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 파리 패션 위크 2024 F/W 하이라이트

2024.03.11

by 김다혜

현실과 현실이 아닌 것, 파리 패션 위크 2024 F/W 하이라이트

오뜨 꾸뛰르의 도시답게 기성복과 꾸뛰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 패션 도시 파리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파리 역시 상업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모양입니다. 불경기인 것을 감안한다면 어쩌면 당연한 결과죠. 창의성과 상업성의 균형을 잘 맞춘 옷이 넘쳐났고, 여심을 자극하는 가방이 브랜드마다 대거 등장한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입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My Way’를 묵묵히 지키는 디자이너도 있습니다. “내 직업은 항상 현실적인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토니 바카렐로는 계절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얇은 스타킹 원단으로 런웨이를 채웠고, 릭 오웬스는 특유의 기묘한 SF적 상상력을 컬렉션에 투영했으니까요.

Saint Laurent 2024 F/W RTW

2024 F/W 파리 패션 위크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는 바로 ‘아카이브’. 1970년대 칼 라거펠트 시절의 끌로에를 되돌아본 셰미나 카말리, 알렉산더 맥퀸의 1995 S/S ‘버드’ 컬렉션에서 영감을 얻은 션 맥기르처럼 아카이브는 데뷔 쇼를 앞둔 젊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에겐 어쩌면 가장 안전한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쉬운 길도 아니죠. 미우치아 프라다처럼 매 시즌 자기 복제에 성공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Chloé 2024 F/W RTW
Alexander McQueen 2024 F/W RTW
Miu Miu 2024 F/W RTW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빈자리를 대신한 디자인 팀이 클래식 꾸뛰르에 집중한 지방시는 오히려 큰 호평을 받았고, 지난 30년간 인기 아카이브를 집대성한 샤넬의 버지니 비아르와 1960년대 ‘미스 디올’을 오마주한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역시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한편 루이 비통 하우스에서 10주년을 맞이한 니콜라 제스키에르가 이번 런웨이를 통해 자신의 아카이브를 재해석할 것임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Chanel 2024 F/W RTW
Dior 2024 F/W RTW

두 번째 키워드는 ‘K-셀러브리티’! 무려 30팀에 육박하는 한국 스타가 파리에 초대되었으니까요. 특히 쇼장 앞을 가득 채운 K-팝 팬들의 어마어마한 규모는 그 자체만으로 막강한 존재감을 과시했으니, 브랜드 역시 꽤 만족스러운 눈치입니다. 블랙핑크 멤버 전원이 각각 파리를 찾았고, 지젤이 로에베의 얼굴로 발탁되면서 에스파 전원이 브랜드 앰배서더가 되었으며, 필릭스는 루이 비통 런웨이에 섰을 뿐 아니라 정호연과 나란히 피날레를 이끌기까지 하는 등 K-셀러브리티의 엄청난 위력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K-스타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디자이너의 얄팍한 술수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시아 프레스의 자리는 여전히 메인 무대에서 벗어나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죠.

Loewe 2024 F/W RTW
Louis Vuitton 2024 F/W RTW

“스키아파렐리에는 셀러브리티와 꾸뛰르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입을 수 있는 일상적인 옷 역시 하우스의 일부입니다.” 다니엘 로즈베리의 말처럼 고유 색을 입힌 실용적인 기성복은 위기에 빠진 파리 패션의 돌파구가 되어주지 않을까요.

Courrèges 2024 F/W RTW
Victoria Beckham 2024 F/W RTW
Balenciaga 2024 F/W RTW
Hermès 2024 F/W R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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