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반드시 찾아야 할 미쉐린 레스토랑 3
바다는 늘 제자리에 있고, 부산의 미식은 파도처럼 높이 솟아오른다. 2년 연속 미쉐린 1스타를 사수한 레스토랑 3곳을 경험하기 위해 부산행 열차에 탑승했다.

Palate 김재훈


해운대 달맞이길, 신비로운 위용이 느껴지는 새하얀 건물 3층에 자리한 모던 프렌치 레스토랑 팔레트(Palate). 창밖으로 바다가 만족스러울 만큼 시원하게 보이고, 새하얀 식탁보를 입은 테이블이 촘촘히 들어선 내부는 다정한 온기로 가득하다. 그 장면만 보면 고요하고 격식 있는 미식의 세계처럼 보이지만, 팔레트의 시작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 공간에 안착하기 전, 최초의 팔레트는 용호동의 어느 횟집 건물 3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쉽지 않은 환경이었어요.(웃음) 음식에 대한 기대감보다 아이러니한 공간에 대한 의구심이 더 짙게 드는 식당이었달까요. 팬데믹 시기에는 하루에 손님이 한 명도 없는 날도 많았는데···”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김재훈은 스물다섯 살에 그저 ‘먹고살기 위해’ 뒤늦게 요리를 시작했다. 시작은 단순했지만, 진로를 결정한 후의 궤적은 부산의 파도처럼 거세게 요동쳤다. 디테일에 집요하게 집중했고, 의문이 풀리지 않을 땐 아예 환경을 바꾸기도 하면서 스스로를 채근했다. 더 체계적으로 요리를 배우고자 호주로 떠나 8년을 보낸 그에게 요리는 어느새 삶이 되어 있었다. 이후에는 서울에서 얼마간 경력을 쌓은 후 다시 고향 부산으로 돌아왔다. 부산을 의식하며 요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시 특유의 맛과 질감은 어쩔 수 없이 김재훈의 손끝에 은은하게 묻어난다. 현지 식재료를 전면에 내세우진 않으나 지역의 개성을 너그럽게 드러내는, 팔레트의 스테디셀러인 다시마 아이스크림이 좋은 예다.

팔레트라는 이름은 어디에서 온 걸까? 미술 도구에서 차용한 건 아니다. “소믈리에가 와인을 설명할 때 ‘어떤 팔레트가 느껴지세요?’라고 묻곤 하잖아요. 좋은 음식이나 와인을 알아보는 감각(미각)을 의미하는 이름이에요.” 인상적인 첫인상을 남길 수 있도록 김재훈의 요리는 대부분 직관적이지만 강한 자극보다는 모든 요소가 조화롭게 응축되는 ‘궁극의 한 입’을 목표로 한다. 그가 네 가지 스낵으로 구성한 아뮤즈 부슈에 가장 공들이는 이유다. 뒤를 잇는 메뉴로는 봄에는 참나물과 달래 등을 너그럽게 버무려 만든 파스타가, 여름에는 소렐 허브를 활용한 디저트가 등장한다. “날씨가 더워지면 유제품을 절제하고, 식물성 오일을 넉넉히 사용해 가벼운 텍스처를 살리죠.” 김재훈의 차분한 성정만큼 방문객에 대한 배려심도 곳곳에서 세심하게 느껴진다. 코스는 계절마다 바뀌지만 같은 계절에 다시 방문하는 손님이 있는 경우 새로운 맞춤 코스를 준비한다. 지난 방문에서 마신 와인의 종류와 동행, 왼손잡이인지 여부는 더 은근한 배려를 위해 전부 빠짐없이 기록된다. “대부분 기념일이나 의미 있는 날 팔레트를 찾아주시니까요. 어쩌면 평생 기억될 한 끼 식사잖아요. 당연히 더 신경 써야죠.” 맞춤 서비스를 위해 모든 스태프는 매일 아침부터 운영을 시작하기 직전, 그리고 마감 후에도 시시때때로 미팅을 거듭한다. “늘 제자리에 있지만 철마다 새로운 색과 먹거리를 내주며, 바다처럼 묵묵한 한 방을 주는 다이닝이 되고 싶습니다.” 김재훈이 바다를 바라보며 또 한 번 결심한다.
Fiotto 김지혜∙이동호

이탈리아어 명사 ‘피오또(Fiotto)’는 무엇인가 갑작스럽고 강렬하게 분출하는 상황을 묘사하는 단어다. 식재료를 향한 김지혜∙이동호 셰프의 과학자 같은 열의가 바로 그렇다. 직접 마주한 이들은 요리사이자 농부이며 온갖 식재료를 실험하는 연구원 부부로 보였다. 그런 그들에게 올해도 미쉐린 1스타와 그린 스타(지속 가능성의 가치를 적극 실천하고 있는 레스토랑에 주어지는 타이틀로, 올해는 피오또를 비롯해 총 세 곳의 레스토랑이 호명됐다)가 주어졌다.

경북 영천에 농장을 두고 있는 김지혜와 이동호는 일주일에 두세 번 텃밭에 가서 직접 식재료를 재배하고 수확한다. 갓 딴 채소는 다채로운 방법으로 저장되고, 코스 전반에 다양한 생애 주기의 재료를 활용한다. 싱그러운 채소가 시간이 흘러 숙성된 그윽한 맛을 내기도 하고, 때에 따라 퓌레로 탈바꿈하거나 발효와 건조를 통해 식초나 파우더가 되는 식이다. “텃밭을 일구기 전까지는 시장에서 식재료를 수급하니 작물에 대한 이해도가 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해요. 계절의 흐름은 시장에서만 수동적으로 느꼈죠. 그런데 직접 농사를 짓고 보니 농법과 유통 과정, 트렌드에 따라 소품종화되는 채소가 정말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 모든 과정을 직접 통제하는 즐거움이 꽤 큽니다.” 식재료에 대한 두 사람의 애정을 결코 견줄 수 없듯 <보그 리빙> 인터뷰 내내 이들은 함께 문장의 끝을 맺으며 한목소리로 답변했다.

지난해 키운 작물은 50여 종에 이른다. 수확이 끝나는 늦가을부터 초봄까지는 저장된 식재료를 사용해 코스를 꾸리고, 재료가 고갈되거나 소출이 부실할 땐 메뉴 전체를 바꾸는 유연함을 발휘한다. “지난해에 밭고랑 한 줄에서 수박무가 겨우 몇 개만 나온 적이 있어요. 구상한 메뉴를 통째로 손봐야 했죠. 수확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 전부 말려서 스톡으로 만들기도 해요.” 온갖 불확실성 속에서 메뉴를 고안하고, 요리하고, 선보이는 일은 끝없는 반복과 관찰, 실패로 점철된 지난한 과정이다. 키울 수 없는 오렌지 대신 단호박 식초에서 유사한 산미를 찾고, 아몬드 대신 볶은 가지에서 고소함을 추출하는 일은 스스로 깨쳐야 한다. 이동호 셰프는 새 메뉴를 짤 때마다 “클라이맥스를 어디에 둘지 고민한다”고 했다. 코스 요리를 하나의 악곡으로 비유한다면 크레셴도보다는 맛과 감정의 변주, 온도의 상승과 하강, 산미의 배치를 모두 고려해 다소 들락날락한 구성을 지향한다. “최근에는 코스 중간에 한우 요리를 배치했어요. 거기서부터 본격적으로 요리가 시작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죠. 손님이 그런 흐름과 의도를 알아차릴 때의 희열이 정말 큽니다.” 입안에서 모든 것이 본능적으로 이해되는 부족함 없는 테이블을 위해 오늘도 피오또는 땅과 주방 사이를 성실하게 오간다. 그렇게 지나온 5년은 결코 수월하지 않았지만, 김지혜와 이동호는 사활을 건 노력 끝에 결국 피오또만의 지속 가능한 미식 세계를 완성했다.
Mori 김완규

가이세키는 산과 바다와 땅의 진미를 차분하고 정갈한 흐름으로 즐기는 일본식 코스 요리다. 모리(Mori)는 강과 바다, 산과 들을 모두 지닌 부산에 위치한 만큼 식재료가 다채로운 부산식 가이세키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곳이다. 대화 내내 단단한 요리 철학이 돋보인 김완규 셰프는 일본에서 기본기를 갈고닦았으며 팬데믹 시기 일본인 아내와 함께 귀국해 부산에 자리 잡았다. 본래 고향인 창원에 레스토랑을 열 계획이었으나 부부의 생활 여건과 환경을 고려해 해운대를 택했다. “생존을 위한 전략이었는데 그간 다져온 기술과 감각, 훌륭한 식재료를 수급하기에 아주 이상적인 환경이었죠.” 김완규가 거침없는 말투로 이야기했다. 새벽 경매 후 가장 신선한 생선을 바로 공급할 수 있는 데다 귀한 어종을 소량으로도 구할 수 있는 소중한 타이밍을 위해 그는 매일 아침 7시면 자갈치시장부터 광안리 민락어민활어직판장까지 종횡무진한다. 일본에서 즐겨 사용한 식재료를 모두 구할 순 없었지만 없는 재료에 연연하진 않는다. “처음엔 솔직히 힘들었습니다. 마트에서 보이는 채소도 무, 대파, 양파뿐이더라고요. 전화 통화도 많이 하고 발품도 팔며 어부들과 주변 상인들께 인사하러 다녔어요. 좋은 생선은 외지인에게 쉽게 내주지 않거든요.” 특히 중요하게 여긴 식재료는 다시마다. 팬데믹으로 물류의 흐름이 멈추며 일본 다시마를 구할 수 없게 되자 전국에서 다시마를 공수해 맛봤는데 부산의 다시마가 으뜸이었다.

해산물은 기본, 김완규는 산과 들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를 섬세하게 조합해 코스를 구성한다. 초당 옥수수와 성게알을 곁들인 소면, 은어구이는 여름을 겨냥한 메뉴다. 한 입만으로도 밀도 높은 맛과 계절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부산에서 나는 제일 맛있는 식재료로, 부산의 사계절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미쉐린의 별을 획득한 만큼 디테일도 놓칠 순 없다. 모리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식기와 테이블 세팅을 전부 달리해 손님이 제철 요리를 음미하는 동시에 온몸으로 계절감을 느끼도록 분위기를 조성한다.


매일 저녁 모리에 입성할 수 있는 손님은 단 아홉 명이다. “좌석 수를 늘리는 것보다 맛의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훨씬 중요합니다.” 모리의 요리를 맛본 이들은 겉보기엔 단순하지만 많은 것이 응축된 맛이라고 증언한다. “일식과 한식에는 서양 요리에서는 경험하기 쉽지 않은 감칠맛이 있습니다. 단순히 짜거나 매운 음식이 아니라 입안에 가득 퍼지는 감칠맛을 일으키는 것이 핵심이에요. ‘우아’ 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면 사실상 실패한 요리나 다름없죠.” 메뉴는 매일 달라지는 것이 원칙이며 손님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하다 싶으면 다음 날 처음부터 다시 구성을 손본다. 그렇게 계절을 따라 흐르되 맛에 대한 한결같은 기준과 성실함을 증명하는 메뉴가 매일 모리의 테이블을 가득 채운다. (VL)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글
- 유승현
- 사진
- 강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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