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뉴스

가장 샤넬적인 마르세유, 마르세유의 샤넬

2024.05.22

by 손은영

    가장 샤넬적인 마르세유, 마르세유의 샤넬

    그리스에서 배를 타고 출발한 올림픽 성화가 당도하기 직전, 2024년 5월 마르세유에 펼쳐진 ‘샤넬적인’ 순간.

    언제나 화창한 기후, 아름다운 해안선(플라주 뒤 프로페트(Plage du Prophète)와 플라주 뒤 프라도(Plages du Prado) 해변, 코르니슈 케네디(Corniche Kennedy) 해안 도로),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Olympique de Marseille) 축구 팀, 아름다운 절벽으로 유명한 칼랑크(Calanques) 등 지중해를 품은 도시 마르세유는 독특한 정체성을 지녔다. 역설적이게도 빽빽한 도시 구조와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곳. 마르세유는 항구 덕분에 교류와 항해에 적합한 활기찬 도시로 거듭났고, 지중해와 맞닿은 지리적 이점 덕분에 전통과 더불어 독특한 문화가 융성할 수 있었다. 레보드프로방스, 모나코,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샤넬의 버지니 비아르가 샤넬 크루즈 컬렉션 무대로 선정한 이유다. 또 대담하고 개성 넘치는 다양한 스타일은 도시의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크루즈와 공방 컬렉션의 영감을 도시와 문화에서 얻는 버지니 비아르에게 올해 특별한 영감을 준 마르세유는 여름의 에너지와 활력이 넘쳤다. 시각예술, 음악, 건축, 영화 등 많은 영역에서 창의성을 우선시하는 곳답게 도시의 영감에 뿌리를 둔 스트리트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에서 온 편안한 마린 스타일, 스포츠웨어의 믹스 매치 같은 자유분방한 패션 스타일과 지중해의 푸른색, 프로방스의 색감, 눈부시게 밝은 화이트, 반짝이는 프린트 등 다양한 취향은 마르세유를 패션, 공예 디자인의 메카로 만들었다. 샤넬 하우스와 이 도시의 인연은 1988년부터 시작됐다. 샤넬은 패션 전문 교육과 신인 디자이너를 지원하고, 컬렉션을 수집하고 전시 기획하는 패션 프로젝트를 위해 설립된 지중해 패션 연구소(Mediterranean Fashion Institute)를 후원,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파트너로 함께해왔다. 또 이듬해엔 보렐리성(Château Borély)에서 전시 <샤넬, 마르세유 패션의 시작(Chanel, Ouverture pour la Mode à Marseille)>을 열었다.

    활기차고 창의적인 예술 공동체 덕분에 수많은 문화 예술 단체가 활동하는 곳도 바로 마르세유다. 마르세유 현대미술관(Musée d’Art Contemporain de Marseille), 프랑스 현대미술 지방 재단(Frac Provence-AlpesCôte d’Azur), 프리슈 라 벨 드 메 현대미술 센터(Centre d’Art Contemporain de la Friche la Belle de Mai), 아트 갤러리, 연례 현대미술 박람회 아트-오-라마(Art-O-Rama), 또 2013년에 설립된 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Musée des Civilisations de l’ Europe et de la Méditerranée, MuCEM) 등등. 그 중 특히 마르세유는 근현대 건축사에 중요한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확실하고 매력적인 근거 중 하나로 르 코르뷔지에가 지은 첫 공동주택 시테 라디외즈(Cité Radieuse)를 꼽을 수 있다. 시테 라디외즈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주택 부족에 대응하기 위한 재건 노력의 일환으로 1947년부터 1952년까지 지은 주상복합건물. 유토피아적 비전의 결실이라 할 수 있는 이 공동주택은 많은 인원을 수용하도록 설계됐다. 건물에는 23가지 유형의 아파트 337세대가 있고, 대부분 복층 구조다. 21개의 객실을 갖춘 호텔과 상점, 옥상 체육관이 있어 르 코르뷔지에는 이를 ‘수직 마을’ 또는 ‘살아 있는 기계’라고 불렀다. 마르세유의 시테 라디외즈는 확실히 르 코르뷔지에의 여러 공동주택 가운데 가장 선구적이라 할 수 있다. 엄격한 기하학을 바탕으로 르 코르뷔지에가 발명한 모듈러(Modulor) 비율 척도에 따라 기둥 위에 거대한 콘크리트 막대를 올린 이 건축양식은 1920년대와 1930년대 모더니즘 스타일을 계승한 실용적인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이 같은 실용주의는 아파트 인테리어를 통해서도 표현되는데, 일부는 샬롯 페리앙과 장 프루베가 디자인했다. 입주민의 삶을 돕고, 여성을 가정과 가족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해준 공간을 통한 역량 강화와 재전유는 르 코르뷔지에가 감독한 이 건축 프로젝트의 핵심. 바로 이 혁신적이고 상징적인 근대 건축물에 샤넬 2025년 크루즈 컬렉션의 키워드가 숨어 있었다. “마르세유는 내 감정과 소통할 수 있는 도시입니다. 마르세유의 매력, 신선한 공기를 포착해 그곳을 지배하는 에너지를 전달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쇼 배경으로 시테 라디외즈만 한 곳이 없습니다”라고 비아르는 설명했다.

    실제로 건축 & 인테리어 잡지에서 봐온 시테 라디외즈의 장엄한 경관을 직접 마주하고 나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압권은 1950년대 초 완성된 이 공동주택에서 여전히 많은 마르세유 시민이 거주 중이라는 사실! 600명이 모인 시끌벅적한 쇼를 하는 동안에도 말이다! <보그> 팀은 큐레이터와 함께 시테 라디외즈의 공동 시설물과 은밀한 내부 공간까지도 구경해볼 수 있었다. 우리는 쇼가 시작되기 전 시테 라디외즈의 복도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서점, 빈티지 가구 및 패션 매장, 호텔 등을 방문했다(1949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 건물이 8에이커의 정원 가운데 서 있는 ‘아파트’ 건물이라기보다 ‘마을’에 더 가깝다고 묘사했다). 슈퍼마켓에 일시적으로 오픈한 샤넬 갤러리에서는 시인 라우라 바즈퀘즈(Laura Vazquez)와의 협업으로 마르세유 여성과 도시 풍경의 단편을 담은 패션 사진가 제이미 혹스워스(Jamie Hawkesworth)의 사진 다큐멘터리를 전시했다. 아파트 중 하나에서는 미국 화가 엘리자베스 글래스너(Elizabeth Glaessner)가 <퍼플> 매거진의 올리비에 잠(Olivier Zahm)이 조직한 예술가 레지던시기도 한 그곳에서 생활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보여줬다. 복도 바로 끝에는 1950년대 호텔 로비에 꽉 들어찬 녹음 스튜디오에서 샤넬 라디오 세션을 진행하는 캐롤라인 드 메그레(Caroline de Maigret)와 샤넬 앰배서더가 된 배우 고윤정을 만나볼 수 있었다.

    “태양, 건축, 음악, 춤, 마르세유는 자유분방한 분위기 또한 강합니다. 라이프스타일, 즉 일상생활 코드, 움직임을 유도하는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비아르의 설명처럼 바다와 바람, 웨트 수트에서 영감을 받은 실루엣이 런웨이를 지배했다. 아니스 그린 컬러의 샤넬 수트와 1960년대를 연상케 하는 드레스를 시작으로 프레스 스터드가 달린 다이빙 후드가 이번 크루즈 컬렉션의 핵심 레퍼토리로 등장했다. 비아르가 웃으면서 ‘스쿠버 턱시도 슈즈’라고 묘사한 매끄러운 검은색 플랫 슈즈도 마찬가지. 백악질의 파스텔, 콘크리트 회색, 건축물의 격자 패턴은 트위드 체크에 스며들고, 루프 모양의 오픈워크 니트, 바다 생물이 프린트된 러플과 섬세한 패치워크 레이스를 따라 흐르는 대각선 파도, 그물망 같은 골드 메탈 목걸이가 바다의 활기찬 에너지를 전했다. 또 네오프렌 같은 저지, 트위드 시퀸 재킷, 메탈릭 수영복 등 해변을 상징하는 그 밖의 모든 요소는 뜨거운 햇빛의 은빛 반사, 수영장에서 보내는 여름날의 추억을 떠올렸다.

    한편 주변 건축물의 색상, 격자 모티브 또는 기하학 모양을 활용한 롱 드레스, 튜닉과 함께 물고기 프린트 시폰 소재로 완성한 스웨트셔츠, 자수 장식 버뮤다 팬츠, 트위드 소재 사이클링 쇼츠, 오버사이즈 베이스볼 재킷은 올림픽과 축구 토너먼트 등 도시를 둘러싼 스포티브한 바이브로 컬렉션을 좀 더 입체적으로 감쌌다.

    지난 맨체스터 공방 쇼가 영국 제2도시의 힙한 음악과 산업, 역사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이번 크루즈 쇼는 한마디로 마르세유의 매우 구체적인 문화에 초점을 맞춘 컬렉션. “음악, 춤, 예술 등 매우 강력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샤넬이 여기 오는 것은 ‘어디에나 있는 창의적인 에너지를 발견하거나 재발견하는 방법’입니다”라고 샤넬 패션 부문 사장 브루노 파블로브스키(Bruno Pavlovsky)는 말한다. 그리고 쇼가 전부는 아니었다. 도시 건너편에 있는 샤넬은 MuCEM(유럽 지중해 문명 박물관)에서 파리에 있는 샤넬의 장인 워크숍 ‘Le19M’과 함께 광범위한 아트 콜라보레이션 시리즈를 선보였다. 예상치 못한 악천후에도 불구하고(오전 쇼는 예정대로 시테 라디외즈의 옥상 테라스에서 진행됐지만 오후 쇼의 런웨이는 아파트 복도로 옮겨졌다) 이번 크루즈 쇼를 통해 샤넬은 또 한 번 문화 후원자로서 현대 프랑스 국가 대사에 준하는 역할을 수행하기에 손색이 없음을 증명했다. (VK)

      COURTESY OF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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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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