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꽃보다 조니

2019.12.03

by VOGUE

    꽃보다 조니

    엘튼 존이 주목했던 싱어송라이터로, 한국에선 싱글 ‘Flower’로 알려진 조니 스팀슨(Johnny Stimson).
    한강 조깅에 빠졌으며, 팟캐스트로 K‐팝을 배우는 남자다.

    검정 가죽 재킷은 아크네 스튜디오(Acne Studios), 데님은 맨온더분(Man On The Boon), 화이트 스니커즈는 로로 피아나(Loro Piana).

    서울에서 첫 쇼케이스를 가져요. 2010년 12월 ‘Alright OK’, ‘New Shoes’가 담긴 앨범 <New Shoes>로 데뷔한 뒤 꾸준히 활동해서 ‘곡 부자’죠. 어떤 기준으로 쇼케이스 곡을 선택했나요? ‘Flower’, ‘Honeymoon’처럼 한국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우선으로 하고, 미공개 신곡도 넣었어요. 대중에게 익숙지 않은 곡이지만 다양한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거든요. 저는 생활과 노래를 연결시키곤 해요. ‘Vacation’이란 곡은 곧 도쿄로 휴가를 갈 거라 선택했죠.
    한국에선 특히 ‘Flower’가 인기죠. 곡뿐 아니라 뮤직비디오도 직접 만들었어요. ‘개화’를 슬로모션으로 담은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요? 그전까진 다른 프로듀서가 곡을 만졌는데, ‘Flower’는 제가 믹싱과 마스터링, 프로듀싱 다 했어요. 그만큼 특별하죠. 전체 주제는 ‘아름다움은 짧은 시간 동안만 피어 있다. 아름다울수록 금방 사라진다’예요. 그 주제가 앨범과 뮤직비디오도 관통하죠. 그래서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뮤직비디오에 담았어요. 작업을 위해 찾은 일본에서 ‘꽃’을 의미하는 일본어를 봤는데, 글자 자체가 꽃으로 보일 만큼 아름다워서 함께 편집했죠.
    뮤직비디오에 자막을 넣곤 하죠. 원래 그러지 않았는데, 세계 곳곳에 제 음악이 알려지면서 비영어권은 노래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았어요. 제 음악이 말하는 바를 더 잘 전달하고 싶어 가사를 넣었죠.
    가사나 아이디어를 적는 노트가 있어서 매일 쓴다고요. 한국에 와서 어떤 내용이 추가됐나요? 이젠 휴대전화 메모장을 이용해요.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하고, 가사로 발전시키곤 하죠. 멜로디보다 가사를 쓸 때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편이라 메모가 중요해요. 한국에 와선 “Ice cream, Melting, Insomnia…” 등을 적었군요. 숙소가 있는 가로수길을 걷다 보니 아이스크림 파는 가게가 많이 눈에 띄는 게 인상적이었거든요. 인섬니아는 시차 때문에 잠을 못 자서고, 멜팅은 ‘너는 날 뜨거운 용암처럼 녹게 만들어’라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어요. 물론 자주 멜로디를 흥얼거리며 녹음도 하죠. 비행기에서 제 옆자리에 탄다면 꽤 시끄러울 거예요.(웃음)
    엘튼 존이 무명이었던 당신의 런던 공연 영상을 보고 다음 날 연락해 계약했죠. 그의 레이블 ‘로켓 레코드’에 영입돼 2015년에 ‘Holding On’이라는 싱글을 발표했어요. 그전까지는 혼자 했는데, 첫 앨범 <New Shoes>를 냈을 때 어땠나요? 가장 친한 친구와 뉴욕에서 녹음한 앨범이죠. 경영학과 회계학을 배웠지만 부모님께 음악을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뉴욕으로 갔어요. 처음으로 스튜디오 스피커로 내 노래를 듣는데 감동이었어요. 온라인에 제 음악이 소개됐을 때도 그랬죠. 그때 제 음악이 TV 광고에도 어울릴 것 같다는 평을 받았는데, 음악으로 처음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우크라이나 생수 회사에서 광고에 제 노래를 쓰고 싶다고 연락이 왔죠. 그 일을 계기로 사람들이 내 음악을 좋아하는구나, 이걸로 살아가면 되겠구나, 용기를 얻었어요.
    첫 EP 앨범은 2011년 8월, 일곱 곡이 담긴 <All That I See>군요. 그 뒤로 EP 앨범은 2015년 <Holding On>, 2017년 <Yesterday>이고 대부분 싱글 활동만 했어요. 정규 앨범을 내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그동안 많은 곡을 담아 정규 앨범 형태로 내고 싶었는데, 녹음 비용이 너무 비쌌어요. 독립 레이블이어서 자금이 없었거든요. 한 번에 한 곡만 녹음하고 그걸로 활동하기 벅찼죠. 내년에 드디어 정규 앨범이 나와요. 아이디어가 수만 개예요.
    많은 곡을 투어 중에 썼죠. 실제 투어에서 아이디어를 많이 받아요. 하지만 신사동의 호텔에서 ‘인섬니아’를 떠올릴 만큼 투어는 힘에 부치죠. 아내가 많이 지지해줘요. 제 꿈이 곧 그녀의 꿈이거든요. 2주 이상 걸리는 투어는 오늘처럼 아내가 동행해요. 인생을 얼마나 더 살지 모르기에 아내와 시간을 보내고 싶거든요. 떨어져 있는 날엔 그녀에 대한 노래를 쓰죠. 한번은 못 견딘 채 투어 중에 이틀을 내서 아내를 찾아갔죠. 다시 돌아가는데 밤에 피었다가 이내 지는 꽃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Flower’라는 노래를 썼죠. 이렇듯 아내는 제게 많은 영감을 줘요.
    인도네시아 전국 음악 차트에서 2위를 한 ‘Honeymoon’도 결혼식을 위해 만든 곡이죠. 아내가 패션 블로거라 당신의 스타일링을 담당하겠군요. 제가 노래로 자신을 표현한다면 아내에게는 그 수단이 옷이죠. 아무것도 모르는 저의 쇼핑 가이드이자 패션이 멋진 표현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알려줘요.
    2015년 뉴욕 패션 위크 마이클 쿨루바(Michael Kuluva) 런웨이에서 노래를 불렀어요. 새로운 경험이었죠. 스태프들이 멋진 바지를 입혀주던 기억이 나네요.
    8월에 발매한 싱글 ‘IDWLY’가 최근 곡이네요.(IDWLY는 ‘I don’t wanna love you’의 약자) 일본 애니메이션과 옛날 드라마를 교차 편집한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에요. 친구가 <카우보이 비밥>의 골수팬이라 함께 도쿄에 갔어요. 결국 저도 팬이 됐죠. 정말 멋진 작품이에요. 이런 일본 애니메이션에 아시아 영화를 교차 편집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운전하다 사고 당하는 장면을 찾고 싶어서 수많은 클립을 봤죠.
    꿈을 묻자 ‘Honeymoon’의 가사처럼, ‘스타가 못 되어도 아내에게 기타를 쳐주고 노래를 불러주는 노인’이 되고 싶다고 했죠. 그래도 뮤지션으로서 목표를 말한다면요? 5년 전만 해도 한국에 와서 화보를 찍고, 최고의 밴드와 연습하는 일은 상상도 못했어요. 이렇게 멋진 일이 벌어지다니! 매우 감사하고 행복해요. 중요한 것은 제가 음악을 정말 사랑한다는 거예요. 음악을 위해 태어난 것 같아요. 아주 큰 무대에서 공연하든, 그렇지 못하든 음악을 한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해요. 어떤 때는 힘들죠.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거든요. 가끔 사람들이 제 음악을 싫어하면 저를 싫어하는 것처럼 느끼기도 하고. 하지만 괜찮아요. 저는 신이 제게 음악을 하라 하셨다고 믿거든요. 그렇기에 사람들에게 희망이나 위로를 주는 노래를 써야 해요. 삶은 스트레스와 고민 덩어리잖아요. 제 음악을 듣는 짧은 순간이라도 고된 삶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어요. 물론, 저 역시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기에 밝은 노래만 나오지는 않지만요.(웃음)
    자신을 표현하려고 곡을 만들지만, 대중에게 선보인다는 압박감이 있을 텐데요. 좋은 질문이군요. 그런 고민을 매일 해요. 제게는 진실이라도 만인에게 통하지 않아 요. 그래서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듣는지 염두에 둬야 해요. 요즘 라디오에선 어떤 드럼 코드가 나오는지 귀 기울이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진실성이에요. 청취자들은 정말 똑똑해요. 제가 정직하게 곡을 썼는지 그렇지 않은지 바로 알아채죠. 그러다 보니 제 이야기를 하게 되죠. 저는 사랑 노래가 많아요. 그런 경험이 많기 때문이죠. ‘IDWLY’는 그런 이별을 해봤기에 나온 곡이고요. 우리 대부분은 맺어서는 안 되는 관계를 가졌다가 아프던 경험이 있잖아요. 제 이야기지만 당신의 이야기기도 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제 노래를 좋아하나 봐요.
    당신은 그림을 그리고 디자인도 하죠. 음악 하기 전, 그림으로 돈을 벌었어요. 여러 파티를 찾아다니며 캐리커처를 그렸죠. 그때의 경험이 지금 뮤직비디오 작업에 도움이 돼요.
    웹사이트(johnnystimson.com)에서 판매하는 의상 디자인도 직접 했죠? 제 노래를 그림으로 표현해 재킷에 입혔죠. 음악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이지만 매일 피아노 앞에 앉아 곡을 쓰기란 쉽지 않죠. 어떤 압박감 없이 오로지 재미만 위해 하는 창의적 활동이 필요해요. 그래서 집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리곤 하죠. 그 그림이 굿즈에도 쓰이니 잘됐어요.
    입국 후 한강을 자주 뛴다고요? 그림 그리는 것만큼 조깅을 즐겨 해요. 여행을 많이 다니기에 조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파리,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을 느끼는 데 조깅만 한 게 없어요. 아버지는 자전거를 자주 타셨는데 저에겐 그조차도 빨라요.
    조깅은 주변을 살피고 이웃을 만나기에 좋은 속도죠. 여행지마다 웨이트 트레이닝은 할 수 없지만 조깅은 어디서든 가능하잖아요? 달리면서 음악도 들을 수 있고, 건강에 좋고. 한국에 오기 전 자카르타에서 공연했어요. 그곳보다 서울이 조깅하기가 편한 것 같아요. 특히 한강은 최고의 코스예요.
    조깅할 때는 어떤 음악을 듣나요? 음악도 음악이지만 팟캐스트도 많이 들어요. 정치, 종교, 과학, 다른 음악가의 이야기를 찾죠. 학교에 다니지 않으니 더 이상 뭔가 배우지 않더라고요. 물어볼 데도 없고. 궁금한 것을 팟캐스트로 공부할 수 있어요. 때론 머리 식힐 겸 가벼운 이야기를 듣기도 하죠. 오늘은 <해리 포터> 오디오 북을 들으면서 달렸어요.
    다른 분야의 유행을 공부하는 것이 음악 작업에 도움이 되나요? 물론이죠. 영감은 어디서든 오니까요. 정치 분야 팟캐스트를 들으며 내가 가본 적 없는 아시아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죠. 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니까. 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팟캐스트 중 하나가 에릭남의 K-팝 관련 콘텐츠예요. 지난번 레드벨벳의 ‘짐살라빔’을 만든 프로듀서들이 나와서 제작 과정을 이야기하더군요. 팟캐스트를 통해 K-팝을 배우죠.(웃음)
    한국에서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고 싶나요? 첫 쇼케이스에 집중하고, 아름다운 강을 발견했으니 매일 조깅하려고요. 뛰면서 이 도시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스리피스 수트는 킹스맨 바이 미스터 포터(Kingsman by Mr Porter), 이너로 입은 셔츠는 송지오 옴므(Songzio Homme), 구두는 코스(Cos).

      피처 에디터
      김나랑
      패션 에디터
      남현지
      포토그래퍼
      김보성
      헤어
      오지혜
      메이크업
      박차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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