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영이 만든 사랑과 슬픔의 미로
누군가를 위해 봉헌하는 삶을 생각해본 적 있나. 윤지영 작가는 연작을 통해 우리를 위로하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윤지영은 2024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보로 노미네이트되며 이름을 알렸다. 최근에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출신 작가 17팀과 함께하는 전시 <사랑의 기원(Amor ex Machina)>(9월 6일까지)에 참여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두 개의 키워드는 작품 제목이기도 한 ‘봉헌물(엑스-보토(Ex-voto))’과 ‘호로피다오’다. 그녀는 ‘엑스-보토’ 연작을 통해 고대부터 소원을 빌며 무언가를 바치던 봉헌에 몰두해왔다. 예를 들어 왁스로 만든 신체 조각은 아픈 부위가 바뀔 때마다 다시 만들어 쾌유를 비는 형식이다. 처음 주석을 사용한 것은 전통 조각 방식에서 유래했고, 이제 자신만의 ‘엑스-보토’ 연작을 만들고 있다. ‘호로피다오’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으며, 걷는 것과 뛰는 것 사이의 즐거운 움직임을 뜻한다. 윤지영은 호로피다오를 영상과 여러 조각으로 만들었으며, 이렇게 뛰다 보면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는 바람을 비친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 두 키워드를 담은 작품을 모두 전시하고 있으니 직접 감상해보는 것도 좋다.

인상부터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조각가에게 운동과 식단 관리는 필수다. 사다리와 같이 높은 곳에 올라갈 일이 많기 때문에 작품에 매진할 때는 특히 운동을 열심히 한다. 탄수화물과 초가공식품 섭취를 줄이는 다이어트도 한다. 몸무게가 갑자기 늘면 의자나 사다리에서 떨어질 수 있기에 관리가 필요하다. 아직까지 다친 적은 없지만 주의해야 한다. 작업실에서는 주로 리바이스 데님을 입는다. 데님이 가장 편하다. 모자도 필수다.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설계한 논란의 건축 판스워스 하우스(Farnsworth House)가 그려진 모자를 즐겨 쓴다.

“2025년 이후 ‘엑스-보토’ 연작은 나를 위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유가 궁금하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 ‘엑스-보토’와 2025년에 시작된 새로운 시리즈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으로 이해하겠다. 2025년 어머니의 작고 이후 작업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바뀌고 있다. “어머니가 4월 7일 월요일에 돌아가셨다”로 시작하는 아니 에르노의 <한 여자>를 다시 읽었다. 그녀처럼 글을 잘 쓸 수는 없겠지만, 어머니를 추모하는 방식이나 글 속의 ‘거리감’만큼은 나와 닮았다.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성격의 어머니와 딸인데도 에르노가 가졌던 죄책감과 내가 가진 그것은 꽤 비슷하다. 여성에게 부과된 사회규범과 돌봄의 무게가 개인의 내면에서 어떻게 부채감으로 치환되는지 목격하는 일 또한 그렇다.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 출품한 작품 중 귀 형상의 신작이 그런 의미를 담고 있을까? 하나는 외국에, 하나는 한국에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한동안 내 작업을 설명하는 글은 “윤지영은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환경으로서 개인에게 주어질 때 더 ‘잘’ 살기 위해 혹은 더 ‘나아지기’ 위해 개인이 취하는 태도를 드러내는 것에 관심이 있다”로 시작했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적용하지 못했다. 지난해부터는 어떻게 다시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유지해온 개인의 감정과 작업 간의 거리감을 뒤로하고, 치유를 위해 시각언어를 사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망설임이 공존하지만, 이제는 그 질문을 자신에게 적용해 작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시작된 것이 2025년 제작한 ‘엑스-보토 길트(Ex-voto: Guilt)’와 ‘엑스-보토 투 이어스(Ex-voto: Two Ears)’다. 그중 귀 형상의 작품은 당신이 나고 자란 나라를 한 번도 떠나보지 못한 어머니에게 바치는 작업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에서 여성 관람객의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그들이 당신의 전시에 특히 매료된 이유는 뭘까?
이메일을 많이 받았다. 감사하다. 그 전시에는 친절한 작품 설명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이주연 학예사가 써준 글도 도움이 됐다. 작품이 친근하게 느껴졌기에, 본인의 경험을 나와 공유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스스로를 몰드 메이커이며, 몰드 메이킹을 할 때는 J 성향이라고 말했다. 몰드 메이커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보통 조각 작업을 한다고 하면 재료를 뭘 쓰느냐고 많이 물어봐서 몰드 메이커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실제로 몰드 메이킹, 캐스팅 기법을 활용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드러낼 때가 많다. 어떤 형태를 복제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여러 과정을 삶에서 일어나는 일과 비교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고 하면 전달될까. 이를 ‘조각적 우화’라고 하기도 한다.
‘엑스-보토’ 연작을 통해 ‘누군가의 안녕을 비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 인상 깊었다. 이는 아마도 인류가 조각을 만든 이유였을 것 같다. 작품 활동에서 꾸준히 선보여온 중심 테마가 이것이라고 여겨도 될까?
인류가 조각을 만든 이유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체 형상을 본떠 만든 계기 중에 무언가를 기원하거나 안녕을 비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인간 신체의 형상에는 어떤 바람이나 기원을 현실화하는 힘이 깃든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 한국 민담에도 깎은 손톱을 먹고 그 사람이 되는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하지만 내 작품 주제는 내적 요인이 외적 형태를 결정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고, 서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지를 궁금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에서 선보인 ‘엑스-보토: 겨우 얼굴 하나’의 왁스 실린더에 새겨진 소릿골(Sound Groove, 왁스로 만든 실린더 축음기 음반의 표면에 바늘로 소리의 진동을 새겨 넣은 홈) 조각은 최종 형태인 얼굴 모양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소리 녹음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을, 최종 형태인 얼굴 조각에서 어떻게 볼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내가 관심 있는 주제다.
작품을 설명할 때, 영상 ‘호로피다오’(2024)를 보라고 권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 내가 가진 태도를 그 영상에서 많이 드러냈다. 내 조각을 여러 번 본 이들에게 그 부분이 와닿았을 것 같고, 내 작품이 생소한 이들은 그 영상을 하나의 이야기로 봤을 듯하다.
영상 ‘호로피다오’에서 “I miss you”라고 여러 번 말하며, “항상 그 자리에 있던 것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설명했다. 조각가로서의 다짐일까?
관심사를 드러내는 힌트 중 하나다. 그리움을 이야기할 때 한국어로는 ‘보고 싶다’고 하고, 영어로는 ‘부재(不在: 없음)’를 강조한다. 그것이 내가 몰드 메이킹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과 닮았다.
조각은 무겁고 강한 매체를 다루는 작업이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남성 작가의 영역으로 간주돼왔다.
요즘은 여성 조각가도 많고, 더 이상 조각은 무겁고 강한 매체라는 인식을 벗어난 지도 오래됐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직 그런 편견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심지어 바우하우스 레지던시를 담당하던 매니저이자 미술사를 전공한 사람조차 그런 이야기를 했다. 독일 데사우에 있는 바우하우스 레지던시에서 지낸 적이 있었는데, 당시 그 건물이 ‘마이스터 하우스’ 중 하나여서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유네스코에서 관리하는 건물이기도 해서 도대체 몇 명이 그 건물 열쇠를 갖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정말 벌레가 많았다. 그런 부분을 이야기했더니 “조각가라고 해서 강인한 남자 작가가 올 줄 알았는데…”라고 해서 충격받았다.
조각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작가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조각을 좋아하며, 조각만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너무 힘들고 유지가 쉽지 않다. 늘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에, 내 목표는 최대한 덜 만들고 최대한 버리지 않는 것이다. 판매도 어렵지만, 판매하고 싶지 않은 작품도 있다. 조각이라는 매체가 21세기에 맞는가에 대한 생각도 종종 해본다. 서울은 공간 대여료가 비싸고, 환경문제를 감안하면 더 고민된다. 조각의 역할을 믿지만, 많이 힘들다. 나는 확실히 조각의 문법을 가진 작가다. 생각도 몰드 메이킹 방식으로 하게 됐다. 20년 넘게 조각만 하고 있으니, 조각가가 확실하다. 영상도 오래 만들어왔지만 아직 영상 언어를 구축하지는 못했다. 몰드 메이킹적인 사고는 우리 삶의 주물을 유심히 본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맨홀 뚜껑부터 시작해, 내부와 외부의 역할을 계속 고려한다. 많은 이가 조각의 사면을 다 볼 수 있다고 여기지만, 밑면이나 윗면과 같이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면 못 보는 면은 늘 있다. 이것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조각 문법으로 발전했다.

타투를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타투이스트가 말하길, 문신은 그림이 아니라 피부 안으로 들어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피부색에 따라 컬러가 다르고, 하나로 섞여서 무언가가 되는 것이다. 투명한 실리콘 조각을 염두에 두고, 측면에서 보이는 것을 실험하는 중이다. 사람에게 타투를 할 생각은 없으며, 내 조각 대부분은 피부를 가지고 있다. 내외부에 대해 질문하고 있기에, 피부가 세상과 처음 만나는 경계의 역할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사실 정체성을 결정하는 것은 내부에 있는데, 외부가 정체성을 결정한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런 이야기를 처음 했던 전시가 <옐로우 블루스>였다. 팬데믹 시기 한국에 돌아와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노란색을 그간 작품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1980년대생 여성으로서, 좋아하는 것보다 나를 증명하는 것에 익숙한 현실이 슬펐다. 세금을 쓰면서 전시를 한다 싶으니까, 괜한 책임감으로 노란색을 쓸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인지의 방향이 나에게로 꽂혔을 때, 자의식이 과잉되었을 때의 이야기를 전시로 풀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필명으로 낸 심리소설 <봄에 나는 없었다>를 읽으면서, 자신을 외부에 맞추는 삶에 대해 이야기했던 소중한 전시다. 이런 생각의 기본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젊은 모색 2021>에서 했고, 심화 버전으로 같은 해 <옐로우 블루스>에서 보여주었으며, <올해의 작가상 2024> 전시에도 포함했다.
요즘 집중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앞으로의 전시 계획이 궁금하다.
P21 갤러리에서 작가 17인이 참여하는 <밸런스 인 모션>(5월 14일부터 7월 4일까지)에 신작을 출품했다. 모빌을 떠올리는 이 작품도 ‘엑스-보토’ 시리즈 중 하나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야기를 건네는 작업을 하고 싶기는 하다. 다른 분들의 작업을 보고 좋은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 때, 창작자가 궁금해질 때인 것 같다. 좋은 작품을 보면 이 작가는 평소에 뭐 보나, 뭐 읽나, 뭐 듣나 등등 호기심이 생긴다. 나도 궁금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외에는 새로운 영상 작업을 위해 글을 쓰고, 11월에는 베를린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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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글
- 이소영(미술 전문 저널리스트)
- 사진
- 이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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