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트랑에서 맛본 완벽한 휴식
휴양을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본 일이 없었다. 해외를 방문하는 목적은 오로지 쇼핑이었고, 아름다운 절경보다는 희귀한 빈티지 의류나 서적을 취급하는 숍이 매력적이었으니까. 매일 2만 보 이상을 걷는 전투적인 일정을 마친 뒤 곤죽이 되어 한국 땅을 밟고도 그런 생각은 변함없었다. ‘어차피 휴양지라고 불리는 곳에 가봤자, 제대로 쉬지도 못할 거야. 완벽하게 쉬기만 하는 여행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아.’ 그란 멜리아 나트랑(Gran Meliá Nha Trang)에서 3박을 보내고 난 뒤, 비로소 알게 되었다. 휴식만 취하는 여행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비루하던 상상은 틀렸다는 걸.
나트랑의 깜라인(Cam Ranh) 국제공항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자리한 그란 멜리아 나트랑. 새벽 2시에 도착해 깜깜해서 보지 못한 것이 다음 날 아침 태양 아래서 면면이 드러났다. 로비는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풀장과 모래사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로비에서 방까지 가는 길도 새롭게 느껴졌다. 열대식물로 가득한 돌길을 걸으며 ‘여행 왔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나무에 물을 주는 스태프들의 나지막한 인사말 역시 왠지 모를 여유를 주었다.
완벽한 휴식은 방 안에서 완성된다. 수영이 하고 싶을 때마다 객실에 딸린 개인 풀에 마음껏 몸을 던졌다. 풀 소리와 파도 소리를 들으며,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수영을 즐겼다. 시원한 얼음이나 속이 출출해 야식이 필요할 때는 객실 내의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언제나 미소를 머금고 있던 담당 버틀러의 방문은 매번 몇 분 내로 이뤄졌다. 발걸음이 닿는 대로 걷다 보면 해변가로 연결된 빌라의 비밀 통로가 펼쳐진다. 자그마한 프라이빗 비치에 놓인 선베드에 누워도 보고, 옅은 파도에 발 담그기를 반복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투숙객은 ‘현지 맛집’을 검색하거나 근처 식당의 구글 지도 평점을 확인하며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다. 현지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할 일은 더더욱 없다. 리조트 내부에만 세 곳의 근사한 식당이 있기 때문이다. 데일리 레스토랑 ‘내추라(Natura)’에서는 신선한 식재료를 활용한 지중해 음식과 아시아 퓨전 요리가 투숙객을 기다리고 있다. 스페인 태생의 ‘멜리아 호텔 인터내셔널’ 리조트의 자부심은 ‘히스패니아(Hispania)’에서 드러난다. 베트남 전역에서도 제일가는 수준의 스페인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일식 레스토랑 ‘시부이(Shibui)’는 베트남의 신선한 해산물을 활용해 스시와 철판 요리를 선보인다.
각종 액티비티 역시 그란 멜리아 나트랑에서의 경험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앞서 언급한 히스패니아 레스토랑에는 ‘프라이빗 쿠킹 익스피리언스(Private Cooking Experiences)’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근처 수산시장에서 직접 재료를 구매한 뒤, 스페인의 유명 셰프 마르코스 모란(Marcos Morán)의 레시피에 따라 파에야를 만들어볼 수 있다. 평온한 하루에 색다른 자극을 주고 싶다면? ‘카타마란 보야지(Catamaran Voyage)’에 참여하며 근처 열대 섬을 탐험하거나, ‘코랄 디스커버리(Coral Discovery)’ 프로그램을 통해 전문가와 함께 산호를 심으며 생태계 복원에 기여할 수도 있다.
내내 리조트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면,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포나가르 사원에 방문해보기를 추천한다. 기원전 781년에 세운 사원으로, 과거 베트남 중부를 지배하던 참족의 전통이 군데군데 녹아 있다. 그란 멜리아 나트랑에서 걸어갈 수 있는 ‘도 시어터(Do Theater)’ 역시 이색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전통 낚시 도구의 모양을 본떠 만든 극장에서는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베트남의 연대기를 현학적으로 담아낸 인형극이 펼쳐진다. 탈을 쓴 연기자가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할 때마다 아이들은 숨이 넘어갈 듯 웃고, 비장한 연기가 이어질 때 노인들은 ‘흡’ 하고 숨을 참을 만큼 흡인력이 있는 공연이다. 베트남이라는 나라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혀 없어도, 순수하게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완벽한 휴식’의 방점은 산토리 위스키에 찍혔다. 그란 멜리아 나트랑에서 보낸 마지막 밤, 레스토랑 시부이에서 일식과 위스키의 페어링을 경험하는 특별한 기회가 주어진 것. 3종의 야마자키 위스키와 1종의 하쿠슈 위스키로 이루어진 츠쿠리와케(Tsukuriwake) 시리즈 2024 에디션이 준비됐다.
첫 번째 페어링은 하쿠슈의 ‘2024 피티드 몰트(Peated Malt)’와 생선회의 조합. 하쿠슈 특유의 ‘깨끗한 스모키함’ 덕분에 각기 다른 생선회의 맛이 잘 느껴졌다.
위스키 페어링의 진짜 재미를 비로소 깨달은 건, 두 번째 페어링을 맛본 뒤였다. 노르웨이산 연어튀김과 미국산 오크통에서 숙성한 ‘골든 프로미스(Golden Promise)’는 완벽하게 상호 보완적이었다. 꿀과 과일의 달콤함이 담긴 위스키가 튀김 특유의 느끼한 맛을 중화한 것. 평소 튀김 한입에 탄산음료 한 모금을 반복하던 나로서도, 골든 프로미스만 있다면 튀김 10개는 거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날치알이 올라간 타이거 프론과 ‘아일라 피티드 몰트(Islay Peated Malt)’의 조합이었다. 아일라 피티드 몰트는 평소 우리가 접해온 위스키와 달리 스모키함이 덜하니, 훈연한 음식과 함께 맛보기를 권한다. 화룡점정은 핏기를 살짝 머금은 와규 스테이크와 ‘2024 미즈나라’의 페어링이었다. 일본산 참나무로 만든 캐스크를 활용해 오랜 시간 숙성한 미즈나라의 풍미는 여태껏 맛본 위스키와는 또 다른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적당량의 파무침이 올라가 그렇지 않아도 맛있는 와규와 입안에 긴 여운을 남기는 증류주의 조합은 ‘위스키 초심자’도 단박에 그 매력에 빠지게 할 만했다.
모든 일정이 끝나갈 때쯤, 베트남행 비행기 바로 옆자리에 앉았던 남성을 우연히 로비에서 마주쳤다. 서로를 알아본 우리는 가벼운 목례를 나눴다. 부인과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두 자녀와 함께 온 남성은 비행기에서 본 것보다 한층 편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베트남의 무더운 날씨에 아이들이 짜증을 내지는 않을지, 다음 일정으로는 무엇을 해야 가정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심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러니까, 그란 멜리아 나트랑에서 완벽한 휴식을 취한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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