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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노량: 죽음의 바다’ 외의 한국 역사 영화 베스트 15

2024.01.03

by 이숙명

    ‘서울의 봄’, ‘노량: 죽음의 바다’ 외의 한국 역사 영화 베스트 15

    명량

    개봉 연도 2014 | 감독 김한민 | 출연 최민식, 류승룡, 조진웅 |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임진왜란 6년째인 1597년. 누명 쓰고 파면당한 이순신(최민식)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다. 그 사이 병력은 철저히 파괴됐고 병사와 백성은 지쳤다. 거북선도 불탔다. 왜의 전함 330척이 몰려오는 절체절명의 위기, 장군은 왕에게 편지를 쓴다.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 실제 시간대는 <한산: 용의 출현>(2022) 5년 뒤지만 명량대첩을 트릴로지 오프닝에 배치한 건 훌륭한 전략이었다. 기적에 가까운 승리였고, 그만큼 극적인 사건이었다. 이 영화가 놀라운 점은 그 불가능한 해전을 납득하게 묘사한 점이다. 지형을 이용한 전술, 물살과 배의 움직임을 선명하게 시각화함으로써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식 전쟁 묘사에서 놓치기 쉬운 지적 쾌감을 확보했다. 덕분에 애국심에 호소하는 신파 드라마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내외 ‘밀덕’들의 관심을 받았다. 자연환경 다른 남의 나라를 함부로 침략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남한산성

    2017 | 황동혁 |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 넷플릭스, 왓챠, 티빙

    병자호란이 벌어진 1636년.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에 숨는다. 청은 이들을 포위하고 굴욕적 항복 선언을 요구한다.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은 요구에 응하는 게 나라와 백성을 지키는 길이라 주장한다.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은 항전으로 대의를 지키자 한다. 인조(박해일)의 고민은 깊어진다. <남한산성>의 가장 멋진 부분은 피와 살이 튀는 전투가 아니라 대신들의 설전으로 극도의 긴장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조선은 논쟁으로 국가 대소사를 결정하는 학자의 나라였다. 후대의 드라마에서 그들을 캐리커처화하고 쉽게 충신과 간신을 나누고 그들 언어의 품위를 매도하는 걸 보면 조선의 대신들은 저승에서 통곡할 것이다. 그렇다고 유학자들의 논쟁 따위를 열심히 고증해봤자 이해도 안 되고 하품만 나지 않겠는가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난 야심만만하고 예술적인 시도가 이것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언어와 표정만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배우들, 우아하고 힘 있는 대사, 기술 파트의 노련함이 모두 맞아떨어진다. 물론 조선판 <레버넌트>라는 평가를 받은 혹한의 전쟁 신도 멋지다. 한국 상업 영화 특유의 과장된 감정 연출을 피하면서도 풍부한 감정을 담아낸 걸작이다.

    사도

    2015 | 이준익 | 송강호, 유아인 | 넷플릭스, 왓챠, 티빙

    1762년 임오화변은 조선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걸로 모자라 방식이 전무후무했다. 성군이라 불린 아버지가 그 길고 잔인한 공개 처형이 이뤄지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제각각의 해석을 담은 영화, 드라마가 계속 만들어진다. <사도>는 아버지(송강호)와 아들(유아인)의 관계, 두 사람 각각의 콤플렉스와 서로에게 걸었던 기대에 주목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세자의 학습 스트레스를 다룬 점도 신선했다. 강한 성품과 자의식을 지닌 두 인물이 압도적 권력 차로 지배-종속 관계에 놓일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파국을 섬뜩하게 그렸다. 분명 역사물이지만 대단히 현대적인 사이코드라마기도 하다.

    동주

    2016 | 이준익 | 강하늘, 박정민 |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시인 윤동주(강하늘)의 일생을 시집처럼 담아냈다. 아련한 흑백 화면, 서정적인 풍경과 음악, 인물의 표정을 주목하게 만드는 연극적 조명 그리고 흘러나오는 시. 참혹한 시대, 행동하지 못하는 시인의 고뇌를 소리 높여 변론하는 대신 송몽규(박정민)라는 대립쌍을 세워 넌지시 전달하는 방식도 우아하다. 어떤 방식을 취하든 무사하지 못할 시대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까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이 아름다운 영화는 자기 시집의 제목을 말하는 주인공의 목소리로 끝을 맺는다. ‘시’라는 단어에서 무겁게 뚝 떨어지는 음성이 강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 전반에 걸쳐 차분히 누적된 비애와 안타까움이 순식간에 증폭되면서 시대를 초월한 예술의 가치, 그 가치가 예술가에게 주는 무게를 단숨에 깨닫게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다. 윤동주는 1945년 해방을 여섯 달 앞두고 사망했다.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

    2013 | 오멸 | 이경준, 홍상표, 문석범 | 웨이브

    1948년 제주에 계엄령이 선포된다. 주민들은 “해안선 5km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여긴다”는 흉흉한 소문을 듣고 피난길에 오른다. 극 중 영문 모르고 산에 숨은 사람들은 감자를 먹으며 장가갈 걱정, 집에 두고 온 돼지 걱정 등을 나눈다. 제주 4·3 사건은 7년간 지속되며 2만5,000~3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지슬: 끝나지 않은 세월 2>는 이 사건을 이념에서 벗어난 필부필부의 시선으로 그린다. 제작비 2억5,000만원으로 만든 지역 독립 영화지만 영상미와 해학으로 극찬받으며 극장 개봉에 성공했다. 2013년 선댄스영화제 월드 시네마 드라마틱 부문 심사위원 대상작이다.

    태백산맥

    1994 | 임권택 | 안성기, 김명곤, 김갑수 |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1948년 여수에 주둔하던 군인들이 제주 4·3 사건을 진압하라는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남로당과 합세해 반란을 일으킨다. 영화는 이후 좌익 세력의 반동분자 숙청과 우익의 보복이 번갈아 벌어지는 보성, 벌교 일대의 상황을 그린다. 빨치산과 계엄군 어느 쪽도 주민들에게는 해방군이 아니다. 이념의 광기에 사로잡힌 자들의 지루한 대치는 한국전쟁으로 흐지부지된다. 작가 조정래의 웅장한 필력과 민족주의 사상이 만개한 대표작을 거장 임권택-정일성(촬영감독) 콤비가 영상화했다. 국악을 활용한 김수철의 사운드트랙도 화제였다.

    태극기 휘날리며

    2004 | 강제규 | 장동건, 원빈 | 왓챠, 웨이브, 티빙

    강제규 감독은 <쉬리>(1999)로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말을 탄생시켰고, <태극기 휘날리며)(2004)로 한국에서 두 번째로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 특히 이 영화로 이전 세대 한국전쟁 영화와 뚜렷한 선을 그었다. 성장하는 한국 영화 산업, 발전한 기술, 전쟁 트라우마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관객층 등 조건도 맞아떨어졌다. 실감 나는 대규모 전쟁 신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비견되었고, 특정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보편적 휴머니즘을 말하는 메시지도 호응을 얻었다. 분단 상황을 상업적으로 활용할 돌파구를 열었다는 건 강제규 감독의 뚜렷한 업적이다. 이후 한국전쟁을 다룬 좋은 영화가 많이 나왔지만 아직 <태극기 휘날리며>를 반추하는 이유다.

    하얀 전쟁

    1992 | 정지영 | 안성기, 이경영 | 한국영상자료원 소장

    작가 안정효는 월남전 파병 경험을 바탕으로 군인들의 정신적 외상을 다룬 <하얀 전쟁>을 썼다. 영화는 당대 최고 제작비, 베트남 현지 촬영 등으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전쟁의 스펙터클을 전시하기보다 어린 군인들이 경험하는 전장의 공포를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후유증에 시달리던 주인공들이 1980년대 데모 현장에서 내리는 결정은 전쟁이 국가 대 국가뿐 아니라 국가 대 개인의 폭력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웅변한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1995 | 박광수 | 문성근, 홍경인 | 한국고전영화 유튜브

    1970년 서울 평화시장 피복 공장 재단사로 일하던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며 분신한다. 1983년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전태일 평전 초판이 발행된다. 영화는 경찰 수배 중에 평전을 집필하는 운동권 대학생(문성근)과 그가 집착하는 전태일(홍경인)의 삶을 교차 서술함으로써 전태일의 상징적 시위 후에도 노동권 인식은 크게 바뀌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5·18 후유증을 담은 <꽃잎>(1996)과 더불어 소재 자체로 당대에 충격을 안긴 작품이다. 한국 영화가 비로소 자유롭게 근현대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 시기다.

    남산의 부장들

    2020 | 우민호 | 이병헌, 이성민 |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티빙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암살한다. 영화는 동명의 베스트셀러 논픽션을 바탕으로 사건 전 40일간을 기록한다.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2005)이 10·26을 블랙코미디로 묘사했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무거운 정극으로 접근한다. 현대사를 활용한 정치 누아르가 쏟아지던 시기 높은 전달력과 정교한 연기 앙상블로 유독 호평받은 작품이다.

    택시운전사

    2017 | 장훈 | 송강호, 토마스 크레취만, 유해진 |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 티빙

    1980년 5월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은 큰돈을 준다는 말에 독일 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광주로 향한다. 만섭이 맞닥뜨린 건 서울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위기 상황이다. 5·18 소재 영화는 그 전에도 여러 편 있었다. <화려한 휴가>(2007)가 685만 명, <26년>(2012)이 296만 명을 동원할 정도로 흥행도 잘됐다. <택시운전사>는 그중 가장 완성도가 높기도 하거니와, 해외에서의 호평으로 한국 역사물이 보편적 호소력을 가질 수 있다는 선례가 된 작품이다. 특히 민주화 투쟁 중인 인근 국가에서 ‘한국은 저런 영화도 만들 수 있구나’라는 부러움을 샀다.

    변호인

    2013 | 양우석 | 송강호, 김영애, 임시완 | 넷플릭스

    1981년 발생한 ‘부림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사회과학 독서 모임 회원 22명이 영장 없이 체포, 고문 후 기소당한 사건이다. 1980년대 흔한 용공 조작 중 하나였고 피고인들은 2014년 모든 혐의에 무죄판결을 받았다. 실제로는 많은 인권 변호사가 재판에 참여했는데 영화에서는 송우석(송강호)이라는 상징적 인물을 내세워 전달력을 높였다. 정의감을 들끓게 하는 명대사가 많아서 선동적, 감상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대부분 실제 재판 기록에서 나왔다는 걸 알면 숙연해진다.

    남영동1985

    2012 | 정지영 | 박원상, 이경영 | 왓챠

    1985년 9월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사건으로 구속된 운동가들과 고문 기술자들의 실화를 영화화했다. 그 시절 악명 높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벌어진 일을 생생하게 그렸다. 감동, 승리, 희망은 전혀 없고 잔인한 고문 장면이 많아서 남녀노소 가족 나들이로 보러 갈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건조한 직설이 오히려 매력인 웰메이드 사회 고발 영화다.

    1987

    2017 | 장준환 | 김윤석, 하정우, 유해진 | 넷플릭스, 왓챠, 티빙

    1987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대학생이 사망한다. 경찰은 단순 쇼크사로 조작하지만 물고문 도중 질식사했다는 게 밝혀진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끌어낸 6월 항쟁의 서막이다. 영화는 산발적 사건과 수많은 개인이 서로 연결되면서 커다란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힘 있게 그린다.

    모가디슈

    2021 | 류승완 | 김윤석, 조인성, 허준호 | 넷플릭스, 왓챠, 티빙

    한국이 UN 가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1991년.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내전이 벌어진다. 서로 경쟁하던 북한과 남한 대사관 직원들은 함께 모가디슈 탈출길에 오른다. 분명 적국이고 남보다 못한 이웃인데 피가 당기는, 남북한의 특수한 정서를 드라마와 코미디에 재치 있게 활용했다. 복고, 첩보물, 액션 소동극, 시가전을 그린 전쟁 영화 등 다양한 코드가 잘 어우러져 지루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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