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자신감의 상징, 블랙 아이라인
권력과 자신감의 상징! 바이러스 시대의 훈장으로 떠오른 블랙 아이라인.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누군가는 나의 뷰티 노하우를 높이 살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동료 배우의 얼굴에서 매력적인 꾸밈의 기술을 목격하더라도 실행에 옮기지 않는 인내심을 연마해왔다. 고백하건대, 화장대 위 메이크업 제품 대부분이 2년 전 생명을 다했다. 세척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는 수준의 브러시는 버리는 쪽을 택했고, 파운데이션은 까무잡잡하게 태닝한 재작년 여름에 구입했기에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다. 게다가 새로운 베이스 제품을 발굴하는 데 시간과 돈을 투자할 마음마저 사라진 지 오래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내 피부에 꼭 맞는 컬러를 찾지 못할 게 뻔하고, 심지어 불필요해진 제품을 환불할 만한 처세술도 부족하니까.
역설적이게도, 뷰티 판타지를 깨고 나온 초연한 태도는 필사적으로 치장하고 싶은 욕구와 미용에 애쓰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은 얄팍한 자존심이 충돌하며 시작됐다. 얼핏 ‘노 메이크업’을 고수하는 듯 보여도 최신 유행을 선망하는 다중 인격체가 바로 나다. 최근 뷰티 레이더망에 포착된 것 하나를 공개하자면 단연 ‘블랙 아이라인’이다. 솔직히 다른 선택지가 없지 않나? 지난 1년 동안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 이상을 덮고 있었고 이를 벗을 날도 묘연하니!
고등학생 시절, 블랙 아이라인은 혹독한 사춘기를 겪는 소녀들 사이 통용되던 일종의 증표였다. 나 또한 어반디케이의 ‘24/7 글라이드 온 아이 펜슬’로 너구리처럼 눈 주위를 거멓게 칠해 ‘귀찮게 굴지 말라’는 메시지를 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하지만 2020년, 이 까칠한 아이라인이 SNS는 물론 런웨이를 장악했다. 디올 메이크업 크리에이티브 & 이미지 디렉터 피터 필립스(Peter Philips)의 강렬하고 대범한 라인부터 발렌티노, 끌로에 쇼를 진두지휘한 메이크업 아티스트 팻 맥그라스(Pat McGrath)의 신스 팝 보컬리스트에서 영감을 받은 듯 자유분방한 라인까지 다채로운 디자인이 쏟아져 나왔다.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자 고군분투하는 모두의 마음을 대변하듯 말이다.
“고대에는 권력의 표현이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카잘, 콜 등으로 불린 검은색 가루를 눈 주위에 발랐어요. 아이라인의 도움을 받아 자신감을 충전하는 거죠.” 메이크업 아티스트 패티 듀브로프(Pati Dubroff)의 의견에 넷플릭스 드라마 <퀸스 갬빗>의 주인공 베스 하먼(Beth Harmon)을 탄생시킨 수석 헤어 & 메이크업 디자이너 다니엘 파커(Daniel Parker)도 동의했다. 그는 맥의 ‘블랙트랙 젤 & 펜슬 인 스몰더’를 비롯 디올, 입생로랑 뷰티, 톰 포드 뷰티의 리퀴드 아이라이너를 무기로 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Anya Taylor-Joy)를 체스 신동에서 누구도 왕좌를 넘보지 못하는 세계 일인자로 변신케 하는 데 공을 세웠다. “소녀 베스에게는 섬세하고 얇은 아이라인을 연출했지만, 그의 실력이 성장하는 만큼 눈에도 길고 선명한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매일 혼자 체스 연습을 하는 그에게 메이크업이 무슨 소용이냐는 시청자 후기가 올라오지 않은 것만 보아도 아이라인이 선사하는 이미지 메이킹 효과는 증명된 셈이죠.”
뷰티 월드에 혜성처럼 등장한 바이레도의 첫 메이크업 컬렉션에도 리퀴드 아이라이너가 존재한다. 아이스링크를 누비는 스케이트 선수처럼 눈가에 매끄럽게 발리는 아이라이너 출시의 주역은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사마야 프렌치(Isamaya Ffrench). “요즘에는 말 그대로 ‘잘빠진’ 선이 핵심이에요. 1990년대 밴드 너바나(Nirvana)의 쿨한 그런지 아이라인의 명맥이 끊겼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죠.” 하지만 젊음의 상징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며 강조했다. 실제로 ‘틱톡커’ 체이스 허드슨(Chase Hudson)의 시그니처인 블랙 네일과 아이라인은 그에게 21세기 뱀파이어라는 애칭을 하사하며 200만 젠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처럼 아이라인은 여전히 대중문화의 훈장 중 하나다.
“수술이나 시술 없이 눈매를 교정하는 마법이죠.” 킴 카다시안의 최측근인 메이크업 아티스트 마리오 데디바노빅(Mario Dedivanovic)은 좀 더 실용적인 이유로 아이라이너를 애용한다. “눈 사이가 가깝다면 눈동자 중앙에서 눈꼬리로 날렵하게 선을 그리고, 양 눈의 거리를 좁히고 싶다면 앞머리를 꼼꼼히 메워주세요. 아이라인의 두께로 양 눈매의 비대칭을 보완하는 것도 순식간이죠.” 그가 이끄는 브랜드, 메이크업 바이 마리오(Makeup By Mario)의 ‘마스터 피그먼트 프로 펜슬’은 나의 뷰티 인생을 통틀어 최고의 제품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언제나 지갑을 열 준비가 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니! 고정력이 출중하면서도 쉽게 그러데이션할 수 있어 나의 어설픈 테크닉에도 아티스트의 손길이 닿은 듯 완성도가 수직 상승한다. 아이 펜슬을 곁에 둔 뒤로 내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다 면밀하게 살피고 이상적인 아이라인 뽐내기에 열을 올리다 보니, 유튜브에서 마리오의 튜토리얼 영상을 찾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입술 성형에 수천 달러를 투자한 여인들에게는 슬픈 소식이지만, 마스크와의 공생이 장기화되면서 우리는 반짝이는 두 눈에 모든 관심을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 소심한 뷰티 마니아인 나조차 캐츠 아이 메이크업은 이미 마스터했다. 몇 년이 걸리더라도, 백신을 맞고 마스크 없는 외출이 가능한 그 순간까지 아이라인 정복기는 계속될 것이다. 아마 그때쯤 물건을 환불하는 법도 터득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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