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패션 월드, 지금 패션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에 대하여
경력에 관계없이 모든 디자이너가 지금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은 유동적이다.” 옷 입는 방식에 대한 모든 것을 바꾸는 패션이 등장했다.
지난 5월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열린 발렌시아가 쇼. 쇼장 곳곳에 수없이 많은 주식 시세 표시 장치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스크린은 테크노 음악처럼 깜빡거렸고, 화면의 픽셀은 모두 깨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순간 라텍스 마스크를 쓴 모델들이 커다란 비즈니스 정장을 입은 채 발을 쿵쿵 구르며 걸어 나왔다. 완벽한 풍자에 가까운, 이토록 기이하고 파괴적인 풍경을 마주하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맞아. 우린 지금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확장된 댄스 리믹스’ 시대에 살고 있지!” 그렇다.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 문화 전쟁, 실제 전쟁, 기후 위기, 인플레이션, 암호 화폐… 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무도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노래가 끝없이 반복, 재생되는 중이고 우리는 그 비트에 맞춰 계속 춤을 출 거라는 것뿐이다.
패션이 할 수 있는 최선 중 하나는 현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컬렉션이라는 렌즈를 통해 시대의 아름다운 장면을 본다. 여기엔 집착, 꿈, 불안,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전략 등이 담겨 있다. 그리고 때때로 패션은 그저 직관적인 아름다움을 넘어 ‘지금’에 예리하게 반응하고, 새로운 뭔가를 향한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옷을 통해 혁명이 다가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라는 다이애나 브릴랜드의 유명한 말처럼. 그리고 이런 혼란의 시대에 어쩌면 그 혁명은 여러 가지 형태로 동시에 발생할 수도 있다.
지금부터 소개하는 디자이너들은 그 선두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패션의 혁명을 이끌면서도 같은 맥락을 공유한다. 먼저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새로운 방식으로 패션을 재정립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미켈레가 특히 강조한 건 오랜 전통을 지닌 브랜드를 현대에 맞게 재창조하는 접근법이다. 패션이 더 이상 특별한 몇몇 소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거다. 미켈레와 매우 다른 성격의 디자이너인 텔파의 텔파 클레멘스 역시 같은 관점을 전했다.
미켈레는 지속 가능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디자이너로도 유명한데, 이 지점은 파리의 독창적인 업사이클러 마린 세르와도 닮았다. 과잉 생산 문제에 대한 해답의 일부가 ‘새로운 계절엔 새로운 옷’과 같은 새로움과 연속성에 대한 패션의 강박에서 온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시즌 지난 패션’이라는 절대적 개념이 끝나는 장면을 목도하는 중일지도 모른다. 세르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좇아야 한다는 압박감을 덜어주려는 바람에서 쇼마다 동일한 재료와 프린트를 사용한다. “참신함과 새로움 사이에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참신함은 찰나의 놀라움이죠. 하지만 새로움은 뭔가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의미입니다.”
물론 판매를 위해 참신한 무엇을 생산하는 것은 현대 패션 비즈니스 모델의 핵심이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경우엔 잔인할 정도로 더 그렇겠지만 럭셔리 패션의 꼭대기에 있는 하우스 역시 대량생산이라는 의무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뎀나가 쇼에서 모델들에게 라텍스 마스크를 씌운 것 역시 그 지점과 관계가 있다. 뎀나는 마스크를 사용해 개인을 감췄다. 오늘날 트렌드를 좇는 방식, 물질에 대한 막연하고 무조건적인 숭배가 결국 개개인을 지울 수 있음을 의미한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패션은 도구입니다. 위장을 위해 혹은 시각적인 정체성에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사용할지는 소비자의 몫입니다.”
다시 말해 뎀나의 쇼는 거대한 비평이었다. 뎀나도 인정하듯, 발렌시아가가 여전히 많은 사람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피스를 대량으로 만드는 사업을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곤란한 일이다. 하지만 이조차 ‘지금’을 반영한다. 우리는 과도기를 지나고 있다. 수시로 우리를 당황하게 만들던 지난 몇 년간의 변화는 현재 패션 산업이 운영되는 방식으로 굳어졌다. 급격하게 메가트렌드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셀럽과 소셜 미디어는 더없이 중요해졌고, 그런 스펙터클함은 그야말로 미덕이 됐다.
물론 긍정적인 부분도 존재한다. 온라인의 영향일 테지만 패션이 다수의 의견을 포용하기 시작한 거다. 디자이너와 브랜드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대의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이를테면 캠페인 진행과 직원 고용에 공개적으로 진보적인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 같은 것들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갔다. 이 변화는 현재진행형이다. 더 다양한 인종과 젠더, 신체, 시각을 고려하는 부분에서 큰 진전을 이루기는 했지만, 완성형이라고 말하기는 아직 어렵다. 지난 50년 동안 등장한 몇 되지 않는 마르지 않은 모델 중 한 명인 팔로마 엘세서는 여러 번 신념과 현실 간의 인지 부조화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실제로는 제 사이즈의 옷은 만들지 않는 브랜드의 쇼에 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브랜드의 쇼에 선다는 사실은 패션계의 변화를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패션 산업의 관행 역시 흔들리고 있다. 특히 1년에 두 번 열리는 패션 위크의 쉴 새 없는 일정, 시즌 전에 이뤄지는 매장 배송, 스트리트 웨어에서 영감을 받은 ‘드롭(Drops)’과 쇼를 본 즉시 구매할 수 있는 ‘See Now, Buy Now’ 등에 대한 의문이 점점 커져간다. 패션 위크조차도 팬데믹으로 인해 치명타를 입을 뻔했지만, 결국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것은 패션 위크에 대적할 만큼 매력적인 제도가 아직 등장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동시에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직접적인 경험이 필수적이며 유효한 요소임을 말해준다. 패션계 변화의 많은 부분에 기여한, 정말이지 혁신적인 행보를 보여준 버질 아블로조차 패션 위크라는 전통을 고수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모든 것은 유동적이라는 얘기다. 이제 디자이너들은 디자이너 이상이다. 그들은 점점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면서 스스로 ‘디자이너’라는 말 대신 스토리텔러이자 크리에이터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결국 하나의 산업으로서 패션은 현재 험난한 인프라를 탐색하면서 동시에 미래로 가는 다리를 건설해야 하는 힘든 시기를 겪는 중이다. 혼란스럽고 때로는 답답하면서도 흥분되는 여정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가장 호기심 많고 창의적인 디자이너들이 열심히 실험을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들은 아이디어, 기술, 스타일 등 모든 면에서 낭비를 줄이고, 더 공정하며, 과감한 패션의 미래를 위한 길을 만들고 있다. 다른 이들이 따라갈 수 있도록 말이다. 중요한 건 되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텔파에서 클레멘스의 가장 가까운 파트너 바박 래드보이는 전 세계적인 정치 사회적 격변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변화를 과장하는 것은 쉽습니다. 패션계를 포함한 사회 곳곳에서는 이미 성과를 이뤘고, 더 이상의 변화는 필요 없는 것처럼 말하죠. 사실 권력의 주체와 운영 방식은 거의 바뀌지 않았지만요.” 그 이야기를 듣고 클레멘스가 덧붙였다. “예를 들어 지난 2년간 우리는 서로를 비판했지만 엔데믹으로 전환되며 모든 문제가 사라졌으니, 원래대로 패션 사업을 재개하는 방법을 알아냈다는 식이죠.”
하지만 원래의 패션 사업이라는 것은 이제 없다. 계속 새로운 언어가 등장하는 것이 단적인 예다. 우리는 계속 주시해야 한다. 탐험과 변화의 기회를 제공하는 이 디자이너들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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