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교, 청운교

불국사 대웅전으로 오르는 이곳은 통일신라 경덕왕 10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당시 다리로는 유일하게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웅장하면서도 섬세한 구조로 이루어진 총 34단의 계단은 속세를 벗어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상징적 관문과도 같다.
첨성대

7세기 선덕여왕 때 건립한 첨성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과학적 지혜와 우주적 상상력을 상징한다. 362개의 화강암을 쌓아 올린 구조는 하늘과 사람을 잇는 통로 같다.

월정교

신라의 남천을 가로지르는 목교이자 왕궁과 남산을 잇는 상징적 관문이었다. 2018년에 복원된 월정교는 단아한 곡선미와 화려한 단청으로 천년 세월을 넘어온 신라의 미학을 고스란히 전한다.
통일신라 여인의 의복 | 견, 이경선, 2016

경주 용강동, 황성동 고분의 토용과 당나라 장훤(張萱)의 ‘도련도(搗練圖)’를 참고해 재현한 통일신라 시대의 복식. 당나라와 서역의 교류가 활발했던 통일신라 시대에는 화려한 의복 문화가 발달했다.
천마총 금관

5~6세기 신라 왕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금세공 걸작. 나뭇가지와 사슴뿔 모양 장식은 하늘과 자연을 상징하며, 곡옥과 달개는 생명력과 풍요를 의미한다. 흔들릴 때마다 찬란하게 빛나는 금관의 아름다움은 신라 금속공예의 정점을 보여준다.
분황사 모전석탑

7세기 선덕여왕 때 세운 석탑으로, 돌을 층층이 쌓아 올려 전탑 양식을 재현했다. 한국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탑으로, 본래 9층 규모로 추정하나 지금은 3층만 남아 있다.
대릉원

신라 시대의 왕과 귀족의 무덤이 밀집한 경주의 고분군으로, 천마총과 황남대총 등 봉분 20여 기가 있다. 부드럽고 평온한 능선과 조경을 통해 고대 왕도의 위엄과 신라인의 미의식을 느낄 수 있다.
성덕대왕신종

성덕대왕신종은 8세기 경덕왕이 부친 성덕왕을 기리기 위해 주조를 시작해 혜공왕 시절 완성된 신라의 대표적 청동 대종이다. 높이 3.75m, 무게 약 18.9톤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맑고 깊은 음색으로 유명하며, ‘에밀레종’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황금 장신구

신라 시대의 황금 장신구는 금관, 귀고리, 목걸이, 팔찌 등으로 대표되며, 정교하고 찬란한 금세공 문화의 절정을 보여준다.
다보탑

불국사 대웅전 앞 동쪽에 위치한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국보 제20호다. ‘화려함 속의 질서’를 구현한 구조미가 돋보이며, 석가탑의 절제미와 대조를 이루는 다보탑은 신라인의 미학과 불교적 세계관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석가탑

국보 제21호로 지정된 통일신라의 3층 석탑. 간결하면서도 완벽한 비례로 석탑의 이상적인 형태로 평가되며, 장식보다 구조미에 집중해 절제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불국사 영지

불국사의 영지(탑 그림자가 비치는 연못을 의미)는 부처의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자, 마음을 밝히는 정화의 공간으로 세속과 해탈의 경계로 자리한다.
동궁과 월지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이자 연회 공간으로, 통일신라 시대 왕실의 화려한 문화를 보여준다. 인공 연못과 정교한 정원은 당시 건축과 조경 기술의 정수를 담고 있다.
황룡사지

황룡사지는 신라 최대의 사찰이 있던 자리로, 한때 9층 목탑이 세워져 삼국 통일의 기상을 상징했다. 지금은 아름다운 꽃과 풀이 가득한 벌판에 기단과 석재만 남아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경주의 역사적인 공간으로 자리한다.

연등

저마다의 바람을 적은 소원지가 달린 연등을 매달아놓은 공간은 부처의 자비와 지혜를 기리는 자리다. 대웅전과 극락전 앞에 들어선 이곳엔 늘 깨달음과 평안을 기원하는 기도의 빛이 가득하다.

얼굴무늬 수막새

기와 끝을 장식하는 신라 시대 유물로, 온화한 얼굴 덕분에 ‘신라의 미소’라 불린다. 소박하면서도 따뜻한 표정은 신라인의 미적 감각과 정신세계를 드러내며 단순한 건축 부자재를 넘어 천년을 이어온 신라인의 정서와 예술성을 상징한다.
황룡사 9층 목탑

선덕여왕 시대에 건립한 한반도 최대 규모의 목탑. 높이 약 80m에 달한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 통일과 국력의 상징으로 불교적 이상을 담았다. 공포와 기단, 옥개 등의 세부 구조는 신라 시대의 정교한 목조건축 기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천마도

천마도는 경주 천마총에서 출토된 말안장 가리개에 그려진 그림으로, 신라인의 예술성과 정신세계를 잘 보여준다. 하늘을 나는 흰 말이 역동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죽은 자의 영혼이 천마를 타고 승천하는 것을 상징한다. 오늘날까지 신라 고분 미술의 정수이자, 한국 회화사에서 신비로운 유물로 꼽힌다.
분황사 모전석탑 9층 상상도

3D 그래픽을 통해 현존하지 않는 모전석탑의 본모습을 재현했다.
연화교, 칠보교

극락전으로 향하는 이중 석교로 불교의 극락세계와 진리의 길을 상징하는 동시에 깨달은 자만이 오르는 다리로 전해진다. 통일신라 시대 석조 건축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곳은 섬세한 연꽃 조각과 아치형 다리의 조화로 눈부신 조형미를 표현한다.

불국사

불국사는 8세기 통일신라 시대에 창건된 사찰로, 불교 예술과 건축의 정수를 보여준다. 석가탑과 다보탑을 비롯한 유산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천년을 넘어선 조형미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방문하는 경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손꼽힌다.

경주에 대해 떠올렸다. 가봤거나 아니거나 아는 듯 모르는 그 도시에 관한 몇 가지.
경주, 제주도 부산도 아닌 경주. 꼭 제주여야 하거나 부산이어야 할 건 아니지만 제주나 부산보다 할 말이 줄어드는 곳이다. 보편적으로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물론 경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거나 경주에 반해 때마다 철마다 기차에 몸을 싣는 분들에게는 해당 없는 말이다. 생각보다는 덜 떠들썩한 ‘2025 APEC’의 주무대가 되어 경주가 반짝 인구에 회자되면서 경주에 대해 생각했다. 제주까지는 무리였던 시절의 신혼여행지, 호르몬 날뛰던 시절의 수학여행지를 지나 이제는 역사, 문화 등에 관심이 높은 이들과 감성 충만한 SNS 여행자들의 사랑하는 도시로 이름표를 갈아 다는 곳, 경주. ‘도시 전체가 박물관’은 경주를 위해 있는 말이고, ‘천년 고도’ 역시 그렇다. 경주를 이르는 다른 말이다. 마추픽추, 카이로도 그렇다고 하는 분께는 안 가봐서 모르겠다고 해야 할지, 그러니까 경주나 거기나 같다고 해야 할지. 경주는 도시 전체가 박물관인 천년 고도다.
골목의 기와와 연못의 표면, 탑의 모서리마다 읽히는 연대가 있고, 그 연대기를 밟고 걸으며 천년 뒤 공기를 마시는 중이다. 가장 오래된 현존 천문대라는 첨성대 앞에서 그 역사성에 하악을 떨어뜨릴 게 아니라 이 원통형 돌기둥은 하늘을 향한 질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도리어 입이 다물어진다. 돌의 수와 창의 배치, 탑의 비례는 천문과 제사의 경계, 국가의 시간과 하늘의 질서를 잇는 장치로 학자들에 의해 읽혀왔다. 세밀한 돌의 배열 뒤로는, 신라인이 하늘을 ‘측정’하면서 동시에 그를 ‘의미화’하려던 사유가 숨어 있고, 그 사유는 지금도 첨성대의 그림자 사이로 퍼져나온다. 그 사유에 공감을 하거나 아니거나는 천년 뒤의 사람의 몫, 그냥 도대체 어떻게 했을까? 천년 전이라며, 도대체 그 시절 신라 사람들은 어떤 세상을 산 거야? 하는 질문이라도 충분하다.
대릉원의 봉분은 낮은 산처럼 이어지고, 그 안에는 왕과 권력의 장식이자 신성의 언어인 금관이 묻혀 있다. 1973년 천마총 발굴의 순간, 금관과 천마도는 신라의 장례와 상징 체계를 역설했다. 금관의 가지 무늬와 장식은 권위의 표식이자 태양·생명의 표상으로 해석되고, 천마도는 신라 회화의 드문 사례로서 그 시대의 미적·종교적 상상력을 직접 보여준다. 발굴의 기록과 유물은 더는 신비가 아니라, 복원 가능한 역사적 증거로 소용된다.
불국사로 가면 돌과 비례의 말이 곧장 들려온다. 석가탑의 절제, 다보탑의 섬세한 장식, 청운교·백운교가 지향하는 상향의 흐름은 신라인이 ‘공간’을 통해 세계관을 펼친 방식이다. 대한민국에서 의무교육 과정을 정상적으로 이수한 사람들이라면 각종 시험의 지문으로 나오는 이 아득한 유물이 아직도 멀쩡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은 반만년 역사를 지닌 국민에게는 당연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일이었다. 그곳에 서서 돌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사유의 도구였고, 탑과 계단 하나하나에 ‘하늘과 땅의 질서’를 옮기려는 의지가 새겨져 있었다는 것까지 알게 된다면 보태어 자긍심까지 생겨났을 것이다. 석굴암 역시 같은 선상의 어떤 이상향이다. 석굴암은 인공 석굴로 내부의 본존불과 그를 둘러싼 39존의 배치로 우주적 배열을 한국적 공간감으로 번역한 결과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빛의 작동을 통해 신앙과 미학이 만나는 순간을 만든다. 1년 중 해가 가장 길게 놀다 들어가는 하지 무렵에 석굴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부처의 얼굴을 비춘다는 관찰은, 신라 사람이 빛을 설계적 요소로 읽었다는 증거다.
경주에 자동 연상 작용처럼 따라오는 신라, 의식의 흐름으로 가닿는 불국사, 석굴암, 첨성대, 대릉원이라면 그 마무리는 국립경주박물관이다. 경주 땅에 신라인이 흩뿌려놓은 이 모든 단서를 한자리에 모아둔 곳이다. 금관·토기·불상·천마총 출토품 등은 진열장의 유리 너머로 흘러나오는 과거의 언어가 들린다면 행운이다. 유물 하나하나가 문명 전체를 재구성할 실마리를 던져주지만 받는 것은 우리 몫. 그 실마리를 붙잡아 천년 전 이 땅으로 옮겨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에 발 딛고 서서 오감으로 누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 알면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뭘 꼭 알아야 하나. 그냥 너무 좋다, 와 진짜 멋지다, 정도로도 우리는 그 역사 안에서 신라인과 연대 의식을 가져도 충분한 것 아닐까?
박물관인 경주에서도 사람들은 밥을 짓고 빨래를 했고 아이를 낳았고 부모를 돌봤다. 그런 맥락에서 오히려 양동마을은 ‘살아 있는 유산’이다. 조선 시대의 가옥 배치와 풍수에 따른 마을 구성은, 신라에서 이어진 땅의 읽기와 유교적 사회구조가 공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서백당과 무첨당 같은 종가의 건물, 오랜 세월 이어온 씨족의 주거 형태는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하회·양동)으로 등재되었다. 전시용 유적이 아니라 여전히 밥 짓는 연기를 올리는(말하는 밥가마의 낭랑한 목소리일지라도) 현재진행형의 삶의 터전이다. 무첨당, 조선 후기 한 권문세도 가문의 이 박력 있는 작명에서 본 적 없는 조선 시대 양반에게 반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운곡서원과 교촌마을의 종가 역시 좋다. 서원은 단순한 교육 시설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 조선 성리학의 교육·기념·향사의 공간으로서, 자연과 가르침이 만나는 현장이었다. 교촌의 고택에는 조선 후기 지역 엘리트들이 계승한 예절과 경제 윤리가 배어 있다. 최부자댁에 전해지는 가훈과 공동체를 향한 관습은, 역사적 자본이 어떻게 공동체적 규범으로 환원되었는지 보여준다. 이 공간에서 신라의 미학은 불교적 형상에서 유교적 규범으로 변주되며 시대를 이어 오늘에 닿는다.
동궁과 월지는 물과 빛이 빚어낸 궁정의 정서다. 본래 안압지라 불리던 이 연못은 왕실의 연회와 외교, 문화의 무대였고, 발굴로 드러난 기와·금동 장식은 이 연못이 단순한 정원이 아니라 국제적 위상과 의례가 연동된 장소였음을 보여준다. 밤의 월지는 달빛의 반영 위로 옛 궁의 윤곽을 띄운다. 물 위에 비친 달과 기와의 그림자가 만나면, 시간의 두께가 한 번에 체감된다. 월정교는 그 ‘건너감’의 의미를 물리적으로 복원했다. 통일신라의 목교였다는 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을 바탕으로 두 차례의 복원 과정으로 문루 완공의 과정을 거쳐 현재 모양을 갖추었고, 그 복원은 과거의 기능과 상징을 오늘로 되살린 사례다. 다리 위를 걸을 때, 물리적 이동뿐 아니라 역사적·의례적 ‘경계의 이동’이라는 오래된 감각을 함께 걷는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매우 되게 좋다. 그 밑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신라는 경주라는 이름으로 내 파인더에 매우 미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안착한다.
그런 의미에서 황리단길에서 황남빵을 먹고 돌아오는 일정은 차선으로 미뤄보라고 하고 싶다. 전국에 ‘~리단길’은 족히 세어도 열 곳은 넘을 것이다. 대한민국 국군재정관리단(구 육군중앙경리단)부터 하얏트까지의 2차선 도로. 그 길에 자리한 가게, 그래서 모여든 사람들이 만들어낸 풍경이 비슷하기만 하면 무조건 붙이는 ‘~리단길’을 경주에서까지 만끽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하나 마나 한 소리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도시를 경험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달린 일이므로 권하거나 말리거나 하는 일은 마땅하지 않은 짓이다. 다만, 거긴 경주니까. 잠깐 멈추어 어느 하나만 조용히 살피어도 천년 전이 보이는 놀라운 도시가 경주다. 그래도 황리단길은 포목과 목수가 지키던 골목이라 공방, 작은 서점, 골목의 곡선과 담장의 질감, 기와의 무게까지 경주답긴 하다.
경주는 관광지가 아니다. 관광지라고 말하기에는 크고 깊다. 경주는 관광객이 아닌 한국인이 ‘한국다움’을 물리적으로 마주하는 장소다. 돌과 물과 기와, 그리고 그 사이를 걷는 사람들의 숨소리는 모두 과거의 질서와 현재의 질문을 함께 담는다. 우리가 첨성대 앞에 서서 하늘을 올려볼 때, 대릉원의 봉분 옆을 지나며 금빛 장식을 떠올릴 때, 불국사의 계단 위에서 돌의 균형을 느낄 때. 의도하지 않아도 우리는 신라의 미학을 몸으로 재생산한다. 경주를 완전히 ‘아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경주를 ‘느끼는’ 일은 가능하다. 돌의 결을 손끝으로 더듬고, 물의 반영을 따라 걸으며, 탑의 음영 속에서 오래된 생각을 읽어낸다면. 다시 말하지만 알지 못하면 또 어떤가. 우리에게 경주는 이전의 천년처럼 이후의 천년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내내 품고 있는 이야기를 묻는 자들에게는 말하겠다며 금빛 미소를 띠고 있을 텐데 말이다. 내키면 그 시간을 또 밟아 누려보길 권한다. 어디에 가서 천년 역사에 누워보겠나! VK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 송선민
- 글
- 조경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 사진
- 김희준
- 디지털 아티스트
- 박소희, 장동일
- 모델
- 박서희, 장한나
- 헤어
- 김귀애
- 메이크업
- 오미영
- 로케이션
- 불국사, 대릉원, 동궁과 월지, 월정교, 황룡사지
- VISUAL ASSETS
- 국가유산청
추천기사
-
패션 트렌드
다이아몬드 패턴 스웨터, 일자 청바지랑 입어야 예뻐요!
2025.12.18by 황혜원, Paulina Berges
-
패션 뉴스
가장 일상적인 패션 풍경, 홍콩 패션 페스트 2025
2025.12.23by 가남희
-
패션 화보
광장시장에서 만난 뉴 뎀나 우먼
2025.12.23by 김다혜
-
웰니스
일주일 동안 매일 밤 9시에 잠자리에 들었고, 이렇게 됐습니다
2025.12.05by 윤혜선, Ranyechi Udemezue
-
셀러브리티 스타일
티모시 샬라메의 ‘마티 슈프림 오렌지' 코어
2025.12.18by 오기쁨
-
Lifestyle
흑백요리사 셰프들이 만난 LG 쿠킹 컬렉션
2025.03.27by 서명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