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피지컬: 100’, 최종 우승자의 정체보다 더 궁금한 것

2023.02.17

by 강병진

    ‘피지컬: 100’, 최종 우승자의 정체보다 더 궁금한 것

    신체 능력이 부족한 사람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지구력과 근력을 겨루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차피 지거나 포기할 게 뻔하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는 편이라고 할까? 그러다 보니 보는 것도 즐기지 않았다. 야구와 축구 같은 프로스포츠는 실제 선수들의 신체 능력보다는 게임의 양상이 보여주는 드라마틱한 스토리에 매료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이보다 더 빨리 도달하고, 더 오래 버티며 더 멀리 나아가는 것을 놓고 겨루는 게임에서 극적인 스토리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넷플릭스 예능 프로그램 <피지컬: 100>을 보기 전에 내가 가진 인상도 그랬다. “가장 완벽한 신체 능력을 갖춘 최고의 ‘몸’을 찾는다”는 미션은 몸에 관심이 적은 사람에게 심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의 시청 소감에 동해서 보게 된 <피지컬: 100>은 피지컬이란 말에 대한 선입견을 무너뜨리면서, 피지컬이란 말이 가진 여러 묘미를 드러내고 있었다. 지구력과 근력을 겨루는 것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넷플릭스 ‘피지컬: 100’

    <피지컬: 100>의 참가자들은 말 그대로 피지컬이 좋은 100명이다. 1화에서 소개하는 참가자들의 몸을 보면 ‘좋은 피지컬’에도 100가지 다양한 형태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김강민이나 김춘리처럼 근육을 멋지게 단련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은실처럼 몸 전체가 탄탄한 사람이 있고, 남경진이나 조진형처럼 그 자체로 압도적인 사람이 있으며 차현승처럼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몸이 있다. 그들 틈에서 스켈레톤 국가 대표 윤성빈의 몸은 피지컬을 판단하는 여러 기준의 가장 좋은 점만 모아놓은 것 같았다. 멋있고, 아름답고, 압도적이다. 하지만 윤성빈의 몸이 언제나 최고의 성적을 내는 건 아니다. 누가 가장 오래 매달릴 수 있는가를 놓고 겨룬 프리 퀘스트에서 윤성빈은 전체 42등이었다. <피지컬: 100>은 그렇게 ‘피지컬’이란 말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게 피지컬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무엇보다 피지컬의 좋고 나쁨은 한 가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피지컬: 100>을 보는 동안 시청자는 지속적으로 ‘언더독’의 반란을 기대하게 된다.

    넷플릭스 ‘피지컬: 100’

    프리 퀘스트가 “거대한 몸이 가장 좋은 피지컬은 아니다”라는 선언이었다면, 1 대 1 데스 매치에서는 힘이 가장 센 사람이 언제나 가장 강한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힘보다 스피드가 더 필요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여자라고 항상 약한 건 아니고, 젊다고 더 강한 것도 아니며 강한 근육으로만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첫 티저 영상이 공개되었을 때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의 실사판으로 알려졌는데, 여러모로 <오징어 게임>을 연상시키는 것도 그런 묘미 덕분이다. 몇몇 게임에서 <오징어 게임>의 오일남이 젊은 시절의 경험을 살려 전략을 짜는 줄다리기 게임 장면이 떠오른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netflixkr

    @netflixkr

    <피지컬: 100>을 둘러싼 몇 가지 논란 또한 그런 묘미를 연출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격투기 선수 박형근은 1 대 1 데스 매치에서 여성 참가자 김춘리를 지목한 후, 게임에서 그녀의 가슴을 누르는 주짓수 기술을 사용했다. 이를 두고 이 게임이 공정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레슬링 선수 남경진이 교도관인 박정호와 대결할 때도, 일반인에게 레슬링 기술을 써서 이기는 게 옳은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다. 이런 논란의 배경에는 ‘올림픽’이 있을 것이다. 권투, 레슬링, 유도, 역도 등 많은 종목이 성별, 체급별로 나누어 경기를 치른다. 같은 종목의 운동을 오랫동안 연습한 사람들이 대결하는 것이니 결국 비슷한 피지컬의 선수들이 승패를 겨루게 되는 ‘올림픽’은 처음부터 <피지컬: 100>과 전제가 다르다. ‘최고의 피지컬’이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는 <피지컬: 100>은 특정 능력의 피지컬을 가진 사람에게만 유리한 게임을 하지 않는 것으로서 공정성을 담보하는 서바이벌이다.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해 그에 맞는 전략까지 짜야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약체로 평가받은 장은실 팀은 오히려 모래 나르기 게임에서 남경진 팀을 이길 수 있었고, 심으뜸은 자기 몸무게의 40%에 해당하는 토르소를 지켜야 하는 게임에서 최종 5인까지 남아 부활할 수 있었다. 이런 묘미는 2월 14일 공개된 ‘고대 신화 5종 경기’에서 더욱 부각되었다. 산악 구조대원인 김민철은 줄에 오래 매달리는 능력을 이용해 레슬링 선수인 손희동을 이기고 생존할 수 있었다. 만약 그가 조진형과 함께 무거운 돌을 들고 오래 버티는 게임에 나섰다면 조진형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다.

    @netflixkr

    @netflixkr

    @netflixkr

    그래서 <피지컬: 100>의 마지막 9화를 남겨둔 2월 15일 현재, 나는 최종 승자의 정체보다 최종 5인이 대결할 게임이 무엇인지가 더 궁금하다. 힘이 센 조진형, 뛰어난 순발력을 가진 박진용, 끈기의 우진용, 전략가인 김민철, 그리고 힘과 지구력을 모두 갖춘 윤성빈 또는 정해민을 놓고 누가 이길지 예상하기 어려운 묘미를 살리기 위해서는 또 한 번 흥미로운 게임이 있어야 하니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마지막 게임인 ‘오징어 게임’으로 다섯 명이 한 번에 대결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어린 시절 여러 차례 해봤고, 수차례 져본 경험으로 생각해보건대 ‘오징어 게임’ 또한 힘과 순발력, 전략과 끈기가 모두 필요한 게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피지컬: 100>의 제작진이 그런 손쉬운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어떤 게임이든 이 서바이벌의 묘미를 끝까지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리랜스 에디터
    강병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포토
    넷플릭스 '피지컬: 100', 넷플릭스 인스타그램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