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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주황 존 #그 옷과 헤어질 결심

2023.01.13

by 이소미

    NO 주황 존 #그 옷과 헤어질 결심

    움베르토 에코는 아직 읽지 않은 책을 보관하는 곳을 ‘반서재(Antilibrary)’라고 불렀다. 이미 다 읽은 책만 가득한 서재에 가는 게 무슨 재미가 있겠나. 내 드레스 룸에도 ‘반드레스룸(Antidressroom)’ 존이 있다. 아직 입지 않았지만 언젠가 입기를 고대하며 걸어둔 옷. 이번 주에 버릴 옷은 그중 하나다.

    무슨 재미로 틴더를 하냐 묻는다면 상상할 수 있어서라고 대답하겠다. 매칭되어 대화를 나누거나 직접 만나는 것보다 설레는 순간은 스와이프 한 번이면 나타나는 낯선 얼굴과 친밀한 만남을 상상해볼 때다. 나머지는 대체로 성가신 일뿐이다. 몇 년 전 친구와 나는 이 재미에 푹 빠져 만나기만 하면 틴더를 켜고 ‘스와이프질’을 하며 놀았다. 엄지손가락이 저릿할 정도로… 시시콜콜한 에피소드는 모두 제외하고 결론만 말하자면 친구는 나와 같은 재미로 틴더를 한 게 아니었다. 수백 번의 스와이프 끝에 매칭된 남자와 연애를 시작하는 쾌거를 이뤄낸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튼튼해진 엄지손가락으로 시간만 죽일 동안 그 친구는 성실히 자신의 짝을 골라내고 있었을 생각을 하니 배신감이 들었지만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함께 돌리던 틴더를 혼자 돌리며 적당히 외로워하던 어느 평범한 가을밤, 친구가 (일주일 된) 남자 친구를 소개해주고 싶다고 했다. 귀찮았다. 집으로 술을 사오겠다고 했다. 오라고 했다. 30분도 안 되어 나는 납작한 화면에서만 보던 남자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현관문에서 그를 보자마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남자는 주황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다.

    나는 주황색 옷을 입은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싫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주황색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싫어하는 색 한 가지쯤 있지 않은가.

    나에게 주황색은 너무 덥고, 텁텁하고, 우울한 색이다. 주황색으로 된 물건은 애초에 집에 들이질 않는데 옷장은 말해 뭐하겠는가.

    드레스 룸에 척화비만 없다 뿐이지 흥선대원군의 마음으로 이 색을 철저히 배척해왔다. 그런 내 집에 주황색 스웨터를 입은 남자가 들어오다니. 그냥 주황색도 아니고 형광이 감도는 주황색이었다.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다. 대체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하지? 데이트 룩으로 주황색을 고를 수 있는 사람은 뭘까? 밤에 길 건너는 걸 무서워하나? 튀는 걸 좋아하나? 원래도 주황색을 자주 입는 걸까? 주황색을 좋아할 수 있는 삶은 뭘까? 운동화 끈도 주황색이네, 별로군.

    하지만 현관문을 지나 조명이 밝은 거실에서 주황색 스웨터를 제대로 마주하니 단박에 이런 문장이 떠올랐다. 어? 이쁘다. 그러니까, 그 주황색 스웨터는 예뻐도 너무 예뻤다. 듣도 보도 못한 형광 주황빛이 모헤어 소재 덕분인지 더 은은하고, 은근하고, 그윽하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장 완벽한 건 손목과 네크라인 부분에 두껍게 잡힌 감색 ‘시보리’였다. 갓 태어난 보송한 오렌지를 보는 듯했다. 아아, 주황색이 이렇게 환하고 명랑한 색이었다니! 그간 주황색을 싫어했던 내 영혼에 찬물을 끼얹은 듯한 충격이 일었다. 주황색 스웨트셔츠, 주황색 비니 정도는 본 적이 있어도 주황색 스웨터를 마주한 것 자체가 처음이었기에 그 여파는 더 심했다. 이 색깔의 아름다움을 진작 알아보지 못한 내 편협함과 오만함을 속으로 꾸짖었다.

    주황색 스웨터에 대한 강렬한 인상과는 별개로 만남은 어색함의 연속이었다. 형식적인 대화 후 알게 된 건 이 사실 하나였다. 우리 셋의 교집합은 틴더뿐이다. 애써 대화 주제를 찾아보려 노력했으나 허사였다. 남자는 낯을 가리는 건지, 억지로 끌려온 건지, 묵언 수행 중인 건지 대화를 이어갈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친구도 당황한 듯했다. 셋 다 술만 들이켰다. 취했다. 남자는 친구를 바라보고, 친구는 남자를 바라보고, 나는 그의 주황색 스웨터와 비슷한 스웨터를 찾아내려 남몰래 온라인 쇼핑몰을 뒤지는 데 점점 집중력이 붙기 시작할 때쯤 주문한 마라탕이 도착했다.

    꼭 그런 사람들이 있다. 배달 음식이 담긴 비닐봉지 매듭을 풀거나 가위로 자르지 않고 우악스럽게 뜯어내는 사람. 그 남자도 그런 사람이었다. 그의 양 팔꿈치가 거의 180도로 벌어졌을 때, 보다 못한 내가 가위를 가지러 부엌으로 향했을 때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마라탕이 쏟아졌다. 고심해서 산 내 새하얀 4인용 식탁과 그 밑에 깔려 있던 러그, 빈 의자에 놓아둔 모찌 쿠션이 마라탕 기름으로 뒤덮였다. 가장 촉촉이 젖은 건 그의 주황색 스웨터였다. 몇 초간의 침묵 끝에 그가 내뱉은 첫마디는 친구가 추후 틴더를 그만두게 된 계기의 4% 정도의 지분을 차지한다.

    “나 갈아입을 옷 좀.” 나한테 한 말이었다. 순간 내 남동생이 우리 집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나온 줄 알았다. 내내 마음이 불편해 보이던 친구의 인상은 단번에 구겨졌다. 나는 마라탕 기름을 닦기 바빴기에 쳐다보지도 않고 드레스 룸에서 아무 옷이나 골라 입으라고 했다. 그가 선택한 건 내가 자주 입는 검은색 스웨트셔츠였다. “미안하지만 그 옷만은 안 돼”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친구를 생각해 참았다. 친구는 이미 남자의 무례함에 기분이 상한 듯했고, 둘은 물티슈를 사오겠다며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마라탕 기름에 절여진 주황색 스웨터는 드레스 룸에 두고 간 채.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둘은 그 후 바로 헤어졌다. 친구의 워딩을 그대로 옮기자면 그날 ‘개같이’ 싸우고 헤어졌기 때문에 미안하지만 옷을 돌려달라는 연락을 하기가 좀 그렇다고 했다. 내심 기분이 좋았다.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이 아름다운 주황색 스웨터를 얻다니! 그 칙칙한 검은색 스웨트셔츠가 가고 운명처럼 환한 주황색 스웨터가 왔다. 재빨리 세탁소에 가서 얼룩을 지운 뒤 무채색이 가득한 내 행어 맨 앞에 걸어두었다.

    드레스 룸에 들어갈 때마다 읽지 않은 책을 마주한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언젠가는 입겠지만 아직 입지 않은 옷. 훗날 나는 알록달록한 옷을 입을 수 있는 사람, 가끔은 튀는 옷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 미래는 오지 않았다.

    내 몸이 주황색에 익숙지 않아서였을까? 생전 처음 가져본 컬러인 데다가 애초에 싫어하던 색이었으니 어떻게 입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언젠간 입겠지’의 마음이었다. 여기서 ‘언젠간’이란 이 스웨터와 함께 입을 옷이 완벽하게 구비되어 있는 날을 뜻한다(안 입겠다는 얘기다). 내가 삶에 좀 더 적극적인 인간이었다면 진작에 코디법을 찾아보고 어떻게 입을지 고민했겠지. 솔직히 말하면 주황색 스웨터를 바라보고 상상하고 갖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충분했다. 틴더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스와이프하며 상상만 하는 게 더 재미있었던 것처럼.

    움베르토 에코는 말했다. “내게 책을 보내려면 책 보관비까지 함께 보내라”고(실제로 생전 그의 서재에는 5만여 권의 책이 있었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건 간에 책은 실질적으로 공간을 차지하는, 물성을 지닌 사물이라는 이야기다. 더 깊이 들어가면 맥락이야 다르겠지만 옷도 그런 면에서 책과 비슷하다. 옷이 어떤 아름다움을 지녔건, 어떤 철학을 담고 있건 간에 옷은 옷이다. 그 주황색 스웨터는 오브제로서는 완벽했을지 몰라도 옷으로서는 그저 자리를 잡아먹는 성가신 아이템이었을 뿐이다. 내겐 그런 옷까지 너그럽게 품어줄 넓은 공간도, 옷 보관비를 줄 사람도 없다. 아직 입지 않은 옷이 이 옷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하필 이 옷을 버리냐면, 주황색이어서다.

    에디터
    이소미
    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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