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나는 왜 손톱을 학대하는가

2023.02.06

by 송가혜

    나는 왜 손톱을 학대하는가

    손가락 끝의 딱딱한 조각.
    아이돌에겐 극도의 치장이며 누군가에겐 기분 전환, 정체성 또는 학대의 대상이다.
    이토록 다채로운 손톱을 고찰하는 <보그> 유니버스.

    @nail_unistella

    손톱 학대자의 변명

    배우 박서준을 인터뷰하던 중이었다. 입체적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그는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사람마다 습관이 있잖아요. 그런 디테일이 역할에 생명력을 더해주죠. 지금 기자님이 손끝을 자꾸 만지작거리는 것 같은 아주 사소한 디테일이요.” 갑자기 얼굴이 벌게졌다. 손을 내려다보니 나도 모르게 오른손 엄지로 중지 끝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손톱 끝은 뭉툭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칼럼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래도 트렌드 따져가며 쇼핑도 하고 가끔은 피부과도 찾으며 나름 ‘관리’라는 걸 하지만, 손톱만은 무자비하게 방치해왔다. 사실은 학대해왔다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어떤 순간이 되면 무의식적으로 나는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거나 다른 손가락으로 특정 손톱 몇 개를 괴롭히곤 했다. 그러면 어쩐지 편안해진다. 그게 그저 핑계만은 아닌 것이, 미국 매체 <버지 사이언스>는 지루하거나, 배가 고프거나, 낙담했거나, 어려운 과제를 하고 있거나 하물며 기분이 좋을 때도 손톱을 뜯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어떤 감정 변화가 생겼을 때 (그게 긍정적인 방향일지라도) 안정감을 찾기 위한 행위라는 거다. 2012년 미국 정신의학협회는 손톱을 물어뜯는 행동을 강박 장애로 분류했고, 영국 매체 <인디펜던트>는 앞서 말한 두 가지 이유 외에도 유전적 요인 혹은 완벽주의자일 가능성을 원인으로 제시했다. 예민하거나 인내심이 없고 화를 잘 내는 사람들이 (그러니까 완벽주의자들이) 손톱을 물어뜯는다고 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엔, 성격 더러운 완벽주의자라서는 아니고, 나름의 양가적 이유 때문이다. 이건 그저 손톱일 뿐이면서 어쩌면 손톱 이상이기도 해서 손톱을 잘근잘근 깨문다. 권여선은 소설 <손톱>에서 매 순간 가계를 계산하고 고민해야 하는 어느 20대의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팍팍한 삶의 상징으로 언제 아물지 모르는 깨진 손톱을 선택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어머니인 줄리아 스티븐은 아픈 딸을 간호하며 기록한 에세이 <병실 노트>에서 분명하게 “간병인은 매끄러운 손과 짧은 손톱을 유지하는 데 신경 써야 한다”고 적었다. 손톱은 대체로 사소하지만 때로는 결정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나에게 손톱이란, 정신 상태의 바로미터다. 손톱의 엉망인 정도가 나의 스트레스 지수를 의미한다. 거침없는 손톱 학대자인 나에게도 ‘네일 아트’라는 걸 정기적으로 받던 시절이 있었는데, 바로 런던에서 그 어떤 압박도 없이 영어 공부나 하며 보낼 때였다. 시간도 충분했고 마음의 여유도 있었다. 알람 없이 푹 자고 요가를 다녀와서 네일 아트를 받는 일상. 하지만 딱 6개월이었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손톱은 점점 초라해졌다. 두꺼운 터틀넥을 입은 듯 젤 네일이 답답했고 긴 손톱으로는 속도감 있게 키보드를 칠 수 없었다.

    그런데, 나는 엉망인 지금의 손톱이 싫지 않다. 예쁜 손톱으로 보낸 6개월은 휴가였고 지금은 삶이다. 바쁘고, 치열하며, 불안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카오스 속에 단맛이 있다. 게다가 30대 후반이 되고 나서 느낀 게 있다면 정신 건강을 지킨다는 게 무엇보다 어렵다는 사실인데, 손톱 좀 괴롭히는 행위로 잠시나마 평화를 찾을 수 있다면 예쁜 손톱쯤은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지 않겠나. <인디펜던트>에서 말하는 이 습관을 고쳐야 하는 이유가 좀 걸리긴 하지만. 첫 번째는 치아와 턱 건강에 좋지 않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는 감염을 확산시켜 어쩌면 위장 장애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했다. 세 번째가 결정적이었다. “이 습관을 가진 사람을 볼 때 매력적으로 느낄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권민지 <보그> 디지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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