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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 관한 초단편소설_조경란 ‘어떤 여자들’

2026.05.08

가족에 관한 초단편소설_조경란 ‘어떤 여자들’

집에 돌아가면 나는 딸이 된다. 할머니는 천국에 갔지만 여전히 나의 할머니다. 오늘 우연히 만난 당신과도 가족이 될지 모른다. 여러 세대의 소설가들이 가족에 관해 쓴 초단편소설 8편.

어떤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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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서는 패션에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화요일과 목요일은 달랐다. 수강생 중 여학생 비율이 높아서인지, 같은 옷을 여러 번 입는 일은 피하고 싶어졌다. 그 일이 영향력 있는 강사의 조건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2년 전쯤 올드 머니 룩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해에 얼핏 보면 올드 머니 룩 같은 옷을 여러 벌 구매했다. 베이지나 그레이 톤의 슬랙스와 스웨터. 강의료가 빤했으므로 고급스러운 소재는 살 수 없었고, 강사료에 비례해 먹고 입는 일에 사치하지 않는 게 영서는 자신의 장점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 멜란지 그레이 브이넥 스웨터도 그해 겨울에 구입했다. 폴리에스테르와 아크릴에 모가 14퍼센트쯤 섞인, 그래도 ‘울 혼방’인 루스 핏 니트였고 이런저런 쿠폰을 써서 4만원대에 샀다. 거기에 차콜 슬랙스를 입으면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겨우 서너 번 입었을 뿐인데도 스웨터에선 눈에 띌 만큼 보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십 살이 되면 기념으로 질 좋은 캐시미어 스웨터를 살 거야, 라고 중얼거리면서 영서는 이듬해 봄에 그 스웨터를 둘둘 말아 버렸다. 주방 한쪽에 어머니가 놓아둔 재활용 상자에다.

2주 전,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에 갈 때 어머니는 패딩 속에 그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실은 그 며칠 전에 CT 촬영을 하러 간 날에도 그 스웨터를 입은 걸 영서는 한눈으로 보고 모른 척했다. 지금은 어머니에게 왜 버린 옷을 주워 입은 거냐고 잔소리하거나 싫은 소리를 할 때가 아니었다. 어머니가 다니던 동네 내과 의사에게 피검사 결과가 너무 안 좋으니 얼른 대학 병원에 가보라는 전화를 받았었다.

CT 촬영 결과를 들은 날, 어머니는 바로 입원해야 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을 때 어머니는 6인실 병동의 사생활 보호용 커튼을 꼼꼼히 쳤다. 그러곤 옷을 갈아입고 3월 둘째 주인데도 아침에 입고 나온 겨울옷, 검정 기모 바지와 딸이 입던 그레이 브이넥 니트와 그 안에 받쳐 입었던 얇은 터틀넥 스웨터를 차곡차곡 접어 사물함 아래 칸에 넣었다. 환자복을 입은 어머니를 영서는 처음 보았고, 어머니도 그게 어색한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잠시 서 있었다. 두 사람이 서 있기에도 좁은 공간이었다.

너무 춥다.

어머니가 양팔로 몸을 감싸며 말했다. 병실로 들어올 때 영서는 출입구 벽에서 실내 온도가 26도라는 걸 보았는데.

누워, 엄마.

영서가 이불을 덮어주려고 하자 어머니가 이거 봐봐, 이불 홑겹을 가리켰다. 영서의 출석부에 새겨진 학교 영어 이니셜이 그 이불에도 프린트돼 있었다. 영서는 얼른 또 눈을 돌렸다. 자랑스러움이 담긴 듯한 어머니의 표정에서.

아는 것과 경험하는 것엔 큰 차이가 있었다. 사람들은 타인의 불행한 소식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 말이다. 어머니가 받은 진단은 병명만 들어도 고개를 내젓게 되는 암, 그것도 4기였다. 보호자로서 영서는 해야 할 일을 해야 했다. 개강을 막 시작한 이번 학기 강의를 포기하느라 학과장에게 연락했고 수강생들에게는 사정이 생겼다는 단체 메일을 보냈다. 몇 학기 수업을 들었던 몇몇 학생에게 교수님 괜찮으세요? 하는 답장을 받기도 했다. 어떤 학생들은 마음에 걸렸다. 꼭 사정을 말해야 하는 경우 외에 영서는 어머니의 병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 그러나 소등하는 밤 10시에 어머니를 혼자 두고 병실을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릴 때, 비어 있는 어머니 방을 볼 때 누군가에게 이 크디큰 충격과 슬픔에 대해 토로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다. 외롭다는 게 이런 걸까. 영서는 컵라면에 물을 붓곤 어머니처럼 양팔을 엇갈려 상체를 감쌌다.

교수님, 저는 요즘 본가에서 아버지 일을 돕고 있어요.

흰에게 문자메시지가 왔다. 아가서 5장 “내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많은 사람 가운데에 뛰어나구나”를 빌려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개강 수업 때 자기소개를 했던 흰.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어머니는 흰을 낳다가 돌아가셨다. 한 학기 수업을 들었을 뿐인데도 흰은 어려움을 겪던 자신을 위해 인권위원회가 요청한 ‘참고인 진술서’를 영서가 써준 후로 종종 연락을 해오고 있다. 목사가 되고 싶었던 아버지는 제주에서 빵집을 하고 흰은 지금 거기서 지내는 모양이었다.

영서는 담즙이 잘 빠져나가도록 옆구리에 관을 뚫는 시술을 받은 어머니 옆에서 흰이 보낸 사진을 보았다. 제주 쑥과 보리로 만든다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찐빵을.

이거 맛있어 보이지 않아?

식욕도 잃고 담즙 때문에 황달이 더 심해진 어머니에게 영서는 좀 초조한 마음으로 사진을 건네주었다. 이 병의 끝은 영서가 느끼기에 음식을 먹지 못해 기력이 다하다는 것과 같아져서.

첫 항암 주사를 맞은 날 이른 저녁에 퇴원하게 됐다. 입원한 지 꼭 2주째 되는 날이었고 아침 회진 때만 해도 의사는 퇴원 이야긴 하지 않았었다. 병실이 모자라서 그러나? 어머니가 소심하게 웅얼거리며 사물함 밑에서 옷을 꺼내 입었다. 보풀이 잔뜩 일어나 이제 차라리 부클레 니트처럼 보이는 그 브이넥 그레이 스웨터를. 그간 체중이 빠진 어머니에게 스웨터는 남의 옷 같아 보였다. 처음부터 남의 옷이긴 했지. 영서는 슬픔을 억누르느라 부러 시니컬한 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집은 엉망이었다. 간병을 하느라 청소할 시간도 없었고 병원에서 돌아오면 쓰러지듯 자다 오전 6시에 일어나 병실로 달려가곤 했으니까. 무엇보다 냉장고가 텅 비었다. 저녁을 어떻게 하지? 영서가 고민하고 있을 때 선생님 저 지금 병원 앞에 와 있어요, 메시지가 왔다. 흰이었다. 제주에서 여기까지. 그나저나 이미 퇴원해버렸는데. 영서가 난처한 얼굴로 어머니를 봤다.

영서는 어머니 말대로 흰에게 병원 앞에서 동네로 오는 버스 노선을 알려주었다.

딸 제자가 처음 집에 오는데 환자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

어머니는 거울 앞에서 머리를 빗고 브이넥 스웨터를 매만졌다.

엄마, 이쁘네.

영서는 어머니에게 평생 안 해봤던 말을 했고 그게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말이라는 데 놀랐다. 어쩌면 칭찬하는 데 인색한 게 자신의 가장 큰 단점이었을까. 앞으로 어머니 곁에서 지금까지의 자신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돌아보게 될지도 몰랐다.

현관으로 흰이 들어왔다. 희고도 붉어진 젊음을 끌고, 제주 쑥 찐빵이 든 상자를 들고.

세 사람은 식탁에 모여 앉았다.

이러니까 우리 꼭 가족 같아요.

농담처럼 흰이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말했고 어머니가 아 이제 배가 고파, 라고 해서 영서는 그게 너무 좋았다. 모두가 살아 있는 이 순간이.

조경란 젊은 시절의 많은 정서를 조경란에게 빚졌다. 작가는 199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불란서 안경원>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소설집 <불란서 안경원> <나의 자줏빛 소파> <코끼리를 찾아서> <국자 이야기> <풍선을 샀어> <일요일의 철학> <언젠가 떠내려가는 집에서> <가정 사정> <반대편 사람 주의>, 장편소설 <식빵 굽는 시간> <가족의 기원> <혀> <복어>, 중편소설 <움직임>, 짧은 소설집 <후후후의 숲>, 산문집 <조경란의 악어 이야기> <백화점-그리고 사물·세계·사람> <소설가의 사물> 등을 펴냈다.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김승옥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그래도 가족

김나랑

김나랑

피처 디렉터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매번 배웁니다. 집에 가면 요가를 수련하고 책을 읽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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