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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는 여행에서 보는 여행으로, K-예능의 시대 전환 ‘풍향고’ 시즌 2

2026.01.30

보여주는 여행에서 보는 여행으로, K-예능의 시대 전환 ‘풍향고’ 시즌 2

웹 예능 <풍향고> 시즌 2의 첫 번째 에피소드가 공개 5일 만에 657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대로라면 전 시즌의 성공을 재현할 수 있을 듯 보인다. ‘맏형보다 어려운 둘째 형’ 캐릭터가 황정민에서 이성민으로 바뀌면서 전문 예능인만으로는 진부할 수 있는 구성에 신선함을 부여하는 전략도 여전히 유효하다. 게다가 이번 시즌은 촬영의 변수를 통제하기 쉬운 관광지 대신 유럽 대도시를 무대로 해서 쇼의 진행 방향을 더욱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

@ddeun._.ddeun

연예인들의 해외 촬영 콘텐츠에 피로감을 표하는 대중이 많은 가운데 <풍향고> 시즌 1이 호평받은 주된 이유는 여행 예능으로서의 현장감이었다. <풍향고>는 출연진이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지 않고 여행 다니는 모습을 긴 호흡으로 보여준다. 게임으로 인위적인 긴장을 유발하는 대신 실전에서 벌어질 법한 시행착오와 좌충우돌로 공감을 샀다. 그 때문에 시청자들이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나라면 저들 중 누구와 여행을 갈까?’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되었다. 이는 재생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웹 예능의 특징을 정확히 간파한 전략이다. 대본 없이 골방에서 진행하는 토크쇼 <핑계고>의 성공이 제작진에게 자신감을 주었을 터다.

전작의 유튜브 시청자 댓글 중에는 <풍향고>와 TV 예능의 특징을 예리하게 비교한 것이 있었다. ‘<풍향고>를 TV에서 방영했을 때 생기는 일 : 1. 한참 몰입될 때 중간 광고. 2. 재밌는 포인트에서 세 번 반복 재생. 3. 틈만 나면 슬로우. 4. 과한 독심술 자막과 BGM. 5. 쓸데없이 패널들 끼어들기(by rinykim714).’ 또 다른 시청자는 ‘내가 쇼츠에 길든 게 아니라 그냥 요즘 예능이 진짜 재미없는 거였구나. 1시간 반 순삭함(by sskocon)’이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풍향고>에는 기존 TV뿐 아니라 웹 예능 트렌드와도 차별점이 있다. 시즌 1에서는 술 마시는 장면이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출연진 다수가 완연한 중년 남성이지만 한식과 소주 대신 커피와 디저트를 즐기고, 불콰한 얼굴로 음담패설을 나누거나 서로를 놀려대는 대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시즌 2에 새로 합류한 이성민도 이 ‘점잖고 무해한 아저씨’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소위 ‘텐션’이 낮은 프로그램이지만 출연진의 미세한 감정과 역학을 파악해 즉석에서 캐릭터를 구축해내는 유재석의 탁월한 능력이 모든 순간을 흥미롭게 만든다. 애초에 황정민, 이성민 같은 비예능 분야 스타들이 대본 없는 소규모 해외 촬영에 동의한 것도 유재석의 리드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요즘 TV가 노인정 같다는 불평도 있지만 기존 예능이 낡아 보이는 이유가 출연진의 나이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풍향고>는 증명한다. ‘앱 금지’를 유일한 제약으로 못 박아둠으로써 <풍향고> 출연진은 자주 난처한 상황을 경험한다. 이건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낭만을 되살린다는 의미도 있지만, 출연진의 문제 해결 능력을 시험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제작진이 철저히 환경을 통제하고, 허가된 촬영 공간에 머물고, 카메라 뒤에 매니저와 스타일리스트가 한가득인 여느 해외 촬영 콘텐츠와 달리 <풍향고>가 진짜 ‘여행’ 가이드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이것이다.

@ddeun._.dd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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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쇼의 출연진은 영어도 잘 못하고 해외 생활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적극적인 자세로 상황을 맞닥뜨린다. 시즌 2 첫 화는 비엔나 도착 첫날 호텔을 구하려고 고군분투하는 출연진의 모습을 담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크리스마스 시즌 비엔나에서 예약 없이 4명이 묵을 숙소를 구한다는 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 알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짜증 내거나 주눅 드는 대신 계속 돌아다니면서 호텔 문을 두드린다. 특히 배우 이성민이 체면 차리지 않고 앞장서는 모습이 시청자의 호감을 샀다. 새로운 경험에 열린 자세로 임하는 건 나이를 떠나 한국 여행자에게 부족한 자질이다. 그래서 <풍향고> 출연진은 시대에 뒤처져 보이긴커녕 여전히 배울 점이 많은 어른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비엔나 첫날 에피소드에서, 출연진이 호텔을 잡는 데 거듭 실패하고 밤이 깊어가자 제작진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호텔을 예약해두었다며 사태를 종료시킨다. 그걸 두고 시청자들은 왜 룰을 어겼냐고 비난하는 대신 좋은 타이밍이었다고 호평을 보냈다. 이 쇼의 시청자들이 보고 싶은 건 결국 출연자들이 곤경에 빠지는 장면이 아니라 여행을 즐기는 모습인 것이다. 이 프로그램 PD들이 해외 촬영 콘텐츠를 브랜드화한 ‘나영석 사단’ 출신이라는 걸 감안하면 이는 기분 좋은 아이러니다.

<풍향고>는 ‘계획 없는 여행’이라는 걸 강조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완전 무계획은 아니다. 제작진이 가이드라인 성격의 책자를 제공하고, 출연진은 그 안에서 동선을 고른다. 당연히 시즌 1의 베트남 사원 에피소드처럼 중요한 장소는 촬영 허가를 받아둔 상태다. 시즌 2의 비엔나 호텔 건처럼 백업 장치도 마련해둔다. 제작진의 풍부한 해외 촬영 경험이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그럼에도 큰 판돈이 걸린 TV 쇼 특유의 성공 강박이 빚어낸 부자연스러움, 예컨대 웃음이나 힐링 같은 의도된 메시지로 시청자를 유도하기 위해 가공된 부분이 적어서 한결 세련된 느낌을 준다.

<풍향고>가 기존 해외 촬영 예능과 변별되는 결정적인 지점은 또 있다. 바로 시선의 문제다. 우리는 ‘서울병’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고 패션 인플루언서들이 앞다퉈 한국을 방문해서 거리 음식을 인증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직 방송계에서 파워 그룹으로 활약하고 있는 X세대와 달리 요즘 젊은 한국인들은 ‘우리 음악이 외국에서 먹힐까?’, ‘우리 음식이 먹힐까?’ 따위 자기 의심이나 인정 욕구를 촌스럽게 여긴다.

@ddeun._.ddeun

최근까지도 한국 방송의 해외 촬영 콘텐츠가 우리를 향한 외부인의 평가를 전하는 데 연연했다면 <풍향고>는 여행지를 바라보는 출연자의 시선에 집중한다. 시즌 2 출연진은 수트케이스에 턱시도를 챙겨 갔다. 비엔나에 가는데 공연 한 편은 봐야 하지 않겠냐는 거다. 남의 관심에 갈급한 약자가 아니라 내 경험과 관점을 중시하는 주체적인 여행자, 콤플렉스나 자만심 없이 다른 문화를 향유하는 여유로운 태도가 <풍향고>에는 존재한다. 그 때문에 <풍향고>는 여행에 능숙하지 않은 중년 남자들의 좌충우돌일지언정 기존의 어떤 해외 촬영 K-예능보다 덜 부끄럽고 안 천박하고 더 동시대적이다.

이 시리즈는 시청자에게는 즐거움을, 방송인에게는 교훈을 안겨주는 시대의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풍향고> 시즌 2를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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