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디자이너 황록이 사랑하는 서울, ‘로크’의 취향

2026.04.30

디자이너 황록이 사랑하는 서울, ‘로크’의 취향

서울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럼에도 끝내 제자리를 지키는 것들이 있다. 디자이너 황록은 무채색으로 덮인 이 도시가 때로는 재즈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 서울을 사랑하는 로크의 지극히 주관적이고도 사적인 취향에 대하여.

모델의 레이스 스커트 디테일 란제리 드레스와 실버 컬러 스니커즈 펌프스는 로크(Rokh). 황록이 입은 더블 칼라 스웨터는 로크.

4일간 펼쳐진 ‘로크(Rokh)’의 파노라마. 지난 4월 2일부터 5일까지 로크의 첫 단독 팝업 스토어가 서울에서 열렸다. 로크 자체를 느낄 수 있는 브랜드의 국내 첫 전시형 팝업이었다. 코브 더 장충에 들어서자 정원에서 재즈가 울려 퍼지며 소나무 향이 코끝을 간지럽혔다. 흐르는 음악, 정원의 공기, 곳곳의 가구 등에서 나는 디자이너 황록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서울 안에서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공간은 로크의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고 있었다. 또 그가 생각하는 예술과 도시, 그리고 브랜드에 대한 태도를 고스란히 함축하고 있다. “오랜 시간 준비해온 만큼 긴장도 컸지만, 외진 곳인데도 직접 찾아와주시는 분들을 보며 매우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들어요.” 황록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편안한 패션을 추구한다고 나에게 전한다. “패션을 즐기는 공간 자체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죠. 로크가 있는 공간에서는 모든 행동이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봄날의 짧은 전시는 끝이 났지만 황록은 이제 국내에서 브랜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크게 느낀 건 벅찬 감정이다. 그에게 서울은 고향이자 각별한 도시다. 그 역시 우리에게 낯선 존재는 아니다.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고 피비 파일로의 셀린느, 루이 비통 등 럭셔리 하우스에서 일하며 패션을 향한 열정을 키워왔다. 이후 2016년, 자신의 이름 록(Rok)에서 따온 로크를 런던에서 성공적으로 시작했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2018년에는 LVMH 프라이즈에서 스페셜 프라이즈를 수상했다. 클래식한 테일러링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그의 미학은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느낌을 주는 디자인으로 주목받았다. <보그 런웨이>의 수석 평론가 사라 무어는 황록의 여러 컬렉션을 마주하고 이렇게 칭찬할 정도다. “전형적인 트렌치 코트라는 아이템에 부풀어 오른 시폰 망토와 스커트를 융합하거나 여러 개의 지퍼로 찢은 재킷을 보면 단순함에 아이디어를 더하는 것이 그의 창의적인 의상 감각이다.”

여전히 황록은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데 몰입한다. 지금껏 파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그가 마침내 서울로 영역을 확장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는 새로운 장소에서 시작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진 않았다. 한국에서 자신의 옷을 처음 선보이기까지 이토록 시간이 걸린 이유에서 로크가 옷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해외에서 주로 활동하던 그는 단순히 국내 고객을 위한 사이즈 조정이 아니라 신체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옷을 다시 설계했다. 기존 외국 모델의 골격과는 다른 한국인의 몸을 위한 옷을 새로 준비했다. 주변의 한국인 스태프에게 직접 입혀보며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 기후, 그리고 우리가 선호하는 촉감이나 실루엣까지 세심하게 연구하는 자세로 임했다. “처음부터 완전히 다시 세팅하는 과정이었어요. 그 안에서도 로크의 색을 유지하는 방법을 찾는 데 시간이 필요했죠.”

그의 세심한 태도는 팝업 공간에서도 볼 수 있었다. 공간에 자리한 거친 표면의 부드러운 실루엣을 지닌 세라믹 오브제와 프랑스 가구 디자이너이자 목수 피에르 샤포(Pierre Chapo)의 오리지널 원목 가구가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오브제 역시 개인적인 취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디자이너가 말했다. “아주 주관적인 선택이에요. 실제로 제 집에 있던 것도 많이 가져왔고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통해 제 취향을 더 직접적으로 공유하고 싶었어요.”

패션에 대한 섬세한 시각과 예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태도 역시 로크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다. “모든 예술은 결국 서로 연결된다고 여겨요. 특정 장르로 나누기보다 로크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것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결과죠. 우리 옷이 때로는 재즈처럼 느껴지는 것처럼요.” 그의 말을 듣고 로크의 새로운 컬렉션을 내가 직접 입어보고 또 모델이 입었을 때를 살펴보니 자유롭게 해체된 디자인에서 리듬감이 느껴졌다. 정적인 분위기에 다양한 소재와 버클 또는 레이스 디테일로 더해진 경쾌한 위트는 재즈 피아노를 연주하는 오스카 피터슨 트리오(Oscar Peterson Trio)의 음악을 떠올렸다.

디자이너는 최근 뉴욕에서 열린 세라믹 작가 루드밀라 발키스(Ludmilla Balkis)의 개인전을 인상적으로 보았다. 루드밀라 발키스는 셀린느에서 함께 일하며 맺은 인연으로, 친한 친구인 동시에 예술적 영감의 근원이다. 프랑스 바스크 지방의 흙을 사용하는 작업 방식은 크래프트에 대한 황록의 애정과도 맞닿아 있다. 예술품처럼 오래 입어도 자연스럽게 옷장에 남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은 열망이다. 서울 전시가 끝난 뒤 앞으로 로크의 국내 여정이 궁금해졌다. “일본으로 가요. 그곳에서도 지금과 같은 기획으로 전시가 열리고요. 물론 캠페인부터 새로운 스토어처럼 국내 고객과의 접점 역시 계속 확장할 계획이에요.” 로크는 도자기를 빚듯 정체성을 다듬어간다. “로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계속 다듬는 중입니다. 저에게 현재는 여전히 ‘과정’입니다.” VK

오버사이즈 실루엣의 트렌치 코트와 와이드 팬츠는 로크(Rokh).
금속 장식과 스트랩 디테일을 더한 드레스와 블랙 컬러 스니커즈 펌프스는 로크(Rokh).
란제리와 트렌치 코트 요소를 레이어드한 드레스는 로크(Rokh).
박기호

박기호

패션 에디터

    패션 에디터
    박기호
    포토그래퍼
    장정우
    모델
    왕샤오, 이안
    헤어
    이봉주
    메이크업
    임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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