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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여성들이 ‘내가 예뻐진 그 여름’에 빠져든 이유

2025.09.12

밀레니얼 여성들이 ‘내가 예뻐진 그 여름’에 빠져든 이유

Erika Doss/Prime

“그를 지우려고 나와 결혼할 수는 없어.” 울컥했습니다. 오프닝 크레딧부터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으니 당연히 빠져들 수밖에 없었죠. 그렇습니다. 수많은 밀레니얼 여성을 감수성 터지는 10대 소녀로 만들어버린 작품, <내가 예뻐진 그 여름(The Summer I Turned Pretty)>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프라임 비디오에서 매주 공개 중인 이 드라마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 제니 한(Jenny Han)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합니다. 제니 한은 드라마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의 원작을 쓴 작가이기도 하죠. 사실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이사벨 벨리 콘클린(롤라 텅)이 가상의 해변 마을 ‘커즌스’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는 동안, 콘래드 피셔(크리스토퍼 브리니), 그리고 제레마이아 피셔(개빈 카살레뇨) 형제와 묘한 기류로 얽히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죠. 여기에 벨리의 친오빠 스티븐(션 카우프만)과 벨리의 절친 테일러(레인 스펜서)까지, 다섯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친남매처럼 함께 성장해왔다는 설정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야기는 벨리가 16번째 생일을 앞두고 갑자기 ‘예뻐’지면서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그저 친구였던 피셔 형제로부터 로맨틱한 관심을 받게 되고, 덕분에 삼각관계가 펼쳐지죠. 다소 전형적인 캐릭터와 뻔한 클리셰이긴 하나,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서사를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거든요. 초월적 갈망(벨리는 열 살 때부터 콘래드를 짝사랑했어요), 오락가락하는 주인공의 마음(한 에피소드에서는 제레마이아 편을 들다가,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콘래드 편을 들죠), 그리고 한 차례의 중대한 비극(피셔 형제의 어머니가 시즌 1과 시즌 2 사이 암으로 사망합니다)까지.

제니 한의 원작이 ‘청소년 소설’로 분류되기 때문에 이 드라마 역시 10대를 위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수백만 명 밀레니얼 세대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의아하게 느껴지는 이유죠. 하지만 정말, 모두가 빠져든 상태입니다. 지난주에 만난 사람 중 거의 대부분이 <내가 예뻐진 그 여름>을 입에 올렸거든요. 저와 제 주변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가장 최근에 공개된 시즌 3의 첫 에피소드 두 편은 무려 2,500만 명의 시청자를 끌어모았거든요.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주요 시청층은 25~54세 여성이라고 하고요.

Erika Doss/Prime

틱톡에는 이 작품에 대한 전망과 해설을 다룬 영상이 끝없이 올라오는데, 대부분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드라마 팬들이 제작한 숏폼 또한 각양각색입니다. <내가 예뻐진 그 여름>을 테마로 진행한 브라이덜 샤워, ‘삼각관계 파스타’ 등이 포함된 ‘커즌스 스타일’ 파티 메뉴, 에피소드 공개에 맞춰 동시 시청 상영회가 진행되는 모습 등. 틱톡을 넘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반응은 뜨겁습니다. 레딧에서는 ‘콘래드처럼 나를 갈망해줄 사람이 필요해’라는 제목의 스레드가 상당히 인기를 끌었죠. 아, 콘래드는 저의 최애캐이기도 합니다. 왜 요즘 들어 갑자기 모두가 서핑을 배우고 싶어 할까요? 바로 콘래드 때문일 거예요.

<내가 예뻐진 그 여름> 팬덤의 열정은 엄청납니다. 사실 좀 과해요. 아마존이 직접 드라마 소셜 미디어 계정을 통해 입장을 내고 팬들에게 진정해달라고 했을 정도거든요. “드라마는 실제가 아니지만,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실존 인물입니다.” 일부 팬이 극 중 캐릭터에 대한 분노를 배우에게 쏟아내 벌어진 일입니다. 입장문과 함께 공개된 비디오에는 ‘우리가 온라인에서 정상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 여름’이라는 멘트가 적혀 있었고요. 배우들도 목소리를 냈습니다. 카살레뇨는 <뉴욕 타임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드라마가 허구라는 점을 이해하고 깨닫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이 진짜 제레마이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죠. 크리스토퍼 브리니의 여자 친구 이사벨 마차도 역시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사진을 게시하며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문구를 남겼고요.

대체 무엇 때문에 모두가 이렇게 과몰입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 모두가 알지 못하는 사이 집단 세뇌라도 당한 걸까요? 아니면 이 작품이 시대를 초월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성을 자극하기 때문일까요? 처음에 이 드라마에 극도로 회의적이었던 사람으로서, 후자라고 확신합니다. ‘인간다움’이 무엇인지 절묘하게 포착해낸 부분이 있거든요. 게다가 이 드라마는 10대 시절에 대한 향수와 로맨틱한 강렬함 사이에서 조화를 기막히게 이뤄, 우리 모두가 그 나이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떠올리게 합니다. 자신의 사춘기 시절이 떠올라 더욱 과몰입하게 되는 것이죠.

특히 밀레니얼 세대에게 어필하는 이유는 뭘까요? 2025년에 방영 중인 작품임에도 전반적으로 밀레니얼 특유의 플롯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접한 드라마와 영화를 떠올려보세요. <트와일라잇>, <뱀파이어 다이어리>, <가십걸>, <원 트리 힐>… 삼각관계, 특히 두 형제가 얽힌 삼각관계는 밀레니얼의 학창 시절, 빼놓을 수 없는 문화적 콘텐츠 중 하나였죠. “자연스럽게 ‘너는 누구를 밀어?’라는 화두가 생기게 되잖아요. 특정 러브라인을 응원하다 보면 캐릭터에 훨씬 몰입하게 되고요.” 30세 홀리가 전한 말입니다.

Erika Doss/Prime

제니 한의 책이 2009년, 2010년, 2011년에 출간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많은 밀레니얼 세대가 10대였던 시기죠.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요. 제가 사랑했던 로맨틱 코미디와 드라마가 주던 안락함도 느끼게 해주죠.” 홀리가 덧붙였습니다. “지금의 여러 상황 때문에, 우리 중 많은 이들이 다시 열여섯 살이 된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어요.”

공개 방식 역시 이 작품의 흥행에 영향을 미쳤을지도 모릅니다. 한 번에 전편을 공개하는 여타 OTT 시리즈와 달리 매주 한 편씩 공개되죠. 기대감을 조성하는 동시에 향수를 자극하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드라마가 방영되던 방식을 떠올리게 만들잖아요. 매우 영리한 전략이죠. “그때는 드라마의 다음 내용이 궁금해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잖아요.” 40세 제나의 말입니다. “그동안 사람들과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인터넷에서 반응과 해설을 찾아보곤 했어요. 덕분에 ‘지연된 만족감’을 느낀 거예요. 새로 공개된 에피소드를 보는 건 마치 특별한 이벤트 같았죠.”

사운드트랙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세 시즌에 걸쳐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가 20곡 이상 수록되었죠. 올리비아 로드리고, 피비 브리저스, 그레이시 에이브럼스의 곡도 포함됐고요. 이들은 모두 갈망과 상처, 그리고 매혹적인 우울감 등을 주제로 노래해온 여성 아티스트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덕분에 이 드라마는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10대 소녀의 복잡한 정서를 표현하는 데 성공했죠. 여담으로, 팬들 사이에서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새 앨범 <더 라이프 오브 쇼걸(The Life of Showgirl)>의 첫 싱글을 시즌 피날레에 공개할 거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소 황당한 주장이긴 하지만, 사실 세상에는 더 이상한 일도 많이 일어나긴 하니까요.

Erika Doss/Prime

마지막으로, 콘래드를 살펴봐야 합니다. 콘래드는 다정하고 온화하며, 감정에 깊이 공감할 줄 아는 남자입니다. 여성의 시선을 통해, 여성이 바라는 방식으로, 여성이 정교하게 빚어낸 캐릭터죠. <내가 예뻐진 그 여름>을 보고 있으면 묘한 고통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콘래드 같은 남자가 현실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데서 비롯된 것일지도 몰라요. 헐렁한 칼라 셔츠, 아빠 청바지, 운동화를 매치한 콘래드의 패션 스타일은 1990년대 로맨틱 코미디 감성을 가득 담고 있습니다. 반대로 그의 동생 제레마이아는 폴로셔츠와 카고 팬츠를 입어 ‘주말마다 친구들이랑 위스키 마시고 골프 치는 남자’ 같은 느낌을 주죠. “우리 세대 싱글들은 현실의 남자들에게 질릴 만큼 질렸잖아요.” 홀리의 말입니다. “제니 한은 우리 모두가 원할 만한 남자를 정말 잘 창조하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을 종합해볼 때, <내가 예뻐진 그 여름>이 밀레니얼 여성들의 열광적 인기를 끄는 주된 이유는 이 작품이 스스로를 ‘진지하게’ 다루기 때문일 겁니다. 여성들의 욕망과 바람은 하찮게 여겨지거나 때로 조롱당하기도 하잖아요. 이런 사회에서 <내가 예뻐진 그 여름>은 우리에게 감정을 깊이 느껴도 괜찮다고 말해줍니다. 우리 안에 여전히 살아 있는 10대 소녀의 설렘과 갈망에 마음껏 기대도 좋다고 말이에요. 콘래드를 밀든, 제레마이아를 밀든, 우리가 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요. 설령 그게 상처 입은 눈빛과 완벽한 머릿결을 지닌 가상의 인물일지라도 말이죠.

Olivia Petter
사진
Courtesy of Prime Video
출처
www.vogue.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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