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 황홀함을 담은 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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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황홀함을 담은 향수

2023-01-20T17:00:36+00:00 2023.01.20|

뷰티 에디터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일하면서 세계 최고의 조향사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뛰어난 후각을 지닌 조향사 도미니크 로피옹(Dominique Ropion)과 향수 역사학자 아닉 르 게레(Annick Le Guérer)의 대담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오늘날 향수 제조의 지침을 준수하면서 당시 포뮬러를 재현해 전설적 황홀함을 담은 세 가지 향수 ‘르 디유 블루(Le Dieu Bleu)’, ‘아르타방(Artaban)’, ‘레 뉘(Les Nuits)’를 소개한다. 이름하여 ‘트화 파팡 이스토힉(Trois Parfums Historiques)’. 역사 속으로 사라지거나 버려진 오브제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최신작이다.

 

이번 협업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Annick 1980년대만 해도 후각은 욕정, 저급의 동의어이자 하급 감각으로 치부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의학과 소통에 굉장히 주요한 감각이었죠. 그때부터 후각과 향수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어요. 1985년에는 파트리크 쥐스킨트(Patrick Süskind)의 소설 <향수>가 출간되었고, 1988년에 논문을 투고했으니 1980년대가 후각 연구의 기단이라 할 수 있죠. 저는 향수가 그저 유혹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류 문명을 따라 발달하며 그 당시 사회를 비추는 거울임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또 향수는 인류 최초의 약제이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향수의 역할은 확장되어 현재 병원에서 알츠하이머를 치료할 때나 중증 환자의 통증을 완화하기 위한 의학적 방법으로 재조명되고 있어요. ‘트화 파팡 이스토힉’은 그간 제가 진행한 향수 연구를 토대로 조향사 도미니크 로피옹이 포뮬러를 재현한, 시공간을 넘어선 퍼퓸 프로젝트입니다.
Dominique 어느 날 아닉이 1850년대 향수를 건넸어요. 세월의 흐름을 증명하듯 입구가 꽉 달라붙어서 병마개를 열 수조차 없었죠.(웃음) 흥미로운 사실은 그 안에 들어 있는 향수를 분석하는 과정이었어요. 병에 미세한 구멍을 내고 내용물을 바늘로 끄집어냈죠. 화학자처럼요. 해당 분자를 통해 포뮬러를 재현하는 과정에서 베르가모트와 로즈 에센스를 다량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재스민과 일랑일랑, 파촐리, 카스토레움, 아이리스 등 천연 성분은 물론 메틸요논과 살리실산염 같은 합성물도 추출했죠. 이런 물질이 당시 존재했는지 확인 절차도 진행했는데요, 이 중 몇몇 원료는 독성으로 인해 사용이 어려워요. 메틸유제놀이 그 예로 부분 증류법을 활용해 제거했죠.

 

아스티에 드 빌라트 ‘르 디유 블루(Le Dieu Bleu)’.

 

첫 번째 향수 ‘르 디유 블루’의 기원지는 고대 이집트입니다.
Annick 파라오 시절 이름 날린 향수 ‘키피(Kyphi)’의 귀환입니다. 이집트가 로마에 정복당한 후에도 ‘키피’의 인기는 여전했어요. 클레오파트라도 인정한 걸작이죠.

 

아스티에 드 빌라트 ‘아르타방(Artaban)’.

 

두 번째 향수 ‘아르타방’의 특별함은 뭔가요?
Annick 아르타방은 로마 제국에서 이름 날린 기원전 1세기 ‘왕실의 퍼퓸’을 재현했어요. 무려 27개 재료로 만든 복합성이 특징인데 한번 맡으면 잊을 수 없을 만큼 향이 깊고 진하죠. 당시 로마인들은 향수를 분사하지 않고, 발바닥까지 전신에 발랐는데요, 온몸에 향유로 만든 향수를 피부에 바르고 마사지하는 행위를 고대 목욕탕 테르마에(Thermae)에서 즐겼습니다. 심지어 로마 병사들도 투구 아래 두피에 향수를 바를 정도였으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죠. 당시 이 향을 제조하기 위해 전 세계, 특히 아시아에서 비싼 원료를 사들였는데, 이로 인해 로마 제국의 재정 상태가 휘청거릴 정도였어요. 그리고 지금,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헌신과 도미니크의 재능으로 로마 제국을 매혹하는 동시에 파탄에 이르게 한 이 향을 조우할 수 있습니다.
Dominique 사견이지만 ‘아르타방’은 ‘르 디유 블루’와 닮았어요. 스카치 브룸, 사프란 때문일 텐데요, 마저럼, 랍다넘에서 향의 반전이 생기죠. 직업 특성상 정말 많은 향을 접해봤지만 손에 꼽을 정도로 그 향이 신비로워요. 미적으로나 예술적으로도 최고의 향수라 자부합니다.

 

아스티에 드 빌라트 ‘레 뉘(Les Nuits)’.

세 번째 향수 ‘레 뉘’의 관전 포인트는 뭘까요?
Annick ‘레 뉘’와 인연은 제가 19세기 프랑스 작가 조르주 상드의 후손을 만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녀는 유명한 페미니스트이자 작가, 파리의 유명 인사와 정치가, 아티스트과 친밀한 인물이었죠. 당시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일어나던 혁명의 조짐을 누구보다 먼저 접한 핵심 인물이었습니다. ‘레 뉘’라는 이름은 조르주 상드가 자신의 연인 프레데리크 쇼팽을 만날 때 애용한 향수이기 때문이죠. 그녀는 쇼팽과 함께 노앙(Nohant)에 살았는데 쇼팽이 ‘녹턴’을 작곡하던 어느 날 밤 조르주 상드는 이 향수를 뿌렸습니다.

향수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혁명적인 사건을 꼽아본다면?
Annick 증류법. 이로 인해 알코올 베이스 향수가 탄생했으니까요. 이 테크닉은 아랍인이 발명했고, 프랑스 몽펠리에와 이탈리아 살레르노에 12~13세기에 전파되었습니다. 이전에 사용되던 고대의 향수는 오일 베이스의 ‘향유’ 형태였어요 증류법이 없었다면 분사형 향수도 없죠. 증류를 이용한 최초의 향수가 일명 ‘헝가리 여왕의 향수’로 불리는 ‘로 드 라 렌느 드 옹그리(L’eau de la Reine de Hongrie)’입니다.

유년 시절 경험한 향기로운 기억을 공유해줄래요?
Annick 어릴 적 시골집에 호두나무가 있었어요. 열매가 열리고 익어가는 시기가 꽤나 정확해서 호두가 나무에서 떨어질 무렵 방학이 끝나고 개학임을 자각했죠. 바람에 흩날릴 때마다 코를 스치는 호두나무 향은 끝내줬지만 그와 동시에 저의 불안감도 커졌어요.(웃음)

향수의 존재 가치는 무엇이라 생각하나요?
Dominique 윤택한 삶을 위해 예술이 인류에게 필요하듯 향수도 마찬가지예요. Annick 동의해요. 향은 아주 긴밀한 방식으로 특정 시대를 느끼게 하죠. 향수는 지금처럼 발달한 사회에도 오랜 역사의 한 페이지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아스티에 드 빌라트의 걸작을 창조한 도미니크 로피옹과 아닉 르 게레를 파리에서 만나, 세 가지 향수의 숨은 의미를 <보그> 카메라에 직접 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