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막장 드라마가 아닌 까닭
‘내 남편과 결혼해줘’란 제목을 처음 본 건 버스 광고였다. 얼마나 인기가 많길래, 어떤 내용이길래 버스에 웹소설 광고를 집행하나 생각했다. 2024년 새해 첫날, tvN에서 방영한 드라마의 1화를 본 후 납득했다. 이렇게 파괴적으로 끌린 드라마는 15년 전 <아내의 유혹> 이후 처음이었다. 정보를 찾아보니 원작이 나왔을 때 이미 김순옥 작가를 떠올린 독자가 많았다고. 남편과 절친의 불륜, 그들에 의해 사망한 여자 주인공, 살아 돌아온 그녀의 복수 등의 전개 때문에 <아내의 유혹>이 떠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두 작품의 평가에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15년 전의 <아내의 유혹>은 ‘막장 드라마’로 불렸다. 막장 드라마 중에서도 최고의 정점을 찍었다. 그런데 거의 비슷한 구도의 <내 남편과 결혼해줘>를 둘러싼 평가에는 ‘인간의 본질적인 열망’, ‘카타르시스’, ‘통쾌한 인과응보’ 등의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단순히 시간의 차이에 따른 것일까? 15년 전에는 막장 드라마라며 욕먹었는데 이번 생에는 카타르시스를 준다니…
주요 설정이 비슷하지만,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도파민을 분비시키는 양상은 <아내의 유혹>과 다르다. <아내의 유혹>은 주인공 구은재(장서희)가 ‘민소희’가 되어 정교빈과 신애리에 복수하는 이야기다. 그녀의 목적은 복수와 함께 결국 구은재라는 이름을 되찾는 것이었다. 시청자는 구은재가 승리하고, 정교빈의 집안이 망해버리고, 신애리가 불치병에 걸린 결말에 통쾌해했다. 그런데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강지원(박민영)은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필요가 없다. 그녀는 10년 전의 그녀에게 회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지원은 자신을 배신한 남편과 절친에게 복수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번 생에서 그녀에게 주어진 궁극적인 미션은 그 남자와 결혼하지 않는 것이다. 이때 회귀물 웹소설이 보여주는 ‘리셋’의 테마가 진행된다. 이번 생에서 그 남자와 결혼하지 않기 위해서는 저번 생의 자신과 똑같은 인간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그래서 주인공은 ‘흑역사’를 ‘역사’로 바꾸어가기 시작한다. 앞으로 10년의 정보를 이용한 주식 투자로 경제적 자립을 실현하거나, 10년 전에는 회피하던 사람들을 도와 조력자로 만들거나.
치정극으로 시작해 회귀를 거쳐 한 인간의 성장으로 진행되는 스토리는 분명 욕하면서 보던 <아내의 유혹>과 다른 것 같다. <아내의 유혹>의 구은재에게 성장의 테마는 없었다. 그녀는 오직 복수의 일념으로 달려간다. 또 다른 회귀물 웹소설 원작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윤현우도 강지원과 다르다. 윤현우는 1987년의 한국으로 회귀했지만, 그가 회귀한 인물은 그때의 윤현우가 아니라 재벌집의 막내아들 진도준이기 때문이다. 그 후 진도준으로서 그는 미래에 대한 정보와 재벌 가족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부를 쌓아가며 살아간다. 예전처럼 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예 다른 사람인 것이다. 회귀물 웹소설의 서사를 많이 경험한 건 아니지만,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보여주는 ‘성장을 위한 노력’의 서사는 이 이야기에 한 번 더 이입하게 만드는 충분한 이유다. 이것이 꼭 인생을 리부팅하고 싶다는 현재의 보편적인 욕망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꾸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거의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같은 꿈을 꾼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흥행과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등장, 그리고 이미 제작되었거나 제작 중인 또 다른 ‘회귀물‘ 드라마는 또 다른 ‘회귀’의 이야기를 탄생시킬 것이다. 앞으로는 기존 드라마 작가들이 직접 ‘회귀’의 테마를 끌어안을 수도 있다. ‘회귀물’을 대하는 소비자의 입장에서 볼 때, ‘회귀’는 스토리의 가능성을 크게 확장할 수 있는 테마다. ‘회귀물’ 웹소설과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작 ‘회귀’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설명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의 누구로 회귀했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아내의 유혹>은 판타지가 아니라 물리적인 귀환을 보여주려 한 드라마였다. 그래서 구은재가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민소희가 되는 설정은 지금까지 유머와 조롱의 ‘밈’으로 회자된다. 15년 전, 그때 구은재가 민소희로 회귀하는 설정이었다면 어땠을까?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드라마에서 실존한 ‘찐 소희’도 구은재가 빠졌던 바다에 똑같이 빠졌으니까. 그랬다면 죽은 줄 알았던 찐 소희가 다시 나타나 빌런이 되는 스토리는 나오지 않았겠지만, 구은재의 변신이 그렇게 조롱당하지는 않았을 텐데. 역시 ‘그럴듯한 이야기’라는 평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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