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발리 쇼핑 리스트에 미술품을 추가할 시간, 아트 앤 발리

2025.09.19

발리 쇼핑 리스트에 미술품을 추가할 시간, 아트 앤 발리

누아누 크리에이티브 시티(Nuanu Creative City)의 전경.

발리는 오랫동안 문화예술의 섬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곳의 현대미술을 집약하는 플랫폼은 부재했다. 운 나쁜 여행자들은 발리 미술에 경의를 표하고자 ‘아트 빌리지’로 알려진 곳들을 찾았다가 산더미처럼 쌓인 조악한 기념품과 복제화에 실망하고는 했다. 지역 갤러리들은 규모가 작고 드문드문 떨어져 있어서 클러스트 효과를 내기 어려웠다.

올해 첫선을 보인 ‘아트 앤 발리(Art&Bali)’ 아트페어는 이런 혼란을 잠재우고 발리의 현대미술 지형도를 새로 그리려는 야심에 찬 시도다. 9월 12~14일, 짱구 북부 ‘누아누 크리에이티브 시티(Nuanu Creative City)’에서 개최된 페어에는 17개 갤러리와 150명 이상의 아티스트가 참여했는데 그중 70%가 인도네시아 작가였다.

2025 아트 앤 발리(Art&Bali).
2025 아트 앤 발리(Art&Bali) 전경.

행사가 열린 누아누 크리에이티브 시티는 예술, 웰니스, 주거를 결합한 공간이다. 서울숲과 비슷한 크기인 44헥타르에 달하는 아름다운 정원을 자랑한다. 여기에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헤리 도노의 대형 설치 작품 ‘트로코모드’, 발리 작가 치코 위라하디와 프랑스 건축가 아르튀르 마무-마니가 제작 중인 ‘THK 타워’ 등 랜드마크가 있어서 페어 기간이 아니어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하다. 아트 앤 발리는 올해 7월 론칭한 국제사진전 ‘포토 발리(FOTO Bali)’와 더불어 누아누 크리에이티브 시티가 연례 행사로 정착시키려는 이벤트다.

아트 앤 발리는 ‘아트 자카르타’, ‘아트 SG’ 같은 동남아시아 대형 페어와 경쟁하는 규모는 아니다. 대신 발리의 소비 생태를 반영한 전략적인 설계로 확실한 수요층을 공략한다. 이들의 주요 타깃은 발리의 리조트, 빌라, 별장 소유자, 그리고 수집품으로 여행을 기념하려는 사람들이다. 이를 위해 아트 컬렉터 패스와 커뮤니티 행사를 통해 멤버십을 강화하고, 지역 아티스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미술 수집의 진입로가 되어줄 1,000달러 미만의 실속 있는 작품을 다수 포함시켰다. 인도의 사프란 아트, 포토닉 갤러리, 세렌디피티 예술 축제 등과 협력해 아시아 작가들을 세계에 소개해온 켈상 돌마(Kelsang Dolma)가 총괄 디렉팅을 맡았다. 또한 스위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도네시아 출신 큐레이터이자, 2019년 동남아 최초 뉴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미디어 아트 글로발레(MAG)’를 설립한 모나 리엠(Mona Liem)이 특별전 ‘테라 넥서스(Terra Nexus)’를 큐레이팅했다.

누아누 크리에이티브 시티(Nuanu Creative City)의 전경.
2025 아트 앤 발리(Art&Bali) 전경.
2025 아트 앤 발리(Art&Bali) 전경.
Labyrinth Dome – Bali Mystic

2025 아트 앤 발리 참가 갤러리의 면면을 보면 아트페어의 초점 영역이 더 선명해진다. 인도네시아 전통 미술에 기반한 작품을 주로 소개하는 산트리안 아트 갤러리, 접근성 높은 판화 작품을 유통하는 아시아 퍼시픽 프린트 클럽, 자카르타의 팝아트 갤러리 코탁 아트 컬렉티브, 발리와 바르셀로나 양쪽에서 아트 컨설팅과 큐레이션 서비스를 제공하는 루앙 등 ‘발리’, ‘인도네시아’, ‘현대미술’이라는 화두 아래 다양한 움직임을 담아냈다. 사트야 칩타, 소피아 스키단 등 발리에서 활동하며 세계적 인지도를 쌓아가고 있는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아트 앤 발리는 여기에 한국, 일본, 싱가포르 갤러리를 더해 글로벌 페어로서 확장력을 시험했다. 한국에서는 ‘꿈꾸는 낙타’ 시리즈의 윤송아, 은은한 위트가 담긴 초현실 정물화를 추구하는 유수, 패션과 회화, 전시 기획, 미디어아트, 설치 등 전방위로 활동 중인 콘스텔라 디엘 작가가 참여해 현지 미디어와 바이어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발리는 서민 주택도 그림, 공예, 식물로 장식하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일 정도로 풍부한 예술 토양을 간직한 지역이다. 관광객이 연간 700만 명 찾는 휴양지, 젯셋족이 사랑하는 도시, 현대판 히피와 보헤미안의 성지다. 요컨대 현대미술 허브로서의 요건을 충분히 갖춘 것이다. 아트 앤 발리가 그 잠재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인도네시아 예술 시장의 판도도, 당신의 여행도 달라질 것이다.

이숙명

이숙명

칼럼니스트

영화 잡지 <프리미어>, 패션 잡지 <엘르>, <싱글즈>에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2018년부터 발리에 거주 중이며 대중문화와 라이프스타일 칼럼을 주로 씁니다. 저서로는 <패션으로 영화읽기>, <혼자서 완전하게>, <사물의 중력>, <나는 나를 사랑한다>, <발리에서 생긴 일>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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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urtesy of Art & Ba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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