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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심채경 & 정서경

2024.04.01

천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심채경 & 정서경

‘보그 리더: 2024 우먼 나우’

<보그 코리아>는 ‘보그 리더: 2024 우먼 나우’의 일환으로 3월 28일부터 사흘간 북촌에 위치한 한옥 ‘휘겸재’의 봄마당에서 여성 리더 6인을 만났습니다. 피겨스케이팅 금메달리스트 김연아와 샤넬 컬렉션의 피날레를 장식한 모델 신현지,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박세리와 수많은 불합격 끝에 할리우드에서 인정받은 배우 김민하, 자신을 사랑하는 천문학자 심채경, 우리나라 대표 시나리오 작가 정서경까지, 커리어와 성취, 고민과 발견, 가치와 목표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찼던 3일간의 토크 세션, ‘토크 나우’. 이금희 아나운서의 따뜻한 목소리와 함께한 그녀들의 길을 잠시나마 따라가보세요.

3월 30일, 거짓말처럼 따뜻해진 ‘토크 나우’ 셋째 날에는 심채경 박사와 정서경 작가가 함께했습니다. 가장 양극단에 있을 법한 두 사람을 한자리에서 만난 순간, 우리는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죠.

포토월 앞에 선 천문학자 심채경.
천문학자라면 사회의 부름과 기대에 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심채경 박사가 시간을 내 자리했다.

이금희 아나운서는 <보그>의 요청에 응할 줄 알았다며 ‘천문학자라면 사회의 부름과 기대에 응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는 심채경 박사의 저서 속 구절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에 심채경 박사는 “과학자가 되기 위해선 어른임에도 어른이 아닌 상태로 학교에 계속 있게 됩니다”라면서 “자연과학이나 공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벌 수 없는 기간에 지원금을 주어 생활할 수 있게 합니다. 또 천문학 한다고 하면 ‘그런 거 왜 해?’ 하고 말하시는 분은 별로 없어요. 그런 심적인 지지도 사회에 보답해야 될 저의 빚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면서 이를 천문학자로서 본분이라 여긴다고 말했죠.

현재 대전에 위치한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천문학자지만 일반 직장인처럼 낮에 일하고 밤에 퇴근한다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하늘을 관측하기 위해 밤을 기다리는 천문학자의 모습과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였죠. 일반 직장인과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면 야근을 즐기는 스타일이라는 점일까요? “제가 퇴근을 좀 늦게 하는 편이에요. 집안일을 하기 싫은 것도 있고 좀 바쁜 척하면서 집에 늦게 들어가고 싶은 것도 있고요”라며 집에 들어가기 싫어 야근을 택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야근을 하고 있는 자신에게 경비 아저씨가 “그럼 즐기세요”라 말했다면서 “이분은 이 연구원에 정말 오래 재직하신 분이구나,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야근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구나 생각했어요”라고 이야기했죠.

야근하는 시간을 즐긴다는 심채경 박사.
심채경 박사가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또 그녀는 2,000개의 자료를 매일 대조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이를 ‘지루한 즐거움’이라 부르고 “매일매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몰라요”라며 웃어 보였죠. 그녀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내일 한 번 더 해볼 수 있다는 사실과 내일 할 수 있는 일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좋아요”라고 덧붙여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금희 아나운서의 평처럼 ‘천문학자가 천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고요.

자신이 뛰어난 천문학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그녀는 “풀어나가는 과정 자체가 재밌다”라며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부족하게 느낀다거나, 나는 왜 이렇게 멍청할까 하는 생각은 잘 안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큰 꿈을 품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타입은 아니라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매일 할 수 있는 것을 해나가겠다는 그녀의 소신이 멋지게 다가왔음은 물론이죠.

포토월 앞에 선 정서경 작가.
“글을 쓰는 게 제일 쉬운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정서경 작가.

정서경 작가 또한 글과 ‘헤어질 결심’을 해본 적이 있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없어요”라고 답했습니다. “못하는 거 너무 많아요. 운전을 잘 못해요. 밖에 나갔을 때 이런 생각을 해요. ‘차를 몰고 나가면 이 길에 있는 많은 사람들 중 내가 하위 10%야’라고요. 요리도 잘 못해요.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서 혼란을 많이 느꼈어요. 선생님들이 ‘엄마들은 요리를 잘하죠’라고 말하면 ‘우리 엄마가?’라고 아이들이 속으로 생각했던 거죠. 그냥 글을 쓰는 게 제일 쉬운 것 같아요”라고 덧붙여 이번에도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글을 잘 썼던 것이냐는 질문엔 “잘 모르겠어요”라면서도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으로 얘기하잖아요. 자기랑도 이야기를 나누고, 속으로 어제 만난 친구, 또는 모르는 사람하고도 이야기하듯, 저는 어렸을 때부터 쭉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라고 과거를 회상했죠. “누구나 다 하지 않나요?”라고 동의를 구해 관객을 웃음 짓게 만들었고요.

그녀는 이날 “시나리오 쓰는 건 사실 어렵지 않다”며 “숫자를 쓰고 장소와 시간을 쓰고 동작을 쓴 다음에 대화를 쓰는 것까지” 하나의 문법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만의 시나리오 작법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을 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광장에서 큰 소리로 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고, 작은 방에서 둘만 조용히 하는 이야기가 있고, 아무한테도 말을 못해서 혼자 있는 방 안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 입 밖으로 내서 말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저는 영화건 드라마건 제가 쓰는 작품에 그것들이 다 담겨 있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이죠.

“사람들은 누구나 다 자기 마음속으로 얘기하잖아요.”
정서경 작가는 드라마 ‘작은 아씨들’, 영화 ‘헤어질 결심’, ‘박쥐’, ‘아가씨’, ‘친절한 금자씨’ 등을 집필했다.

또 “작가는 사실 수학자나 테니스 선수처럼 10~20대에 각광받기는 힘들고, 그렇게 됐다고 해도 30~40대까지 유지하기 힘든 직업인 것 같다”며 “요즘에는 글을 쓴다는 것이 오랫동안 삶의 많은 일을 그냥 부딪혀가면서 겪은 다음에야 할 수 있는 일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라고 덧붙였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모든 것이 이야기를 쓰는 데 자양분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죠. 앞으로 그녀의 이야기가 더욱 진하고 깊어질 일만 남은 것 같죠?

포토그래퍼
김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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