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BP가 너무해

2016.03.17

by VOGUE

    BP가 너무해

    여성의 가슴이 화두로 떠올랐다. 소셜미디어 속 노출의 정도를 두고 논란이 일어난 것.
    과연 어디까지 벗어야 할까? BP를 드러내도 되는 걸까?

    리한나가 가슴을 속 시원히 드러냈다! 6월 초, 미국 디자이너협회인 CFDA 패션 어워즈에 참석한 이 슈퍼스타가 투명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나 핵폭탄 같은 몸매를 자랑한 것. 뉴욕 신인 디자이너인 애덤 셀먼이 무려 21만6,000개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로 장식한 이 드레스는 엉덩이(G-스트링으로 그 부분만 겨우 가렸다!)는 물론, 그녀의 몸을 구석구석 자랑하기에 충분했다. 새하얀 여우 모피로 중요 부분만 아슬아슬하게 겨우 가린 리한나는 거침없이 레드 카펫을 걸었다. 올해의 패션 아이콘 수상자에 어울리는, 과연 근사한 모습!

    이 파격적인 드레스엔 리한나의 치밀한 계산이 숨어 있었다. 시상식이 열리기 직전, 천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자랑하던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닫아버린 그녀가 이 드레스를 통해 인스타그램에 간접 항의한 것. 사건의 발단이 궁금하다면, 4월 30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마리오 쏘렌티가 촬영한 자신의 전신 누드 이미지(프랑스 남성지 <Lui> 표지)가 인스타그램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을 어겼다는 이유로 삭제당하자 자신의 계정 자체를 없애버린 것. 이건 리한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슈퍼 모델 애냐 루빅은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는 패션지 <25> 계정이 통째로 삭제되는 불운을 겪었다. 안토니 바카렐로 쇼에서 마지막으로 입은 코트 룩을 올린 사진 때문에 일명 ‘인스타 폴리스’에게 걸린 것. 코트 안에 입은 시스루 톱 사이로 그녀의 BP가 그대로 보인다는 점이 삭제의 이유였다.

    미국 <보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그레이스 코딩턴 역시 인스타그램 심의의 피해자다. 가입 후 첫 번째 사진으로 자신이 누드로 누워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을 올렸고, 다음 날 인스타그램의 ‘No Nude’ 정책에 걸려 계정 자체가 없어진 것. 연필로 그린 그림만으로 삭제되는 엄벌에 처해져야 하는 건가, 항의가 드세지자 인스타그램은 재빨리 사과의 뜻을 밝혔다. “우리 팀이 인스타그램 커뮤니티 속 멤버들의 신고를 처리할 때 가끔 실수를 하곤 한다. 이번에 우리는 콘텐츠를 지우는 실수를 범했고, 이에 대해 통보받은 즉시 실수를 수정했다. 불편함을 끼쳐 죄송하다.”

    인스타그램 홈페이지에 가면 ‘커뮤니티 가이드라인’이라는 페이지가 따로 존재한다. “과다한 노출 콘텐츠는 삼가하세요” “모든 연령에 적합한 사진&동영상을 공유하세요” “회원님이 업로드하려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어린이, 상사, 부모님에게 보여줄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공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등등. 이렇듯 여러 문장을 써서 누드에 대한 규칙을 알리는 중이다. 하지만 이런 규정이 적용되는 경우는 대부분 여성의 BP가 노출됐을 때다. 아기 손바닥만한 비키니를 입고 있다 해도 BP만 노출하지 않으면 OK. 대신 제아무리 유명한 사진가가 찍었다 하더라도 BP가 보이는 순간 규정을 어기는 셈이다.

    “나는 이러한 방침들이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의 몸에 콤플렉스를 갖게 한다고 여긴다.” 자신의 계정에 올린 여러 사진들이 삭제됐던 애냐 루빅은 여전히 그 방침에 반대한다. “이런 규칙은 우리의 몸이 부자연스럽고 아름답지 않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여성들은 이런 생각들과 싸워야 한다.” 실제로 그녀는 ‘Don’t Fear The Nipple’이란 문구를 담은 티셔츠를 제작했고, 파리의 꼴레뜨에서 판매했다. “여성의 몸은 아름다운 예술 작품과 같다. 유두 역시 자연스럽다. 우리 모두 갖고 있으며, 결코 여성들이 스스로의 몸을 부끄러워하도록 만들어선 안 된다. 우리 스스로의 여성성으로 인해 자신감을 느껴야 한다!”

    애냐의 행동에 동참한 인물은 데미 무어와 브루스 윌리스의 딸인 스카우트 윌리스. 그녀는 여자 두 명의 상반신 누드 사진이 그려진 재킷을 입고 올린 사진이 삭제당하자 본격적으로 인스타그램에 항의했다. 토플리스 차림으로 뉴욕 거리에 나선 것. 그녀는 이날의 모험을 #FreeTheNipple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트위터에 기록했다. 어느 웹사이트에 자신의 변을 쓴 윌리스는 1930년 BP를 노출했다고 경찰에 단속을 당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꺼내며 이렇게 답했다. “왜 80년이 지난 지금도 여성들은 자신의 가슴에 대한 권리를 가지지 못하는 건가?”

    “성인용 이미지가 제약 없이 게재되는 텀블러의 경우 트래픽의 40%가 포르노그래피다. 인스타그램이 경계하는 것도 바로 그 점이다.” 연세대 커뮤니케이션 연구소의 강정수 박사는 이 모든 해프닝의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특히 인스타그램의 경우 10대 유저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도 어느 정도 규제가 필요하다.” 소셜미디어의 특징과 나라별, 유저들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예를 들어 태국에서는 페이스북에 국왕을 모독하는 내용이 금지되고, 한국에서는 비뇨기과와 성형외과 광고 등이 필터링된다), 어느 정도의 검열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패션계가 당혹스러운 것은 새삼스럽게 검열 대상이 여성의 가슴이라는 것. 따지고 보면 누드는 늘 패션계의 중요한 이슈였다. 올 누드가 아니라고 해도 여성들의 가슴은 자연스럽게 <보그> 화보나 런웨이에 등장했었고, 올가을 마크 제이콥스를 비롯한 수많은 디자이너의 컬렉션에도 속이 비치는 옷차림의 모델들이 당당히 런웨이를 누볐다(마크 제이콥스의 시스루 니트를 켄달 제너가 올린 사진 역시 인스타그램에서 삭제됐다). 여성의 몸이 캔버스와 다름없는 패션계 입장에서 ‘니플 포비아’라고 불릴 정도의 이 새로운 현상은 분명 낯설다.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나누기 어렵다는 핑계로, 스스로의 몸이 자랑스러운 여성들의 자기 표현까지 막는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

    팝스타 자넷 잭슨이 슈퍼볼 공연에서 저스틴 팀벌레이크와 춤추던 중 일부러 옷을 찢어 가슴을 노출했다는 이유로 질타를 받았던 것이 벌써 10년 전. 강산이 한 번 변하는 동안에도 여성의 가슴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최근의 인스타그램과 BP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을 지켜보며 누군가 제2의 자넷 잭슨이 될 일탈을 꾸미고 있진 않을까?

      에디터
      패션 에디터 / 손기호
      기타
      Indigital, Courtesy Pho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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