼는 타입.
노동력과 공간 둘 다 현대사회에서 중요한 자원이다. 자신이 무엇을 더 가지고 있는지, 어떤 쪽이 진심으로 더 편한지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나는 대부분을 걸고, 늘어나기 쉬운 니트와 성긴 티셔츠, 잠옷, 속옷과 양말, 스타킹 정도만 서랍에 넣는다. 한국에서도 드레스 룸과 함께 거는 방식이 점점 늘고 있는 걸로 안다. 의외의 ‘걸기파’를 또 한 명 발견했으니, 바로 아이돌 그룹 엑소의 백현. 청소 비결을 알려달라는 팬의 질문에 “옷을 걸어놓는 걸 해요” “보통은 개서 보관하시는 분들이 많거든요. 조금 더 간편하고 빠른 집 치움을(정리를) 위해서 저는 옷을 다 걸어둡니다”라고 답한 것. 연예인이나 모델, 스타일리스트처럼 옷이 많고, 자주 갈아입는 사람일수록 거는 방식을 선호한다. 하지만 덩샤오핑의 ‘흑묘백묘론’처럼 개든 걸든 결과적으로 물건을 스스로 편하게 쓸 수 있으면 된다. 걸고 싶은데 도저히 공간이 없다. 그때가 바로 안 쓰는 물건을 버릴 타이밍이다.
정리 책마저 계속 사는 내가 최근 산 책은 <1일 1개 버리기>다. 저자 미쉘은 “영수증 하나라도 매일 버려라” “세상에 버릴 수 없는 물건은 없다”고 조언한다. 이 방식으로 저자의 친구도 3개월 만에 350개를 버렸다. ‘하루 한 개 버리기’는 어느 방법보다 효과적이었다. 어느 날은 정말 지갑 속 영수증 한 개, 어느 날은 안 어울리는 옷 10여 벌을 버렸다. “네가 웬일이냐?”며 의아해하던 남편도 덩달아 안 쓰는 물건을 버려 내 공간은 좀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제는 주제를 파악해서, 미니멀리스트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는다. 새로운 설렘으로 채울 공간을 ‘비움’으로써 만들어갈 뿐이다.
- 에디터
- 조소현
- 포토그래퍼
- GETTYIMAGESKOREA
- 글쓴이
- 이선배(크리에이티브 컨설턴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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