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몸매에도 유행이 있을까?

2022.12.12

by 안건호

    몸매에도 유행이 있을까?

    내 몸매는 과연 유행이 지난 걸까? 여전히 유효할까? 도대체가 몸매에도 유행이 있다는 말인가?

    가브리엘라 허스트 2023 S/S 쇼 피날레. “이 세상조차 내 기쁨, 힘을 뺏아갈 수는 없다”고 외치는 합창단과 함께 여러 인종과 체형의 모델들이 런웨이에 등장했다.

    지난 5월의 멧 갈라, 모두 킴 카다시안의 드레스에 대해 말했다. 그녀가 선택한 마릴린 먼로의 전설적 드레스만큼 화제가 된 건 몰라보게 날씬해진 킴 카다시안의 몸이었다. 킴은 이 드레스를 입기 위해 무려 16파운드(약 7kg)를 감량했고, 그 과정을 리얼리티 프로그램 <카다시안 패밀리>에서 공개하기까지 했다. ‘마른’ 킴 카다시안이라니, 그건 볼륨 있는 몸매가 아름답다 여겨지던 시대의 종말을 선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뭔가가 변하고 있다. 물론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가 특정 셀럽의 다이어트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팬데믹 이전의 몸매를 되찾아야 한다는 강박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플러스 사이즈 라인을 도입하려던 브랜드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마른 체형을 강조하는 Y2K 패션과 로우 라이즈는 그야말로 메가트렌드가 됐다. 사람들은 두꺼운 허벅지와 건강미 넘치는 엉덩이가 아닌, 마릴린 먼로의 드레스에 어울릴 법한 마른 몸매를 다시 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뉴욕 패션 위크가 종료된 후, 많은 플러스 사이즈 전문가들과 인플루언서들은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이 종적을 감춘 이유를 궁금해했다. 매 시즌 패션쇼의 다양성에 관한 리포트를 발간하는 ‘The Fashion Spot’에 따르면, 2016년 봄 이후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캐스팅 비율이 꾸준히 높아졌고, 2020년 봄에는 전체 캐스팅의 약 5%에 달하는 68명의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캐스팅되며 정점에 달했다. 하지만 2023년 봄 시즌은 어떤가? 리포트는 아직 발간 전이지만, 굳이 참고하지 않아도 사이즈의 다양성이 줄었다는 것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특히 파리, 밀라노 같은 유럽 지역의 쇼에서 이런 현상은 더 두드러졌다.

    몸매에도 유행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지만, 내가 느낀 충격은 훨씬 컸다. 이런 유행이 지겹지도 않나? 꼭 좇아야만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유행은 충분히 차고 넘친다. 플러스 사이즈 체형을 가진 나는 최근 10년간 단 한 번도 몸매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이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변화가 지속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이다. 영원히 ‘표준 체형’의 백인만을 위한 브랜드로 남을 것 같았던 애버크롬비조차 플러스 사이즈 라인을 전개하고, 의학적 맥락에서 환자의 체중을 중요하지 않은 요소로 보는 ‘Health at Every Size’와 같은 움직임이 주목받는 것은 물론 리조, 에이디 브라이언트와 제니퍼 쿨리지 같은 플러스 사이즈 셀럽들이 패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이런 긍정적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더 시대를 역행하는 듯한 최근의 흐름은 충격적이다. 패션계에 이 역행은 어떤 의미일까? 외모와 관련된 고정관념에서 해방되기 위해 싸우고, 당연한 권리를 위해 투쟁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마른 몸을 찬양하는 사회적 풍조 속에서 살아갈 어린 세대는 또 어떻게 해야 할까?

    <The Power of Plus>의 저자 지안루카 루소(Gianluca Russo)는 신체 다양성의 후퇴는 불가피하다는 주장과 함께 1990년대에 짧은 전성기를 누리고 쇠퇴기를 걸었던 ‘플러스 사이즈 패션’을 예로 들었다. 1990년대는 최초의 플러스 사이즈 슈퍼모델 중 한 명인 엠마(Emme)가 데뷔했고, 플러스 사이즈 브랜드 애슐리 스튜어트(Ashley Stewart)와 토리드(Torrid)가 탄생한 시기였다. 그뿐 아니라 큰 체격의 코미디언 로지 오도넬(Rosie O’Donnell)의 토크쇼가 큰 인기를 끌었으며, 퀸 라티파(Queen Latifa)는 배우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Y2K의 시대가 오자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과체중인 사람들을 놀림거리로 삼는 ‘팻 셰이밍(Fat Shaming)’이 당연시되던 그때를 떠올려보자. 아메리카 페레라는 늘 뚱뚱하고 못생긴 배역만 맡아야 했고, 각종 타블로이드지는 셀럽들의 몸매를 공개적으로 품평했다. 이런 흐름 속에 2000년부터 2009년 사이 섭식 장애를 가진 이들이 늘어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루소는 요즘 패션계는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그 시기가 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할리우드부터 뉴욕 패션 위크의 런웨이까지, 모두가 다시 마른 몸을 원하고 있습니다. 다이어트를 하는 셀럽들이나 패션모델들만 봐도 알 수 있죠. 젊은 세대가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이런 유행을 무의식중에 받아들일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습니다. 우리 세대에도 그랬듯, 신체에 관한 고정관념은 아무도 모르게 형성되곤 하죠.”

    문화 평론가 겸 유튜버로 활동하는 킴벌리 니콜 포스터(Kimberly Nicole Foster)는 이런 흐름이 ‘복합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과거에 느낀 압박감을 다시 보고, 듣고, 느끼고 있습니다. 더 적게 먹어야 하고, 날씬해져야만 하며, 엉덩이가 너무 크진 않을까, 허벅지가 너무 두꺼운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하는 익숙한 압박감 말이죠. 플러스 사이즈 흑인 모델들은 본인의 몸매가 ‘유행’하는 시기에만 캐스팅된다는 것이 큰 상처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킴 같은 유명인은 수술을 받거나 식단 관리, 트레이너 고용을 통해 비교적 쉽고 건강하게 살을 빼거나 찌울 수 있지만, ‘몸매 트렌드’에 민감한 모든 사람이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아름다운 몸’의 기준을 따라가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신이 꿈꿔온 몸매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원하던 몸매를 마침내 얻었을 때 트렌드가 바뀌어 있다면, 그녀는 엄청난 충격을 받겠죠.”

    브랜드 로프트(Loft)는 지난해 인스타그램을 통해 더 이상 18 사이즈 이상의 의류는 제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캐나다의 플러스 사이즈 브랜드 어디션 엘르(Addition Elle)는 2020년 폐업 절차를 밟아야 했고 브랜드 보디이퀄리티(Bodequality) 역시 사업 규모를 축소하기로 결정하는 데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플러스 사이즈 체형 컨설턴트이자 브랜드 전략가 니콜렛 메이슨(Nicolette Mason)은 점점 더 많은 대형 브랜드가 플러스 사이즈에 관한 투자를 줄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플러스 사이즈 의류 제작은 비용이 매우 많이 드는 작업입니다. 신규 고객층 확보 역시 마찬가지죠. 브랜드에서 그 비용을 감당하고 싶어 할까요? 기업이란 수익에 집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많은 브랜드가 고객층을 확장하고 그들을 위한 제품을 개발하는 것보다 이미 수익성이 보장되는 기존 소비층에 자원을 더 투자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옳은 방식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플러스 사이즈 모델들이 런웨이를 지배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더 많은 브랜드에서 다양한 플러스 사이즈 제품을 만나볼 수 있는 날이 다시 찾아올까? 그러기 위해 루소는 플러스 사이즈 커뮤니티의 도움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우리 스스로 더 큰 짐을 져야 한다는 것이 힘겹긴 하지만, 변화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바뀌기를 기다려선 안 됩니다.” 포스터 역시 자신의 몸매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람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조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커뮤니티에서 정서적 안정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역행의 흐름에 저항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목표 아래 다 함께 뭉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다양한 사이즈를 제작하는 브랜드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비교적 마른 몸매를 가진 사람들을 포함해 모두) 그런 브랜드의 제품을 의식적으로 소비하는 것은 물론 주변 지인들 혹은 소셜 미디어에서 정보를 공유하거나 브랜드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것 역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런 행동이 모여 소규모 브랜드의 성장 및 확장, 성공적 투자 유치 같은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역행에도 희망은 분명 존재한다. S.S. 달리(S.S. Daley) 쇼에서 워킹을 이어간 플러스 사이즈 모델 제임스 코빈(James Corbin), 일반적인 모델부터 26/28 사이즈에 이르는 다양한 모델을 캐스팅한 뉴욕의 베리즈(Berriez)는 물론 플러스 사이즈 여성을 위한 옷을 꾸준히 제작하는 가니(Ganni), 마라 호프만(Mara Hoffman), 레이(Wray) 같은 브랜드와 우리가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나. “몸매에는 유행이 있을 수 없다.” (VK)

    에디터
    안건호
    MARIELLE ELIZABETH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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