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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경 여행기’를 보고 난 후 물건 하나를 주문했다

2023.06.09

by 강병진

    ‘박하경 여행기’를 보고 난 후 물건 하나를 주문했다

    배우 이나영을 좋아한다. 누가 좋아하지 않겠냐만, 나의 세대에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와 영화 <아는 여자>의 이나영이 있었고, 지금도 그때의 이나영을 현재의 이나영에게서 찾아가며 좋아한다. 다른 이의 여행기도 좋아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는 매년 한 번씩은 생각나서 읽는 편이고, 집에서 쉴 때면 여러 여행 유튜버의 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그렇다고 직접 여행을 자주 가는 건 아니고… 영상과 책을 보며 언젠가는 가게 될 여행을 상상하는 걸 좋아한다고 할까?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두 가지 키워드가 합쳐진 웨이브 오리지널 <박하경 여행기>를 상당히 기대했다. 이나영이 여행을 하는 이야기라니…

    Wavve ‘박하경 여행기’

    1화의 숙박 없는 템플스테이 에피소드는 여행기에 걸맞은 오프닝이다. “항상 다른 곳을 원하고 다른 곳에 가서도 또 다른 어떤 곳을 원하는 사람”인 박하경은 “이런 식이면 계속 헤맬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반문하지만, 이날의 여행을 통해 ‘그래도 된다’는 위안을 얻게 된 듯 보인다. 이후 에피소드에서 내가 좋아했던 이나영과 ‘떠돌이 여행자’의 이미지는 꽤 그럴싸하게 어울렸다. 극 중 박하경은 매우 소심해 보이지만, 먼저 다가오는 사람을 애써 쳐내는 사람이 아니다. 우연히 마주친 남자와의 로맨스를 꿈꾸고, 무례한 할아버지의 허튼소리를 무시하는 대신 받아치며, 혼자 빵을 사겠다고 돌아다니는 아이를 호기심에 뒤쫓기도 한다. 자기 친구를 살릴 수 있는 돈을 훔친 소매치기를 결국 사랑할 수 있는 여자(<네 멋대로 해라>의 전경)라면, 그녀 또한 박하경처럼 낯선 곳에서 맞닥뜨린 사건을 피하지 않고 돌파할 것이다.

    Wavve ‘박하경 여행기’
    Wavve ‘박하경 여행기’

    <박하경 여행기>는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이야기를 현실의 공간까지 끌고 오지 않는다. 모든 에피소드는 여행지에서 끝나고, 박하경에게는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좋은 기억 정도가 남는다. 물론 그처럼 소소하고 잔잔하다고 해서 판타지가 없는 건 아니다. 여행지에서 마음이 통하는 이성을 만나는 건 누구나 상상하는 로맨스이고, 여행지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를 우연히 만나 밥을 먹고 대화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다만 그렇게 기적 같은 일도 현실의 국어 선생님 박하경에게 새로운 변곡점을 가져다주지는 않기 때문에 판타지마저 소소하고 잔잔하다. 여행지의 풍경이 아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잠시 다른 색깔을 띠게 된 여행자의 상념을 보여주는 여행 드라마라는 점에서 <박하경 여행기>는 동명의 에세이가 있어도 어울릴 작품이다.

    Wavve ‘박하경 여행기’

    <박하경 여행기>의 궁극적 판타지는 오히려 ‘기대감이 없는 여행’이 가능한 것처럼 보여주는 데 있다. 박하경은 주말마다 당일치기 여행을 하는데, 직접 운전을 하지도 않고 주로 크로스 백 하나만 갖고 다닌다. 현실의 여행자들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저런 여행이 가능하다고? 여행자는 여행에 큰 기대를 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시간을 내서 돈을 모아 가는 게 여행이다 보니, 어떻게든 그곳에서 자신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보겠다는 욕심을 낼 수밖에 없다. 박하경처럼 딱 하루 여행이라고 해도 여행에서는 ‘뽕’을 뽑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빨리 이동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필요하고, 만약의 상황에 대비한 물건도 필요하며, 그곳에서 산 물건을 가져올 수 있는 큰 가방이 있어야 하고, 이왕 교통비를 썼으니 일정도 알차게 짜야 한다. 이렇게 볼 때 박하경은 매주 여행을 다니지만, 여행에 특별한 기대감이 없는 여행자일 것이다. 오프닝마다 나오는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대사 그대로 그녀는 현실 공간에서 자신을 잠시 빼내는 것에 만족하는 듯 보인다. 과연 현실에서도 그런 여행이 가능할까? 나는 <박하경 여행기>를 본 후 작은 주머니에 얇은 백팩을 접어 넣을 수 있는 포켓 백을 주문했다. 최소한의 짐만 크로스 백에 넣어 여행을 갔다가 현지에서 물건을 사면 포켓 백을 펼쳐 가져오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당일치기 여행까지는 해볼 수 있지만, 물욕만큼은 포기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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