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게리’라는 혁신, 그에 대한 예술적 헌사
루이 비통이 아트 바젤 홍콩에서 지난해 말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거장 프랭크 게리에 대한 각별한 헌사를 전했다.

2024년 10월 아트 바젤이 파리 에디션을 추가한 후 해를 거듭하며 기대와 주목도가 높아진 가운데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공사를 마친 그랑 팔레에 안착했다. 당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수백 개 갤러리 부스 위로 떠 있는 ‘하얀 물고기’였다. 그랑 팔레의 우아한 그린 컬러 철골 구조물 사이를 유영하듯 자리 잡은 이 거대한 조각은 물고기의 역동적인 움직임과 비늘의 반짝임을 관찰하며 깊은 영감을 받은 건축가 프랭크 게리(Frank Gehry)의 건축적 비전을 상징했다. 루이 비통은 그렇게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Fondation Louis Vuitton) 건립 10주년을 기념하며 파리로 모여든 전 세계 아트 애호가들에게 강렬한 전율을 선사했다. 그리고 2년 후 3월의 홍콩. 길쭉하게 뻗어 올라 있는 도시의 스카이라인 속에 ‘까만 악어’가 등장했다. 이 역시 원시적이고 거친 생명력을 지닌 악어를 디자인 모티브로 삼은 프랭크 게리의 작품이다. 루이 비통은 아트 바젤 홍콩에서 개최한 특별 전시를 통해 20년 이상 이어온 파트너십을 기념했다. 인파가 몰린 분주한 아트 페어 현장에서, 거장의 철학이 하우스의 장인 정신과 만나 어떻게 시대를 초월한 마스터피스로 탄생했는지 8개 챕터를 통해 집대성한 전시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프랭크 게리는 평생에 걸쳐 건축의 정의를 새롭게 내렸다. 그는 건축이 단순히 비바람을 피하는 기능적인 상자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흔드는 예술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 “건축은 그 시대와 장소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영원성을 갈망해야 한다”고 말했다. 덧없는 찰나의 미학과 영원히 변치 않을 가치 사이의 긴장감, 그것이 바로 게리의 작품 세계를 지탱하는 핵심 기둥이다. 이번 아트 바젤 홍콩의 루이 비통 부스는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프랭크 게리라는 거대한 사고의 체계가 어떻게 전개되고 진화해왔는지 보여주는 작은 박물관 같았다. 그는 수년 동안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면 결국 답을 찾게 된다”는 믿음을 실천해왔으며, 무엇보다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을 창작의 제1원칙으로 삼았다. 루이 비통 전시는 이러한 철학 속에서 탄생한 그의 대표적인 건축 작업을 시작으로 핸드백 컬렉션과 함께 하우스의 세계에 기여한 다양한 유산을 조명했다.

앞서 언급한 까만 악어(블랙 앨리게이터)는 가장 먼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라미네이트 소재를 깨뜨려 만든 그의 물고기 램프 시리즈 연장선에서, 악어 조각 역시 빛을 머금거나 반사하며 기하학적이고도 생생한 입체감을 뽐낸다. 게리의 동물 모티브는 단순한 장식을 넘어선다. 이는 그가 추구해온 살아 있는 형태에 대한 집착과 경외의 표현이다. 그는 콘크리트, 금속, 유리 같은 딱딱하게 굳은 재료 속에서 어떻게 하면 생명체의 숨결을 끌어낼지 고민했다. 정지된 건물에 역동성을 부여하기 위해 물고기의 곡선을 빌려왔고 원시적이고 거친 생명력을 상징하는 악어를 통해 사물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어 했다. 이러한 철학은 ‘루이 비통×프랭크 게리 핸드백 컬렉션’에도 그대로 담겼다. 2023년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에서 리미티드 에디션 10점 중 하나로 처음 공개된 ‘카퓌신 BB 크록’은 이 악어 모양을 그대로 사용한 손잡이가 특징이다. 이 외에도 ‘카퓌신 MM 콘크리트 포켓’은 게리가 건축한 파사드의 콘크리트 질감을 반영했으며, ‘카퓌신 MM 플로팅 피시’와 ‘카퓌신 미니 드로운 피시’는 오랜 시간 이어진 물고기 모티브에 대한 그의 관심을 재해석한 가방이다. 게리의 복잡한 조각적 설계를 가방 부품으로 구현하기 위해 메종이 가진 소재 공정 노하우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섹션은 게리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손안의 작은 예술적 백으로 소유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전 세계 컬렉터의 주목을 받았다.

이제 더 이상 우리 곁에 없는 위대한 건축가의 부재는 그의 건축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통해 오히려 더 선명한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곡선이 춤을 추고, 금속이 파도를 치며, 건물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숨을 쉬는 듯한 게리의 건축 언어는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에 절정으로 담겨 있다. 루이 비통과 프랭크 게리의 첫 만남은 2001년 베르나르 아르노가 그에게 파리에 예술적 창의성을 고취하면서 현대미술을 누구나 접할 수 있도록 재단 미술관을 의뢰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미술관 건립까지 10년이 훌쩍 넘게 걸렸다. 3,600개가 넘는 유리 패널과 1만5,000톤의 철골로 만든 거대한 건축물은 파리 불로뉴 숲에 거대한 배 한 척이 정박한 듯한 광경을 자아내며 21세기 건축 역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번에 전시된 드로잉과 스케일 모델은 유리로 이뤄진 돛 형태와 빙산(Iceberg) 갤러리를 구체화하기 위한 디자인 초기 탐구 과정을 보여주었다. 항해와 선박이라는 주제, 빛과 유리 사용을 통한 공간적 전환은 2019년 개관한 루이 비통 메종 서울 디자인에도 나란히 이어졌는데, 당시 모델링 축소 모형이 전시되어 비대칭적 형태와 복잡한 구조적 라인을 활용한 게리의 예술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게리의 동화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아기자기한 오브제도 눈길을 끌었다. 2022년 창립자 루이 비통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 크리에이터 200명에게 각자의 개성으로 재해석한 트렁크를 만들게 한 프로젝트에서 게리는 가장 독특하면서도 시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바로 ‘루이를 위한 티 파티(A Tea Party for Louis)’. 그는 트렁크를 기존 운반 도구가 아니라 기발한 건축 테이블로 변모시켰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영감을 받아 주인공 앨리스와 하트 여왕, 카드 병정 등의 캐릭터 미니어처가 자리한 게리의 트렁크가 이번 전시에 그대로 구현되어 있었다. 건물 형태를 띠지는 않았지만, 기능은 건물과 정확히 같은 이 크렁크에서 루이 비통 아이콘에 내러티브를 삽입함으로써 예술적 발명의 가치를 강조한 그의 어린아이 같은 심성을 엿볼 수 있다. 사파이어 케이스로 구현된 ‘땅부르’ 시계는 빛에 대한 그의 집요한 탐구를 보여준다. 특히 시계는 찰나의 시간을 담는 가장 작은 ‘건축물’로서 게리의 기념비적인 비전을 손목 위에 구현해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전시장 한쪽에 생전 인터뷰 영상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레 젝스트레’ 향수를 위한 무라노 글라스 블라썸 스토퍼를 디자인할 당시 그는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피아노 건반을 눌러보세요. 그 소리가 몇 초 동안 당신의 귀에 잔잔히 머물 거예요. 아름답지 않나요.” 향이 퍼지는 순간을 음악적 경험과 연동하며 무형의 에너지를 시적이면서도 조형적인 예술로 치환하고자 했던 접근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루이 비통과 프랭크 게리의 파트너십은 단순히 브랜드와 작가의 만남을 넘어선다. 2014년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개관과 ‘트위스티드 박스’ 디자인으로 시작된 이들의 여정은 20여 년간 지속되며 패션과 건축의 경계를 허물어왔다. 게리는 루이 비통의 상징인 모노그램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졌으며, 이를 뒤틀고 재해석해 하우스의 전통에 파격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루이 비통 장인들은 게리의 복잡하고 비대칭적인 설계를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소재에 대한 노하우를 극한까지 끌어올렸고, 그 결과물은 하나하나가 ‘마스터피스’로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홍콩에서 돌아와 프랭크 게리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았다. 수많은 기사와 인터뷰가 목록을 채웠다. 그중 유튜브에 올라온 루이 비통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그는 거장이라는 수식어 뒤에 숨겨진 아이 같은 순수한 열정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창의성이 어디서 오느냐는 질문에 “모든 프로젝트를 어린아이 같은 천진함으로 대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답했다.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쿠키를 먹으며 소탈하게 대화를 나누고 호기심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강조하는 모습을 영상과 목소리를 통해서나마 만나는 건 감격스럽다고 할까.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려 했던 그의 여정은 이제 멈췄지만, 아트 바젤 홍콩에서 마주한 그의 곡선은 여전히 살아 움직이며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프랭크 게리에게 건축은 구조가 아니라 감각이었으며, 그의 유산은 그가 사랑했던 물고기처럼 여전히 예술의 바다를 유영한다. VK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글
- 강보라(프리랜스 에디터)
- 사진
- COURTESY OF LOUIS VUITTON
- SPONSORED BY
- LOUIS VUIT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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