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뮤즈가 된 디자이너 13인
이달 초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뉴욕 일레븐 매디슨 파크에 근사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는 룩이었다. ‘Marc Jacobs’라고 큼직하게 쓰인 코트, 셀린느 진과 화이트 발렌시아가 부츠를 매치한 모습. 명실상부 패션을 사랑하는 제이콥스는 디자이너 레이블을 즐겨 입는 것으로 잘 알려진다. (예를 들면 그가 소장한 프라다 컬렉션은 독보적이다.) 그가 즐겨 입는 다양한 디자이너 레이블의 옷 중에서도 자신을 위해 직접 디자인한 2021 가을 시즌 코트는 단연 돋보였다. 하긴 마크 제이콥스에게 자신보다 더 근사한 뮤즈가 어디 있을까?
요즘 자신의 디자인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패션 거장이 눈에 띈다. 이렇게 스스로를 마음껏 표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몹시 즐거운 일이다.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대표적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구두, 연한 금발 헤어,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핸드백 컬렉션까지, 그녀는 모던 베르사체 걸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려하고, 대담하며, 섹시하다. 지난해 베르사체가 펜디와 콜라보레이션을 진행했을 때(일명 ‘펜다체’), 도나텔라는 ‘펜다체’ 컬렉션의 두꺼운 로고 벨트를 연출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첫 번째 주인공이었다. 스타일에서는 도나텔라와 정반대 경우도 있다. 더 로우의 메리 케이트와 애슐리 올슨 말이다. 더 로우의 옷은 그녀들의 고급스럽고 절제된 퍼스널 스타일과 꼭 닮았다.
루이 비통의 남성복과 자신의 레이블 오프화이트를 이끌다 작고한 디자이너 버질 아블로. 그는 자신의 디자인을 즐겨 입기로 유명했던 또 다른 거장이다. 지난해 7월 아블로는 루이 비통 만찬에 다채로운 단추가 돋보이는 블랙 수트, 화이트 셔츠, ‘A Formality’이라고 쓰인 타이를 걸치고 나타났다. 위트 있는 메시지의 레터링 디자인은 오프화이트 피스의 시그니처 디테일이다. 타이 외에도 ‘For Walking‘이라고 적힌 부츠가 대표적이다.
물론 릭 오웬스도 빼놓을 수 없다. 고스 룩 애호가답게 그의 옷장에는 자신만의 시그니처 아이템이 가득하다. 하루 종일 그는 몸에 착 붙는 자신의 블랙 저지와 몬스터 같은 슈즈를 걸치고 있다.
‘디자이너 스스로 뮤즈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직접 만든 옷을 입고 거리를 걷는 것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본인의 캐릭터를 녹여 패션쇼를 직접 스타일링하는 미우치아 프라다를 보라. 프라다의 모델들이 코트를 손으로 움켜쥐고 걷는 모습은 확연히 미우치아 자신을 표현한 것이다. 디자이너 랄프 로렌을 그대로 연상시키는 랄프 로렌 컬렉션의 블레이저와 진 스타일링, 뎀나 바잘리아의 오버사이즈 후디도 마찬가지다.
디자이너가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든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든 디자이너가 자신이 만든 작품의 마스코트를 자처하지는 않는다. 꼼데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가 그 예다. 올 블랙 미니멀리즘의 여왕인 그녀의 옷장에는 런웨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볼륨감 넘치는 다채로운 아방가르드 피스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렇듯 디자이너의 개인적 스타일이 그들의 컬렉션과 늘 닮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모두가 자신만의 브랜드를 원하는 요즘, 디자이너들이 더욱더 ‘셀프 광고’의 힘을 깨닫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니까 이건 단순히 자아도취 이상의 문제라는 얘기다. 생각해보면 디자이너들이 브랜드를 위해 ‘걸어 다니는 룩북’을 자처하는 것은 꽤 자연스럽고 타당한 이야기다. 그들의 옷은 디자이너 자신, 영감과 호기심의 일부를 상징한다. 그러니 이를 자랑스럽게 표현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겠나. 제이콥스, 아블로, 올슨 쌍둥이가 보여주듯, 스스로의 뮤즈가 되는 것은 정말 근사한 결실을 거둔다. 그들뿐 아니라 자신만의 브랜드를 온몸으로 표현하는 이런 디자이너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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