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거스트 배런의 옷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2026.04.24

어거스트 배런의 옷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몇 개월 전, 일본 <보그>의 전 콘텐츠 책임자 티파니 고도이와 커피를 홀짝이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녀가 느닷없이 질문을 던졌다. “요즘 어린 디자이너 중 누가 제일 잘하는 것 같아요?” 질문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브랜드가 바로 파리 패션 위크에 데뷔한 지 채 5년이 안 돼 컬트적인 팬덤을 만든 어거스트 배런(August Barron)이다.

어거스트 배런의 첫 컬렉션, 첫 룩. 브랜드를 정식 론칭하기 전부터 친구처럼 지내온 로타 볼코바가 모델로 등장했다.

다양한 레퍼런스가 혼재하는 어거스트 배런의 디자인.

2025 가을/겨울 ‘다운타운 걸’ 컬렉션 중.

색이 다른 니트를 여러 벌 겹쳐 입은 듯한 ‘트리플 스웨터’는 어거스트 배런의 시그니처 아이템이다.

어거스트 배런은 슈퍼 스타일리스트 로타 볼코바가 쇼 스타일링을 맡는 네 브랜드 중 하나다(나머지 셋은 미우미우, 페라가모 그리고 호다코바). 뎀나의 오른팔에서 이제는 미우치아 프라다의 가장 믿음직한 조력자가 된 그녀의 ‘가호’ 아래 있다는 사실은 패션계에서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물론 티파니의 질문을 듣자마자 어거스트 배런의 이름이 생각난 것은 단지 로타 때문만은 아니다. “요즘 미우미우처럼 ‘위어드 걸’ 스타일링을 지향하는 브랜드가 많잖아요. 그중 최고가 어거스트 배런이에요. 늘 흥미로운 레퍼런스로 가득하고, 새롭게 느껴지는 디자인을 선보이죠. 얼핏 봐서는 ‘저게 도대체 무슨 옷이지’ 싶은데, 두고두고 생각난다고 해야 할까요?” 나는 어거스트 배런의 2026 봄/여름 컬렉션이 그 시즌에 직접 본 쇼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았다며 칭찬을 이어갔다. 티파니 역시 딱히 반박할 뜻은 없어 보였다.

어거스트 배런은 2026 가을/겨울 컬렉션을 룩북 형태로 선보였다. 지난 3월 파리 출장 중 클로이 세비니, 찰리 XCX, 페트라 콜린스 등 ‘쿨 걸’들이 가장 사랑하는 브랜드의 쇼를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채 가시기도 전인 이달 초. <올인(ALL-IN)> 매거진의 ‘공동 편집장’이자 어거스트 배런을 함께 이끄는 브로르 어거스트 베스트보(Bror August Vestbø)와 벤자민 배런(Benjamin Barron)이 서울을 찾았다. 2026 봄/여름 컬렉션의 백스테이지 사진이 담긴 포토 북 <진짜 주부들(Real Housewives)>의 론칭 이벤트를 위해서다. 따듯한 바람이 불어오는 봄날, <보그>가 어거스트 배런의 듀오를 만나 ‘이도 저도 아닌’ 옷이 흥미로운 이유, 대중문화 그리고 취향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자신들이 만든 옷을 입고 '보그' 카메라 앞에 선 브로르 어거스트 베스트보와 벤자민 배런.

한국은 처음이죠?

벤자민 배런(BB) 출장으로는 처음이지만, 2년 전 여름 도쿄와 서울에서 휴가를 보낸 적이 있어요. 서울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매력적이네요.

오늘 오전에는 무얼 했나요?

브로르 어거스트 베스트보(BAV) 홍대 근처에서 화장품 쇼핑을 했어요. 어젯밤에는 볼링을 치고, 치킨과 소주도 먹었습니다.

지난 3월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포토 북 <진짜 주부들>의 론칭 파티를 주최했고, 얼마 전에는 도쿄에서 같은 이벤트를 선보였어요. 다음 도시로 서울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BB 한국에 어거스트 배런을 좋아하는 팬이 많다고 들었거든요.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첫 만남인 만큼 공간 연출에도 신경 썼고요.

BAV 파리에서 첫 팝업을 오픈했을 때가 떠올라요.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가 어거스트 배런의 옷을 입어보는 광경이 너무 뿌듯하고 기뻤죠. 그 감정을 다시 느끼고 싶어 서울을 선택했습니다.

포토 북 '진짜 주부들'의 론칭 행사 현장.

포토 북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나요?

BB 첫 포토 북은 <업타운 걸(Uptown Girl)>이었어요. 2025 봄/여름 컬렉션 ‘업타운 걸’을 준비하는데, 친한 포토그래퍼인 라이아 보나스트레(Laia Bonastre)가 쇼 날 백스테이지 사진을 찍어도 될지 물어보더군요. 그녀의 취향이 훌륭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예스’라고 답했죠. 결국 라이아에 더해 렝구아(Lengua)와 크리스티나 스톨(Cristina Stolhe)까지, 총 세 명이 백스테이지 사진을 촬영했어요. 원래 온라인으로 공개할 생각이었는데, 막상 결과물을 보니 ‘이건 꼭 책으로 내야겠다’ 싶더군요. 여전히 <올인> 매거진을 발행하고 있으니 어려울 것도 없었고요. 2026 봄/여름 ‘진짜 주부들’ 컬렉션은 처음부터 포토 북을 염두에 두고 준비했죠. 렝구아와 라이아, 그리고 샤르나 오스본(Sharna Osborne)이 함께했습니다.

‘패션쇼를 책이라는 형태로 다시 보여줘야겠다’라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BAV 세 포토그래퍼 모두 한 장소에서 같은 옷을 봤지만, 결과물은 완전히 달랐거든요. 렝구아의 사진은 가족 앨범처럼 느껴지고, 샤르나의 사진은 클럽에서 촬영한 듯한 ‘날것’의 분위기를 풍겼죠. 일종의 옴니버스 영화인 셈입니다.

포토 북 '진짜 주부들'. 브로르 어거스트와 벤자민은 행사 내내 현장에 머무르며 어거스트 배런의 옷을 사랑하는 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2026 봄/여름 쇼를 직접 본 날이 아직도 기억나요. 시작 시간은 밤 10시에, 장소도 도심과 꽤 멀리 떨어져 있었잖아요. 툴툴거리며 자리에 앉아 있는데, 첫 번째 모델을 보자마자 자세를 고쳐 앉았죠. 건방진 걸음걸이로 걷는 모델들, 잔뜩 뒤틀리고 재구성된 룩들 그리고 펑키한 음악까지! 그 시즌 최고의 쇼 중 하나였어요.

‘발칙한’ 모습의 주부들이 등장한 어거스트 배런의 2026 봄/여름 컬렉션.

누군가가 옷을 들어 올리는 순간을 포착한 듯한 니트가 인상적이다.

BB: 2년 전 도쿄에서 본 빈티지 잡지에서 영감을 얻었죠. 1950년대쯤 출시된 본디지(Bondage, 상대방의 신체를 구속하며 성적 쾌감을 얻는 페티시의 일종) 관련 잡지들이었는데, 몸이 구속된 채 반쯤 헐벗은 주부들의 사진으로 가득했죠. 사진 속 인물들의 옷차림에서 특히 많은 영감을 받았어요. 누군가가 옷을 벗기는 와중 촬영한 듯한 긴장감에 매료됐죠.

BAV: ‘옷을 벗으려는 순간을 포착해보면 어떨까?’라고 고민했죠. 언제나 완벽해야 하는 주부가 금기시되는 페티시를 탐닉하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어요. 그 극명한 대비가 주는 이질감을 쇼에서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메인 스테이지를 1950년대 가정집 거실처럼 꾸민 뒤, 모델들에게는 ‘나이트클럽에 온 것처럼 걸어라’라는 디렉션을 줬죠.

둘은 10년이 넘은 커플입니다. 브로르 어거스트와 벤자민 중 주부는 누구인가요?

BB: 어거스트요(웃음).

BAV: 맞아요. 벤자민은 고장난 물건을 고치고 저는 요리, 청소, 빨래를 맡죠!

어거스트 배런의 컬렉션 안에는 늘 어떤 캐릭터가 존재하죠. 1950년대 주부나 부유층인 ‘업타운 걸’처럼 확실한 특징이 있는 캐릭터를 과장하거나 비틀잖아요. 특정 사회적 집단에 대한 관심은 어디서 비롯했나요?

정숙한 듯 어딘가 뒤틀려 있는 옷으로 가득한 어거스트 배런의 '진짜 주부들' 컬렉션.

BAV: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느끼는 편이에요. 주부나 업타운 걸, 팝 스타처럼 내가 아닌 다른 캐릭터를 평생 연기해야 하는 사람들이요.

BB: 저희 둘 다 대중문화를 좋아해요. 대중에게 익숙한 캐릭터를 가져다놓은 뒤, 모두가 그 캐릭터에게 거는 기대를 완전히 배신해버리는 순간이 가장 재밌어요.

사실 ‘니치한 취향’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 대부분이 대중문화를 폄하하잖아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마돈나를 뮤즈로 꼽으며 대중문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걸 보며 흥미를 느꼈어요. 어거스트 배런은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흐릿하게 만드는 브랜드라고 여기기 때문에 더더욱요.

BAV: 어려운 질문이네요. 아름다움이라는 개념은 확실히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좋은 취향’ 혹은 ‘나쁜 취향’으로 명확하게 분류할 수 있는 디자인은 재미없다고 여겨요. 정확히 경계 위에 놓인, 그러니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상태’의 옷이 가장 흥미롭죠. 결국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은 옳음과 그름의 경계에 놓인 것들이잖아요!

BB: 디자인할 때는 ‘취향’이라는 단어를 의식하지 않아요. 입 밖으로 내뱉지도 않고요. 대신 한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았는지 끊임없이 의심합니다. 저희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를 원하니까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현이 딱 맞는 듯하네요. 어거스트 배런의 디자인을 보며 ‘이 디자이너를 레퍼런스 삼았구나’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거든요. 어릴 때는 어떤 디자이너를 좋아했나요?

BB: 안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없는 수준이에요. 그래도 마크 제이콥스가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마크 제이콥스 역시 대중문화를 가지고 놀 줄 아는 디자이너였죠.

BAV: 맞아요. 오래 활동한 디자이너들은 대부분 고유의 미학이나 실루엣을 개발하잖아요. 그런데 마크 제이콥스는 그런 게 없어요. 좋은 의미로 ‘중구난방’이죠. 언제나 급진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던 그가 대중의 사랑을 받는 점도 재밌는 아이러니고요.

BB: 시대마다 완전히 다른 디자인을 선보이는데도 이상하게 ‘마크 제이콥스가 만든 옷’임을 알 수 있잖아요. 위대한 팝 스타들이 앨범을 낼 때마다 새로운 무언가를 들고 오는 것처럼요.

어거스트 배런의 옷을 딱 한 명의 팝 스타에게만 입힐 수 있다면?

BB: 당연히 마돈나죠(웃음). 팝 스타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에이미 와인하우스도요. 셰어와 돌리 파튼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해체와 재구성을 거쳐 탄생한, 완전히 새로운 디자인의 '캐리(Carrie)' 백.

매거진으로 시작해 브랜드로 확장했고, 지금도 매거진을 발행하고 있어요. 에디팅과 디자인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BB: 매거진은 가장 먼저 이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부터 시작하죠. 저희가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나머지를 맡긴 뒤, 그들이 가져온 작업물을 조금씩 편집해 나가요. 어떤 면에서는 스타일리스트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요? 반대로 디자인은 모든 결정이 저희 둘의 몫입니다.

작년 여름 <보그 코리아>와 서면 인터뷰를 했습니다. 자신들을 ‘호더(Hoarder)’라고 표현하더군요. 어떤 것들을 수집하나요?

BB: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중구난방 그 자체예요. 직관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동시에 ‘이걸 어떻게 변형해볼 수 있겠다’ 싶은 물건들에 끌리는 편입니다.

BAV: 며칠 전에는 일본의 한 골동품 장난감 가게에도 다녀왔어요. 저희는 옷뿐 아니라 포장이 독특한 빈티지 속옷, 무드 링, 인형 옷 등 정말 다양한 물건을 수집하거든요.

어거스트 배런의 디자인을 “망상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옷”이라고 설명한 적이 있죠. 아직도 유효한가요?

BAV: LVMH 프라이즈를 준비하며 주최 측에서 질문 몇 개를 했는데 그중 하나가 ‘브랜드의 고객은 어떤 사람들인가?’였어요. 반 농담처럼 ‘망상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망상으로 가득 찬 옷’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지금도 맞는 설명 같아요(웃음).

2026 봄/여름 쇼 이후 영국 <보그>와 진행한 인터뷰를 기억하나요? 그 글이 저희 1월호에도 실렸어요. 번역을 직접 했는데, 제목을 지으려고 하니 밴드 페이브먼트(Pavement)의 앨범 <Slanted and Enchanted>가 떠올랐습니다. ‘삐뚤어지고 매혹된’이라는 타이틀이 어거스트 배런과 잘 어울린다고 여겨 제목을 그대로 지었죠. 괜찮은 제목인가요?

BB & BAV: 딱 적절한 표현이네요!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그 앨범을 들어야겠어요.

칼라가 삐뚤어진 니트, 매혹적인 브로치 장식 벨트, 어거스트 배런!
안건호

안건호

웹 에디터

2022년 10월부터 <보그> 웹 에디터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패션 그리고 패션과 관련 있는 모든 것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글을 작성합니다. 주말에는 하릴없이 앉아 음악을 찾아 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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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기원영
사진
GoRun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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