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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관한 초단편소설_서장원 ‘버섯 일지’

2026.05.08

가족에 관한 초단편소설_서장원 ‘버섯 일지’

집에 돌아가면 나는 딸이 된다. 할머니는 천국에 갔지만 여전히 나의 할머니다. 오늘 우연히 만난 당신과도 가족이 될지 모른다. 여러 세대의 소설가들이 가족에 관해 쓴 초단편소설 8편.

버섯 일지

Getty Images

한여경의 추도식에 참석해달라는 편지가 온 것은 낮 동안 큰비가 내렸다가 걷힌 저녁이었다. 편지의 발신인은 나를 한여경의 전 부인으로 지칭했는데, 편지를 세 번쯤 읽고 나서야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갔다. 나와 여경이 오래전에 접수했던 혼인신고 기록을 가족들도 접했던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기억이 났다. 어느 해인가, 내가 노년기에 접어들었다는 걸 겨우 인정하던 시기에 한여경과의 혼인을 확인해달라는 서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만약 혼인신고의 의향이 있다면 기한 내에 확정신고를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다른 것보다 그 옛날의 데이터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대지진을 겪으며 오래된 것이라곤 남아나질 않았는데, 어떻게 수십 년 전의 혼인신고 기록이 보존되어 있었을까. 그러고 나서 또 한참이 지나서야 혼인신고자의 불출석으로 혼인신고가 취소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서류 아래쪽에 행정부의 붉은 도장이 찍혀 있는 걸 보자 조금 서글퍼졌는데, 이제 아무것도 돌이킬 수가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던 탓이었다.

여경의 추도식은 도시에 있는 작은 추모회관에서 열렸다. 추모회관이라면 몇 번 가봤지만 여전히 익숙해지기가 어려웠다. 좁은 방에서 사람들이 모여 앉아 돌아가며 추모사를 하고, 음복을 하는 것이 나에게는 장례식보다는 회식이나 모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회식이나 모임 같은 걸 해본 지도 아주 오래됐지만. 기차를 타고 가는 동안엔 수첩을 꺼내 나름대로 추모사를 적어봤다. 내가 아는 여경은 서른 즈음에 멈춰 있었으므로 그즈음의 여경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었다. 대지진 이후로 여경은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 했다고 나는 썼다. 한때는 나와 함께 대지진 이후의 삶을 꾸려가려 했다고는 쓰지 않았다.

대지진은 모든 것을 휩쓸고 갔다. 그때껏 나와 여경이 가지고 있던 것은 물론 알고 있던 것, 혹은 가진 줄 몰랐지만 우리의 삶에 속해 있던 모든 것을. 아, 그래도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어쨌거나 나에게는 여경이, 여경에겐 내가 있었으니까. 그것이 충분하지 않았을 뿐. 망가진 삶, 망가진 세계는 시시때때로 내 뺨을 후려쳤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차가 다닐 수 없을 만큼 망가진 도로를 볼 때, 금이 간 길을 걷고 무너져 내린 건축물 잔해를 뛰어넘을 때, 삶은 내가 과연 어디까지 감수할 수 있을지 내기를 거는 듯했다.

여경은 나보다는 조금 나은 속도로 대지진 이후의 삶에 적응했다. 여경은 나를 강원도 정선으로 데려가기도 했다. 우리는 작은 오두막을 둘러보면서 이곳에서 버섯을 기르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시절엔 많은 사람이 산이나 숲으로 들어갔다. 자연으로 돌아가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것이 하나의 조류가 되어 있었고, 여경 역시 그런 삶을 선택하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세상이 그 지경이 되었는데도 그때까지 살아온 관성을 다 버린다는 것이 나는 상상이 안 됐다. 나는 서울에 남아 지진의 잔해를 수습하는 단기 일자리를 얻었다. 여경은 마음먹은 대로 정선으로 이주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걸 이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돌아보면 그렇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함께 살았고 생활비를 함께 분담했으며 고양이도 함께 돌봤으니까. 그래, 고양이. 온몸이 새카맣던 고양이가 있었다. 여경은 녀석을 무척 귀여워했지만 나는 좀처럼 마음이 가지 않았던 녀석이었다. 그 고양이가 어떻게 되었더라? 나는 차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창밖으론 황무지와 수십 년씩 방치된 무너진 건축물, 부러진 관목이 스쳐가고 있었다.

여경과 헤어지고 나서도 몇 번의 사랑이 더 있었다. 여경과 함께한 것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도 몇 있었다. 그중 인생의 사랑이라고 할 만한 사람이 있었냐면… 그렇지는 않다. 여경도, 다른 연인들도 모두 스쳐가는 인연이었을 뿐이었다.

추도식에 모인 사람들은 열두 명이었다. 추도실은 그때껏 내가 가본 곳 중 가장 작았다. 상주는 서른 살은 넉넉히 넘어 보이는 여자로, 아마도 내게 여경의 죽음을 알린 유가족 대표가 바로 저이이지 싶었다. 조카일까. 아니면 딸일지도 몰랐다. 내가 여자의 얼굴을 뜯어보며 기억 속 여경의 얼굴을 되새기고 있을 때 여자가 마이크를 켰다.

“한여경 님의 추도식에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자는 그 말을 시작으로 여경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의 어린 시절, 이미 마흔에 가까웠던 여경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해서. 나는 까마득히 모르는 시간이었다. 여경은 30대 이후의 삶을 모두 숲에서 보낸 듯했다. 여경은 숲에서 버섯을 길렀다. 버섯을 기르는 일. 그것은 여경의 직업이자 수련이자 정체성이었다. 곧 다른 사람들, 아마도 여경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지내온 사람들이 차례로 마이크를 건네받고 여경에 대해 말했다. 여경은 버섯을 기르며 버섯에 대해 기록했는데 그것은 학술적인 글은 아니었지만 공동체의 지혜로 전수되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고, 때때로 여경은 새로운 버섯 요리를 개발했으며, 사람들이 모일 때면 늘 요리를 도맡았다고 사람들은 일렀다. 만약 오래전에 내가 여경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나도 저들의 일부가 되었을까 궁금한 마음이 일었다. 장내에 잠깐 침묵이 감돌았을 때, 잠깐이지만 상주인 여자가 나를 바라봤다. 할 말이 있느냐고 묻는 듯해서 나는 고개를 저었다. 할 말이, 있을 리가…

식이 끝난 뒤, 추도객들이 빠져나가고 다음 타임 추도객들이 웅성거리는 복도에서 상주는 나를 불러 세웠다. 여경에게서 내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여경은 나와 함께한 시절을 생애 가장 행복한 나날로 꼽았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런가요?”

나는 조금 놀라서 되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번 결혼을 했었다고 말씀하셨어요. 가족이 있었다고… 옛날이야기를 거의 안 하셨는데, 그래도 선생님 이야기는 종종 해주셨고요.”

여경의 가족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쪽은 나보다는 긴 시간 여경과 함께한 공동체 구성원들일 것 같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문득 고양이가 어떻게 없어졌는지 기억해냈다. 우리는 고양이를 잃어버렸다. 대지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의 일이었는데, 생각해보면 그 일이 지진의 징조였을지도 모르겠다. 나와 여경이 잠든 사이, 고양이는 살짝 열려 있는 창문 틈으로 몸을 빼내고 집을 나갔다.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3층으로 뻗은 나뭇가지를 타고 간 걸까? 그럴 수가 있나. 우리는 겨우 반 뼘쯤 열린 창을 바라보며 그런 말들을 주워섬겼다. 무언가를 어처구니없이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때 처음 배웠고, 얼마 뒤에 다시 한번 깨우쳤다.

여자가 전해준 여경의 몇 가지 유품에는 노트 한 권이 포함되어 있었다. ‘버섯 일지’라는 제목이 붙은 그 노트에는, 나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지진 이전의 삶에 대해서도 여경은 전혀 쓰지 않았다. 노트에는 여경의 짧은 글이 몇 줄 적혀 있을 뿐이었다. 버섯은 어디서든 자라고 어떻게든 자란다는, 버섯을 재배하며 느낀 소회가. VK

서장원 서장원은 한강 작가의 소설집을 읽은 뒤로 집필을 시작했다.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거쳐 소설집 <당신이 모르는 이야기>를 펴냈으며, 2024년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2025년 이상문학상 우수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그래도 가족

김나랑

김나랑

피처 디렉터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매번 배웁니다. 집에 가면 요가를 수련하고 책을 읽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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