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프 로렌 쇼에 대한 사적이면서도 전문적인 소회
반세기 전 작은 넥타이에서 출발한 랄프 로렌은 오늘날 거대한 패션 제국이 되었다. 그 정체성의 정점에는 늘 ‘캣워크’가 있었다. 그에게 런웨이는 영화적 탐미주의가 완벽하게 구현되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미국 브랜드 최초의 ‘캣워크 북’ 발행을 기념해 랄프 로렌의 런웨이를 가장 가까이 지켜본 국내외 패션 전문가들의 기록을 모았다. 이 사적인 조각들은 ‘랄프 로렌’이라는 이름에 담긴 독보적인 미학과 시대정신을 증명한다.



영국 일간지의 뉴욕 패션 위크 담당 기자로 활동한 2009년 9월부터 2014년 9월까지 5년 동안, 랄프 로렌은 언제나 내가 가장 즐겁게 관람하는 쇼였다. 쇼는 보통 패션 위크의 마지막 날인 목요일 아침에 열리곤 했는데, 마음속에서 랄프 로렌 쇼는 뉴욕에서 열리는 쇼 중 ‘가장 뉴욕다운’ 쇼였다. 미스터 로렌은 늘 패션을 영화적 관점에서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역시 그의 쇼는 영화 시사회 같았다. 도시의 유명 인사들이 그곳으로 구름처럼 몰려들었으니까. 그것이 웨스트 코스트 스타일이든, 랜치(Ranch)나 다이앤 키튼 스타일, 혹은 그 외 여러 여성복 장르 중 무엇이든 랄프 로렌은 언제나 완벽한 비전으로 이를 구현해냈다. 런웨이 모델들과 게스트를 구경하는 것만큼 내가 즐긴 것은 랄프 자신이 피날레 인사를 위해 어떤 차림으로 나올지 지켜보는 일이었다. 가죽 바지일까, 체크 셔츠일까, 아니면 플래드 재킷이나 카우보이 모자일까? 그는 객석에서 구식 필름 카메라를 들고 대기 중인 사진가 빌 커닝햄을 향해 종종 가볍게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랄프 로렌이 피날레에 입었던 몇몇 룩을 직접 찍은 사진을 간직하고 있다. 2013년, 운 좋게도 나는 그와 몇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의 삶의 궤적과 패션 철학에 대해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랄프 로렌은 내게 최고의 찬사를 건넸다. 미국 최고의 디자이너가 잠시 시간을 내어 ‘나’라는 사람을 평가해준 것이다. 우리는 그의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그는 내게 임원용 화장실에 걸어둔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들의 친필 사인 사진을 막 보여준 참이었다. 나는 그 사진 속 인물들을 연결하는 공통점이 무엇인지, 무엇이 그들을 ‘쿨하게’ 만드는지 물었다. 그는 이렇게 답했다. “내가 생각하는 멋이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거예요. 그게 바로 쿨한 거죠. 당신을 예로 들어볼까요? 만약 당신이 오늘 꾸민 ‘의상’을 입고 들어왔다면 당신답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어두운 코트, 목에 두른 스카프, 셔츠까지. 당신은 영락없는 작가처럼 보여요. 당신은 당신 자신처럼 보입니다. 클래식하면서도 멋지죠. 당신의 옷은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선언입니다. 분명 당신도 고민하고 입었겠죠, 그렇죠?” 물론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고민하고 입었으니까. 그리고 결과가 어땠느냐고? 랄프 로렌이 나를 ‘멋지다(Cool)’고 말한 것이다. 내 인생에서 이보다 더 큰 찬사를 받아본 적이 있었나? 잘 모르겠다. ― 루크 리치(Luke Leitch), <보그 런웨이> 컨트리뷰팅 에디터


많은 패션 피플과 달리 나는 프렌치 시크보다 아메리칸 클래식을 더 좋아한다. ‘아메리칸 클래식이 대체 뭐길래?’라고 물으면 줄무늬 티셔츠, 테일러드 재킷과 살짝 스키니한 청바지를 입고 힐을 신은, 살짝 부스스한 긴 머리의 ‘슬렌더’한 여자라고 공식을 외우듯 줄줄 읊진 못하겠지만 랄프 로렌을 떠올리며 자신감 있게 나의 추구미를 드러내곤 했다. 미디어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던 1980~1990년대에 성장한 나는 언니들과 친구들이 그러했듯 지상파 TV와 라디오, 비디오를 통해 미국 대중문화를 접했는데, 특히 1980년대 한국어로 더빙된 미국 드라마나 영화, MTV 뮤직비디오(음악과 영상이 결합된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당시 혁신적이었다)를 통해 습득한 미국 문화는 어린 시절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과 R&B와 힙합, 슈퍼모델 그리고 패션에 대한 관심이 폭발했던 여고 때 동대문 헌책방에서 샀던 미국판 <엘르>의 1994년 커버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뇌리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커다란 성조기가 그려진 폴로의 크롭트 니트를 RRL 청바지와 입은 신디 크로포드였는데 16세의 나는 그 니트가 너무 갖고 싶어 압구정과 잠실의 갤러리아백화점(당시 멋 좀 부리는 애들은 모두 갤러리아백화점으로 갔다) 폴로 매장을 샅샅이 뒤진 적도 있다. 아프리카 야생에서 미국 모델 브리짓 홀과 토니 브루스가 새끼 사자를 안고 찍은 광고 비주얼은 나를 랄프 로렌 추종자로 만든 두 번째 이미지일 것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사파리 룩, <위대한 개츠비>의 플래퍼, <인도차이나>의 콜로니얼 룩, <죽은 시인의 사회>의 프레피 룩, <늑대와 춤을>의 인디언과 웨스턴 스타일 등 내가 사랑한 영화를 완성한 패션 스타일은 늘 랄프 로렌에 있었다. 그것도 완벽한 모습으로 말이다. 당대 유행을 선도하지만 유행의 속도를 좇는 방식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는 클래식과 세련된 라이프스타일로 완성된 랄프 로렌의 미학. 그리고 그 위에는 언제나 나의 로망이 겹쳐졌다. 햄프턴의 바닷가를 가로지르는 석양빛과 서걱거리는 리넨 셔츠, 뉴욕 밤의 마천루를 통과하는 블랙 드레스, 서부의 먼지와 함께 찰랑거리는 프린지 등. 랄프 로렌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구체적이면서도 끝내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감정의 결을 품고 있었다. 내가 꿈꾸던 아메리칸드림처럼 말이다. 랄프 로렌을 입는다는 것은 결국 어떤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미국 문화를 동경하며 미래에 그 문화를 향유할 내 모습을 상상했던, 순수했던 나의 청춘. 구순을 바라보는 디자이너가 만든 옷을 바로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 <보그> 패션 에디터가 되었고, 패션이 더 이상 환상이 아닌 시대에 사는 지금도 랄프 로렌은 나로 하여금 여전히, 꿈꾸게 한다. 아련한 나의 젊음을. ― 손은영, <보그 코리아> 패션 디렉터

유행은 돌고 돈다. 올드 머니 스타일과 빈티지가 유행하면서 MZ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랄프 로렌이야말로 클래식한 브랜드가 다시 힙해진 대표적인 케이스라 하겠다. SNS를 도배하고 있는 로고와 스타일은 단순히 유명 브랜드여서가 아니라 ‘새것보다 잘 만든 오래된 것’을 선호하는 MZ에게 여전히 멋있는 브랜드로 인식되었기 때문. 브랜드 헤리티지와 스토리텔링에서 진정성을 중요시하는 MZ에게 수많은 멋쟁이들이 여전히 즐겨 입는 랄프 로렌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소비로 인정받은 셈이다. 스트리트와 클래식의 믹스를 즐기는 요즘 스타일에 걸맞은 브랜드인 것도 큰 이유다. 너무 클래식하면 촌스럽고 너무 스트리트면 질리지만, 랄프 로렌만큼 적절하고 다양한 아이템을 보유한 브랜드도 없다. 2007년 초반 남성복으로 SFDF(삼성패션디자인펀드)를 수상했던 디자이너 김건효는 패션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다면 어느 브랜드에서 일하고 싶으냐는 질문에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랄프 로렌이라고 대답했다. 클래식을 기반으로 조용하지만 깊이 있는 스타일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라는 점에서 랄프 로렌과 닮은 점이 있는 그는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를 졸업하고 드리스 반 노튼 디자인실에서 일했다. 실험적인 디자인 기반의 앤트워프라는 환경에서 공부한 디자이너치고 드물게 전통적인 테일러링을 추구하던 디자이너였다. 조용한 럭셔리를 지향했던 그는 좋은 소재와 디테일로 승부하되 뻔하고 지루하지 않았다. “클래식과 험블한 것이 섞인 스타일과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운 것이 좋다”고 말하곤 했던 그는 랄프 로렌에 대한 원고를 써달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이었고, 살아 있었으면 지금쯤 랄프 로렌과 협업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디자이너이기에. 아메리칸 캐주얼이라는 이름으로 타미 힐피거, 바나나 리퍼블릭, 갭 같은 브랜드가 부지런히 랄프 로렌의 인기를 추격했으나 패션을 넘어 라이프스타일까지 무한 확장한 랄프 로렌의 위용은 따라잡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 옷을 넘어 라이프스타일을 판매하는 브랜드가 되었고, 패션 브랜드 통틀어 가장 완벽한 홈 컬렉션을 전개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베딩부터 테이블웨어까지, 하다못해 향초와 커피까지 없는 것이 없으니 랄프 로렌이야말로 아메리칸드림을 대변하는 브랜드나 다름없다. 랄프 로렌이 이토록 근사한 왕국이 될 수 있었던 데는 랄프 로렌의 아내이자 라이프스타일 디렉터 역할을 해온 리키 로렌의 공이 크다. 사진가이자 작가로 다수의 라이프스타일 북을 출판한 리키는 랄프 로렌이 그리는 세계관과 이상적인 삶을 현실에서 가능하게 만든 일등 공신이다. 옷뿐 아니라 아름다운 집과 정갈한 식탁, 러블리한 패밀리가 있는, 그야말로 미국인의 삶이 담긴 브랜드를 펼칠 수 있었던 데는 그녀의 몫이 크니 자고로 전 세계에서 가장 결혼을 잘한 디자이너가 아닐까 싶다. 패션 디자이너 김재현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패밀리의 삶과 경험이 브랜드 전체에 녹아든 랄프 로렌만큼 미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완벽하게 반영한 브랜드는 없다. 럭셔리부터 캐주얼까지 모든 라인을 갖추었고, 부자부터 워킹 우먼, 평범한 아이들까지 세대와 직업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든다는 것은 디자이너로서 쉬운 일이 아니다.” 디자이너들이 부러워하다 못해 존경하는 랄프 로렌이 여전히 사랑받는 이유다. ― 전미경, 스피커(Speeker) 대표 & <더 네이버> 편집장

미국 뉴욕을 떠올릴 때 내게 가장 먼저 다가오는 풍경은 마천루가 아니라 센트럴 파크의 밤이다. 베데스다 테라스의 돌계단, 분수 둘레를 감싸던 촛불, 그리고 그 한가운데 서 있던 랄프 로렌. 내게 그는 뉴욕을 대표하는 디자이너이기 전에 이 도시가 끝내 잃지 않으려는 낭만의 얼굴에 가깝다. 나는 그를 두 번 인터뷰했다. 2014년과 2018년, 서로 다른 시간의 랄프 로렌을 마주했지만 그의 본질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거대한 브랜드의 창립자, 미국적 라이프스타일의 설계자라는 수식보다 먼저 다가온 것은 여전히 소년 같은 눈빛이었다. 2018년 9월 센트럴 파크에서 열린 랄프 로렌 창립 50주년 쇼의 밤. 베데스다 테라스에서 시작된 그 밤은 런웨이와 만찬, 영화와 패션, 뉴욕과 아메리칸드림이 한 장면으로 포개지는 순간에 가까웠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는 그를 두고 “우리의 꿈을 50년 동안 디자인해온 사람”이라고 건배사를 올렸다. 힐러리 클린턴, 스티븐 스필버그, 앤 해서웨이, 제시카 차스테인, 김혜수, 프리앙카 초프라 같은 이름이 모여 있었다는 사실조차 그 밤의 본질을 설명하기엔 어딘가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그 많은 스타들 사이에서도 결국 모두가 축하한 것은 ‘한 브랜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세계’였다는 점이다. 나도 그 세계의 한복판에 있었다.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차려입은 관객으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의 표정 하나, 손끝의 움직임 하나, 계단 위에 멈춰 서는 짧은 순간의 공기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눈가에 맺힌 감정의 흔적, 그 한 방울의 눈물까지도 담아내려 했다. 내가 붙잡으려 한 것은 쇼의 화려함이 아니라 자기 인생이 하나의 역사로 돌아오는 순간을 마주한 한 남자의 감정이었는지도 모른다. 50주년 쇼 다음 날 그와 인터뷰를 나누다가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전날 열린 ‘50주년 패션쇼’라고 밝힌 그는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멋진 장면이군요! 당신 옆에 있는 제 모습이 아주 멋지고 꽤 좋아 보여요.” 랄프 로렌은 그런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 뇌종양 투병 당시에도, 가장 화려한 시간을 기념하는 순간에도 그는 “내 모습은 꽤 괜찮다”는 긍정의 주문(Mantra)을 멈추지 않았다. 2014년 처음 그를 만났을 때로 시간을 돌려본다. 긴장감으로 손에는 땀이 가득했고, 입은 바짝 말랐다. 그의 사무실은 18세기 프랑스 궁전 내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마호가니로 된 가구와 장식물이 눈에 띄었고, 고풍스러운 유화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하지만 실제의 랄프 로렌은 차갑고 권위적인 거물이기보다 놀랍도록 생기 있고 호기심 많은 소년 같은 사람이었다. 영화 <배트맨>과 <캐리비안의 해적>의 등장인물 피규어가 잔뜩 진열된 사무실 한가운데서 마주한 그는 양옆으로 술(Tassel)이 잔뜩 달린 카우보이 바지에 은색 징이 박힌 커다란 벨트를 매고 회색 꽈배기 니트, 흰색 셔츠를 받쳐 입은 차림이었다. 그에게 옷이란 유행이나 패션보다는 자기 안의 설렘을 한 땀 한 땀 새겨 넣는 기록이다. 그는 동경을 조직했고, 옷을 통해 삶을 직조해냈다. 랄프 로렌의 컬렉션을 떠올리면 단순히 재킷의 어깨선이나 셔츠 칼라를 이야기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말 위를 달리는 서부의 낭만, 오래된 아이비리그 캠퍼스의 공기, 바닷바람을 머금은 햄프턴의 여름, 벽난로 앞의 겨울, 저녁의 재즈와 은은한 조명, 그렇게 ‘살고 싶은 삶의 장면’을 먼저 떠올리는 건, ‘언제나 꿈꾸는 남자’ 랄프 로렌이 늘 그 자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앞으로 랄프 로렌 같은 디자이너가 다시 나올 수 있을까. 그는 자수성가한 디자이너였을 뿐 아니라 취향을 한 시대의 언어로 만든 마지막 세대의 인물처럼 보인다. 그에게 “60주년은 어떨 것 같은가”라고 물었을 때 그의 답은 이랬다. “그때도 정말 멋있으면 좋겠어요. 쿨하고 싶습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랄프 로렌에게서 배운 것은 패션의 정도(正道) 그 이상의 삶에 관한 태도였다. 결핍은 가장 아름다운 미감의 뿌리가 될 수 있고, 꿈은 허황한 장식이 아니라 한 사람을 끝내 밀어 올리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것. 어떤 사람은 옷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브랜드를 만든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 꿈을 입히는 사람이 있다. 내게 랄프 로렌은 오래도록 그런 이름으로 남을 것이다. ― 최보윤, <조선일보 더부티크> 편집장

Mr. Ralph
오래 기억하는 랄프 로렌의 남자들. 류준열의 손 기대하지 않은 것에서 뜻밖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은 아주 짜릿하다. 류준열에게서 여운이 있는 목소리와 오후 4시에 어울리는 얼굴은 폴로 랄프 로렌의 트위드 재킷이나 플래드 체크 셔츠처럼 충분히 상징적이다. 류준열의 ‘뜻밖’은 가늘고 긴 손과 팔에서 찾을 수 있었다. 적당히 그을린 듯한 피부색과 남성성을 조금 덜어낸 듯한 팔목과 손가락. 이러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면 나의 상상력은 4월의 벚꽃처럼 만개한다. 고상한 랄프 로렌 울 셔츠의 소매를 걷어 올리고, 계획에 없던 고매한 가죽 밴드 시계도 얹었다. 캐시미어 코트 밖으로 살짝 보이는 손에도 포즈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자 그 장면에선 곧 우아함이 번진다. 류준열의 손은 ‘Guy’를 ‘Monsieur’로 만들었다. 류승범의 아우라 호텔 문도 닫혀 있던 1월의 노르망디 해변은 오래된 바게트 빵 조각처럼 모든 게 거칠었다. 심지어 류승범의 수염과 피부까지도. 익숙하지 않은 장소에서 그것도 이미 속세를 탈출한 듯한 류승범과의 작업은 부담과 기대가 공존했다. 대한민국에서 옷을 가장 잘 입는 남자. 평범함도 비범하게 만들고, 특이함도 특별하게 만들 줄 아는 그에게 폴로 랄프 로렌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꽃무늬 플리스 재킷과 핑크 선글라스 같은 의외의 아이템을 어떻게 설득할까. 유난히 고민이 많았던 스타일링에, “나머지는 류승범에게 맡겨”라는 사진가의 한마디에 용기를 얻었다. 타고난 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더 이상 가로수길에 살지 않는 딸 바보가 됐어도 류승범의 아우라는 여전했다. 오히려 더 성숙하고 거침이 없었다. 랄프 로렌의 찢어진 청바지와 앞코가 닳은 가죽 부츠는 원래 그의 것인 줄 알았다. 셔터를 누를 때마다 심장이 터질 듯 좋았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다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김우빈의 클래식 한동안 건강하지 못했고, 건강해져서 돌아왔다. 김우빈은 조심스러웠지만 예상보다 밝았다. 반대로 차분하고 담담한, 그러나 고급스럽고 고요한 랄프 로렌 퍼플 라벨은 조금 엄격했다. 정직하게 갖춰 입어야 하는 옷. 끼를 부리거나 괜한 장난은 허락되지 않았다. 단단하고 든든한 김우빈의 어깨는 랄프 로렌의 고집을 그대로 수용했다. 캐시미어 니트는 짙은 주름 하나 없이 그의 몸을 드러냈고, 맞춤 수트는 맞추지 않았어도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그간 잊고 있던 오랜만에 찾은 아메리칸 클래식이었다. 그 뒤로도 몇 차례 김우빈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계절이 다르고 장소가 바뀌었을 뿐 그의 클래식은 변함이 없었다. 어느 날 앞치마를 입은 소란스러운 친구 이광수 옆에서 랄프 로렌의 클래식을 유지한 그를 발견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의 이런 유머가 참 좋다. ― 박나나, <지큐 코리아> 패션 디렉터


1980년대와 1990년대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란 내게 랄프 로렌은 단순한 브랜드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대기(Atmosphere)의 일부였다. 생각하기도 전에 몸으로 먼저 흡수되는 것 말이다. 비록 당장 손에 넣을 수 없는 대상일지라도 모두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 빌보드 광고판 위에, 쇼핑몰 안에, 그리고 사람들이 조금 더 고양된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 선택하는 옷차림 속에 랄프 로렌은 늘 존재했다. 상황이 변하기 시작하던 때가 기억난다. 어반 컬처, 즉 흑인 문화가 기존 서사를 재정의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힙합이 주류로 진입하며 ‘쿨(Cool)함’의 코드를 새로 쓰고 있을 때, 타이슨 벡포드(Tyson Beckford)가 폴로 캠페인에 등장했다. 그것은 진정한 전환점처럼 느껴졌다.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러웠다. 랄프 로렌이라는 세계 안에 존재할 수 있는 주체가 누구인지, 그 영역이 확장된 순간이었다. 미국 이민 1세대인 나는 그 세계가 얼마나 정교하게 구축된 것인지, 동시에 얼마나 유혹적인지 늘 의식하며 지냈다. 랄프 로렌은 미국을 한 편의 영화 같은 원형으로 정제해냈다. 할리우드의 세련미, 아이비리그의 여유, 스포츠 영웅의 기개, 신화적인 서부의 정취까지. 그것은 동경의 대상이었으나 결코 배타적이지 않았다. 비록 그 세계의 외곽에 있을지라도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뇌리에 남은 것은 그 비전이 진화해온 방식이다. 1990년대 후반 일본으로 거점을 옮겼을 때, 나는 또 다른 렌즈를 통해 랄프 로렌을 마주했다. 그것은 이미 일본 문화에 흡수되어 재해석된 상태였고, 아시아 전역의 ‘트래드(Trad) 스타일’을 정의하는 언어가 되어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분명히 다른 느낌, 즉 오리지널 코드를 정밀하고도 집요하게 다듬어낸 결과물이었다. 그 팽팽한 긴장감은 지금도 여전히 공명을 일으킨다. 랄프 로렌은 견고하면서도 유연한 세계를 창조했다. 그것은 판타지이지만, 사람들이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 스스로의 것으로 다시 빚어내고, 서로 다른 문화권 속에서 자신의 소유임을 주장할 수 있는 그런 판타지다. ― 티파니 고도이(Tiffany Godoy), 패션 에디터 & 컬처 스트래터지스트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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