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F/W 파리 패션 위크 DAY 3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포터빌을 찾은 릭 오웬스. 과거를 돌아보며 다시 출발선에 선 셰미나 카말리의 끌로에. 본격적으로 레디 투 웨어까지 영역을 넓히기 시작한 스키아파렐리. 파리 패션 위크 3일 차, 오늘의 쇼를 소개합니다.
릭 오웬스(@rickowensonline)
릭 오웬스 2024 F/W 컬렉션의 제목은 ‘포터빌(Porterville)’이었습니다. 지난 1월 선보인 남성복 컬렉션의 제목, 그리고 베뉴(프랑스 사회당 본부로 쓰던 건물로, 릭 오웬스가 2004년 매입해 지금까지 살고 있는 집)까지 전부 동일했죠. 릭 오웬스에게 포터빌은 고향인 동시에 트라우마이기도 합니다. ‘예민하고 어린 찌질이’였던 그는 늘 보수적이고 억압적이던 포터빌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었다고 밝혔죠. 당시 그가 떠올리던 ‘이상적인 세상’은 엄한 아버지가 푹 빠져 있던 오페라에 있었습니다. 특히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Edgar Rice Burroughs)의 작품처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스페이스 오페라였죠.
릭 오웬스는 아직도 포터빌을 악몽 같은 곳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때문인지 컬렉션에는 몸을 보호하려는 듯한 실루엣이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머리를 감싸는 발라클라바가 반복적으로 활용된 것은 물론 (쇼의 막을 내린 기괴한 형태의 드레스를 제외하면) 팔이나 다리를 드러낸 모델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죠. 얼굴 전체를 하얗게 칠하는 ‘콥스페인팅’마저 등장했지만, 컬렉션이 마냥 어둡게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가 과거로부터 도망만 치는 것이 아니라 직시하는 것을 택했기 때문이죠. 실제로 이번 컬렉션에서는 릭 오웬스의 과거 컬렉션에 대한 레퍼런스를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컬러와 실루엣은 첫 쇼였던 2002 F/W 컬렉션을 연상시켰고요. 릭 오웬스는 백스테이지에서 진행된 <보그> 인터뷰에서 커리어 초기에 군용 모포를 활용한 코트를 참고했다고 직접 밝히기도 했습니다. 할리우드 대로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브랜드를 론칭한 지 꼬박 30년이 지났지만, 릭 오웬스는 여전히 옷을 만들며 희망을 찾습니다.
끌로에(@chloe)
데뷔 컬렉션을 앞두고 미국 <보그> 인터뷰를 가진 셰미나 카말리의 비전은 명확했습니다. 1970년대, 칼 라거펠트, 그리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무언가를 갈망하고 아름다움을 원한다는 뜻의 프랑스어 ‘두세르(Douceur)’였죠. 카말리는 피비 파일로, 한나 맥기본, 클레어 웨이트 켈러와 함께 20년 가까이 일해온 ‘끌로에 전문가’인데요. 그녀의 첫 컬렉션은 모두가 다시 ‘끌로에 걸’이 되고 싶게 할 만큼 훌륭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키워드를 하나하나 살펴볼까요? 히피 문화를 빼놓고는 1970년대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1969년 있었던 우드스톡 페스티벌 이후, 히피의 애티튜드는 물론 그들이 옷 입는 방식까지 대중문화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거든요. 사람들은 히피의 옷차림을 따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플레어 데님, 화려한 패턴, 레이스, 하늘하늘한 소재로 대표되는 ‘보헤미안 시크’가 확실한 스타일 카테고리로 자리 잡게 된 것이죠. 끌로에의 2024 F/W 컬렉션에서도 이 모든 요소를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편안하고 가벼운 옷을 입은 모델들은 더없이 자유로워 보였죠.
1970년대 당시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리더는 칼 라거펠트입니다. 같은 독일 태생의 셰미나 카말리는 그를 ‘영웅과도 같은’ 인물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번 컬렉션에서 끌로에의 기초를 다진 칼에게 확실한 경의를 표했습니다. 카말리는 흰 레이스 톱과 블랙 플레어 팬츠를 매치한 3번 룩을 콕 집어 “1977년부터 1979년까지, 칼이 선보인 컬렉션에 대한 오마주”라고 설명했죠. 칼이 끌로에에서 종종 선보이던 케이프와 맥시 코트 역시 찾아볼 수 있었고요. 프런트 로에 앉아 있던 칼의 뮤즈, 제리 홀과 팻 클리브랜드는 과거 회상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스키아파렐리(@schiaparelli)
2019년 스키아파렐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된 이래 꾸준히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이는 다니엘 로즈베리. 쇼를 마친 후 그는 “스키아파렐리에는 셀럽과 꾸뛰르만 있는 게 아닙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입을 수 있는 현실적인 옷 역시 하우스의 일부죠”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오뜨 꾸뛰르를 근간으로 하되 기성복까지 하우스의 영역을 넓히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죠.
스키아파렐리의 2024 F/W 컬렉션은 ‘입어보고 싶은’ 룩으로 가득했습니다. 오프닝을 담당한 모나 투가드 역시 잘 재단된 체크 블레이저와 팬츠를 입고 있었죠. 다음 룩 역시 오피스 웨어에 가까웠습니다. 각진 어깨, 거대한 라펠, 넉넉한 실루엣의 팬츠를 매치해 남성적이면서도 어딘가 여유로운 무드를 자아냈죠. 이어 등장한 코트는 데일리 웨어로도 적합해 보였습니다. 짧은 길이의 피 코트에 가죽 치마를 매치하는 스타일링 역시 돋보였고요.
다니엘 로즈베리는 사소한 디테일을 더하며 모든 아이템을 ‘스키아파렐리답게’ 만들었습니다. 엘사 스키아파렐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으면 알아차리기 힘든 디테일이었죠. 처음 등장한 블레이저의 라펠에는 하우스를 상징하는 줄자 눈금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베이지 컬러의 수트 셋업 룩에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넥타이를 매치했고요. 머리카락으로 부츠를 장식하거나 웨딩 베일에 머리카락 모양의 자수를 새겨 넣었던 엘사 스키아파렐리에 대한 직접적인 레퍼런스였습니다. 이번 컬렉션 노트에는 “이제 어디서든 스키아파렐리를 입어도 좋습니다. 우선 ‘죄송하지만, 그 옷은 어디서 사셨나요?’라는 질문에 익숙해지도록 하세요”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 말처럼 다니엘 로즈베리의 기성복은 지나가는 사람이 말을 걸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매력이 있습니다.
#2024 F/W PARIS FASHION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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