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걸 그룹 손톱을 스타일링하는 일에 대하여

2023.02.06

by 송가혜

    걸 그룹 손톱을 스타일링하는 일에 대하여

    손가락 끝의 딱딱한 조각.
    아이돌에겐 극도의 치장이며 누군가에겐 기분 전환, 정체성 또는 학대의 대상이다.
    이토록 다채로운 손톱을 고찰하는 <보그> 유니버스.

    스톤 장식 반지는 자라(Zara), 볼드한 실버 반지와 베젤 장식 반지는 콜드프레임(Coldframe).

    걸 그룹의 ‘손꾸’

    “몇 개까지 만들어봤니?” 걸 그룹의 반짝반짝 빛나는 손끝 치장을 담당하는 네일 아티스트 사이에서 이 질문을 건넨다면? 백이면 백, 격한 공감의 눈빛을 서로 고요히 주고받을 것이다. 멤버의 머릿수가 한 명 늘어나면 제작해야 하는 네일 팁의 개수는 무려 ‘+10’. 그럴 때마다 새삼스럽게도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의 손가락은 왜 10개나 되는가. 그것도 제각각 크기와 모양도 다르고. 그 사이에도 손가락은 부지런히 자그마한 가짜 손톱 위에 그림을 그리고 온갖 반짝거리는 것들을 붙이면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한 걸 그룹의 새로운 앨범이 세상에 탄생하기까지, 내로라할 만큼 크리에이티브한 수십 명의 인프라가 동원된다. 컨셉 기획부터 재킷 앨범, 뮤직비디오 촬영까지 길게는 몇 달. 단언컨대, 수많은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네일 아티스트에게 주어진 시간이 가장 짧다. 네일은 그야말로 원하던 컨셉을 이룩하는 ‘한 끗’이라 모든 스타일링의 거의 최종 단계에 다다라서야 의뢰가 온다. 그나마 여유 있는 편이라면 2주, 최단 시간을 꼽자면 이틀. 한낱 그 기간에도 중간중간 아이디어 컨펌과 수정 작업이 여러 차례. 그동안 수면(숙면은 말할 것도 없고!)은 과감히 포기한다고 보면 된다. 제각기 디자인이 조금씩 차별화된 네일 팁을 200~300여 개 완성해야 하니까. 더 어린 아이돌일수록 손톱의 크기가 워낙 작아 사이즈 여유분을 여러 개 만들어야 하는 것도 필수다. 그야말로 철야의 ‘노가다’와 다름없는 것이다. 작업 반경이 워낙 좁아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거대한 산처럼 솟은 승모근과 거북목만이 나의 고됨을 방증한다.

    화려한 네일 디자인을 가장 많이 좌우하는 건 다름 아닌 옷이다. 예를 들어, 리본이나 젤리처럼 의상의 어떤 포인트가 있다면 그를 토대로 최대한 ‘미니멀’하게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일은 커다란 도화지처럼 영감을 펼칠 공간이 크지 않다 보니, 패턴이나 모티브를 그 자그마한 캔버스에 죄다 욱여넣다 보면 결국 ‘투 머치’ 디자인이 되어버리고 마니까. 예전에는 무조건 ‘눈에 띄는’, 화려하고 깜찍한 디자인을 추구했다면 이젠 걸 그룹의 손끝도 패션과 뷰티 월드의 큰 흐름을 따라간다고 느껴진다. 특히 어릴수록 롱 네일이나 끝이 뾰족한 스틸레토 팁을 지양하기 때문에, 짧은 손톱도 돋보일 수 있도록 입체적인 디자인을 추구한달까? 맑고 깨끗한 이미지의 한 멤버를 위해 투명 하트 모양의 3D 네일을 열 손가락에 연출했는데, 멀리서 보면 얼음처럼 보이는 착시를 일으킨 적도 있다.

    일하다 보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두 가지다. “어떻게 담당하게 됐어요?” “네일 해주면서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요?” 첫 번째 답은 바로 인스타그램 DM. 이제껏 작업해온 다양한 결과물을 모으는 SNS 계정으로 어느 날 메시지가 도착한다. 어느 엔터테인먼트의 걸 그룹 스타일링을 담당하는 디렉터라고 하지만 팔로우나 피드가 ‘0’, 텅 빈 계정이라 처음엔 의심도 했지만 그 후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으며 확신하게 된다. 한 번의 작업이 두 번이 되고, 여러 번 이어지다 보면 소속사로부터 전속 계약 제의를 받기도 한다. 대화는 일반 네일 숍에서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색한 정적이 어느 정도 지나고 나면 점심 메뉴, 어제 본 드라마, 운동 가기 싫다는 흔한 ‘아무 말’ 대화가 오간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친구들이 있다면 뉴진스다. 멤버 모두 10대다 보니 화려한 네일 팁을 얹어보는 것이 처음이라고 했던 순간이다. “저 이런 것 처음 해봐요.” “실장님, 이런 건 어떻게 만들어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묻는 질문이 때 묻지 않고 정말 순수해 나도 모르게 밝은 에너지에 정화된 듯한 기분이었다.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지만 위기의 순간도 여러 차례 온다. 가장 힘든 건 시간. 매거진 작업에 비해 20시간 이상 소요되는 재킷 앨범이나 뮤직비디오 촬영은 그야말로 무한 대기 상태다. 아이돌의 살인적 스케줄에 맞추다 보면 막상 숍에 찾아온 단골을 제대로 맞이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늘 있다. 몇백 개의 팁을 제작해도 막상 결과물로 나오는 건 작업물의 1/10에서 2/10뿐이라 때론 힘이 빠질 때도 있다. 그렇지만 쌓이는 건 ‘짬’뿐. 이제 그런 시련도 무던하게 넘길 수 있다. 이러나저러나 우리는 가장 예쁘고 힙한 것들을 창조하는 전문가니까. 김수지 & 김나현 네일 아티스트

    에디터
    송가혜
    포토그래퍼
    김형상
    모델
    최명진
    네일
    임미성
    스타일리스트
    노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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