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 디자이너, 자크무스

2022.08.08

by VOGUE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 디자이너, 자크무스

    불과 서른 살에 자크무스는 패션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인 디자이너가 되었다. 자연스럽고 여유로우며 세상에 열려 있는 이 크리에이터는 꽃길에 멈춰 서기보다 미래를 준비한다.

    소년에서 청년, 이제 신사의 풍모가 느껴지는 시몽 포르트 자크무스.

    이것은 한 작은 새가 날개를 펼치고 마침내 바람을 거슬러 날아오른 이야기다. 그에게는 금전적 지원, 정규교육, 지인이나 인맥도 없었다. 현재 30세인 시몽 포르트 자크무스(Simon Porte Jacquemus)는 19세의 나이로는 쉽지 않은 분야인 패션계에 입문했다. 그야말로 촌구석인 프로방스 출신으로, 고리오 영감의 라스티냐크 청년처럼 야심 차게, SNS상의 해프닝처럼 자신의 브랜드를 파리에서 선보인 것이다.

    몇 해 전<보그> 패션 나이트 아웃이 있었던 몽테뉴 거리에서, 자크무스는 디올 쇼장 입구에 시위 현장을 꾸며 이를 스트리트 마케팅으로 활용했다. 이는 파리 <보그> 편집장에게도 알려졌으며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텀블러에 올린 첫 컬렉션도 크게 주목받았다. 많은 사람이 한 시즌의 붐 정도로 예측했다. 그러나 그는 패션계에 안착했고, 비즈니스 역시 안정적이었다. XXL 캐플린 모자나, 치키토 가방 같은 컬트적 인기를 끈 디자인을 통해 삶을 즐기고, 태양과 같은 에너지, 섹시함이라는 자크무스 브랜드의 정체성도 명확해졌다. ‘SPJ Simon Porte Jacquemus’는 2018년에 남성복도 론칭했다. 인스타그램(팔로워가 300만 명에 달한다)을 종횡무진하며 리한나, 비욘세 같은 셀럽에게까지 알려졌음은 물론이다. 자크무스는 80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지속적인 매출 상승세를 보인다. 최근 기준으로는 약 2,000만 유로, 그러니까 매출이 약 270억원에 달할 것으로 짐작된다.

    파리 8구에 있는 자크무스의 쇼룸에서 그를 만났다. ‘우리 엄마’에 대한 얘기가 끊임없었지만, 어머니에게서 독립한 자유로운 모습과 당당함도 보이며 이야기를 이끌었다.

    2013 F/W

    ‘자크무스 성공기’. 이 표현을 어떻게 생각하나요? 스스로 종종 생각해보는데 ‘어쩌라고…’ 싶긴 해요. 아주 어릴 때부터 제 브랜드를 하고 싶었어요. 열여덟 살에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파리로 와서 패션 학교를 한 달쯤 다녔고 충격을 받았죠.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죠. “해내야 해, 그렇게 엄마랑 약속했잖아”라고요. 바느질하는 법도 몰랐지만, 제가 원하는 게 뭔지는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어떤 여성을 모델로 쓰고, 어떤 글씨체로 브랜드 로고를 만들고, 브랜드 이름은 뭘로 할지도. 장 뤽 고다르 감독의 <사랑과 경멸(Le Mépris)>을 보고 큰 영감을 받았거든요. 또 여성, 남성, 이탈리아, 이런 것들을 늘 원했어요. 이미지가 가장 중심에 있고, 그게 결국 제 인생이거든요. 물론 옷도 큰 의미가 있지만 켈로그 제품과 관련된 텔레비전, 사진, 광고나 장 폴 구드의 작업도 좋아하고요.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늘 좋아해서 영화 찍는 것도 하고 싶은 프로젝트기도 합니다. 그리고 옷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수단이 굉장히 적어서 더 강력한 이미지를 남겨야 한다는 것도 알았고요. 제 욕심과 천진난만함이 사람들에게 와닿는다고 생각합니다. 잃을 게 없다는 태도가 느껴지는 거겠죠. 그런 식으로 굉장히 빠르게 2015년까지 달려왔어요. 꼼데가르송 매장에서 판매원으로 일하면서 저만의 컬렉션과 패션쇼를 밤마다 꿈꿨죠. 모두에게 칭찬과 박수갈채를 받는 그런 꿈. 그렇게 다음 날 깨어나면 매장에서 향수를 팔고 있었죠. 이런 것이 상상을 현실로 만들게 했어요.

    감이 좋군요. 사업적 재능도 있는 것 같은데요? 첫 컬렉션이 팔리지 않으면 두 번째를 발표할 자금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어요. 그렇게 성장하게 되었죠. SNS를 하고 있었고, 니치 고객이 있었으며, 이것들이 모여 스노우볼링이 된 거죠. 철저히 현실적인 전략을 취하고 있어요. 회사는 독립적이며 재정도 건강하죠. 우리가 우리 물건을 팔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저 역시 매장에 도착하기까지 물류 과정, 모든 비용, 마진, 매일의 매출 같은 모든 걸 파악하고 있어요. 만약 물건이 잘 팔리지 않는다면 질문을 던질 때죠. 사업에는 정말 많은 사람이 관련되어 있고, “이렇게 하고 싶은데요”, “이렇게 해야죠”라고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타입은 아닙니다. 딱 부러지게 결정하지만 흐름이 어떤지 알아내기 위해 이야기부터 듣죠.

    2020 S/S

    존경하는 패션 디자이너는 누구인가요? 기존 브랜드를 넘겨받은 것도 아니고 전통적인 교육을 받지 않아서, 제 코드도 그렇고 제가 하는 것은 여러 가지의 믹스입니다. 고티에의 대중성, 가와쿠보의 진보적인 느낌, 마르지엘라의 의상에 대한 감각, 야마모토의 시적인 연출, 꾸레주의 데생에서 느껴지는 순수함, 라거펠트의 코믹하면서도 실용적인 액세서리, 마랑의 프렌치 감성 같은 것을 좋아합니다. 요즘은 어릴 때 꿈꾸던 피에르 가르뎅 같은 크리에이터가 되는 일에 집착하진 않아요. 그는 의상을 넘어서 건축과 디자인에 대한 감성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했죠.

    여러 브랜드에서 접촉이 있었죠? 물론이죠, 아주 많이. 금액도 아주 컸죠. 한번은 엄청나게 큰 건의 계약에 대해 할머니께 전화를 드려 여쭤본 적 있어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어쩐다는 거니? 좀 더 큰 집으로 옮기는 정도일 것이고, 그 큰 공간 다 쓰지도 못할 텐데! ”정말이지 저를 뼛속까지 알고 계신 분이에요. 자기 삶이 없는 수많은 아트 디렉터처럼 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파타고니아의 창업자 이본 쉬나드(Yvon Chouinard)처럼 되고 싶어요. 그의 책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Let My People Go Surfing)>에 나오는 그런 느낌으로요.

    2021 S/S

    인스타그램에 굉장히 열심이에요. 어떻게 관리하나요? 저에겐 일상이에요. 저는 SNS 세대이고, 열두 살 때부터 블로그를 운영했어요. 제가 이탈리아 <보그>에서 일한다고 상상하면서, 사촌 동생들에게 어머니의 드레스를 입히거나 선글라스를 씌워놓고 찍은 사진을 올렸죠. 혼자 인스타그램 계정을 관리하고 가능한 한 많이 소통하려고 해요. 뭔가 올릴 땐 너무 오래 고민하지는 않으려고 해요.

    다른 브랜드에 비하면 제품 가격을 합리적인 수준으로 유지하는 전략도 갖고 있어요. 처음부터 그렇게 하고 있죠. 고객과 크리에이터 간에 아주 큰 간극이 있다고 느껴왔어요. 가격이나 엘리트주의, 예술가만의 세상. 텔레비전에 나오는 장 폴 고티에를 보면서 컸고, 정말 좋아했어요. 그분은 패션 크리에이터가 되어 마돈나 의상도 제작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줬고, 친절하면서도 모두에게 사랑받는 인물이었어요. 그 후에는 칼 라거펠트가 있었는데, 정말 ‘팝’한 분이었죠. 미디어에도 능숙하게 응하고 재미있고. 제 브랜드의 제품 가격이 고객의 구매력과 함께 올라갔다고는 해도, 여전히 합리적인 가격대입니다. 드레스 한 벌에 600~700유로, 코트는 800유로 정도 합니다. 중요한 점도 있어요. 다른 브랜드와 달리, 바로 매장에서 판매하는 의상만 패션쇼에 선보입니다. 환상을 보여준 뒤 후디를 팔지는 않아요.

    2020 F/W

    오늘 아침 핑크색 옷을 입었군요. 핑크색을 굉장히 좋아하고 즐깁니다. 피부색도 살려주고, 여자건 남자건 모두에게 다 잘 어울리죠. 제가 성장한 시대는 스포츠웨어가 유행한 덕분에 남자도 훨씬 다양한 컬러를 입을 수 있었어요. 형광 초록, 애플 그린,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유니폼의 블루 같은 것들이죠. 이것이 증거가 되었어요. 젠더리스 트렌드에 반드시 따르는 건 아니거든요. 이런 코드를 갖고 노는 것을 좋아해요. 첫 남성복 컬렉션‘ 르가조(집시들이 집시가 아닌 남성을 칭하는 단어)’는 해변의 근육질 남성을 컨셉으로, 라틴 스타일의 남성성을 정점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남성 패션에 여성성, 양성성을 전반적으로 더했습니다. 어떨 때는 올드 스쿨 스타일로 돌아가 작업하는 동시에 굉장히 젊은 것에 끌리죠.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은 것을 따라 작업하는 편이에요. 스스로도 어떤 때는 ‘가조’이면서, 다음 날은 굉장히 여성스러운 느낌도 있고요. 남성복의 경우 굉장히 각진 실루엣, 박시한 실루엣을 추구해왔는데요, 매우 진화된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컬렉션을 준비하고 있어요. 여성복도 같이. 처음에는 아주 순수한 상태에서 시작해 점점 여성스러워지고. <라 밤바>처럼요. 그리고 진화하는 거죠. 언젠가 인스타그램에 누가 이런 포스팅을 올렸더라고요. 미쳤군. 자크무스는 순수, 팝, 그런지 컨셉 다 거쳐서 장사치 다 됐어, 라고요. 제가 시작할 때는 스무 살이었고, 지금은 서른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답했어요. 간단하죠. 제가 성장하면서 제 컬렉션도 함께 성장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 얘기도 들어야 하지만, 본인 이야기를 듣는 것도 중요해요. 거기서 균형을 찾아야만 해요.

    #미투 운동으로 남자에게 위기가 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정말 큰일이었죠. 위기가 있었던 건 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가질 생각인데, 정말 가르칠 것이 많을 거라고 봐요. 가정교육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니까요. 세자르 시상식에서 아델 에넬이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때, 반응한 사람이 그렇게 적었다는 것에 충격받았어요. 아직도 구시대적 시스템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운 좋게도 앙젤(Angèle) 같은 인물이 있어서 페미니스트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하고 있죠. 이런 것을 브랜드에 어떻게 재해석할지 고민입니다. (VK)

      Louise Witts
      사진
      Elizaveta Porod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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