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다 스윈튼, 우리 모두의 배우
경계를 허무는 가장 예술적인 얼굴. 그녀를 향한 인사. 안녕, 틸다!












단단하게 채운 매일과 유연한 내면을 품은 채, 세상으로 시선을 돌린 보편의 여성 틸다 스윈튼.
지난해에는 영화 촬영 대신 커리어를 회고하는 전시 <온고잉(Ongoing)>을 준비하고 글을 쓰며 한 해를 보냈죠. 배우로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는 시간은 어땠나요?
대화를 나누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시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계획하고 기다려온 삶의 전환점이죠. 오랫동안 남들이 제게 주는 도전과 기회를 받아들이는 데 집중하며 살아온 시기를 지나, 마침내 맞이한 자주적이고 자기 결정적인 시간이랄까요. 그간 해온 일이 아무리 긴밀하고 합이 잘 맞는 협업이었다고 해도 말이에요. <온고잉>을 준비하면서 지난 40년간의 배우 일과 인생을 돌아볼 수 있었어요. 얼마나 축복받은 삶을 살아왔는지를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또 앞으로 남은 40년을 어떻게 살아갈지 방향을 잡는 시간이기도 했죠. 지금은 고향 스코틀랜드에 머물기에 공항에서 이동하며 보내는 시간이 전보다 줄고, 밤이면 제 침실에서 잠들고 아침이면 개들과 해변에서 시간을 보내는 날이 더 많아요. 누구와 시간을 보낼지 제가 선택할 수 있고, 원하면 침묵을 지킬 수도, 모든 것을 직접 듣고 경험할 수도 있으며, 제 속도대로 하루를 움직일 수 있는 나날이죠. 이런 지금이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는 확신이 점점 분명해져요. 그렇기에 매 순간을 소중히 만끽하고 있죠.
최근 한국에서는 당신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올란도>(1992)가 재개봉했어요. 400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를 헤아리게 하는 영화예요.
많은 이유로 저에게는 각별한 작품이에요. 이유를 하나하나 꼽을 수 있을 정도죠. 먼저 작품은 제가 열다섯 살 무렵 베개 밑에 넣어두고 밤마다 읽던 버지니아 울프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에요. 삶의 깨달음과 길잡이를 상징하는, 제가 정말 좋아했던 책이죠. 저 역시 당신처럼 버지니아 울프의 책을 깊은 울림이 있는 철학적 걸작이라 여겨왔어요. 개인적으로 5년에 한 번씩 꼭 다시 읽는 책이죠. 인생의 어느 단계에 있든, 읽을 때마다 삶을 반추하게 하는 마법의 거울 같은 작품이에요.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대부분 그렇듯, 살아가는 것, 삶의 장애물을 인식한다는 것,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 선택한다는 것, 한 인간으로서 자유로워진다는 것의 의미를 높은 창에서 내려다보듯 직시하게 해줘요. 영화 자체로는 감독 샐리 포터(Sally Potter)가 이 작품을 만드는 여정으로 저를 초대해줌으로써 난생처음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지는 5년의 과정을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었죠. 함께 각본을 만들고, 투자처를 확보하고, 세계 각지의 촬영 장소를 물색하고,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을 배우들과 제작진을 갖춰나가는 전 과정에 걸쳐서요. 이 귀중한 경험은 이후 제 일의 실질적인 토대가 되었어요. 마지막으로는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온 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젊은 세대에게 계속 울림을 주고 있다는, 영예로운 훈장이 엄청난 자부심과 보람이에요. 작품은 해가 갈수록 더 새롭게 읽히며, 더 절실하고 더 강렬해지죠. 올해 한국에서 더 많은 관객이 이 영화를 보고 마음이 움직였으리라 생각하니 감격스럽기 그지없군요.
올란도는 400년이 넘는 시간을 살면서 다양한 인생과 혼란을 경험하고 마침내 온전한 사람으로 거듭나죠. 틸다, 당신 스스로 온전하다 느끼고, 또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무엇인가요?
최근 “야망이 제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순간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10대 때부터 품어온 꿈이 떠오르더군요. 스코틀랜드 바닷가 근처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동물을 키우고 텃밭을 가꾸며,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것. 사실 저는 30년 전에 이미 그 각각의 요소를 모두 갖췄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후 줄곧 이 레시피가 저를 지탱해주고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요. 계속해서 저를 성장하게 하고 붙들며 나아가게 한 거죠. 유대감, 예술, 자연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제 삶의 세 가지 요소예요. 그리고 이 세상 모든 것을 소생시키는 봄기운도요.
그렇다면 요즘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미 다 답한 것 같아요.(웃음) 가족, 친구들, 정원, 동물들, 세상 각지에 있는 좋은 사람들에 대한 믿음, 미래에 대한 희망, 그리고 예술이죠.
앞서 5년마다 <올란도>를 다시 읽는다고 했죠. 새로운 관점이 필요할 때 다시 찾는 책이나 영화가 있을까요?
무척 많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꺼내 볼 수 있는 작품 리스트를 갖추고 있어요. 오즈 야스지로(Ozu Yasujiro), 미야자키 하야오, 알프레드 히치콕, 할 애슈비(Hal Ashby), 에른스트 루비치(Ernst Lubitsch)의 작품은 볼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주죠. 그중에서도 마이클 파월(Michael Powell)과 에머릭 프레스버거(Emeric Pressburger)의 <내가 가는 곳은 어디인가(I Know Where I’m Going!)>는 아마 제가 눈을 감는 순간까지 보고 싶은 영화일 것 같아요. 영국과 헝가리 사람이 만든 최고의 스코틀랜드 영화라고 보거든요. 제가 지구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라 말하는 섬에 관한 영화기도 하고요.
개인적인 질문을 덧붙여도 될까요? 전 요즘 ‘평범한 삶이 무엇일까?’를 종종 생각해요. 전 세계 사람들이 알아보는 당신에게 묻기는 겸연쩍지만, 어떤 삶이 평범한 삶일까요?
정말 좋은 질문이에요. 평범한 삶이란, 일정한 루틴과 의식을 통해 안정되고 잔잔한, 한결같이 조화롭고 건강한 삶을 가꿔나가는 것이 아닐까요. 사람들은 누구든 어느 정도는 원치 않는 마찰과 성가신 일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어요. 그 부분에 대해 더 할 말은 없지만, 인생에 비바람이 몰아칠 때 크게 휩쓸리지 않도록 늘 무릎을 살짝 굽힌 채 준비하는 게 좋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어요. 적당한 어려움은 느끼되 거기에 압도되거나 타인의 목적을 위해 자신을 뒤틀지 않도록 정직하고 제대로 된 삶의 토대를 갖추는 게 먼저일지 모르겠어요. 그래야 좋은 기회나 기쁨, 급박한 상황이나 변화와 성장이 불쑥 찾아왔을 때 그것을 맞이할 자원을 갖게 되는 게 아닐까 짐작해봐요. 여기에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데 꼭 필요한 유머 감각을 유지할 에너지도요.
이번 화보 촬영에서 샤넬 2026 공방 컬렉션 의상을 착용했습니다. 뉴욕 지하철에서 영감을 받아 전 세계 보통의 여성과 그들의 삶을 우아하게 풀어낸 컬렉션이죠.
뉴욕 지하철에서 선보인 컬렉션 쇼를 처음 봤을 때, 인간 군상의 소용돌이를 보는 것 같았어요. 저마다의 전혀 다른 삶을 아우라나 보아 털처럼 두르고 나타난 여성들이 지하철에서 쏟아져 나오거나 벤치에 기대앉아, 혹은 플랫폼을 서성이거나 서로를 스쳐 지나가는 모습에 숨이 멎을 것 같았죠. 자신만의 상상력으로 새롭게 해석해내는 마티유 블라지의 절묘한 솜씨를 또 한 번 엿볼 수 있는 기회기도 했고요. 그는 샤넬 코드를 자연스러운 21세기적 감각으로 풀어내는 데 능한 것 같아요. 이번에는 맨해튼 지하철을 재해석한 거고요. 바로 이런 유연함과 가벼움이 샤넬에서 그가 남기는 시그니처 터치이자, 샤넬의 천재적인 창립자의 모더니즘 정신과도 완벽히 부합하죠.
컬렉션은 가브리엘 샤넬이 1931년 뉴욕에서 생활했던 경험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뉴욕과 파리, 그리고 오늘 촬영이 진행된 런던까지 이번 화보는 많은 도시를 아우른 작업이에요. 평소 여러 도시를 오가며 시간을 보내잖아요. 특히 영감을 주는 도시가 있을까요? 물론 도시보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당신에게 큰 의미가 있을 테지만요.(웃음)
인생의 대부분을 시골에서 살아온 저에게 대도시는 자극적이에요. 지금은 어느 때보다 더 그런 것 같아요. 너무 자극적인 탓에 대도시에서 사흘 이상 머무는 때가 거의 없어요. 맞아요. 제게 친구들은 도시의 심장과도 같아요. 특히 서울과 그곳에 사는 제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애정이 깊어요. 서울을 떠날 때면 늘 다시 돌아올 날을 기다리죠.
몇몇 인터뷰를 통해 “패션은 잘 모르는 분야”라고 말했죠. 그럼에도 당신과 패션은 꽤 가까운 친구처럼 느껴져요. 촬영이 없는 평범한 날은 어떤 옷을 선호하나요?
패션에 대해 잘 모른다고 한 건, 숨 가쁘게 바뀌는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자아와 그것을 끊임없이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는 데 패션의 힘이 크죠. 제가 아주 편안하게, 심지어 즐기며 받아들인다는 걸 인정해요. 저는 유연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 제 ‘스타일’을 정의하기는커녕 묘사하기도 어렵군요.(웃음) 그럼에도 떠올려본다면 편안한 걸 좋아해요. 움직임이 자유롭고 그날 기분을 표현할 수 있는 걸 선호하죠. 집에서는 거의 사계절 내내 부드러운 코듀로이 바지에 가벼운 울 저지, 아니면 킬트에 셔츠를 입고 있어요. 입는 사람에게 이런 자연스러운 편안함을 선사하는 디자인이라면 무엇이든 좋아요. 좋은 소재, 따뜻하고 통기성이 뛰어나며 촉감이 좋은 옷, 그리고 에너지와 빛을 선사하는 보석 같은 색채의 옷을 좋아해요.
올여름 휴가 계획이 있나요?
친구들이 스코틀랜드 하일랜드(Highlands)로 와서 함께 지낼 계획이에요. 두꺼운 울 소재 옷과 비옷, 수영복에 사롱까지 여러 계절의 옷을 챙겨야 할 것 같아요. 킬트와 챙 모자는 필수겠죠. 모래사장과 정원에서 춤도 추고, 친구 제임스가 만든 수천 가지 맛의 아이스크림도 맛볼 거예요. 물론 제가 만든 초대형 피시 파이도 빼놓을 수 없고요.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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