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오브 도그>, 제인 캠피온의 고요한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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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 오브 도그>, 제인 캠피온의 고요한 승리

2022-05-04T00:41:07+00:00 2022.05.04|

10년 전 영화계를 떠났던 제인 캠피온이 지난 3월 <파워 오브 도그>로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로써 제인 캠피온은 영화 역사상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세 번째 여성이 됐다.

제인 캠피온이 착용한 재킷은 마이클 로 소르도(Michael Lo Sordo), 목걸이는 티파니(Tiffany&Co.).

제인 캠피온(Jane Campion)이 약속에 몇 분 정도 지각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넘기도록 하자. 시드니를 5개월 만에 다시 찾았고, 40년 이상 사랑하던 그 도시를 다시 알아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 그녀는 40년 지기 니콜 키드먼과 센테니얼 파크(Centennial Park) 부근을 오랫동안 거닐었다. 오늘 아침에는 그 유명한 오션 풀 ‘와일리 배스(Wylie’s Baths)’에서 수영하고 아침 식사를 했다. “시드니는 정말 신성한 도시예요.” 이 뉴질랜드 출신 감독이 안경을 반짝이며 줌을 통해 말했다. “그 모든 것을 다시 경험하고 있어요.”

나는 캠피온과 5개월 만에 줌으로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처음 만난 지난해 8월 초 아침, 그녀는 뉴질랜드 아티스트 빌 해먼드(Bill Hammond)의 매우 매력적인 그림을 배경으로 지금과 똑같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한 손에 커피 잔을 든 채 10여 년이 흐른 후 다시 연출을 맡은 <파워 오브 도그(The Power of the Dog)>에 대해 첫 인터뷰를 했다. 나는 그 영화가 마음에 든다고 털어놓았고, 캠피온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슬그머니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말을 들으니 아주 좋군요. 한동안 진공 상태의 머리로 작업하고 나면,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죠.” 이 말은 캠피온에게 많은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경험한 바에 따르면, 세상은 늘 그것을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세상이 관심을 보였다. <파워 오브 도그> 때문에 캠피온은 이탈리아, 뉴욕과 런던, 프랑스를 돌았다. 1920년대 미국 몬태나(Montana)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외로움, 남성성, 억압에 대해 흥미롭고 고통스럽게 고찰하는 이 영화는 2021년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작품이 되었다. 다른 어떤 타이틀보다 최우수 작품상과 감독상을 많이 수상했다. 그리고 아카데미 시상식 최다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이 영화는 다른 영화보다 월등히 많은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다). 한 세대를 규정짓는 영화감독에게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넷플릭스로부터 적극적인 홍보를 지원받은 67세 캠피온은 상영은 물론 헌사와 축하를 받기 위해 전 세계를 날아다니며 미디어의 전설에 합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 키드먼이 <베니티 페어>에 말했듯, 이것은 캠피온의 ‘빅토리 랩(Victory Lap, 우승 후 트랙을 한 바퀴 천천히 도는 것)’이다.

캠피온은 분명 마음껏 즐기고 있다. 그녀가 존경하는 폴 토머스 앤더슨(Paul Thomas Anderson) 같은 감독들과의 경쟁으로 들떠 있었다. 자신이 열심히 만들었고 자랑스러워하는 영화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게 된 것에 무척 감사했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받아들일지 궁금해하던 5개월 전 모습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었다. “이 영화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완벽한지 어떤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 영화는 존재감을 드러내는 뭔가를 하고 있고, 약간의 힘을 얻었으며, 살짝 신비스럽고 넋을 놓게 만드는 면을 지니고 있죠. 하지만 저는 굉장히 많은 사람이 이 영화의 복잡성을 즐기는 것을 보고 놀랐죠.”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차피 영화감독으로 활동하는 내내 이해를 구하고자 투쟁해오지 않았는가.

캠피온은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Wellington)에서 태어나 최고의 정규 교육을 받았으며, 전문 극단을 운영하던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예술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고, 어디로 발산해야 할지 모르는 창조적 에너지로 넘쳤다. 배우들은 연극계 스타였던 어머니 에디스(Edith)와 리허설을 하기 위해 집으로 찾아오곤 했다. 캠피온은 존경받는 감독이었던 아버지 리처드(Richard)로부터 영감을 받아 학교에서 연극을 연출했다. 열정을 불태웠고 결국 인류학과 회화에서 학위를 취득했다(그리고 회화를 공부하기 위해 시드니 예술대학(Sydney College of the Arts)에 입학하면서 호주로 건너갔다). 하지만 두 번째 학위를 따기도 전인 1980년 첫 단편영화 <티슈(Tissue)>를 완성하며 영화에 전념하게 되었다. 캠피온은 자신의 예술적 불꽃에 대해 “스물네 살까지 제겐 그런 것이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작 영화’에서 보던 압도적이고 복잡한 표현, 영화에 겹겹이 쳐놓은 ‘레이어’에 대한 잠재성을 확인했다.

캠피온이 1980년대 초반에 연출한 단편 작품은 엄청난 호기심과 대담성을 지닌 영화감독의 면모를 시사했다. <언 엑서사이즈 인 디시플린: 필(An Exercise in Discipline: Peel)>(1982)은 길 한쪽에서 아버지와 그의 누이, 아들이 벌이는 심리 스릴러다. <소녀의 이야기(A Girl’s Own Story)>(1984)는 억압받는 교외에서 10대 소녀들의 성생활을 짓궂게 파헤쳤다. 열네 살이던 키드먼에게 출연을 제안했지만 키드먼은 그 역할을 고사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시나리오에서 다른 소녀에게 키스하는 장면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키드먼은 놓쳐서 아쉬운 활동 중 하나로 그 작품을 꼽는다.

캠피온의 작품은 양극화되었다. “약간 비참한 리뷰를 하나 받고, 굉장히 열 받은 적이 있었죠. 저는 표현을 거르지 않는 피드백에 익숙하지 않았어요.” 캠피온은 그 단편 작품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특이점은 명백했다. <필>은 1986년 칸 영화제 단편영화 부문 황금종려상을 수상했고, 이는 캠피온에게 장편영화를 꿰찰 정도의 명성을 안겼다. 그녀는 자신의 영화가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는 대중적인 작품은 아님을 깨달았다. 특히 남성 지배적인 분야로부터 이해받기 쉽지 않았다.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부터 매우 기묘한 것까지 영화가 다양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고, 다채로운 커리어를 내다보고 있었다. 캠피온은 장편영화 연출로 데뷔하면서 한 단계 도약했다. “가장 와일드한 작품을 만들 때가 바로 그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죠.”

그 결과로 탄생한 영화 <스위티(Sweetie)>를 두고 캠피온은 “시끄럽고 추악하며 신랄하고 기발한 이 작품은 혼란스러운 가정생활과 자신의 망상을 헤쳐나가는 젊은 여성의 무섭도록 날카로운 초상”이라고 소개했다. 그 영화는 장면마다 독특한 논리를 가동하며 신비감을 뿜어댔다. 캠피온은 그 작품을 개인적으로 몹시 마음에 들어 한다. 캠피온의 엄마는 그녀가 내면의 힘을 찾을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고, 이제는 캠피온이 배우들에게 그렇게 해주고 있다. “일단 그 지점에 다다르면, 날개를 달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준답니다.”

<스위티> 상영 당시 캠피온은 이미 차기작 <내 책상 위의 천사(An Angel at My Table)>를 기획하고 있었다. 하지만 엇갈린 비판적인 반응이 캠피온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물론 그녀도 그 영화가 이해하기 쉽지 않고 다소 개인적이라는 사실을 알았지만 말이다. “일부 비평가는 그 영화를 싫어했어요.” 캠피온은 <스위티>를 개봉한 칸의 칼튼 호텔 스위트룸에서 영화에 대한 일부 반응을 확인한 후 하루 종일 울며 시간을 보냈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내 책상 위의 천사>의 사전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다른 영화를 만들지 않았을 거예요. 너무 씁쓸했어요. 여성들은 야비하고 독한 말에 길들여지지 않은 것 같아요. 남성들은 그런 비평에 내성을 키워온 듯하지만 말이죠. 저는 제 안에 그런 내성이 좀 더 생겼으면 좋았겠다 싶었죠.”

몇 달 전 그런 취약한 모습을 봤다면 나는 많이 놀랐을 것이다. 제인 캠피온의 영화는 늘 당찬 대담무쌍함으로 정의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녀의 깊은 내면 속 감성은 그렇게도 여렸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겪어보니, 자신의 직감을 믿을 만큼 용감한 예술가이자 어떤 일이 뒤따르든 모든 것을 제대로 살피고 느끼는 용감한 예술가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호평 일색이었던 <내 책상 위의 천사> 이후, 캠피온은 <피아노(The Piano)>를 연출했다. <스위티>를 완성하기 전, 언어장애를 가진 스코틀랜드 여성(홀리 헌터 분)이 딸(안나 파킨 분)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주해 복잡한 삼각관계를 겪으며 펼치는 대서사에 대한 아이디어가 캠피온의 머릿속에 이미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다룰 만큼 자신이 충분히 성숙하지 않다고 느꼈다. 현명하게도 캠피온은 때를 기다렸다. 여성의 욕망에 적절히 부합하도록 호화로운 시대극 장식, 화려한 악보, 놀라운 풍경 등 주류 영화에 더 친숙한 규모로 제작했다. 무려 70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는 전 세계에서 4,0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고 칸 영화제 최고상을 수상했다(이를 통해 캠피온은 위업을 달성한 첫 여성이 되었다). 그리고 캠피온은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른 두 번째 여성이 되었고 각본상을 수상했다.

많은 이에게 이 영화는 캠피온의 유산이 시작된 지점이다. 영화계 다수의 여성이 <피아노>를 자신들에게 중요한 영화로 꼽았다. “열여섯 살에 <피아노>를 보았어요. 그런 식으로 표현된 영화는 처음이었어요.” 지난해 첫 연출한 영화 <로스트 도터(The Lost Daughter)>로 오스카상 후보에 오른 매기 질렌할(Maggie Gyllenhaal)이 말했다. “영화 제작의 상당 부분이 근본적으로 남성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신에게 솔직하게 뭔가를 의식하지 않고 작업하면 작품에 그런 면이 담기는 것 같아요.”

<파워 오브 도그>에서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커스틴 던스트(Kirsten Dunst)는 헌터가 연기한 에이다(Ada)의 손가락이 잘리는 상징적이고 끔찍한 장면을 떠올렸다. “그녀의 눈빛에 비친 그 모습이 금방이라도 다시 떠오를 것 같아요. 그 눈빛이 제 영혼에 깊이 영향을 주었죠.” 던스트가 말했다. “제인 캠피온 감독님이 여성의 연기를 연출하는 데 극치에 달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죠. 그런 연기를 보여주는 것이 제 목표예요.”

헌터는 자신에게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안긴 <피아노>의 촬영에 대해 “그 영화는 한 개인으로 저에게 불가해한 영향을 주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젠더가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감독들과 작업했다. 하지만 캠피온은 “여성의 관점을 분명히 드러내 보이죠. 그녀의 영화는 남성들이 연출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녀가 연출한 영화를 보면 알 거예요. 그런 영화는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나오는 그런 고유한 것들이죠.”

<피아노>는 중요한 문화적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차기작 세 편 <여인의 초상(The Portrait of a Lady)> <홀리 스모크(Holy Smoke!)> <인 더 컷(In the Cut)>은 비평가는 물론 박스 오피스에서 쓴맛을 보고 말았다. 비평가들은 캠피온이 더 자극적이고 덜 세련된 방식으로 여성의 관점을 실험한다고 간주했고, 대중은 그 영화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그때는 여성들에게 매우 힘든 시기였습니다. 상황이 좀 더 심각했던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우리는 약간 격앙되어 있었죠. 그리고 ‘음, 당신이 나름대로 시도를 했군요. 그런데 이제 아무도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지 않아요’라고 반응하는 것 같았어요.” 캠피온이 말했다.

하지만 지금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받던 그 영화를 보라. 2003년 작 <인 더 컷>은 연쇄 살인마 수색에 휘말린 영어 교사로 분한 멕 라이언(Meg Ryan) 주연의 심리 스릴러다. 이런 유의 범죄 이야기가 격렬하고 관능적인 방식으로 전달되고, 관습을 거스르는 것처럼 느껴지다 보니, 영화의 전체적인 아우트라인이 혼돈스럽다. “남자들은 그것을 살짝 무섭게 여겼던 것 같아요.” 캠피온이 웃으며 말했다. 몇 년 전, 그녀는 런던에서 <인 더 컷>의 특별 상영을 진행했고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캠피온의 덜 유명한 작품 상당수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도 철저히 재평가를 받으며 마침내 인정과 찬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영화 평론가 조시 라슨(Josh Larsen)은 지난가을 “많은 사람이 그랬듯, 제인 캠피온의 작품을 잘못 판단했다”는 리뷰를 쓰면서 <인 더 컷>을 재평가했다.

그 당시 그런 반응과 분위기에 캠피온은 잘 대처할 수 없었다. 보수적으로 여기던 이 영화 산업을 반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에 영화 제작에 흥미를 잃고 말았다. <인 더 컷> 이후 <파워 오브 도그>가 나오기까지 18년 동안 장편영화 단 한 편만 연출했다. 극찬을 받았지만 굉장히 수수한 <브라이트 스타(Bright Star)>였다. 영화보다는 <탑 오브 더 레이크(Top of the Lake)>를 통해 인디 제작사가 주도하는 TV 시리즈에서 더 큰 즐거움을 찾았다. 여러 상을 받은 이 드라마 시리즈에서는 엘리자베스 모스(Elisabeth Moss)가 작은 마을 형사로 출연했다. 그녀는 또 다른 영화를 만들게 될지 확신이 없었다.

그녀를 동경하는 팬들과 <파워 오브 도그>를 극찬하는 리뷰와 관심으로 인해 <피아노> 시절로 되돌아갔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지금 데자뷔를 느끼는지 물었다. 캠피온이 멈칫거리더니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피아노>로 칸에 입성하자마자, 아들 재스퍼(당시 생후 2주도 채 되지 않았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슬픔을 겪자 정신이 멍했죠. 일을 할 수 없었죠.” 그리고 10개월이 지난 후에야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당시 오스카 시상식에서 눈물겨운 수상 소감을 밝혔다. 현재 27세인 딸 앨리스를 임신한 지 몇 개월 되었을 때였다. 캠피온은 배를 가릴 만한 옷을 찾느라 허둥지둥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아이를 잃은 것을 두고 캠피온은 “제가 겪은 가장 인간적인 경험이죠”라고 말했다. “슬픔을 표출하던 다른 모든 사람과 연대감을 느꼈어요.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모른 척 고개를 돌릴 수 없어요. 감정적으로 묶여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죠.” 나는 특히 그녀가 진화하면서 모든 영화에서 이런 강렬한 공감이 가시적으로 드러난다고 말했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캠피온이 대답했다. “제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그 감정적인 부분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저는 감정이나 그 밖의 어떤 것도 잘 통제하지 못합니다. 정신적인 진실성인 거죠.”

DOG DAYS <파워 오브 도그> 촬영 중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이야기를 나누는 제인 캠피온 감독.
컴버배치는 배역에 깊이 몰입하도록 캠피온 감독이 이끌었다고 전했다. 코디 스밋 맥피 역시 놀라운 연기를 보여줬다.

TABLE MANNERS <파워 오브 도그> 촬영은 2020년 초 뉴질랜드 시골에서 이뤄졌다. 제인 캠피온 감독이 촬영 중간에 배우들과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

배우들이 말하는 캠피온은 장난기 넘치고 인내심이 강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녀의 세트장으로 걸어 들어가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하고, 보살핌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그날 찍는 장면에서 전하는 이야기가 단 하나의 중요한 일처럼 느껴지죠.” 감독으로서 행보하기 시작한 모스가 말했다. “제인은 촬영장에서 배우를 위한 공간을 조성하는 놀라운 능력이 있어요. 감독인 그녀에게 배웠고, 연출가로서 제가 항상 사용하는 첫 번째 사항이죠. 그 어떤 감독에게 배운 것보다 훌륭해요.” 헌터가 나에게 이 모든 것을 일일이 설명하며 확인해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모르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모르는’ 모든 것 속에서도, 제인은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죠. 그녀는 탐구하고 싶어 하고, 세상에 나가서 ‘무슨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를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넘어진다 해도 죽지 않을 테니까요.” 캠피온의 또 다른 평생 지기이자 <여인의 초상>에서 주연을 맡았던 키드먼은 더 간단하게 말했다. “그녀를 보면 감탄이 절로 나와요.”

캠피온은 배우들과 어우러져 작업하는 기술을 엄마 덕분에 터득했다고 말한다. 엄마는 그녀가 학예회 공연인 <트로이의 여인들(The Trojan Women)>에서 배역을 맡았을 때 이런저런 도움을 주었다. “어머니가 제게 힘을 실어주는 방법을 직접 경험한 거죠. 사람들에게 자신의 강점을 발휘하도록 힘을 부여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제가 지닌 가장 중요한 감각 중 하나였어요. 일단 사람들이 그 지점에 도달하면, 날개를 달게 되죠. 그리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을 보여줍니다.”

캠피온이 영화 <브라이트 스타>를 만들던 13년 전만 해도, 오스카 감독상을 수상한 여성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미투가 아직 할리우드를 접수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오스카에서 경쟁하는 작품을 스트리밍하는 것보다 DVD 대여 시장을 놓고 블록버스터와 경쟁하는 것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그 사이에 캠피온을 다시 영화 제작으로 이끄는 변화가 일어났다. <브로크백 마운틴(Brokeback Mountain)>의 작가 애니 프루(Annie Proulx)가 ‘서양의 숨겨진 고전’이라 평했던 토머스 새비지(Thomas Savage)의 1967년 소설 <파워 오브 도그>의 영화화다. 이 작품은 무자비할 정도로 잔인한 마초 목장주 필 버뱅크(Phil Burbank)와 존재만으로도 필의 악랄한 면을 이끌어내는 제수 로즈(Rose) 사이의 역동성을 중심으로 한다. 로즈의 아들 피터는 이야기 후반부에 그들과 함께하는데, 이 시점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잔혹한 연구가 새로운 장치로 작동한다. 피터는 필의 괴롭힘으로부터 어머니를 보호하기로 결심하지만 필과 진한 친분을 쌓게 된다. 한 세상에 존재하는 두 명의 아웃사이더는 남성성에 대해 엄밀한 정의를 제시한다.

캠피온은 풍성하고, 민감하고, 유한한 뭔가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했다. 넷플릭스는 캠피온에게 이 책을 영화로 연출하는 데 3,000만 달러 이상의 예산을 제시했다. <피아노> 이후 첫 작품이었던 <여인의 초상>을 연출한 지 25년 만에 이렇게 큰 규모의 재정적 투자를 제안받은 것이다. 영화계는 그녀를 다르게 대하고 있었다. 캠피온도 영화를 만들면서 그것을 느꼈다. “제 안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었죠. 어쩌면 미투 운동이 제가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도록 자신감을 더 부여했는지도 몰라요. 그리고 나이가 좀 더 들어서 그런 것 같기도 했고요. 이 세상에서 더 오래 살 수 있는 지혜가 더 많이 생긴 거죠.”

2020년 초 뉴질랜드 시골에서 진행된 <파워 오브 도그> 촬영은 그 자체로 일종의 ‘빅토리 랩’이라 말할 수 있다. 전설적인 영화감독이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기술을 바탕으로 진두지휘하며 경외감에 찬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말이다. 필 역을 맡은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지금까지 보여온 것과 달리 역겹고, 강렬하고, 정교할 정도로 섬세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는 그 어떤 촬영장에서보다 감독과 함께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캠피온은 촬영 내내 그가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수준까지 몰입하도록 격려해주었다. 그들은 심지어 융 심리학 요법의 코치로부터 꿈 카운슬링을 함께 받았고, 각자의 잠재의식을 파헤쳐가며 캐릭터를 빚어나갔다. 컴버배치는 필이 화를 내며 냅다 소리 지르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자신이 통제되지 않는다고 느낀 순간을 떠올리며 “제인은 ‘뭔가 일어나고 있어,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거야. 네가 하고 있는 것을 그냥 계속하는 거야’라고 말하더군요”라고 전했다. “제인은 그 역할에 몸과 정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에 다다르도록 수단을 마련해줬어요.”

슬픔을 유발하는 연기를 펼친 로즈 역의 던스트는 10년 넘게 캠피온과 일하고 싶어 했다. “그 경험은 전혀 실망스럽지 않았어요. 제인은 자신이 맞게 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아요. 그래서 그녀를 믿으면 돼요. 제인 캠피온이니까요.” 던스트가 말했다. “그저 제인이 만족스러워하는 연기를 하는 게 제 목표였어요. 꽤 여러 번요. 그녀가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으면 ‘고마워요!’라고 말했죠. 그런 엄청난 서사를 지닌 사람과 함께 일할 때는 그저 그들이 자랑할 만한 존재가 되고 싶을 뿐입니다.” (컴버배치, 던스트, 제시 플레먼스(Jesse Plemons), 코디 스밋 맥피(Kodi Smit McPhee) 모두 <파워 오브 도그>의 연기로 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

과거의 자본주의에 치이는 것을 우려하던 사람들에게 캠피온이 큰 자본을 투자하는 주체 중 하나와 손잡은 것은 눈살 찌푸릴 만한 일이 될 수도 있다. 캠피온은 영화를 올바르게 제작하기 위해 넷플릭스의 지원이 필요했으며, 그만큼 근접한 수치를 제시한 투자사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제 영화는 투자액이 비교적 적은 편이죠.” 2021년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또 다른 서부극 <더 하더 데이 폴(The Harder They Fall)>의 제작비가 9,000만 달러라는 보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다 안다는 듯 웃었다. “첫 장편영화를 찍는 영화감독에게 정말 놀라운 금액이죠.”

넷플릭스는 적어도 <파워 오브 도그>에 진심으로 투자했고, 캠피온은 영화에 대한 엄청난 긍정적인 반응을 스스로 즐기는 것 같았다. 10월, 그녀는 여성 감독 최초로 리옹(Lyon)에서 권위 있는 루미에르상(Prix Lumière)을 수상했다(시대가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끔찍한 고리를 끊어내는 것은 제인뿐이다). “정말 감동받았어요. 저는 뉴질랜드 사람이에요. 저희는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죠.” 수상 소감에서 밝혔다. “우쭐해져서 집에 가면 체포당할지도 몰라요.”

한 달 후, 나는 아카데미 박물관의 회고전에서 캠피온을 보았다. 셀카를 찍기 위해 또는 그녀의 작품이 자신들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하려고 혹은 <파워 오브 도그>의 매력 넘치는 반전을 분석하기 위해 참석자들이 캠피온을 붙잡았다. 그 시즌 후반, 캠피온을 만난 기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 감독은 <파워 오브 도그>는 그녀가 지닌 예술성의 엄청난 ‘약진’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또한 그 영화를 응원했다. 캠피온은 “그런 말을 들으니 정말 온몸이 찌릿하더라고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일단 고향을 찾은 캠피온은 혼란스러운 시간을 완전히 걷어낸 채 편안한 기운이 넘치는 듯 보였다. 그리고 <파워 오브 도그>가 제대로 완성된 것을 처음 보던 순간에 대해 언급했다. 영화의 마지막 3분의 1을 편집할 때였다. 여전히 그때의 감상이 생생히 남아 있었다. 그녀는 몇몇 협업자와 함께 ‘매우 멋진 작은 극장’에 자리 잡고 그 영화가 결말에 이를 때까지 지켜보았다. 거대한 언덕을 담은 파노라마 장면이 밤으로 바뀌는 것을 암시하며, 굉장히 무겁고, 걱정스럽고, 숨 막힐 정도로 섹시한, 필과 피터의 헛간 절정 장면으로 넘어가는 것을 보던 그녀의 온몸이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발이 욱신거릴 정도였다. 캠피온은 이것이 영화가 해야 할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전에는 전혀 느끼지 못한 것들을 느꼈어요.” 캠피온이 말했다. 전혀? 그녀의 다른 영화에선 전혀 못 느꼈다고? “한 번도 느끼지 못했죠.” 세상도 그렇게 느꼈다. (V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