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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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

2023-01-15T17:38:19+00:00 202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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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재 시인의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2022)을 읽는다는 건 사랑을 말한다는 거예요. 그래요, 사랑을 말해볼까요. 그랬더니 꿀꺽 군침부터 돌아요. 사랑을 말해요. 그랬더니 큼큼 냄새부터 맡게 되네요. 사랑을 말해요. 슬슬 배가 고파져요. 숨넘어갈 것 같은 고통스러운 허기가 아니라 차림새를 눈으로 밟으며 미래의 빛을 상상하는 뭉근한 허기예요. ‘수육’, ‘페이스트리’, ‘소보로’. 미더덕(‘미더덕은 아름다움을 더 달라는 것처럼’) 하나하나 요리조리 입속에 굴려가며 꾹꾹 씹어요. 그리고 꿀꺽, 삼켜요. 배 속으로 사랑이 미끄덩하고 내려갑니다. 아랫배에서 온몸으로 온기가 퍼져요. 이 기운으로 다시 사랑을 말할 거예요. 그럼 또 대추차와 깨(‘환’), 새우(‘시와 입술’)와 금귤(‘엄마가 잘 때 할머니가 비쳐서 좋다’), 얼음 띄운 콩국수(‘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를 맛보게 되겠지요. “명재씨는 속이 차요 뜸을 좀 뜹시다”(‘뜸’)라며 한의사가 뱃가죽 위에 올려준 쑥이 다 타들어갈 때쯤 “나는 죽은 사람을 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지요. 저도 그래요. 씹고 삼킨 시의 사랑으로 순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흘러간 계절을, 더는 부고조차 알 길 없는 얼굴을, 어린 날 외가의 백구를, 간밤의 눈보라를. 그런 것을요.

늙은 엄마는 찜통 속에 삼겹살을 넣고 월계수 잎을 골고루 흩뿌려둔다 저녁이 오면 찜통을 열고 들여다본다 다 됐네 칼을 닦고 도마를 펼치고 김이 나는 고기를 조용히 쥔다 색을 다 뺀 무지개를 툭툭 썰어서 간장에 찍은 뒤 씹어 삼킨다 죽은 사람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 것, 입속에서 일곱 색이 번들거린다
—’수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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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사랑하는 사람의 유골을 반죽에 섞고
언덕이 부풀 때까지 기다렸어요
물려받은 빵집이거든요
무르고 싶은 일들이 많아서
사람이 강물이죠 눈빛이 일렁이죠
사랑은 사람 속에서 흐르고 굴러야 사랑인 거죠

인연은 크루아상처럼 둥글게
만두 귀처럼
레슬링으로 뭉개진 시간의 살처럼
나는 배꼽 속에 손가락을 집어넣으며
저마다의 별무리 저마다의 회오리
저물녘이면 소용돌이치는 무궁화 속에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거예요

가장 아름답게 무너질 벽을 상상하는 것
페이스트리란
구멍의 맛을 가늠하는 것
우리의 겹겹의 공실에 개들을 둔 채
바스러지는 낙엽의 소리를 엿듣고
뭉개지는 버터의 몸집 위에서
우리 여름날의 눈부신 햇빛을 봐요

나는 안쪽에서 부푸는 사랑만 봐요
불쑥 떠오르는 얼굴에 전부를 걸어요
오븐을 열면 누렁개가 튀어나오고
빵은 언제나 틀 밖으로 넘치는 거니까
빵집 문을 활짝 열고 강가로 가요
당신의 개가 기쁨으로 앞서 달릴 때
해질녘은 허기조차 아름다워서
우리는 금빛으로 물든 눈에 손을 씻다가
흐르는 강물에서 기다란 바게트를 꺼내요
—’페이스트리’

고명재 시집 <우리가 키스할 때 눈을 감는 건>(문학동네, 2022)

수육과 페이스트리 같은 사랑을 삼키면, 우직함을 배울 수 있나요. 너끈히 달릴 수 있을까요. 두려움 없이 와락 안길 수 있는 걸까요. “그래도 개는 달렸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꿈 전체가 흔들려도 하나는 확신할 수 있어요 멀리서 보면 눈과 다를 바 없던 뜨겁고 작은 몸, 시야를 가리는 그 지독한 눈보라 속에서 유일하게 흔들리지 않는 것이었습니다”(‘왜 이 집에 왔니’), “그렇게 늘 오는 것이고 싶었다/풀을 밟고/오는/육중한 것이고 싶었다”(‘몸무게’), “콩나물처럼 머리를 밝히고 사랑을 말해요/불상처럼 차분하게 눈감은 채로/왼편으론 당신, 강물, 둔덕이 있고/오른편엔 감자 같은 내가 있지요/나는 그래요 그냥 있어요/곁은 그런 것/손 내밀면 확고한 형태로 있을 거예요/수천 년을 건너온 은행나무처럼”(‘노랑’)

—’노랑’ 중에서

 

수육과 페이스트리 같은 사랑을 삼키면, 제 뾰족한 마음의 모서리로도 페이스트리 같은 언덕을 맛볼 수 있을까요. 수영장에서 유영하는 할머니들을 보며 “백자 같은 인간의/어깨와 곡선”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걸까요. “무지개를 상상하며 팔을 뻗어요”, “물레 감듯 모든 걸 안고 나아가세요”라고 아름다운 말만 솎아낸 수영 강사님의 말을 저도 믿어볼래요. “아름다움은 다 겪고도 안아주는 것”’이라고 했으니까요.(이 문단의 인용은 모두 ‘자유형’)
그래요, 완만한 품을 그리며 다시 천천히 사랑을 말해볼게요. 그래요, 어느새 그 품에 깃든 순한 얼굴들을 떠올리며 다시 사랑을 말해볼게요. 그러니까요, 제 사랑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