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뮤지컬 엘리자벳의 주인공 옥주현

2016.03.17

by VOGUE

    뮤지컬 엘리자벳의 주인공 옥주현

    19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후 엘리자벳 이야기에 ‘죽음’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더한 대작 뮤지컬이 7월 26일 오픈을 앞두고 있다. 아이돌에서 뮤지컬계의 여왕이 된 옥주현이 이 아름답고 상처 받은 오스트리아의 황후를 완벽하게 연기한다.

    생 로랑(Saint Laurent)

    유럽 최대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비극적 가족사를 그린 뮤지컬 <엘리자벳>은 캐스팅이 오픈되자마자,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 1위에 링크됐다. 19세기 합스부르크 왕가의 실존했 던 황후 엘리자벳의 이야기에 ‘죽음’이라는 판타지적 요소를 더해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이 작품은 지난해 ‘한국뮤지컬대상’ 남녀 주연상을 수상했고(옥주현, 시아준수),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옥주현)을 포함해 8개 부문을 휩쓸며 대한민국 뮤지컬 역사를 다시 썼다.

    지금 옥주현은 이 거대한 작품을 대표하는 헤로인이자, 한국 뮤지컬 티켓 파워를 개런티하는 초특급 스타다. 2005년 <아이다>로 뮤지컬 무대에 오른 이 후, 그녀에게 2012년은 최고의 한 해였다. 알프레도 히치콕의 영화로도 유명한 뮤지컬 <레베카>에서 그 녀는 죽은 레베카를 대신해서 들어온 새 아내 ‘윈 터 부인’을 쫓아내려는 집요한 집사 ‘댄버스 부인’ 역을 맡아 스펙터클한 악마성을 드러냈다.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자살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황태자 루돌프>에서는 사랑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비극적인 마리 베체라 역을 맡기도 했다.

    2012년 초연에 이어 올해도 <엘리자벳>의 타이틀롤을 옥주현이 맡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옥주현은 이미 유럽 최고의 ‘헬레네 피셔 쇼(베를린 TV로 방영돼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유럽 지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에서 성악가 안드레아 보첼리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뮤지컬 <엘리자벳> 20주년 기념 무대에서 하이라이트 넘버인 ‘나는 나만의 것’을 한국어로 불러 기립 박수를 받았다. 뮤지컬 <엘리자벳>의 원작자인 실베스타 르베이는 말했다. “옥주현이 표현한 엘리자벳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저 자신, 아이돌 출신의 뮤지컬 배우로서 책임감이 커요. 그동안은 제가 뮤지컬 배우로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해내는 시간이었죠. <아이다> 이후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박수치기 시작한다고 느꼈던 공연이 <엘리자벳>이었어요.”

    1992년 9월, 비엔나에서 시작된 뮤지컬 <엘리자벳>은 전형적인 브로드웨이 뮤지컬보다 더 극적이고 서사적이다. 생존 당시 유럽 전역의 관심과 사랑을 얻고 있었던 오스트리아 출신의 황녀 엘리자벳. ‘씨씨’라는 애칭으로 불렸던 이 오스트리아 황후는 가식보다 솔직한 저항을 택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현대적인 여성으로 평가받는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결혼 후 시어머니인 소피 대공비의 억압과 엄격한 궁정 생활을 강요받았던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정치적 무기가 미모임을 깨닫고 평생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특수 고안된 가죽 마스크에 고기를 넣어 얼굴에 쓰고 잠을 잤고, 우유 목욕을 했고, 매일 승마와 운동으로 평생 허리 사이즈 21인치를 유지했어요’’라고 옥주현은 자신의 배역을 설명했다. 15세부터 암살 당하는 60세까지 엘리자벳은 여러 스타일의 드레스를 입는다. 볼륨이 많은 크리놀린 스타일에서부터 버슬 스타일, 슬림한 라인의 성숙한 S자형 스타일까지. 궁정에서 멀리 떠나 유랑하던 그녀가 스위스 레만 호 부근에서 무정부주의자 루케니에게 암살 당할 때 사인은 과다 출혈이었는데, 워낙 코르셋을 꽉 조여 입어서 칼이 심장을 찌르고 간 고통조차 알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칼에 찔린 지 서너 시간이 지난 후, 죽기 직전에 그녀가 건넨 한마디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였다.

    엘리자벳이 실존인물이라면, ‘토드’라고 불리는 죽음 역은 엘리자벳이 만들어낸 환영이다. 암살자 루케니의 증언에 의하면 그녀는 평생 ‘죽음’을 사랑했다고 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나 다이애나 황태자비를 떠올렸지요”라고 옥주현은 말한다. “화려했지만 자유를 박탈 당한 삶이었어요. 시어머니인 소피 대공비가 아이들의 양육권을 빼앗아 갔고, 남편인 황제 요제프도 허수아비에 불과했죠. 차라리 미쳤으면 싶었을 거예요. 그녀가 느꼈을 공허가 마치 내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녀는 종종 <거울의 방>에 들어 가서 ‘죽음’에 관한 시를 썼는데, 죽음만이 그녀에겐 숨쉴 공간이고 행복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뮤지컬 <엘리자벳>의 어두운 매력은 바로 엘리자벳을 향한 ‘토드’의 유혹이다. 엘리자벳이 철저히 고증에 의존해서 살려낸 인물인데 반해, 죽음을 의인화시킨 ‘토드’는 ‘지옥에서 온 사자’를 모티브로 해 바로크적인 매력을 풍긴다. 작년에 이어 ‘토드’ 역을 맡은 시아준수와(캐스팅 오픈 직전에야 아슬아슬하게 계약이 마무리됐다) 올해 처음 ‘토드’ 역에 캐스팅된 가수 박효신, 뮤지컬계의 다크호스로 떠오른 전동석은 부스스한 은발 머리에 깃털 장식과 체인, 검정 망토, 문 신을 믹스매치해 삶과 죽음의 회색 지대에서 등장하는 로맨틱한 플레이 보이를 탄생시켰다.

    ‘토드’ 역을 맡은 시아준수와 암살자 루케니로 분한 이지훈(가수이자 탤런트인), 그리고 엘리자벳 역의 옥주현의 파워풀한 연기가 단단히 중심을 잡고 있는 이 작품은 뮤지컬에 정치사와 도덕적인 비전을 더함으로써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마리 앙투아네트>처럼 이 작품도 생생한 역사적인 디테일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표현주의적인 미술 디자인과 상징주의에 대한 로버트 요한슨 감독의 안목 덕분에 그것은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승화됐다. 덕분에 죽음의 천사들, 고압적인 황실 세력가들, 엘리자벳의 가족들, 그리고 무정부주의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노래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커리어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옥주현의 ‘엘리자벳’이 좀더 특별한 이유는 그녀가 <엘리자벳>에서 확장된 또 한 편의 비엔나 뮤지컬, <황태자 루돌프>에서 루돌프의 연인 역할을 연기한 경험이 있다는 데 있다. “루돌프의내연녀 역할을 하다 보니, <엘리자벳>에서 아들 루돌프가 죽은 후 부르는 노래에서는 정말 감정이 사무쳤어요. 이해 받지 못한다는 건 사람을 궁지에 몰아넣지요.” 그래서 그녀는 뭔가 더 근본적인 것을 위해 싸운다. “시어머니인 대공비 소피에게 아이도 빼앗기고 남편도 빼앗겨서 낭떠러지에 섰을 때 그녀는 정치적으로 헝가리에 자유를 주고 싶어 했어요. 가족과는 불화했지만, 엘리자벳은 제국주의에 신음하던 식민지 백성들로부터는 진보적인 사상을 지닌 아름다운 황후로 사랑받았죠. 여기엔 진짜 러브 스토리가 있어요. 뒤틀리고 지독한 그런 사랑 이야기 말이에요”라고 옥주현은 말했다.

    그렇게 내면에서 벌어지는 저항의 드라마는 엘리자벳 그 자체다. 자유에 대한 불륜 같은 갈망을 지닌 엘리자벳은 여행을 다니고 헝가리를 사랑했으나 황실과 밖, 충돌하는 두 세계 중 어느 곳에도 안착하지 못했다. 옥주현은 확실히 엘리자벳에게 공감을 느낀다. “저도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유혹의 순간에 날 아끼는 사람이 하나라도 생각나면 빠져나올 수 있지요.” 그녀는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외로움을 느낀다는 게 어떤 건지 알고 있었다. 특히 자신이 그 관계를 잘 이어가려고 애쓰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 때의 외로움에 대해. 옥주현은 무대에서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넘버를 부를 때, 회전하는 무대를 거꾸로 걷는 액션을 연출가에게 직접 제안하기도 했다.

    동시에 그녀는 엘리자벳이 미모에 집착했던 것도 주목했다. 그리고 이미 공연을 위해 죽여주는 몸매를 만들었다. 그녀는 철저하게 식단을 조절했고, 필라테스와 발레를 했고, 여전히 요가를 즐긴다. <엘리자벳>에선 쇠약한 동시에 반짝반짝 빛이 나 보여야 했다. “<레베카>의 댄버스 부인 역할을 할 때는 자세가 주는 힘이 대단했어요. 발레 스트레칭으로몸을 곧게 하고 가면 노래에도 뼈대가 서죠.”

    몇 년 전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장소도 발레 공연장이었다. 유니버설 발레단의 문훈숙 단장은 그녀의 몸이 아주 멋지다고 칭찬했다. “어제가 데뷔한 지 15주년 되는 날이었어요. 핑클로 5년간 활동했고, 2002년에 라디오 DJ를 하다가 2005년부터 자연스럽게 뮤지컬로 오버랩됐어요. 제가 처음 <아이다>로 뮤지컬계로 들어왔을 때는 시선이 따가웠죠. 아이돌 스타가 뮤지컬한다고 하니까 누군들 좋게 보겠어요? 비난과 의심 속에서 무대에 섰는데, 지난 8년간 그 비난과 의심이 나를 성장시켰어요. 잘한다는 얘기를 들으면 더 무서웠죠.”

    옥주현이 뮤지컬 팬을 확장시키고, 드라마적인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얻으면서, 많은 아이돌 스타가 뮤지컬 무대에 관심을 쏟고 있다. 원더걸스의 예은, f(x)의 루나, 소녀시대 제시카, 태연… 뮤지컬에 관심 있는 후배들에게 현재 그녀는 구체적인 레슨 선생님이자 롤모델이 되고 있다. “엄청난 자기 관리가 필요해요. <엘리자벳>을 공연하는 4개월 동안은 고춧가루가 든 음식은 먹지 않았어요. 위가 힘들면 소리가 나오지 않거든요. 공연할 때는 다음날 오전 12시까지 TV도 안 보고 전화도 안 받아요. 나름의 노하우를 만들기까지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해요.”

    몇 년 전 뮤지컬 <드림 걸스>를 보면서 핑클 시절의 옥주현을 떠올렸다. 요정처럼 가녀린 소녀들 사이에서 글래머러스한 몸으로 오롯이 목청껏 노래하던 자의식 강한 소녀. 핑클이 해체된 후 옥주현이 건강한 요가 미인으로 거듭나고, 카리스마 넘치는 뮤지컬 디바로 인정받는 과정은 ‘아이돌의 성년식’을 보여주는 이상적인 모델처럼 보였다. 현재 그녀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와 있다. “이게 운명처럼 느껴져요. 저는 아주 멋진 방식으로 뮤지컬 배우가 됐어요. 가끔 핑클 시절의 노래를 듣다 보면, 왜 저렇게 노래를 못했을까… 싶지만, 그땐 갓 스무 살이었는 걸요.” 그녀는 잠시 그것에 대해 생각하며 웃었다. “뮤지컬 무대는 정말 신기해요. 마지막 한 피치를 올릴 때, 그건 제 목소리가 아니죠. 그 초인적인 힘은 역시나 관객들의 몫이에요.

      에디터
      피처 에디터 / 김지수
      포토그래퍼
      HYEA W. KANG
      스탭
      스타일리스트 / 임지윤, 메이크업 / 박혜령, 헤어 / 박선호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