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보그’가 만난 ‘런웨이’! 미란다와 앤디, 메릴과 앤

2026.05.04

  • VOGUE

패션 화보

‘보그’가 만난 ‘런웨이’! 미란다와 앤디, 메릴과 앤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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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그’가 만난 ‘런웨이’! 미란다와 앤디, 메릴과 앤

불확실한 시대에도 패션은 대담하고 매거진은 새롭다. 20년을 초월해 마주한 미란다와 앤디처럼.

That’s All, They’re All!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 두 이름으로 찍는 확신의 느낌표.

“마감은 마감이 한다.” 매거진 업계에서 잠시라도 일했던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법한 말이다. 5월호 마감 열차에 탑승한 나 역시 이 말을 되뇌고 있다. 보통은 인터뷰이 섭외 상황이 여의치 않거나 써야 할 원고가 산더미처럼 쌓였을 때 떠올리는 주문이지만, 이달은 상황이 다르다. 아주 솔직히 한껏 긴장된 채 이 말을 읊조리고 있다. 시작은 몇 달 전, 여고생이었던 내게 낭만과 동경을 심어준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주연배우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을지 모른다는 소식에서부터였다. <보그 코리아>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의 협업을 두고 긴 논의가 이어졌다. 그 끝에 K-팝을 대표하는 걸 그룹 아이브의 멤버이자 영화의 빅 팬인 장원영이 두 배우를 만나 영화에 대해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영상 콘텐츠가 완성됐다. (세 사람의 인터뷰 영상은 영화 개봉 직전 <보그> 유튜브 채널에서 공개된다.

영상 콘텐츠를 촬영한 직후 두 배우와의 짧은 포트레이트 촬영 시간이 주어졌다. 20년 만에 성사된 작품이자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 개봉을 진행하는 만큼 두 사람의 스케줄은 촌각을 다투며 채워졌고, 매거진 가운데 포트레이트 촬영이 허락된 것도 <보그>가 유일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내러티브와 캐릭터를 연기했던 두 배우를 한 앵글에 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그림”이라는 동료들의 말이 귓가를 스친다. 한 앵글을 찍기에도 빠듯한 시간이지만 최선을 다해 무엇을 담아낼 수 있을까. 지난 10년 치 두 배우의 화보, 인터뷰를 며칠간 살폈다.

<보그> 촬영 전날, 아침부터 용산의 한 극장을 찾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푸티지 시사회에 참석했다. 푸티지는 20분간의 짧은 맛보기 영상이었지만 내용만큼은 현실감이 눅진히 묻어 있었다. 영화 속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는 20년 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당시와 완전히 달라진 미디어 시장을 마주했다. 위풍당당했던 과거의 <런웨이>는 모종의 스캔들로 광고주가 등을 돌릴 위기에 처한다. 미란다의 어시스턴트였던 앤디 역시 ‘골드 키보드’ 상을 수상하는 기자로 성장했지만 매체의 재정난으로 인해 돌연 문자로 해고 통보를 받는다. 수상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분노에 찬 앤디는 ‘동시대 저널리즘’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해당 영상은 SNS 알고리즘을 타고 많은 사람에게 회자된다. <런웨이> 본사는 앤디를 피처 에디터로 스카우트해 광고주의 돌아선 마음을 붙잡으려 하고, 두 사람은 여기서부터 재회한다. 과거 미란다와 함께했던 에밀리가 디올 임원으로 등장하며 미란다와 에밀리의 관계 또한 역전되었다. 지난 10여 년간 잡지 매체의 크고 작은 이슈와 흥망성쇠를 지켜본 목격자로서 도입만으로도 흥미진진했다.

“음악계를 비롯해 패션과 뷰티 분야까지, 전 세계 유스 컬처(Youth Culture)를 주도하는 나라.” 앤 해서웨이가 설명한 전 세계 최초 한국 개봉 연유는 개봉 첫날 15만 명의 화답으로 증명됐다. 한국 유스 컬처를 상징하는 장원영과 함께한 메릴 스트립과 앤 해서웨이.

4월 7일 저녁 내한한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의 두 배우. 공항에 도착해 팬들에게 손을 흔드는 영상으로 실시간 SNS를 도배했다. 긴장감을 안고 퇴근한 밤, 메릴 스트립과 ‘패션계의 교황’이라 불리는 동시에 ‘미란다 프리슬리’의 실제 모델인 미국 <보그>의 전 편집장이자 현 콘데 나스트 CCO(Chief Content Officer)인 안나 윈투어가 함께한 미국 <보그> 5월호 커버 인터뷰가 업로드되었다. 두 사람의 인터뷰는 배우 겸 영화감독 그레타 거윅이 진행했고 전설적인 사진가 애니 레보비츠가 촬영을 맡았다. 더욱이 안나 윈투어, 메릴 스트립, 애니 레보비츠 세 사람 모두 1949년생, 76세의 동갑내기 여성으로 굳건히 현역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 더 유의미했다. 이번 기사는 몇 달간의 계획과 설득, 조율 끝에 완성된 것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감도의 기획을 추구하는 패션지라는 미디어이기에 가능했다. 기사를 기획한 미국 <보그> 콘텐츠 책임자 클로이 말 역시 “동시대 문화를 이렇게 한 장면으로 기록하다니!”라며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촬영을 앞둔 밤, 지구 건너편 에디터의 기획과 두 관록 있는 어른의 깊이 있는 대화에 감복한 채 휴대폰 속 기사를 하염없이 들여다봤다.

촬영일 아침, 2시간가량의 현장 준비가 마무리되고 두 배우가 들어섰다. 장원영의 진행 아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1·2의 패션, 연기 비하인드 토크가 이어졌다. 이윽고 두 배우가 <보그 코리아> 카메라 앞에 섰고, 그들의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한낮의 꿈처럼 촬영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다. 메릴 스트립의 고혹적이고도 침착한 시선, 앤 해서웨이의 시원하고도 사랑스러운 미소와 함께(같은 시간 <보그> 패션 팀은 영화관에서 프라다 백을 포착하는 화보 촬영에 열심이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원작 소설가이자 안나 윈투어의 어시스턴트로 일했던 로렌 와이스버거는 냉철하고 강한 존재감의 ‘미란다’를 당시 주류를 이루던 로맨틱한 여성스러움과는 어긋난 채 조용한 저항의 미학을 펼친 미우치아 프라다의 프라다로 연결했다. 텐트 폴 무비도 관객도 줄어든 시대에 영화관에 놓인 프라다 백은 어떤 메시지를 함축할까.

20년간 켜켜이 쌓인 미란다와 앤디의 서사가 2026년 봄 ‘보그 코리아’에서 완성되는 순간.

미국 <보그> 인터뷰 중 메릴 스트립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에 출연한 계기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이 세계의 ‘비즈니스’ 자체에 끌렸어요. 수많은 사람의 생계를 짊어지고 거대한 조직을 굴리며, 어떻게든 그 체계를 유지해나가는 일 말이에요. 이번 스토리를 보면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죠. ‘이 사람들은 앞으로 어디로 향하게 될까?’ 지금은 모든 게 흔들리고 있어요. 제도는 약화되거나 와해되는 중이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했어요. 그리고 지금의 업계에 대해 꽤 본질적인 지점을 짚어냈어요.” 메릴의 생각에 안나 윈투어의 답변은 명쾌했다. “많은 게 달라졌지만, 저는 이걸 붕괴가 아니라 변화라고 여겨요. 우리는 여전히 이 자리에서, 각자의 일을 이어가고 있어요.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에요. 하나가 아니라 여러 플랫폼에서 일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흥미롭죠. 더 많은 사람에게 닿을 수 있으니까요.”

플랫폼은 분산되고 권력은 이동한다. 알고리즘은 취향을 잘게 쪼개고, 브랜드와 매거진은 과거의 단일한 권위를 전제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떤 창작물은 새로운 기류를 만든다. 패션 산업은 여전히 동시대가 원하는 메시지와 이미지를 무엇보다 빠르게 만들어낸다. 20년을 건너온 작품과 배우를 단순히 홍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대에 남길 메시지를 담아 하나의 프레임, 콘텐츠로 만드는 일은 여전히 매거진의 몫이다. 자본과 속도의 논리로 전부 환산되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많은 아이디어가 응축된 패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몇 날 밤을 지새우고 콘텐츠가 범람하지만, 그래도 시대에 남길 만한 기사를 쓰고자 셀 수 없이 키보드를 두드린다. 뉴욕과 서울, 런던과 도쿄, 방콕, 어느 도시에서나 화려한 이미지의 이면에는 여전히 새로움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에 영감을 받아 앞으로 나아가는 누군가가 있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 모두를 위한 헌사일지도 모르겠다. 악마는 떠나지 않았다. 전에 없던 것을 만드는 일에 치여 잠시 잊고 있었을 뿐. VK

    컨트리뷰팅 에디터
    유승현
    포토그래퍼
    박규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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