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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의 새 문을 열다, 지드래곤

2025.06.05

샤넬의 새 문을 열다, 지드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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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불가, 유일무이, 지드래곤

지드래곤은 지드래곤이다. 샤넬 앰배서더 시리즈를 구상하는 내내 떠나지 않은 생각이었다. 샤넬에서 그가 했던 역할을 대신할 사람이 또 있을까? 2016년 지드래곤은 성별, 국적, 인종 등 모든 경계를 허물며 패션계의 중심, 럭셔리 중의 럭셔리인 샤넬에 무혈입성했다(겉보기에는 그랬다). 2014년을 기점으로 연달아 컬렉션에 초청받았지만, 글로벌 앰배서더로 발탁될지는 예상치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시아 남성으로서는 처음이었고, 대한민국에서도 럭셔리 브랜드의 앰배서더가 된 최초의 사례였다. 이름하여 국내 1호 앰배서더. 오히려 당시에는 얼마나 큰 사건이었는지 체감하지 못했다. 그저 ‘지드래곤이니까’라는 말로 모든 상황이 정리되던 때였으니까.

패션계에서 칼의 새로운 ‘잇 보이’로 불리며 패션인 사이에는 “Who is G-Dragon?(대체 지드래곤이 누구야?)”이라는 질문이 쏟아졌다. 칼 라거펠트는 지드래곤과 대한민국 대표 모델들을 한자리에 모은 <보그 코리아> 20주년 기념호 촬영을 위해 카메라를 직접 들었다. (아래 화보가 칼 라거펠트의 작품이다.) 인터뷰 약속을 잡고도 짬이 나지 않아 대면을 포기하고 서면으로 우회해도 답을 하지 못할 때가 허다했던 그가, 그것도 컬렉션이 끝난 바로 다음 날 쇼피스를 국내 모델들에게 가장 먼저 입히다니. 다음 날 로마 출장까지 잡힌 노장 디자이너가 이 스케줄을 허락했다. 물론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샤넬 크루즈 컬렉션이 진행될 만큼 한국 시장의 중요성이 날로 높아지던 때였다. 시기가 적절했다거나 운이 좋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드래곤이란 피사체가 칼의 뮤즈로서 그의 마음을 흔들었음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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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칼 라거펠트

샤넬 2015 가을/겨울 꾸뛰르에서 카지노 테이블에 앉아 있는 지드래곤이 그걸 증명한다. 이날 샤넬의 친구들은 프런트 로가 아니라 쇼가 진행되는 테이블 좌석에 앉았다. 크리스틴 스튜어트, 줄리안 무어, 릴리 로즈 뎁, 릴리 콜린스, 리타 오라 등이 참석했고, 그중 유일한 아시아계 남자가 지드래곤이었다. 이날 쇼가 끝난 직후 이례적으로 셀럽들을 한데 모아 단체 사진을 찍은 칼 라거펠트는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은 친구입니다. 모두 이 아이디어를 마음에 들어 했죠(All of the people you see here are friends. They all loved the idea)”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샤넬과 지드래곤의 10년 우정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K-팝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앰배서더를 발탁하는 패션계의 지각변동도 이때부터 일어난다.

Courtesy of Chanel

그는 작은 틈을 벌리고 벌려 물길을 낸 뒤 우리를 파도에 태웠다. 그가 주도한 변화는 단순히 구매를 유도하거나 K-팝 아티스트의 팬 결집력을 과시하는 데 있지 않았다. 여성 중심의 럭셔리 하우스에서 남성으로서 샤넬을 활용하는 법에 방점을 찍었다. 쇼마다 최선을 다해 샤넬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남성복 라인이 없는 샤넬에 해석의 여지를 남겨둔 것, 샤넬로 지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취향을 드러내는 자기표현의 수단이라는 것, 또한 타임리스한 샤넬의 클래식 아이템은 시대를 넘어 언제고 입을 수 있으며 아름답다는 것을 지드래곤만의 보법으로 펼쳤다.

화려한 트위드 재킷에 청바지를 매치하는 모습은 익숙할 것이다. 여기에 여러 개의 반지를 타노스처럼 착용하고, 브레이슬릿 여러 개에 네크리스와 이어링까지 더하는 맥시멀 레이어링이 그의 전매특허라는 사실도. 룩이 심플할 때는 특유의 펑키함을 드러내는 네일을 하거나(과거 <보그> 기사를 살펴보니 그는 화장 솜에 네일 리무버를 묻혀 일부러 손톱 군데군데 매니큐어를 일부러 지웠다고 적혀 있다), 슈즈에 페인트를 뿌리거나, 때로는 강렬한 헤어 컬러로 포인트를 준다. 과감한 모자도 즐겨 쓴다. 보터 햇부터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북슬북슬 털모자, 멀끔한 얼굴에 포커스를 맞추는 비니까지 적극 활용하며 스타일의 완성도를 높인다. 평소에도 알이 굵은 진주 목걸이를 레이어드하길 즐기고, 샤넬 백과 백팩을 애용하며 여성의 전유물로 여기는 아이템을 자유자재로 믹스했다.

제겐 여성복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샤넬은 유니섹스 의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니, ‘옷’이라기보단 ‘샤넬’을 입는다는 기분이죠.” – 2017년 10월 <보그 코리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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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지드래곤이 입었기 때문에 완판된다는 건 1차원적 해석에 가깝다. 칼 라거펠트는 지드래곤의 스타일을 두고 “지드래곤의 스타일을 좋아한다. 그는 익살스러운 면이 있지만, 절대 여자아이(Girlish) 같은 느낌은 없다”고 표현했다. 이는 샤넬 구매 여부와 관계없이 수트 일변도인 남성복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여성복만이 아니라 남성복의 경계를 확장하며 누구나 무엇이든 입을 수 있다는 인식을 제시한 것이다. 남성 또한 패션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럭셔리 아이템으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는 감각을 전달한다. 이것이 지드래곤이 지난 10년간 샤넬과 함께 해온 일이며, 매 시즌 컬렉션 포토그래퍼들이 지디(지드래곤은 기니까)를 목 놓아 외치는 이유다.

콧대 높은 미국 <보그>는 2016년 컬렉션에 참석한 지드래곤을 보고 카라 델레바인보다 더 아름다웠으며, 지루한 부클레를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2018년 들어서는 그를 ‘패션 혁신가(Fashion Innovators)’라 칭했다. 전문가들이 그를 변방의 스타가 아니라 패션계를 이끄는 주요 인사로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후의 일은 모두가 알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경계를 허물고 여성 컬렉션에서 영감을 얻는 데 자신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코닉한 트위드 재킷, 가브리엘 백, 스테이트먼트 주얼리, 풀 룩 등 모든 아이템을 변형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합니다. – 2019년 1월 영국 <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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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이 샤넬인 것처럼, 지드래곤은 지드래곤이다. 지드래곤은 그저 샤넬을 입은 남자가 아니라 샤넬이라는 브랜드의 성별을 해체하고, 럭셔리란 누구의 것이어야 하며,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정체성 중심의 대화를 아시아에서 주도한 최초의 인물이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그는 무대에 적극 올라서서 대화를 이끌었다. 2020년 <보그> 커버 모델로 만났을 때는 의도를 가지고 했던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샤넬에 대해 지닌 고정관념을 깨려고 한 건 아니에요. 갖고 있던 청바지에 샤넬 트위드 재킷이나 주얼리를 매치했을 때 더 재미있고, 갖춰 입은 듯하면서도 자유로운 룩이 완성되는 게 맘에 드는 거죠.” 이러나저러나 좋아서 했던 일이 문화적으로 의미를 갖게 된다면 더 좋은 것 아니겠는가(그 과정이 마냥 쉬운 길도 아니었으므로). 10년을 돌아보면 칼 라거펠트 사후에도, 여전히 샤넬이 사랑하는 하우스 앰배서더일 수밖에 없음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지드래곤이 만든 건 구매가 아니라 맥락이었으니까. 샤넬 트위드 재킷에 청바지를 입는 게 얼마나 근사한 일인지, 지드래곤은 자기식으로 연출함으로써 우리에게도 샤넬이 표현 가능한 언어임을 넌지시 말했다.

‘GD & CC’ 포토그래퍼 이준경

“자다가 일어난 모습 그대로 트위드 재킷만 걸쳐도, 샤넬 백 하나만 메도 그 자체로 어울려요. 일부러 연출하지 않아도 그렇게 입은 것처럼 보이죠. 어떻게 입어도 샤넬은 샤넬이니까.” – 2020년 10월 <보그 코리아> 인터뷰 中

지난 1월 우리는 지드래곤에게 기존 패션을 본인만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기준을 물었고, 그는 “지금이에요”라고 답했다. “너무 많은 걸 고려하지 않고, 지금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한 다음 결정하죠”라고 답변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2016년과 연결된다. 우리는 물었었다. “칼, 샤넬을 재해석하는 가장 혁신적인 방법은 무엇인가요?” 그가 말했다. “완전히 오늘날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거죠.” 지드래곤에게서 칼이 보였고, 칼은 아마도 그걸 진작에 알아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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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Images, 칼 라거펠트, Courtesy of Chanel, 이준경
섬네일 디자인
한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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