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빙

17세기에 지은 건물을 집으로 만드는 법

2022.11.28

by 김나랑

    17세기에 지은 건물을 집으로 만드는 법

    패션쇼 연출가 알렉상드르 드 베탁은 17세기에 지어진 역사적인 건물을 새로 디자인했다. 프랑스 고전주의에 이탈리아, 스페인, 중국, 일본 문화 등 여러 요소가 현대적으로 안착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패션쇼를 연출해온 알렉상드르 드 베탁과 그의 아내.

    디올, 이브 생 로랑, 자크무스 등 1,500회가 넘는 패션쇼를 연출한 알렉상드르 드 베탁(Alexandre de Betak). 그는 1990년대 뷔로 베탁(Bureau Betak)을 세운 후 패션쇼의 컨셉과 연출에 새로운 가치를 보여주며, 패션계에 자리매김했다. 2016년 디지털 크리에이션 대행사 뷔로 퓌튀르(Bureau Future)를 설립한 뒤 알렉상드르는 무대 장식과 설계를 하는 탁베 스튜디오(Takbe Studio)를 열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던 뷔로 베탁과 달리 탁베 스튜디오는 오랜 기간에 걸친 작업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10분이나 그보다 더 짧은 패션쇼를 연출해왔기에 더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컨셉에 흥미를 많이 느끼죠.” 이전과 반대 방향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2020년 초부터 브랜드 ‘추피(Chufy)’의 크리에이터이자 패션 컨설턴트인 아르헨티나 출신의 배우자 소피아 산체스 드 베탁(Sofía Sanchez de Betak)과 네 살배기 딸 사쿠라와 함께 사는 이 파리의 아파트를 리모델링한 것이다. 노트르담 대성당과 센강을 마주 보는 이 17세기 아파트는 1934년부터 2012년까지 병원이자 파리 빈민 구제 박물관(Musée de l’ Assistance Publique)이 자리한 곳으로, 베탁은 2013년 <AD> 인테리어 전시로 처음 방문할 때부터 이곳에 끌렸다.

    다이닝 룸에는 생투앙 벼룩시장에서 구매한 페로몬(Pheromones) 의자와 테이블이 있다. 창가에는 1980년대 가에타노 페셰(Gaetano Pesce)의 소파 두 개를 놓았다. 마룻바닥은 라 파르케트리 누벨(La Parqueterie Nouvelle) 제품으로 아브니르 파르케(Avenir Parquet)가 시공했다.

    거실에는 마리오 벨리니(Mario Bellini)가 1966년에 생산한 아만타(Amanta) 소파 네 개를 배치했다. 나무 프레임에 사슴 가죽을 씌운 1940년대 페로몬 의자와 헤릿 릿펠트(Gerrit Rietveld)의 스텐트만 의자도 함께 두었다.

    알렉상드르 드 베탁이 디자인한 벽지로 장식한 딸 사쿠라의 방.

    욕실의 대리석 욕조는 생투앙 벼룩시장에서 구입했다.

    계단 뒤편에는 앙드레 카제나브(André Cazenave)가 1970년대에 제작한 조명을 쌓았다.

    아내 소피아 산체스 드 베탁의 사무실은 남편 알렉상드르가 디자인한 격자무늬로 꾸몄다. 생투앙 벼룩시장에서 구한 아르데코식 일본풍 의자, 아오야마 플뢰르(Aoyama Fleurs)의 화병도 남편의 제안이다.

    안방엔 18세기 이탈리아풍 나무 장식 벽을 세웠다.

    그리고 몇 년 뒤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왔을 때 서둘러 건물을 구매했다. 2년의 공사 끝에 이 병원은 350㎡의 아늑한 삼층집으로 바뀌었다. “처음 구매할 때 거의 무너져가는 상태였죠. 제대로 된 벽이나 전기도 없고, 보일러나 계단, 마루도 없고, 남은 거라곤 부서진 시멘트 잔해 정도였어요. 시간을 들여 고치기로 결정했죠. 아이들(첫 번째 결혼에서 얻은 자식들이다)이 여기에서 스케이트를 타고 벽에 낙서를 했어요. 그때 자유를 느꼈죠. 이 잔해 속에서 보낸 시간이 공간과의 연결과 기억을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알렉상드르 드 베탁은 시간의 지층을 들여다봤을 벽체를 몇 개 남겨, 이곳의 정신을 지키기로 결정했다. 대들보부터 천장, 부르고뉴에서 사용하는 석재부터 베르사유궁의 마루, 생투앙 벼룩시장에서 찾은 18세기풍 손잡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방면에서 보이는 고전주의 건축물의 법칙을 탐닉했다. “그들을 깊이 탐구하는 것을 좋아해요. 발레아레스풍의 집이나 이 17세기 병원 건물 같은 것들 말이죠.” 그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은 마음이 끌리는 대로 즉흥적으로 여러 스타일과 느낌을 섞거나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것, 온라인 부동산 쇼핑과 중고 물품을 찾아내는 것이다(드 베탁은 중고 시장 다니기를 아주 좋아한다).

    알렉상드르 드 베탁은 일본 병풍에서 영감을 받아 드레스 룸을 디자인했다.

    어떤 규범에도 속하지 않은 듯한 이 집의 거실에는 1970년대 장식과 아프리카 미술품을 비롯해 각종 작품이 있다. 1940년대 가구나 키네틱아트뿐 아니라 중국풍 장식물도 있다. “이른바 전통적인 의미의 수집가는 아니죠. 오히려 제 욕망의 수집가라고 볼 수 있어요. 거기서 더 발전시키고 섞는 것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열네 살부터 베스파 스쿠터를 좋아하면서 엘립손 같은 최신 오디오 기기도 갖고 싶었죠.” 부엌은 다소 인더스트리얼 스타일로, 짐바브웨 돌 장식이 있다. 요리를 하면서 바로 음식을 낼 수 있게 완전히 트인 주방이다. 주방으로 이어지는 장식적인 계단 역시 드 베탁이 직접 곡선으로 디자인해 석회로 만들었다. 이 계단은 부부가 스페인 발레아레스의 마요르카섬에 소유한 집을 연상케 한다. 벽 또한 하얀 석회로 만들었다. “창조적인 일을 하고 있을 때 이 흰 벽은 어떤 예술적 참견도 하지 않죠. 게다가 흰 벽을 보면 왠지 모르게 편안해져요. 때때로 벽을 바라보며 머리를 비우고 가만히 있어요.”

    안방 벽면은 18세기풍 이탈리아 양식의 나무로 되어 있고, 드레스 룸엔 오래된 일본 병풍이 있다. 알렉상드르 드 베탁은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어 이런 그림 장식을 꽤 갖고 있다. 피에르 프레이(Pierre Frey)가 파노라마식으로 새로 편집한 그림에 가족의 얼굴을 유머러스하게 집어넣어 딸 사쿠라 방의 벽지로 쓰기도 했다.

    이 집에서 더 놀라운 부분은 바로 베탁의 비밀 장소다. ‘거울 나라의 앨리스’처럼 거울 뒤로 들어갈 수 있는 층간에 숨은 공간이 있다. “어릴 때부터 늘 숨겨진 방을 좋아했어요. 게다가 가족 모두 파티도 좋아해 이런 비밀스러운 공간에 홈 바를 설치하기로 했죠.” 홈 바는 때로는 나이트클럽, 영화관, 명상실, 응접실이 되기도 하며, 17세기 별 지도에서 영감을 받아 천장에 가족의 별자리를 환상적으로 새겼다. “살면서 한 번쯤 이런 색다른 일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VK)

    ‘거울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케 하는 홈 바는 영화관이나 클럽 등으로도 활용한다.

    에디터
    김나랑
    MARINA HEMONET
    사진
    MATTHIEU SALVA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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