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민의 변신과 분신

2026.06.07

이혜민의 변신과 분신

차갑다고 강한 것도 아니고, 부드럽다고 약한 것도 아니다. 이혜민 작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한 소재인 청동으로 조각을 만들기 시작했다.

버려진 천으로 만든 작품 ‘드리밍(Dreaming)’ 앞에 선 이혜민 작가. 그녀를 미술가의 길로 인도한 ‘필로우’ 연작 중 하나다.

조각의 물성이 작가의 심리 상태를 보여줄 수 있을까? 청동과 패브릭 조각으로 알려진 이혜민 작가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그녀가 서울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기에 대체로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여러 전시가 열리곤 한다. 이번 달만 해도 뉴욕 브루클린의 복합 문화 공간 메종 모노(Maison Mono)와 서울 삼청로 학고재 아트센터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다. 학고재 아트센터 전시는 원래 전 층에서 했는데, 전시를 연장하면서 지금은 지하 2층에서만 볼 수 있다. 청담동 유아트스페이스의 그룹전은 5월 말까지, 6월에는 브랜드 콜러(Kohler)와 협업 전시가 열린다.

블랙 드레스가 작품과 잘 어울린다.
이전에는 쇼핑을 많이 즐겼지만 요즘은 작품 활동에만 집중한다. 아침 일찍 작업실에 갔다가 저녁에나 귀가하기에 쇼핑할 시간도 부족하다. 오늘 입은 드레스와 다이아몬드 귀고리는 내가 디자인한 것이다. 드레스는 라 실루엣 드 유제니(La Silhouette de Eugenny)에서 만들었다.

부친이 1세대 유명 성악가 이인영이며, 어릴 때부터 자매들과 현악기를 연주했다. 그럼에도 미술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첼로를 연주했는데, 친구 화실에 놀러 갔더니 백지에 그림을 그리며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작곡가가 만든 곡을 연주하는 것이 재미없었는데, 미술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점에 반해서 부모님 몰래 화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수강료도 제대로 내지 않고 화실에 다녔는데, 감사하게도 선생님이 열심히 그림을 그린다고 칭찬하시면서 나에게 예술 고등학교를 추천하셨다. 그래서 예술 고등학교 서양화과에 지원해서 합격했는데, 부모님은 당연히 내가 첼로로 합격한 줄 아셨다가 많이 놀라셨다. 이기봉 작가가 당시 서울예고 담임선생님이었는데, 그가 이용덕 조각가와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 대학에서는 조각을 전공했다. 이기봉 작가가 조소를 전공했더라면, 그림뿐 아니라 입체 작업도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던 말씀이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

대학원에서 다시 비디오아트와 사진을 공부한 이유가 있을까?
일찍 결혼하고, 시부모님을 얼마 전까지 모셨다. 밤마다 몰래 작품을 만들다가, 대학원에 가도 된다는 시어머니의 허락을 받았다. 네 살 난 아들과 단둘이 뉴욕에 가서, 뉴욕대학교(NYU) 대학원 조소과에 입학했다. 때마침 백남준 작가가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개최할 때였다. 아버지와 백남준은 동경예술대학교에서 교류하던 사이기도 해서 전시장을 찾았는데, 정말 훌륭했다. 이전에는 “북한에서 왔느냐”고 나에게 묻던 뉴욕 사람들이, 그 전시 이후에는 “백남준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자랑스러웠고, NYU가 비디오아트와 사진으로 유명하기에 이를 공부해야겠다 싶었다. 미술관 꼭대기에 내 작품을 매달면 멋질 것 같았고, 그때부터 나의 꿈은 여든 살에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도 충분히 행복하다. 예전에는 시댁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것을 반대해 밤마다 몰래 작업을 하고 작품을 쓰레기봉투에 넣고 살짝 집을 나와서 전시를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전시를 활발하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필로우(Pillow)’ 연작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렸다. 대표작을 소개해주길.
이 연작을 시작한 이유는 ‘베개’는 꿈도 꾸게 하고, 비밀 이야기도 들어주고, 눈물도 닦아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베개를 소재 삼아 조각, 설치, 평면 작품을 만들고 있다. 작품 활동을 제대로 못하던 시절 지하 창고에서 시어머니가 쌓아둔 낡은 이불과 옷을 발견했다. 밤마다 그것을 잘라서 ‘꿈을 꾸는 베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작은 물방울이 단단한 바위를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을 믿는다. 누구라도 매일매일 성실하게 일기 쓰듯 작업을 이어가면, 무슨 꿈이든 이룰 수 있다고 본다.

패브릭, 청동, 레진, 붕대 등 다채로운 재료를 조각에 사용하는 것이 흥미롭다.
2016년부터 청동을 사용하고 있다. 당시 힘든 일이 있어서, 청동 조각을 통해 강해지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다. 나를 지켜줄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각성에서 시작했고, 작가는 이렇듯 작품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을 수밖에 없다. ‘변신(Metamorphosis)’ 시리즈는 브론즈와 같은 단단한 재료로 제작한 조각품의 제목이다. 청동 조각은 특히 인기가 높은데, 에디션 없는 유니크 피스다. 나는 일부러 에디션을 만들지 않고, 한 작품 한 작품 최선을 다한다. 자세히 보면 모든 조각의 크기와 패턴, 컬러가 다르고, 그 점을 미술 애호가들이 인정해준다. 레진을 사용한 이유는 다양한 색깔을 내기 위해서다. 청동은 금색만 낼 수 있는데, 레진은 자유롭게 색을 구사할 수 있다. 재료와 장르가 다른 작품을 전시에서 관람객이 보는 것을 즐긴다. 패브릭 연작을 만들기 위해 요즘도 동대문 한복 가게나 고속터미널에 가서 자투리 천을 모아 작품을 만든다. 버려진 천으로 꿈꾸는 베개를 만든다는 것은 가장 약한 재료로 강한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작은 꿈이 모이면 큰 꿈을 이룰 수 있다.

스스로를 지키고 강해지고 싶어서 청동으로 만들기 시작한 ‘변신’ 시리즈의 조각들. 그녀의 작품은 에디션이 없는 만큼, 작품마다 크기와 패턴이 모두 다르다.

미술가로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는 없었나?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전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열 때 시각장애를 가진 관람객이 와서 작품을 만져봐도 되느냐고 물었다. 패브릭과 청동 조각 모두 만져보라고 말하고 작품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청동 조각이 차가워서 놀라는 모습이었다. 차갑다고 더 강한 것도 아니고, 부드럽다고 더 약한 것도 아니다. 내 청동 조각은 처음 보면 사랑스럽고 부드러워 보인다. 그래서 다들 패브릭 연작처럼 금색 천으로 만든 줄 알았다가, 청동이라고 말해주면 작품을 다시 쳐다보곤 한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후배 작가에게 좋은 기회를 주고 싶어서, 수년간 작업실을 개방해 대안 공간으로 운영했다. 비영리 공간이다 보니 관리가 힘들어서, 내 작품부터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요즘은 문을 닫았다. 대학에서 강의하며, 학생들 전시를 열어주는 일에서도 보람을 느꼈다. 미술가로서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내가 좋은 작가로 인정받아야 더 많은 것을 도울 수 있기에 노력하는 중이다. 돌아보니 작품도 인생도 계획대로 된 것이 없고, 우연과 인연이 만나 내 인생이 만들어진 것 같다. 열심히 작업하고, 선택과 집중을 하다 보면 좋은 기회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 VK

김나랑

김나랑

피처 디렉터

글을 쓰고 인터뷰를 하고 매번 배웁니다. 집에 가면 요가를 수련하고 책을 읽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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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나랑
    이소영(미술 전문 저널리스트)
    사진
    이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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