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니스

근육토끼

2019.07.05

by VOGUE

    근육토끼

    ‘단백질=고기’는 선입견이다. 운동하기 싫어하는 여자와 다이어터들의 옹달샘으로 자리 잡은 식물성 단백질 이야기.

    스포츠 브라 톱은 나이키(Nike), 화이트 가죽 톱과 미니 백은 기준(Kijun), 쇼츠는 데이즈 데이즈(Daze Dayz), 하이톱 슈즈는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시작은 ‘삭센다’였다. 지난해, 혁명같이 등장해 ‘재고가 없어 팔지 못했다’는 바로 그 비만 치료제 말이다. 유행하는 뷰티법이라면 모두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이 묘약을 마다할 리 만무하다. 매일 아침 눈곱 뗄 새도 없이 뱃살을 도톰하게 말아 쥐고 주사기부터 꽂아 넣기 일주일, 원래 식탐이라곤 없었던 존재인 듯 느리고 우아하게 숟가락질하게 됐고 가뿐히 2kg이 줄었다. 그래서 행복해졌느냐고? 3주 후 나는 의사에게 무기력을 토로하고 있었다. 입맛이 없어져 식사량이 줄어드니 영 기운이 없고 무엇보다 몸의 근육량이 줄어들었다. 무산소 근육 운동을 하고 있는데도 몸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의사의 조언은 간단하고 모범적이었다. “단백질을 섭취하세요.” 다이어트 중에는 ‘근손실’이 많고 면역력도 떨어지기에 근육과 면역 세포의 재료가 되는 프로틴을 의식적으로라도 섭취해야 한다는 거다.

    물론 단백질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안다. 수분 다음으로 많은 인체 구성 성분이자 부족하면 치매가 빨리 온다는 연구 결과도 있으며 섭취량은 1일 40~60g 정도. 문제는 머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쁜 식습관이다. 무심히 걸러버린 아침, 때우듯 먹어 치운 점심 그리고 하루의 보상으로 허락한 자극적 저녁, 그 어디에도 질 좋고 충분한 단백질은 없었다.

    영국 <보그>에 실린 ‘여성을 위한 베스트 단백질 파우더’ 기사가 떠오른 건 그때였다. “단백질 파우더는 근육을 만드는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여자는 일반적으로 남자보다 단백질 섭취가 적습니다. 단백질을 충분히 섭취하도록 설계된 보충제는 여자의 일상을 바꿔줄 겁니다”라는 폼 뉴트리션의 CEO 다미앙 숭의 추천사도 곁들여져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WE클리닉 조애경 원장 역시 “가장 좋은 것은 식품으로 섭취하는 것이지만 끼니를 잘 챙기지 못한다면 하루 한 번 정도는 보충제 섭취가 도움이 될 것”이라 조언했다.

    ‘슈퍼노바’ ‘폼 뉴트리션’ ‘워크숍 프로틴’ 등 <보그>가 추천하는 브랜드와 제품의 리스트를 살펴보니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 식물성 원료에서 추출한 단백질이었다. 아마존닷컴에서 상종가를 치는 상품 역시 마찬가지. 콩, 귀리, 헴프시드와 같은 플랜트 프로틴 파우더 뒤에는 ‘체중 감량을 위한(for Weight Loss)’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역사에 기록된 멋진 근육토끼들의 얼굴이 스쳐갔다. 14번의 세계기록을 수립하여 ‘달리는 인간기계’라 불리는 핀란드 장거리 육상 선수 파보 누르미, 미국 육상의 전설 칼 루이스 모두 채식주의자였다. 초식동물 토끼도 튼튼한 뒷다리와 가공할 만한 점프력을 자랑하지 않나? 대세는 식물성 단백질! 단백질=고기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핏 하이프로틴 포 웨이트 로스’를 주문했다.

    동물성 식품에 포함된 포화지방 문제를 차치하고, 동물성과 식물성 중 어떤 단백질이 더 영양적으로 우수한가만 따지면 전자의 승! 필수아미노산을 기준으로 단백질의 품질을 비교했을 때 고기(83점), 우유(78점), 콩(73점), 곡물(72점)의 순이니까. 파우더 형태의 보충제 역시 동물성 유청 단백질(웨이 프로틴) 파우더가 흡수와 밸런스 면에서 유리하다(유당 불내증이 없다는 가정하에). 그럼에도 이토록 ‘식물성’이 핫한 것은 왜일까? 익명의 이너 뷰티 원료 공급자는 사회적 분위기와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한 가지 원인으로 꼽는다. “비건, 오가닉같이 윤리적이고 청정한 재료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대에 유전자 조작을 하지 않은 완두콩, 슈퍼 곡물 추출 단백질만큼 믿음직한 것도 없으니까요.”

    동물성에 대한 부정적 리포트도 한몫 거들었다. 2016년 미국의학협회가 발행하는 내과학회지에 실린 ‘단백질 종류와 사망률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가 대표적인 예다. 하루 섭취 칼로리에서 동물성 단백질의 섭취를 10% 늘리면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은 8%, 사망률은 2% 증가하는 데 반해, 식물성 단백질 섭취를 3% 늘리면 심혈관 질환 발생 위험은 12%, 사망률은 10% 줄었다. <어느 채식의사의 고백>의 저자 존 맥두걸 박사 역시 식물성 단백질의 대표 옹호자. “인간은 식물성 음식에서 완벽한 단백질 사슬을 구성할 수 있는 모든 아미노산을 합성할 수 있다는 연구 발표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이 식물성 음식은 양질의 단백질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다는 의심을 갖고 있습니다.” 식이섬유도 거의 없으며 소화 과정에서 간과 신장에 무리를 주는 고기를 단백질의 절대 공급원으로 추앙하는 건 신화라는 것. 인간이 70세를 사는 동안 동물성 단백질을 소화하느라 신장 기능의 1/4를 잃는데 꼭 고기를 먹어야겠다는 반문이다.

    이쯤 들으니 아무래도 ‘동물성’이 잘못인 것 같다고? 아니, 그걸 먹는 인간의 식탐이 문제다. “필수아미노산이 부족한 식물성 단백질과 소화·흡수에 좋은 동물성 단백질 모두를 적당히 먹는 게 가장 좋습니다.” 마음편한유외과 조준호 원장의 조언이다. 대신 양은 식물성 단백질이 더 많아야 한다. 이상적 섭취 비율은 식물성과 동물성이 2:1을 이루는 것. “문제는 과식이죠. 한꺼번에 많은 양의 단백질을 섭취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합니다.” 식품이 아닌 파우더 형태일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 나에게 삭센다를 처방해준 의사 역시 “보충제를 매일 너무 꾸준히 먹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보충제는 보충용으로만 활용하라고 말했던 조애경 원장의 충고와도 일맥상통한다. “프로틴 파우더는 단백질만 섭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에 자칫 과하기 쉽습니다. 신장이나 심장에 무리가 갈 수 있어요.” 동물성 혹은 식물성, 출신 성분과 상관없이 모든 농축된 단백질을 과하게 섭취하면 장기에 무리를 준다.

    식물성 파우더를 고를 때도 주의할 사항이 있다. 푸드 큐레이팅 브랜드, 파지티브 호텔의 길정민 대표는 “잘 설계된 식물성 단백질 보충제일수록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서로 다른 종류의 원료를 세 가지 이상 섞어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고 귀띔한다. 또 재료가 유전자 조작된 대두는 아닌지, 맛을 위한 인공감미료와 착향 성분이 가미되진 않았는지 체크해야 한다.

    작년 삭센다 첫 처방 이후 약 7개월이 흘렀고 나는 여전히 엉망진창 불규칙한 일상을 살면서 일주일에 3~4일 식물성 단백질 파우더를 먹는다. 근육량이 약 1.2kg 늘었는데, 운동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에 비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다. 물론 여름이 가기 전 기필코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할 거다. 토끼의 근육이 풀 단백질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먹이를 구하기 위해 열심히 뛰며 얻은 훈장임을 알고 있으니까. 어차피 몸매의 구성은 피, 땀, 눈물. 옹달샘에서 충분히 목을 축였으면 그다음은 숨차게 뛰는 것이 순서겠지.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김보성
      모델
      김이현
      글쓴이
      백지수(칼럼니스트)
      스타일리스트
      임지윤
      헤어
      한지선
      메이크업
      홍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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