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봄/여름 밀라노 패션 위크 DAY 3
지금 세상은 불안합니다. 2026년 봄을 준비해온 프라다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사람들은 히어로를 기다리고요. 그 마음을 들여다보면 그저 조금 더 나은 일상을 바란다는 걸 알게 됩니다. 혁명이 아닌, 희망의 징조를요. 긍정은 현실을 직면하고 인정하는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찾아옵니다. 거기에서 쇼의 만듦새가 갈리죠. 룩마다 기발함을 쏟아내는 게 아니라, 의도가 뚜렷하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돋보이며 변주의 과정을 촘촘하게 드러내야 설득력을 얻습니다. 각자가 실력을 발휘한 밀라노 셋째 날 무대들을 살펴보시죠.

프라다(@prada)
프라다는 첫 번째 룩부터 이번 컬렉션의 코드를 확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자유와 불안을 거쳐, 다시 질서를 찾게 되는 순환을요. 군복 셋업, 각진 토트백과 로퍼 차림에 굳은 표정으로 등장한 모델은 절제된 단호함을 상징했습니다. 하지만 긴장한 턱 아래로 크리스털 드롭 이어링이 명랑하게 흔들리고, 젤을 발라 쓸어 넘긴 앞머리와 달리 목뒤로는 머리카락이 반항적으로 삐져나왔습니다. 그 불협화음에서 이번 컬렉션의 테마가 스며 나왔죠.
이후 군복과 오페라 글러브, 프레피 폴로와 버블 스커트 같은 의외의 조합이 전개됐습니다. 그 속에서도 과감한 컬러 배치와 동시대 여성의 실루엣을 조명하는 프라다의 무드는 여전히 유지했고요. ‘프라다-이즘(Prada-ism)’이라는 현상을 실감한 순간이었습니다. 인상 깊었던 건 가슴을 지탱하는 밑 밴드를 빼고 모양만 낸 브라 톱, 몸에서 떠 있는 서스펜더 스커트, 깊이 파여 훌렁 벗겨질 듯한 브이넥 니트 같은 옷들이었습니다. 옷의 핏이 비틀려 있다기보다 아예 핏을 만들지 않은 쪽에 가까웠죠. 마치 옷들이 몸을 떠나 자유를 찾아가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군복의 엄격함과 이 자유로운 흐름이 극과 극으로 치닫는 가운데에서도 프라다는 중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변화를 모색하는 만큼 그 후의 적응도 중요해요.” 미우치아 프라다의 의도가 적중한 컬렉션이었죠. 라프 시몬스도 동의했습니다. “세상이 너무 하드코어하지만 아름다움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마주해야 해요.” 결국 프라다는 혁명이 아니라 도약을, 게임 체인저가 아닌 균형을 제시했습니다. 불안한 시대에 더 설득력 있는 응답이었습니다. 프라다가 언제나 한발 앞서는 이유겠죠. 무엇보다도, 당장 따라 입고 싶은 아이템이 많았습니다. 버블 헴 원피스 위에 입은 펑퍼짐한 군용 재킷, 레이어드 스커트, 그에 비해 단출하게 떨어지는 블레이저! 꼭 풀 버전 영상으로도 관람하시길 권합니다.











모스키노(@moschino)
모스키노는 재치로 무대를 채웠습니다. 일상 속 흔한 물건을 귀한 오브제로 탈바꿈했죠. 화장실 브러시 모양 샌들, 택배 박스 가방, 티셔츠를 이어 붙인 드레스, 심지어 냄비까지 등장했습니다. 아드리안 아피올라자는 1960년대 말 이탈리아 미술 운동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를 영감 삼아, 평범한 사물을 유머러스하게 비틀었습니다. “귀함이라는 개념을 ‘궁핍한 곳’에서 가져오고 싶었어요.”
그러나 브랜드의 정체성은 잠시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문 프린트, 스마일 심벌, 그리고 ‘Niente(無)’ 메시지 같은 프랑코 모스키노(Franco Moschino)의 유산은 여전히 유효했지만, 그 이상을 촘촘히 구축했는가는 물음표로 남았습니다. 사람들이 ‘모스키노’를 입었음을 내보이고 싶어 할 만한 ‘상징성’ 말이죠.











막스마라(@maxmara)
막스마라는 로코코 무드로 컬렉션을 감쌌습니다. 트렌치 코트 어깨와 펜슬 스커트 엉덩이에서 솟아오른 거즈 러플, 귀족들의 도자기에서 영감을 얻은 플로럴 프린트, 꽃잎처럼 겹겹이 쌓인 시폰 스커트가 무대를 장식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디테일은 정말 장식일 뿐, 중심은 아니었습니다. “테마가 본질을 흔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이안 그리피스의 뜻이었죠.
막스마라의 본질은 언제나처럼 테일러링과 코트였습니다. 날카롭게 재단한 수트가 줄을 지었죠. 트렌치 코트는 스위트하트 네크라인으로 확장하거나 크롭트 톱과 펜슬 스커트로 분해했습니다. 허리에는 검정 벨트를 둘러 절제했고요. 막스마라는 혁신보다 신뢰를 택했습니다. 브랜드의 입지를 고려한 신중한 선택이었죠.









엠포리오 아르마니(@emporioarmani)
이번 컬렉션은 애초에 창립 50주년 기념 쇼로 기획되었으나,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타계한 후 추모 무대로 바뀌었습니다. 무대는 무거운 동시에 허전했습니다. ‘여행에서 막 돌아온 순간의 몽환적 감각’이라는 테마와 아직 실감 나지 않는 그의 부재가 겹쳤죠. 뉴트럴한 색감의 루스한 면으로 시작된 컬렉션은 메탈릭한 실크, 이캇(Ikat) 프린트, 허리선을 잡은 벨트로 이어지며 점차 힘을 쌓아갔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시퀸이 더해져 클라이맥스를 향했고, 마지막은 핫핑크와 보라, 바닷빛 시폰으로 만든 홀터 드레스와 브라 톱, 하렘 팬츠가 런웨이를 물들이며 폭발적인 피날레를 완성했습니다. 관객이 오랜 시간 보낸 기립박수는 단순히 무대를 향한 환호가 아니었습니다. 컬렉션 곳곳에 스며든 특유의 코드를 구축해온 아르마니에게 사랑과 존경을 표하는 것이었죠.












#2026 S/S MILANO FASHION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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