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고 생각할 때, ‘데이미언 허스트’展
‘아는 만큼 보인다’고들 하지만, ‘아는 것’과 ‘안다고 생각하는 것’의 간극을 크게 체감할 때가 왕왕 있습니다. 오는 6월 28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은데요. 처음 이 소식이 알려졌을 때 “한물간 록 스타가 뒤늦게 내한 공연 오는 것 같다”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많았죠. 솔직히 저 역시 그중 하나였지만, 전시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좀 달라졌습니다. 동시대 가장 논쟁적인 작가라는 그에 대해 내가 과연 제대로 알고 있었나, 아니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은 있었나 싶더군요.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라는 이번 전시 제목은 저와 같은 관객의 편견에 일침을 가하는 동시에 현대미술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 및 철학을 그대로 형언하는데요. 현대미술을 가능케 한 메커니즘과 시스템에 대한 단서 역시 허스트의 유명작 사이사이에 숨어 있어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합니다.

허스트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인간의 감정과 욕망에 주목해 이를 매우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작가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 여태껏 수많은 작가가 다뤄온 주제이기도 하죠. 허스트의 작업이 특별한 건 사회제도와 시스템을 관찰해 반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엄청난 실험을 자기 방식대로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마치 예술이 지닌 전통적 권위의 바닥을, 혹은 예술의 한계와 가능성의 끝을 확인하겠다는 듯 말이죠. 그러나 허스트가 지금처럼 유명 작가가 된 건, 예술의 진실뿐 아니라 이를 통해 인간의 진실까지 집요하게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작업에서 예술과 인간은 절대 다르지 않습니다.

각 전시장을 구성하는 소제목은 허스트의 작품이나 특정 시기를 대변합니다. 이를테면 ‘모든 질문에는 의심이 따른다’ 섹션에서는 기성 미술계의 제도와 고정관념에 대한 도전으로 독자적 예술 세계를 구축한 허스트의 청년 시절 초기작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데님 셔츠를 자화상이라 규정한 작업도 있고, 그림을 그린다는 개인적 예술 행위를 기계에 맡기면서 예술의 독창성과 고유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작업도 있는데요. 이런 작업은 허스트가 지금은 권위 있는 글로벌 아트 페어가 된 ‘프리즈’를 만든 사람 중 한 명이라는 재미있는 일화와 겹쳐 남다르게 다가옵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섹션에는 죽음과 공포, 삶과 죽음의 순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논란을 부른 대표작이 자리합니다. 잘린 소머리와 파리 유충, 살충기로 구성된 ‘천 년’과 포름알데히드 용액에 거대한 상어를 담근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은 미술사 책에서 언급할 만한 유명작이죠. 극도의 호기심과 불편함을 동시에 자극하는 작품들이라, 보기 힘들어하는 관객도 있더군요. 게다가 후자의 경우 ‘금방이라도 관객을 덮칠 듯 생생한 모습으로 보존된’이라는 설명 글에 동의할 수 없었는데요. 그럼에도 현대미술이 공포와 혐오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노련하게 운용되면서 더 공고한 권위를 얻게 되었다는 확신이 들더군요.


한편 ‘침묵의 사치’ 섹션에서는 종교와 과학, 예술의 삼위일체가 어떻게 인간의 욕망을 생산하고 초월해서 영원성을 누리고 있는지를 펼쳐냅니다. ‘알약 캐비닛’과 ‘약장’ 연작은 절대적 믿음으로 구성된 신성한 제단이나 다름없습니다. 또 8,601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해골 작업 ‘신의 사랑을 위하여’, 그 뒤로 보이는, 실제 나비 날개를 사용해 중세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재현한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는 이토록 아름답거나 화려하거나 숭고해 보이는 작품들이 실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는 걸 증명하는데요. 허스트가 인간의 욕망에 집중하는 만큼 이를 자극하는 데 얼마나 능한 작가인지 체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신의 사랑을 위하여’ 앞은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해골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관객들로 시종일관 붐볐습니다. 그래서 저는 구석에 놓인 삼면화 형식의 회화 작품 ‘인간은 끝내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이니’ 쪽으로 몸을 옮길 수밖에 없었죠. 다른 유명작들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한 이 작품이 저에게는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어둑한 전시장 구석에 놓인 이 작업이, 깜짝 놀라거나 황홀해하거나 얼굴을 찌푸리는 관객들의 면면을 지켜보기 위해 작가가 파견한 목격자 같았거든요. 이와 비슷하게 이번 전시는 허스트의 작업 세계를 일괄하기보다 현대미술 자체를 향한 그의 사유와 실험, 제스처와 뉘앙스를 지켜본 듯한 느낌을 줍니다. 어떤 전시든 직접 보지 않고는 섣불리 평가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호평을 받든 혹평을 받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것. 그것이 바로 허스트라는 예술가가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최고의 사치일 겁니다.

‘신의 무한한 권능과 영광을 묵상하며’, 2008, 금박을 입힌 캔버스에 나비와 가정용 유광 페인트, 삼면화, 좌/우: 280.3×183cm, 중앙: 294.3×244cm.

‘신의 사랑을 위하여’, 2007, 백금, 다이아몬드, 인간의 치아, 17.1×12.7×1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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