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드라마의 공식은 모두 넣었다 ‘21세기 대군부인’
상반기 한국 드라마 화제작 중 하나인 <21세기 대군부인>(MBC)이 공개됐다. 이 작품에서 업계와 시청자가 기대한 건 대단한 예술적 성취가 아니었다. 21세기 입헌군주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재벌이지만 평민이라 짜증스러운 여자와 외로운 대군이 계약 결혼을 한다? 정치의식, 역사의식, 현대적 사회 이념 같은 건 비집고 들어설 틈이 없다. 재벌과 대군 커플이 함께 혁명을 일으켜서 군주제를 폐지하는 정도로 화끈한 반전이 있지 않고서야, 전개와 결말이 넉넉히 예상되는 얘기다. 권력, 돈, 능력, 가슴 아프고 스릴 넘치는 로맨스를 향한 선망을 대리 만족 시켜주는 노골적인 흥행 상품이다. 거기에 화려한 궁중 테마 코스튬을 더하고, 아이유와 변우석을 캐스팅했다.

<21세기 대군부인>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IP 밸류 체인 전략으로도 주목받았다. 이 작품은 2022년 MBC 드라마 극본 공모전 수상작이다. 드라마를 공동 제작한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방송이 끝나는 날부터 드라마의 전사를 담은 웹소설 <21세기 대군부인 in 왕립학교>를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할 예정이다. 드라마 주인공 아이유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지분을 가진 이담엔터테인먼트 소속이고, OST에도 지분 관계 엔터사 가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요컨대 <21세기 대군부인>의 관전 포인트는 한국발 글로벌 콘텐츠의 흥행 및 수익화 공식이 얼마나 잘 작동하는가다. 첫 주 순간 최고 시청률이 동시간대 최고인 11.1%, 디즈니+ 글로벌 TV 쇼 부문 4위를 기록했으니 일단은 기대에 부합한다고 봐야겠다. 첫 방송 전 광고 물량이 전부 소진됐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문제는 문화 콘텐츠가 공식을 너무 충실하게 따를 때 필연적으로 생기는 공허함이다. 그 공허함은 작품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강렬할수록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평소 한국 로맨틱 코미디를 즐기는 시청자라면 <21세기 대군부인>에 주말 밤을 할애하는 게 아깝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아저씨>, <폭싹 속았수다> 등으로 산업 내 존재감이 부쩍 커진 배우 아이유를 보고 이 장르에 유입된 시청자는 감상이 다를 수도 있겠다.


MBC ’21세기 대군부인’ 스틸 컷

MBC ’21세기 대군부인’ 스틸 컷
극 중 성희주(아이유)는 재벌가 핏줄 덕에 계열사를 맡아서 운영하는 기업가다. 그는 자아에 도취되어 있으며 그걸 감출 생각이 없다. <사랑의 불시착>, <눈물의 여왕> 등에서 익히 본 캐릭터다. 대한민국과 조선을 섞은 듯한 입헌군주국에서 평민 여성이 왕자와 결혼한다는 설정은 2006년 드라마 <궁>과 비슷하다. 당시 여주인공이 평범한 집안 출신 캔디였다면 성희주는 재벌 딸이라는 데서 한국 드라마의 여성 캐릭터 유행 변화가 체감된다.
드라마 초반은 대군(변우석)의 사랑을 얻기 위해 돌진하는 성희주의 모습, 대군과 대비(공승연) 사이 묘한 긴장 관계가 웃음과 호기심을 자아낸다. 그러나 일부 재치 있는 아이디어에도 몰입이 어려운 대목이 많다. 몇몇 배우는 사극과 현대극 사이에서 적절한 연기 톤을 잡는데 곤란을 겪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서사가 쌓이고 배우들의 경직이 해소되면 나아지리라 믿는다. 세계관의 화려함과 달리 그리 고급스럽지 않은 세트도 아쉽다. 제작비 문제라면 너무 슬프니까, 총리(노상현)가 있어도 허울뿐인 사실상 왕정 국가라 민주공화국 대한민국보다 경제 발전 동인이 약했을 거라 짐작해본다.


MBC ’21세기 대군부인’ 스틸 컷

MBC ’21세기 대군부인’ 스틸 컷
작품 초반의 아쉬움은 이 드라마가 이야기의 상업성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어찌 보면 효율적인 운영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애초에 소품이라 생각하면 아쉽지도 않았을 문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야기의 짜릿함이다. 그거라면 아직 기대는 유효하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는 로코의 진리는 이번에도 통할지, 몇 화 더 지켜봐야겠다.
최신기사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