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The K2〉로 출격을 준비 중인 지창욱과 윤아는 변신이라는 키워드를 선택했다. 인생의 기적은 누군가를 지키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이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반야였다. 스튜디오에는 세상이 잠들면 찾아오는 침착한 밤의 기운이 깔려 있었다.tvN 드라마 의 두 주인공 지창욱과 윤아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이 시간뿐이었다. 촬영을 준비하는 분주한 움직임 사이 숫자 12에서 겹쳐진 시곗바늘이 다시 간격을 벌리기 시작했다.심플한 셔츠 차림에다 갈색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등장한 윤아는 오전 11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차기작을 위해 제작진과 미팅을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하긴 그녀는 소녀시대다. 한밤중 스케줄은 기본이며 당일치기 중국행은 이태원에 맥주 마시러 가는 일상만큼이나 흔한 일이다. 작년에 사전 제작한 드라마 <무신조자룡>이 올해 중국에서 방송을 시작하면서 매일같이 공항 패션이 찍히자 항간에는 윤아가 공항에 산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농담인 줄 알면서도 공항에 ‘소시’ 임시 숙소가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신조자룡>은 온라인에서 자그마치 100억 뷰를 돌파했다.

소속사 사무실 문턱보다 국경을 자주 넘은 윤아의 국내 드라마 출연은 실로 오랜만이다.“<총리와 나> 이후 3년 만인가요? ‘작품을 좀더 기다려보자’는 마음으로 있다 보니까 공백이 생긴 거 같아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캐릭터를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윤아’ 하면 떠오르는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가진 캐릭터요.” 기다림의 시간과 별개로 그녀의 심장은 전혀 다른 인물에게 가서 뛰었다. 는 전쟁 용병 출신 경호원과 그를 고용한 대선 후보의 아내 그리고 대선 후보의 숨겨진 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장르물이다. 윤아가 연기할 고안나는 ‘윤아 이미지’는 조금도 없는, 상처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 살아가는 어두운 소녀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낼 수 있을까 걱정됐지만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죠. 딱 맞는 옷이라기보다는 한 번쯤 입어보고 싶은 옷이었어요.”

윤아가 말한대로 그녀에게는 순도 높은 건강함이 느껴진다. 이는 세상을 겪어보지 않아서 갖게 되는 순진함이나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는 다르다. 어떤 상황에 놓여도 물들거나 변질되지 않을 곧은 건강함이다. 고민이 생겼을때는 숨이 찰 때까지 운동장을 달리다가 세수를 하고 털어낼 것 같은 강인한 건강함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이미지는 수식어 없이 주어와 서술어로도 충분한 윤아의 외모와 소녀시대 센터라는 포지션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윤아는 청순하기보다 청청하고 예쁘장하기보다 아름답다.

그동안 윤아가 연기한 인물들은 이 기질에 상당 부분 빚을 지고 있다. <너는 내 운명> 장새벽의 억척스러움이 과장되지 않고, <사랑비> 김윤희와 정하나가 마냥 나약하지만은 않고, <신데렐라맨> 서유진의 철없음에 고개가 끄덕여지고, <총리와 나>남다정이 유발한 민폐가 원만히 봉합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면 윤아가 풍기는 건강한 의지 덕분이다. 하지만 양지에 음지가 없을 리 없다. 양지바른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무수한 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의 고안나는 음지 속 윤아를 처음 목격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로움을 느끼고 고민을 가지고 있잖아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때 갖는 감성이 안나의 주된 감정인 것같아요. 제가 생각이 많을 때 짓는 표정을 처음으로 보여주겠네요.” 윤아는 그 모습이 보는 사람에게 낯설게 느껴지지는 않을지 걱정된다고 했다. 그동안 소녀시대가 가진 타이틀 때문에 배우로 활동할 때 사람들의 평가에 너무 신경을 썼다고도 했다.

이번 작품에 들어가며 윤아는 새삼 필모그래피를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10년이라는 시간과 다섯편의 작품이 있었다.“‘어? 생각보다 많지 않네? 되게 조금이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가수로 이뤄낸 업적은 대단한 게 많은데 혼자가 되어 연기할 때 이뤄낸 업적은 너무 사소해서 자신감을 잃은 적도 있었어요. 이렇게 많이 했는데 왜 나는 이 정도밖에 하지 못할까 자책했어요. 그런데 작품 수를 보자 당연히 지금 단계 정도일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변화하고 싶지만 두려움이 있어서 못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그냥 좀 많이 깨지고 싶어요.” 촬영은 아직 1회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변화를 목전에 둔 윤아는 한낮에 뜬 달 같았다.

젝스키스가 재결성되며 아이돌의 수명은 100세 시대에 맞게 점점 더 연장되고 있지만 아이돌의 연기 병행은 비단 커리어 연장의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꿈의 시발점을 구체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듯 윤아 역시 처음에는 막연하게 연기가 하고 싶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테스트하고 싶은 느낌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룹으로 가수를 하고, 혼자 연기를 하니까 연기를 하며 스스로를 알아갔어요. 좀더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길이자 도전해보고싶은 숙제가 많은 분야입니다. 앞으로 많은 시간이 흘러도 세상을 대하는 감정만큼은 무뎌지고 싶지 않아요.” 티저 영상 속 윤아는 “아빠가 대통령이 되면 내가 죽어야 하는 건가?”라고 자문하고 “싫어!!!”라고 날카롭게 외친다. 윤아가 자신을 지키기 시작하자 세상의 빛이 다시 고안나를 비추기 시작했다.

윤아가 그날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소모하고 순살 치킨으로 충전하고 있을 때 지창욱이 스튜디오로 들어섰다.‘잘생김’을 분실하지 않았지만 정확히 새벽 1시 30분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지난 일주일을 2주일처럼 살았다. 촬영을 위해 건물 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패싸움을 벌이며 구르고 또 구르다가 뮤지컬 <그날들> 무대에 올랐으며 중간에 짬을 내어 중국에 팬 미팅도 다녀왔다. 내일, 아니 그러니까 오늘 회식도 잡혀 있다는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건 조기 퇴근(아침이 아니다)뿐이겠군 생각하는 사이, 와이드 팬츠로 갈아입고 나온 지창욱은 다시 오전 11시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나 홀로 집에> 비둘기 할머니 같지 않아요? 정말 바지에서 비둘기가 나올 거 같아요. 외롭지 않네요. 하하하”

지창욱은 난생처음 입어봤다는 와이드 팬츠의 폭만큼이나 거대한 변화를 감행하고 있다. 그가 에서 연기하는 김제하는 전쟁 용병 출신 특수 경호원이다. 에이스 중에 에이스다. 남자다움이 필요했다. 지창욱은 태닝으로 몸을 까맣게 태우고 살코기를 먹고 운동을 하며 몸을 키웠다. 외모에 변화를 주겠다는 목표가 생긴 데는 앞자리 숫자가 바뀐 나이도 한몫했다.“서른이 되니 실제로 눈빛이 남자다워진 것 같고 사연 있는 분위기가 풍기는 것 같아요. 남자한테 서른은 판타지라고 해도 좋습니다. 예전과 다르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티저 영상 속 지창욱은 화이트 셔츠를 나부끼며 단단해진 몸을 드러낸다. 남자의 서른이란 제 손으로 일궈내는 성장이다. 지창욱의 몸은 드라마의 중요한 기대 포인트가 됐다.

또 하나의 흥미로운 지점은 지창욱이 경호원으로 겹치기 출연한다는 사실이다. 뮤지컬 <그날들>과 얘기다. “<그날들>을 하면서 경호원이라는 역할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드라마를 통해 제대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겹친다기보다 뭔가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날들>의 무영은 밝고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사연이 있고 미스터리해요. 의 제하는 아주 어두워요.큰 상처가 있고 항상 쫓기는 듯 하죠. 한 공간에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혼자 있는 느낌을 받는 친구예요.” 윤아가 연기하는 안나처럼 제하 역시 상처가 있다. “저 역시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은 적이 있고 무서워서 벽을 치기도 했어요. 그래서 자기 사람만 만나는 성향이 있기도 하고요.”

세상의 모든 경호원처럼 지창욱 역시 말보다는 몸으로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 많다. 평소 액션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데도 <무사 백동수> <힐러> <조작된 도시>에 이어 또 한 번 온몸을 내던져 연기하고 있다. 우리 모두에게 재난 같았던 지난여름, 지창욱은 액션 스쿨에 있었다. 실전 무술 ‘시스테마’를 익히던 그 시간 에어컨은 없었다. 누진세 걱정은 그의 몫이 아니었다.“더우면 더운 대로 연기하고 힘들면 힘든 대로 연기했습니다. 화면에 그 현장감이 그대로 담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어요.” 이제 매미 울음소리는 그쳤고 처음 지창욱을 사로잡았던 인물 관계도는 점점 흥미를 더해가고 있다. 상상할 구석이 많은 장혁린 작가의 대본을 마치 연재 만화처럼 기다리며 지창욱은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 가고있다.

<웃어라 동해야>로 ‘동해’를 알린 지창욱은 <무사 백동수> <총각네 야채가게> <다섯 손가락> <기황후> <힐러>까지 일일 드라마, 주말 드라마, 미니시리즈로 차분하게 영역을 넓혀왔다. 영화 <조작된 도시>가 개봉을 앞두고있고 뮤지컬<그날들>은 초연부터 3연째 무대에 서고있다. “대학로 소극장부터 시작해서 독립영화, 단편영화 등 정말 많은 경험을 해왔는데 인생에서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많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어딜 가도 힘들지 않아요. 지금 연기가 썩 훌륭하진 않지만 앞으로 더 좋아지겠죠. 요즘은 그냥 많이 담으려고 해요. 감정적으로 더 풍부해지고 싶고 그게 연기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연기를 말하는 지창욱의 태도는 참 단정했다. 연기를 향한 첫걸음은 소화기로도 끌 수 없는 불꽃 같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주머니 속에는 언제든 불을 붙일 수 있는 성냥이 가득 들어있다.

예상컨대 김제하가 지키고자 하는 단 한 사람은 고안나일 것이다. 희망이 한 조각도 남지 않았을 때 다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의지를 불러일으킨 사람. 그녀를 지키기 위해 위험한 상황에 기꺼이 자신을 던지지만 그녀를 위해 그 자신도 지켜낼 것이다. 지창욱이 인생에서 끝까지 지키고 싶은 대상도 사람이다. “가족, 내 사람들 그리고 나 자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일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이 없다면 굳이 돈도 벌지 않을 거 같아요. 그들을 위해서 힘들어도 힘을 내는 게 아닐까요?” 여명이 찾아오자 그도 하루 연료를 다 소모한 듯한 얼굴이 됐다. 인스타에 태그를 달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음 스케줄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순댓국을 먹을 것인가, 잠을 잘 것인가. ‘자기 사람들’과 메뉴 토론을 시작한 지창욱은 잠자리에 누워 이불을 코끝까지 끌어 올렸을 때 지을법한 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