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에 어울리는 옷

Fashion

혁명에 어울리는 옷

2022-02-11T13:56:07+00:00 2022.02.09|

많은 이목을 끈 패션쇼와 반체제 유명인과의 프로젝트로 발렌시아가의 뎀나 바잘리아는 패션계에 군림하는 이단아가 됐다.

 

지난해 7월 초 어느 수요일 아침, 경건한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한 모델이 파리 애비뉴 조르주 5번가 10번지에 자리한 오래된 상점가를 거닐었다. 그녀는 발렌시아가 50번째 꾸뛰르 컬렉션 중 17번째 룩인 오렌지색 맞춤 스커트 수트를 입고 있었다. 1968년 2월 이 브랜드가 49번째 오뜨 꾸뛰르 쇼를 선보인 후,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해 5월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사업을 접었기 때문이다. 소문에 따르면 패션이 너무 캐주얼해지고, 세계 최고 드레스메이커의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발렌시아가가 작고한 지 14년이 지난 1986년 새 주인이 다시 문을 열었지만, 이 브랜드의 꾸뛰르 아틀리에는 지난여름까지 개점휴업 상태였다. 그러다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가 임기 6년 만에 그의 첫 번째 꾸뛰르 컬렉션을 론칭했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가 직접 건축학적으로 재단한 경건한 스타일의 코트와 드레스로 구성된 컬렉션을 무대에 올린 바로 그곳에서 말이다.

바잘리아의 꾸뛰르는 필연이며 반전으로 비칠 수 있다. 결국 발렌시아가를 현대화하고 재정의하기 위한 이 디자이너의 접근 방법은 스트리트 웨어와의 완전한 포용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 이름에 붙은 하이엔드 헤리티지와는 상반되는 포지셔닝이지 않나! 바잘리아의 지휘 아래 발렌시아가의 수익이 10억 유로를 넘어섰다. 지난 5년간 패션 시대정신을 사로잡은 스니커즈, 파카, 맨투맨 스타일의 분명한 인기 하락도 이에 한몫했다. 아마 이 디자이너의 상충하는 자존감(근절된 청소년기가 부분적으로 이에 영향을 주었다)이 반영된 패션쇼 무대는 기후 재앙부터 복제 이슈까지, 종종 문제시되는 현재의 현상을 다루면서 영락없이 암울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다.

그는 현실주의자다. 그리고 동화보다 세상이 실제로 돌아가는 방식과 우려 사항에 더 관심이 많다. “패션은 이 세상의 나머지 부분으로부터 고립된 섬에 남은 듯한 경향이 있어요.”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말했다. 그녀는 저스틴 비버를 비롯한 다른 발렌시아가 지지자들과 함께 지난해 7월 이 브랜드가 론칭한 대형 광고 캠페인에 캐스팅됐다. “뎀나는 세상에 대해 말하고 자신의 창의성으로 세상을 아우르고 싶어 하죠. 그는 다양성, 연결성, 스트리트를 다루고 다양한 사람을 포용하면서 현시대를 사회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포착해낼 수 있었습니다.” 현대 정치계에서 일어나는 떠들썩한 사건에 정통한 이 디자이너는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 의원(그는 발렌시아가 재킷에 버니 샌더스 의원의 대선 캠페인 로고를 접목시켰다)과 여러 조직(그는 2020 S/S 컬렉션에서 유엔총회 회의실과 유럽연합 국기의 코발트색을 참조했다)을 오마주했다. 발렌시아가 패션쇼의 캐스팅은 바잘리아가 지휘권을 잡은 바로 그날부터 시작된 포용성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했다. 은행이나 나이트클럽 또는 길거리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때때로 나이 많고 그다지 ‘예쁘지 않은’ 사람들을 비롯해 알쏭달쏭한 다양한 사람을 무대에 올렸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근 이 디자이너는 종종 그의 작품을 흠모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얼굴과 이 브랜드를 결부시키면서 유명인과 함께하는 것을 즐긴다. 여전히,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도 크리스토발의 혼과 전설이 바잘리아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꾸뛰르 데뷔 무대를 치르고 몇 달이 흐른 뒤였다. 전기 SUV를 운전하며 전화를 걸어온 바잘리아가 스위스의 교통 체증에도 차분하면서도 활기 넘치게 말했다. “처음에 저는 아카이브의 작품과 1960년대 크리스토발 패션쇼 장면을 보며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저는 그의 창의적인 사고방식, 신체와 패브릭 사이에 구축된 관계, 볼륨에 대한 장악력을 이해해야 했죠.” 그다음 그는 조금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그저 역사적인 마스터 클래스에 대한 경의로 끝나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지금 그 유산을 바라보는 방식도 드러나야 했습니다.” 마스터에게는 송구스럽지만, 바잘리아의 해석은 굉장히 실용적이다. “미학적 영향력을 지닌 것과 누군가의 옷장에 이르게 되는 것에는 엄연히 차이가 있죠. 꾸뛰르를 현대화하는 제 방식은 후자에 더 가까워요.”

첫 꾸뛰르 컬렉션의 63개 룩 중 오렌지색 스커트 수트는 바잘리아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1962년 크리스토발이 만들었고, 이 브랜드의 시그니처가 되었던 절제된 실루엣에서 영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모델은 차분하고 우아한 효과를 내기 위해 그 옷의 깃을 뒤로 젖혀 입었다. 바잘리아는 입체구조를 만듦으로써 그 재킷과 똑같이 드라마틱한 제스처를 만드는 데 도전했다. 그래서 그 옷은 옷걸이에 걸릴 때나 몸에 걸칠 때나 똑같아 보인다. “제가 만든 것 중 가장 복잡한 작품에 해당되죠.” 그가 말했다. “그 까다로운 패턴을 바로잡아가기 위해 프로토타입을 수없이 많이 만드느라, 4개월이 꼬박 걸렸죠. 의상에 성형수술을 하는 것과 같았죠. 그것은 제가 하는 가장 즐거운 일입니다. 나중에 사람의 몸을 바꿔놓게 되고,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와 마찬가지였던 애티튜드와 실루엣을 가진 작품으로 바꿔가는 과정이 아주 즐거웠죠.” 그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어 하는 룩은 1967년 아워 오디앙(Awar Odhiang)이 입은 웨딩 드레스를 재해석한 작품이다. 바잘리아는 “크리스토발의 디자인이 완벽에 가깝지만, 그의 작품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그는 그 드레스의 구조를 바꿀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의 버전은 그저 현대적인 패브릭으로 디자인을 현대화했을 뿐이었다. “다른 누군가가 제가 능가할 수 없는 뭔가를 했다고 인정할 수 있는 자세는 창작자인 제게 깊은 영향을 줬어요. 그것은 뭔가를 입증할 필요성으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죠.”

바잘리아에게 2021년은 편치 않은 해였다. “네, 저는 스니커즈를 만드는 법을 알아요. 훌륭한 티셔츠를 디자인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그렇지만 디자이너인 제게는 또 다른 차원이 있죠.” 그가 말했다. “그것이 바로 처음부터 이 일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죠. 저는 제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취하기 위해 이런 플랫폼을 필요로 했던 겁니다.” 그는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거나 잘못 받아들여지거나 눈에 띄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하던 몇 년을 보낸 후, 터닝 포인트를 맞이하게 됐다. “발렌시아가는 제가 옷장을 열고 ‘저 여기 있어요, 저 여기 존재해요. 그리고 작품을 통해 제 자신을 표현하는 것, 그렇게 비치고 인정받는 것이 괜찮아요’라고 말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러 있었죠.” 역사적인 곳에서 영원한 집을 발렌시아가에 주는 것은 예상외로 그에게 감성적인 일이었다. “저는 이 패션 하우스와 그 유산에 보답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저는 뭔가를 달성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제 임무가 부분적으로 마무리됐죠.”

그 미션은 2015년 시작됐다. 발렌시아가의 모기업인 케어링이 바잘리아를 발렌시아가 최고의 자리에 앉힌 것이다(니콜라 제스키에르가 2012년까지 15년간, 그 후 3년간 알렉산더 왕이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맡았다). 바잘리아는 베트멍에서 보여준 능력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베트멍은 바잘리아가 발렌시아가로 합류하기 바로 전 그의 동생 구람(Guram)과 함께 론칭해, 2019년까지 수석 디자이너로서 이끌던 곳이었다. “발렌시아가가 지닌 특별함 중 하나가 바로 패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브랜드라는 점입니다.” 케어링 회장이자 CEO 프랑수아 앙리 피노(François-Henri Pinault)가 말했다. “처음 뎀나를 만났을 때 그의 재능 외에도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의 작품을 이해하는 그의 특별한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가 이 브랜드의 역사에 부합할 인물’임을 알았죠.” 피노는 바잘리아를 친절하고 뛰어나면서도,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새로운 아이디어에 열린 사람이라고 말했다.

현재 패션계에서 얻은 위상을 위해 그에게 준비된 것은 전혀 없었다. 바잘리아는 어린 시절을 조지아에서 내전이 일어난 시기에 보냈다. “제가 열두 살이었을 때 내전이 발발했습니다. 저는 코카서스산맥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쓰면서, 살해된 이들의 시체를 봤죠. 어린아이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보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장면이었어요. 어린 시절 그런 것을 보게 되면 돈이나 명성, 완전히 패션적인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 당시 실제로 저는 ‘인생’을 잃어버렸어요.” 1981년에 러시아계 조지아 출신 대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난 바잘리아는 소련의 미학과 드라마틱한 블랙 의상을 만드는 재능을 지닌 여성들에 둘러싸인 채 그리스 정교회 신자로 성장했다. 그는 디자인을 향한 자신의 열망이 외할머니 덕분이라고 여긴다. “제가 어릴 때 할머니는 굉장히 개성 있는 스타일로 옷을 입었죠. 그분은 여전히 제가 아는 사람 중 제일 괴짜입니다. 1993년 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의 가족은 고향인 수후미(Sukhumi)에서 트빌리시(Tbilisi)로 도망쳤고, 바잘리아는 스물한 살이 되던 해 결국 뒤셀도르프(Düsseldorf)에 정착했다. 2006년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한 후 바잘리아는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4년 정도 디자이너로서 기본기를 쌓은 후 루이 비통에서 1년간 일했다. 그는 또한 경제학을 싫어하면서도 국제 무역을 공부하기로 결정했고, 이는 디자인에 대한 ‘제품 및 소비자 지향적인’ 그의 접근법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저는 항상 이방인 같았어요.” 그는 이것이 자아상에 대한 어려움으로 확대되었다고 말했다. “열두 살 때부터 살던 곳에서 항상 아웃사이더였죠. 독일과 벨기에로 이주하기 전, 고국에서는 도망자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국가로 이주한 후에는 제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아무도 조지아가 어디인지 몰랐어요. 저는 사람들이 지도에서 찾아볼 수조차 없는 나라 출신입니다. 그다음 굉장히 국수주의적인, 외국인을 배척하는 도시 ‘파리’에서 살게 되었죠. 그것은 정체성의 위기로 악화되었죠. 저는 제가 어디에 속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로 인해 우울과 분노의 블랙홀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고국을 사무치게 그리워한다. 그렇지만 “제 삼촌이 조지아 땅에 발만 디뎌도 죽여버리겠다며 저를 협박했습니다. 그는 동성애를 혐오해요. 저는 가문의 이름에 먹칠한 가문의 수치죠.” 바잘리아가 말했다. “저는 수년간 제 존재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곳에 돌아갈 경우 다시 떠오를 트라우마를 겪고 싶지 않아요.”

2017년 이후 바잘리아는 남편인 프랑스 출신 뮤지션이자 작곡가 로익 고메즈(Loïk Gomez)와 애완견 두 마리를 키우며 스위스 취리히 교외에 살고 있다. 이 커플은 2016년 런던에서 처음 만났다. 하지만 만나기 몇 달 전부터 온라인에서 소통했다고 한다. “제 삶을 바꿔놓을 누군가를 만날 것을 알았습니다.” 그가 파리를 출발해 고메즈를 만나러 가던 때를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정말 딱 그런 사람을 만난 거죠! 우리는 그날 이후 헤어진 적이 없어요.” 그 커플의 관계는 처음엔 밤샘 파티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은 야행성이었죠.” 그가 말했다. 그렇지만 이 커플은 4년 전 술을 끊었다. 그 후로 그들은 아드레날린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우리는 노래를 들으며 숲속을 드라이브해요.” 바잘리아가 말했다. “그것은 클럽으로 가는 우리만의 방법이죠.” 그는 전기차 브랜드가 70km 이상 지속되는 엔진을 만들지 않은 것이 ‘악몽’ 같다고 말했다. 고메즈 역시 발렌시아가 패션쇼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BFRND라는 예명으로, 2017년 가을부터 모든 발렌시아가 패션쇼 음악을 작곡하고 있다. 그 외에 그들은 함께할 때 주로 요리(요즘은 주로 비건 요리)를 하거나, 힙합과 드릴, 하드코어 테크노, 라디오헤드 같은 인디 록, 때로는 러시아 팝 등을 감상하며, ‘시시한’ 넷플릭스 쇼(“굉장히 황당한 스토리예요”라고 할 뿐 어떤 쇼인지는 밝히지 않았다)를 시청한다고 한다.

바잘리아는 매달 일주일 정도 파리에서 지낸다. 평범한 그의 아파트는 불로뉴 숲 부근에 있다. 창밖으로는 나무와 함께 멀리 에펠탑이 보인다. 그렇지만 그가 분개한 이 모든 프랑스 패션의 광기로부터 충분히 거리를 두고 지낸다. 19세기 오스만(Haussmann) 건축양식의 그 아파트가 ‘폐소공포증’을 느끼게 만들기도 하지만, 스위스로 이사한 덕분에 파리와 다시 사랑에 빠질 수 있었다. “저는 이 도시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알아가는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주인공 같아요.” 그가 뭔가 찔리는 듯한 즐거움 같은 것을 내비치면서 말했다(<데이즈드>는 이 주인공의 변신을 ‘발렌시아가에 환장한 여자’로 묘사했다). “거기 살았을 때 저는 부정적으로 지내느라 정신없었습니다.”

이 디자이너가 새롭게 찾은 균형은 그 자신의 부정적인 생각을 쫓아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서 비롯됐다. 상담가와 매주 상담하고, 규칙적으로 명상한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과거보다 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변화는 창의적인 명확성을 가져다줬다. “패션이 전쟁처럼 느껴지곤 했죠. 이것이 바로 제가 한 일에 수많은 공격성과 어둠이 깔린 이유죠. 이제 저는 그 시스템에서 마음의 안정을 느껴요.” 여전히 창작 과정에서 고통을 느끼지만 이제 그는 그것을 즐긴다. “저는 패션에 관해서 마조히스트 같은 면을 지녔어요. 너무 수월한 것도 그다지 좋지 않거든요.” 그가 말했다. 그리고 그는 손수 만들어보는 디자이너로 계속 남아 있다. “저는 직접 가위와 바늘을 들고 만들어요. 옷을 만드는 경험은 제가 패션 영역에서 가장 좋아하는 거죠.”

미국 출신 아티스트이자 바잘리아가 진두지휘하는 대부분의 발렌시아가 패션쇼 무대에서 막을 열어온 모델 엘리자 더글라스(Eliza Douglas)는 뎀나의 작업 방식을 차분하게 몰입하는 스타일이며, 너그럽다고 묘사했다. “굉장히 극단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압박받는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차분하고 흔들림 없는 모습은 늘 깊은 감명을 주죠.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지 않아요.”

얼마 전까지 발렌시아가의 우주는 알아볼 수 있는 특징보다는 특색 없는 것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2020년 이 패션 하우스는 영화, 대중문화, 음악계에서 오늘날 가장 유명한 인물들에게 그 비전을 투영하기 시작했다. 바잘리아 특유의 방식으로, 유명인 세상으로 진입하는 일은 이지적이고 직관적이었으며, 이 브랜드의 광고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그리고 이것은 그 무엇보다 유명해지기 위해 더 유명한 사람들로 확대되어갔다. 지난해 멧 갈라에서 충격적인 룩을 선사한 한 사람이 있다. 바로 킴 카다시안.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블랙 발렌시아가 의상으로 뒤덮은 채 등장했다. 현시대 인물 중 가장 많은 사진이 찍혔을지도 모르는 그녀의 얼굴까지도 검은색 천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래서 가위로 오려놓은 독특한 실루엣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멋지면서 타당성도 지니고 있었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보여주며 이 행사에 참석한 사람이 남들보다 한발 더 앞서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의상의 스토리를 만든 작가는 다름 아닌 바잘리아였다. 그는 킴 카다시안과 동행했다. 그의 첫 멧 갈라 의상 제작이었다. 디자이너는 그 행사가 끝나고 일주일 후 나와 통화하면서 이렇게 털어놓았다. “비밀 하나 알려줄게요. 제가 멧 갈라에서 입은 의상은 취리히에서 뉴욕으로 이동할 때 입었던 겁니다.” 그가 말했다. “그야말로 비행기에서 그 옷을 입고 잤어요. 거기에다 마스크만 더 썼을 뿐이죠.” 자신의 모습을 점차 편하게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는 마음에 들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마주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인터넷에 사진이 한번 돌면 절대 없앨 수 없거든요.” 그가 말했다. “저는 편안함을 느껴야 했고, 이를 위해 제가 선택한 방법은 제 모습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었죠.”

기대에 대한 부응을 거부하는 것은 현재의 유명인 드레스 코드에 대한 반박이었다. “저에게 패션은 레드 카펫에서나 부엌에서 요리할 때나 같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코스튬이 됩니다. 저는 여전히 제 모습 그대로 보이기를 원해요. 그것은 멧 갈라가 추구하는 것, 즉 ‘유명인, 보여주기, 당신의 존재를 모두가 알아보기’와는 정반대였죠.” 착용성에 대한 집착은 매력과는 상관없다. 라인을 통한 것이다. “그가 디자인한 옷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입기 편해요.” 위페르가 말했다. “그가 저를 위해 만든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는 티셔츠처럼 편안했죠.”

그가 느낀 정체성을 둘러싼 불안한 동요와 끊임없는 의문이 이 경험에 압축되었다. 얼굴을 가린 채 호텔을 나서는데 구경꾼들이 디자이너에게 “당신, 누구야?”라고 외쳤다. “‘정말 좋은 질문이군. 내가 누굴까? 나는 왜 여기 있는 거야?’라고 생각했죠.” 그가 당시를 떠올리며 말했다. “졸업 파티 파트너로 만인의 연인 킴 카다시안과 함께 실루엣 그림자 모습으로 그 행사에 참석하다니, 너무 웃겼죠. 그것은 유명인, 특히 미국에서 생각하는 유명인에 대한 역설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죠. 패션이 유명인을 통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고찰인 거죠.” (게다가 킴의 엄마 크리스 제너도 만났다.) 바잘리아가 카다시안과 함께하게 된 것은 얼마 전 결별한 킴의 전남편 카니예 웨스트를 통해 이루어졌다. 그는 베트멍 시절부터 바잘리아 작품에 찬사를 보냈다. 이 친구들은 최근에 웨스트의 최신 앨범 <Donda> 발매 행사 아트 디렉팅을 위해 협업하기도 했다(우연찮게도 웨스트는 벨기에 패션 디자이너이자 바잘리아와 종종 비교되는 마르탱 마르지엘라로부터 영감을 받아 수년 동안 페이스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

강력한 비전을 가진 두 남자가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느냐고 질문하자, 신기하게도 때마침 바잘리아의 전화벨이 울렸다. 바로 웨스트였다. “우리는 이미지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어요.” 바잘리아가 말했다.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적어도 제가 아는 사람 중에는 말이죠. 그런데 그가 저만의 안락한 공간에서 저를 끌어내주었고 더 나은 디자이너가 되도록 도와줬어요. 정말 멋지게 해주고 있어요. 잘난 척하고 자존심 내세우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발전하고 뭔가 위대하고 새로운 것을 하고자 하는 서로의 욕구일 뿐이죠. 그것이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죠.”

비전, 제품, 사람, 장르를 하나로 묶는 것. 이것은 바로 바잘리아의 발렌시아가 프로젝트를 이해하는 데 핵심이 된다. 발렌시아가 광고에 카디 비(Cardi B)와 위페르 두 사람이 출연한 것은 파격적인 캐스팅처럼 보인다. 그것이 바로 핵심이다. “등장인물의 다양화는 발렌시아가가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돋움함에 따라 그 브랜드의 영역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죠.” 그가 말했다. 그의 버킷 리스트 속 유명인은 나이지리아계 영국 가수 샤데이(Sade)다. “저의 인생 사운드트랙입니다.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어요. 행복할 때나 우울할 때나 어떤 상황에도 저는 샤데이 음악을 들으며 안락한 공간을 파고들죠.”

멧 갈라가 끝나고 몇 주 후, 파리 패션 위크에서 선보인 발렌시아가 2022 S/S 패션쇼를 위해 바잘리아는 현실주의적 표현, 오늘날 가장 중요한 이미지의 경제, 자세와 위치 설정, 유명인을 향한 우리의 찬사에 대한 탐구를 초월적 진보의 수준으로 끌고 갔다. 그 디자이너는 칸에서 LA에 이르는 영화 시사회, 시상식, 갈라의 멋진 장관을 그 밖의 공간에도 똑같이 재현해냈다. 대부분의 무의식적인 관중(일반인과 유명인으로 이뤄진 관중 상당수는 이전 시즌에 발표된 발렌시아가 제품으로 치장하고 있었다)과 마찬가지로 그 패션쇼 모델들(유명인과 일반인이 섞여 있었다)은 파파라치가 줄지어 있는 레드 카펫과 같은 무대를 번갈아 걸었다. 패션 무대에 대한 이 창의적인 해석은 그의 능력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위트 있으면서도 매력적이고 뻔하지 않은 무대였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의 패션 평론가 바네사 프리드먼(Vanessa Friedman)은 그 무대를 두고 “이번 주에 봤던 가장 영리한 쇼”라고 평했으며, <BoF>의 팀 블랭크스(Tim Blanks)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완벽한 워홀 스타일이었다”는 찬사를 보냈다. 굉장히 재미있는 무대이기도 했다.

발렌시아가의 미래에 대해 피노 회장은 범세계적 계획을 드러냈다. “뎀나는 완전히 분리된 패션 영역, 즉 스트리트 웨어와 오뜨 꾸뛰르, 적절성과 세련미의 균형을 발렌시아가라는 유수의 패션 하우스에서 만들어냈죠.” 그가 말했다. “장차 이것은 발렌시아가에 무한한 잠재성을 안겨줄 겁니다. 우리는 이제 뎀나와 함께 막 발을 뗐을 뿐이죠. 발전 가능성을 지닌 것이 더 많죠. 세상에서 가장 크게 성장하는 브랜드가 될 거예요.”

나는 바잘리아에게 발렌시아가 무대의 지나치게 현실적인 메시지 이면에 어떤 메시지가 있는지 물었다. “제가 생각한 것은 모두 결국 제가 하는 일을 위한 무대가 되죠.” 그가 말했다. “그래서 그것은 제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비추는 거울 역할을 하죠. 그것은 논평이나 비평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단지 대화하고 싶을 뿐이죠. 그것이 바로 패션의 임무인 것 같아요. 우리는 패션을 만들어가는 일을 멈출 수 있죠. 아마 2021년에는 그렇게 하는 게 옳았을 수도 있겠죠. 또는 패션을 뭔가를 이야기하는 기반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겁니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