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넬 셔츠 하나로 무심한 멋 뽐내기
밴드 너바나의 프런트맨, 커트 코베인이 유행시킨 스타일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생 로랑을 비롯해 많은 브랜드가 재탄생시킨 ‘커트 선글라스’, 카키색 모헤어 카디건, 미국의 아티스트 다니엘 존스턴(Daniel Johnston)의 앨범 커버까지. 커트의 스타일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플란넬 셔츠입니다. 그런지의 아이콘 커트가 사랑했기 때문인지 플란넬 셔츠 또한 그런지 룩을 대표하는 아이템이 되었죠. 구글에 ‘그런지 패션’을 검색하면 빨간 플란넬 셔츠와 데님이 겹쳐 있는 이미지가 가장 상단에 뜹니다.
커트가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가 사랑했던 해진 플란넬 셔츠와 낡은 청바지는 ‘그런지 스타일’이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탄생시켰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새로운 트렌드에 자리를 내준 그런지 스타일은 추종자에 의해서만 간간이 그 명맥을 유지합니다. 뒤안길로 사라져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마저 풍겼죠. 보테가 베네타가 케이트 모스라는 그런지 아이콘을 통해 커트의 룩을 그대로 재현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보그 웹사이트를 틈틈이 방문해왔다면, 이 룩이 익숙할 겁니다. 그리고 마티유 블라지가 가죽을 활용해 데님처럼 보이는 팬츠를 선보였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 주목할 것은 바로 플란넬 셔츠입니다. 역시 가죽으로 만든 플란넬 셔츠를 입고 케이트가 등장하는 순간, ‘그런지가 돌아왔다’는 일종의 선언문이 쓰이는 것 같았거든요.
빈티지한 컬러감, 무심하게 걷어 올린 소매까지 더없이 그런지스럽습니다. 보테가 베네타의 2023 S/S 컬렉션의 초반부는 분명 놈코어에 기반을 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놈코어가 유행에 대한 거부감에서 탄생했고 그런지 록 역시 주류 음악의 대안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둘은 상당히 닮아 있죠.
래퍼 키드 라로이(Kid Laroi)를 보면 알 수 있듯, 스타일에 신경을 덜 쓴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훨씬 그런지스럽습니다. 더블 니 워크 팬츠, 잠옷으로 더 어울릴 것 같은 커다란 프린트 티셔츠 위에 플란넬 셔츠만 걸쳐주면 됩니다. 올겨울에는 짧은 기장의 패딩과 함께 매치해도 좋겠죠? 패딩 밑으로 살짝 삐져나온 셔츠 밑단이 무심한 멋을 더할 겁니다.
남들보다 조금 미리, 멋스럽게 플란넬 셔츠를 즐기려면? 브랜드 이미지는 그런지보다 러블리에 가깝지만, 이자벨 마랑을 주목하세요. 몇 년째 꾸준히 다양한 컬러와 소재, 두께감의 플란넬 셔츠를 선보이고 있거든요. 적당한 가격에, 그런지 룩과 보헤미안 룩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는 것도 이자벨 마랑만의 장점! 생 로랑 같은 하우스 브랜드는 물론 유니클로, 애버크롬비 등 패스트 패션 브랜드로 눈길을 돌려도 좋습니다.
그런지 스타일의 핵심이 ‘내 멋대로’인 만큼, 플란넬 셔츠를 ‘잘’ 입는 방법이란 딱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꼭 지켜야 할 규칙도 없고, 피해야 하는 팬츠나 슈즈도 딱히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기보다 본연의 모습인 채로 미움받는 것이 낫다”고 말한 커트 코베인과 같은 애티튜드만큼은 꼭 지켜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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