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샌프란시스코식 ‘진정한’ 파티, 제로

2022.12.14

by 김나랑

    샌프란시스코식 ‘진정한’ 파티, 제로

    지속 가능성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그곳에선 먹고 마시고 즐기는 모두가 탄소 제로를 지향한다. 진정한 파티는 자연과 함께 가능하다.

    “제로 파티(Zero Party)!”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SFO) 관계자는 자신들의 목표를 그렇게 표현했다. SFO는 공항 최초로 LEED(친환경 건축물 인증 제도)를 통해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3년 전 이미 플라스틱 물병을 퇴출했다. 이곳에서 텀블러는 필수다. 만약 잊었다면 텀블러로도 사용할 수 있는 다회용 알루미늄 물병을 구입할 수 있지만, 또 하나의 텀블러, 에코백을 늘리는 실수는 하지 않길 바란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입국 수속을 마친 뒤 공항에 3시간 더 머물렀다. 관계자가 “여기서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멋진 경험일 거예요”라고 말했기에 퇴비가 될 섬유질 용기에 담긴 샐러드를 먹고, 공항 내에 자리한 박물관을 구경했고, 세계 최초로 성 소수자의 이름을 딴 하비 밀크 터미널 1을 둘러봤다. 숀 펜 주연의 <밀크>로도 영화화된 인물 하비 밀크는 성 소수자임을 밝히고 최초로 공직에 선출된 인권 운동가이자 정치인이다. 여기는 샌프란시스코!

    많은 시간을 SFO 지속 가능 파트 담당자의 열정적인 프레젠테이션에 할애했다. 수트가 아닌 빈티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정말 열정적이었다. “건강검진을 받듯이 건강한 공항을 위해 조사하고 대책도 세워요. 비만이라면 다이어트를 해야 하듯이 건물도 최대한 적은 에너지를 소비해야 합니다. 화석연료를 전기로 대체하고 태양광발전을 설치하고, 남는 에너지는 주변 지역에 공급하도록 정비 중이에요. 이미 샌프란시스코는 2040년까지 탄소 배출량 0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한 상태죠. 또한 화석연료가 아닌 버려진 나무 등에서 얻은 지속 가능한 항공연료(Sustainable Aviation Fuel, SAF)를 사용하는 비행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미 세계는 SAF를 혼합한 연료로 약 5,500km 비행에 성공했으니, 에코 비행이 머지않아 보인다.

    처음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 2008년이나 지금이나 내게 그곳은 ‘조용하지만 가장 빠른 도시’였다. 인권, 성 소수자, 서브컬처뿐 아니라 환경에서도. 당시 건축가 렌초 피아노(Renzo Piano)가 설계해 재개관한 캘리포니아 과학 아카데미(California Academy of Sciences)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지붕에 수많은 식물이 살아 숨 쉬며 주변의 골든게이트 공원과 완벽히 어우러진 작품이었다. 또한 피어 15에 자리한 샌프란시스코 과학관(Exploratorium)은 세계 최초이자 최대의 탄소 중립 에너지 박물관이며,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FMOMA)의 아름다운 공간 중 하나는 2만여 종의 식물이 자생하는 ‘살아 있는 벽’이다. 3층 테라스에 있는 이 벽은 재활용 물병과 폴리에스테르로 제작한 부직포를 사용해 식물을 고정한다.

    최근의 그린 뉴스라면 지난 7월 17일에 개장한 터널 톱스(Tunnel Tops)다. 드넓은 프레시디오 국립공원(Presidio of San Francisco) 내, 금문교를 연결하는 터널 위에 조성된 공원이다. 축구장 약 7개 크기로 습지와 녹지가 어우러지며, 이곳의 미끄럼틀과 그네 등은 나무와 바위로 만들었다. 노 플라스틱! 무엇보다 벤치에 앉아 ‘금문교 멍’을 하기 좋은 위치이고, 리프트(Lyft) 앱을 통해 자전거를 대여하고, presidiotunneltops.gov를 통해 바비큐 그릴을 예약할 수 있다.

    물론 샌프란시스코 곳곳엔 피크닉을 즐길 공원이 많다. 구글 맵에서 샌프란시스코 지도를 보면 녹색 달마시안 같을 정도니까. 일정에 여유가 있어서 어느 공원에서 현지인처럼 누워볼까 고민하다 미션 돌로레스(Mission Dolores) 공원에 갔다. 고지대에 자리해 샌프란시스코의 지붕이 한눈에 펼쳐진다. 강아지와 원반던지기를 하거나 요가 하는 사람들의 공기가 느슨해 편안했다.

    더한 자연을 느끼고 싶다면 금문교에서 20여 분 달리면 나오는 뮤어우즈(Muir Woods) 국립공원을 권한다. 영화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에서 침팬지들이 탈출해 들어간 레드우드 숲이다. 이 붉은 나무는 자라는 데 보통 400년 걸리며, 2000년을 생존하기도 한다. 성인 대여섯 명이 팔을 두를 만큼 굵은 몸통, 카메라에 담기지 않을 만큼 큰 키의 레드우드 사이로 산책로가 있다. 데크와 잘 정비된 흙길이라 가벼운 운동화 차림도 괜찮으며, 뮤어우즈 방문객 센터를 기점으로 1~2시간 소요된다. 물론 여러 트레일 코스가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지속 가능성은 미식에서도 이어진다. 1979년 개업할 때부터 채식 전문 레스토랑인 ‘Greens’를 방문했을 때, 비건이 된 뒤로 이렇게 환영받은 적이 있나 싶었다. 웨이터는 “당신도 비건인가요? 와우, 반가워요!”라고 말하면서 어떤 재료와 맛을 선호하는지 메뉴를 하나하나 안내했다. 이미 메뉴판에 글루텐프리부터 식재료 종류까지 상세히 표시됐는데 말이다. 나는 채식을 시작한 후로 한국에서 종종 “혹시 육수가 고기인가요?” 같은 추가 질문을 던지면서 ‘유난 떠는’ 죄책감을 느끼곤 했다. 물론 한국도 채식 문화가 많이 보편화되는 중이다. 다만 “우리 비건끼리 얘기 좀 해요” 하며 반갑게 수다를 떠는 직원이 반가웠을 뿐. 당신이 비건이든 아니든 이곳에선 실험적이면서도 다양한 채식을 경험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근처 소노마와 나파 밸리로 와이너리 투어를 떠나도 좋다. 나파 밸리에만 400여 곳의 와이너리가 있기에 이곳의 여름은 공기에서도 포도 냄새가 난다. 선택이 어렵다면 나파 밸리가 지속 가능성 면에서 인정한 나파 그린(Napa Green)이나 캘리포니아 유기농 농부 인증(California Certified Organic Farmers, CCOF)을 받은 와이너리를 둘러보면 좋겠다. 정보는 visitnapavalley.com, sonomavalley.com에서 구할 수 있다. 이들은 내추럴 혹은 유기농 와인을 생산한다. 둘의 차이는 있다. 유기농 와인은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경작한 포도로 만든 와인이며, 내추럴 와인은 그런 포도를 발효하는 과정에도 인공 첨가물을 넣지 않는다.

    이들 와이너리에서 만난 핵심 인력은 하나같이 열정적이었다. 소노마 밸리에서 2019년부터 유기농 와인을 재배하는 바솔로뮤 에스테이트(Bartholomew Estate)의 와인메이커 케빈 홀트(Kevin Holt)는 이렇게 말했다. “우린 과학자이자 예술가죠.” 그들의 과학적인 농법과 노력을 보면 맞는 말이었다. “저는 최대한 인공적인 개입 없이 자연 친화적으로 와인을 만들고 싶어요. 포도 고유의 맛을 살려야 해요. 잔기술이나 첨가물이 개입하면 개성을 잃어버려요. 그래서 품과 비용이 많이 들죠.” 소노마 밸리에서 6대째 운영해온 와이너리 애버츠 패시지(Abbot’s Passage)의 젊은 후계자도 동의했다. “기존 와이너리를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데 최소 3년이 걸려요. 그 정도는 지나야 토양이 화학 성분을 내보내고 어느 정도 정상화되죠. 지금도 와이너리 구역별로 200여 개의 토양 샘플을 채취해 분석해요. 화학물질 없이도 포도나무가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와인을 위해, 이 땅을 위해서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 땅을 살리는 것이 우리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죠.” 이들은 에너지 사용량을 30% 줄이는 데 성공했고, ‘물 발자국’을 남기지 않기 위해 비를 저장해 재사용한다.

    나파 밸리의 와이너리 트레스 사보레스(Tres Sabores)의 주인장 줄리 존슨(Julie Johnson)은 “와인의 어머니는 자연”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건강한 냄새를 풍기는 천연 비료가 묻은 손을 빈티지 치마에 닦으며 악수를 청했다. “유기농을 하려면 약간 더러워질 수밖에 없죠.” 주변에는 그녀가 키우는 염소와 닭이 울고 있다.

    이들은 공동체 의식 또한 투철하다. 일정 부분 지역사회에 기여한다. 나는 앞서 언급한 바솔로뮤 에스테이트의 와인 ‘Bart’s Calling 2019’를 구입했는데, 주인장 친구 바트의 소명(Calling)에 따라 와인 판매 수익금은 동네 아이들에게 기부한다. 수페리 에스테이트 앤 빈야드(St. Supéry Estate and Vineyards)의 오너 엠마 스웨인(Emma Swain)은 지역사회 대모 같은 느낌으로, 20여 개 비영리단체와 함께한다. 그날은 이재민에게 음식을 제공한 셰프, 아이들에게 무료 교육해온 교사 등 지역 봉사자를 촬영한 사진전이 열렸다. 이곳은 1,595에이커의 대규모 와이너리에서 100%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포도를 재배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코스 메뉴와 와인 페어링이 무척 훌륭하다.

    사실 방문한 모든 와이너리가 모네 그림 같은 정원과 건강한 식재료의 식사, 유기농 혹은 내추럴 와인 테이스팅을 갖췄다. 이렇게 맛있는 행복은 자연이 있어야 가능하다. 다행히 출국할 때까지 일회용 컵을 쓰지 않고 텀블러를 들고 다녔다. 이제 13번째 텀블러에서 멈출 것이다. (VK)

    포토그래퍼
    KEITH BLODGETT
    SPONSORED BY
    샌프란시스코 관광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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